장공 9년 봄에 제인齊人이 공손公孫무지無知를 죽였다.注+무지無知가 임금을 시해弑害하고 스스로 임금이 되었으나, 제후諸侯의 회맹會盟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작위爵位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예例가 성공成公 16년에 보인다.
노장공魯莊公이 제齊나라 대부와 기蔇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제齊나라에 난리가 일어나 임금이 없기 때문에 대부大夫가 장공莊公과 상대한 것이니, 아마도 자규子糾를 임금으로 맞이하고자 하여 온 것인 듯하다. 온 사람이 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을 칭하지 않은 것이다. 기蔇는 노魯나라 땅이다. 낭야琅邪증현繒縣 북쪽에 기정蔇亭이 있다.
여름에 장공莊公이 제齊나라를 토벌하여 자규子糾를 제齊의 임금으로 들여보내고자 하였는데, 제齊소백小白이 먼저 제齊나라로 들어갔다.注+두 공자公子에게 각각 당黨이 있었기 때문에, 비록 결맹結盟하여 자규子糾를 임금으로 맞이하기로 하였으나 공벌攻伐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노군魯軍이 제齊에 갔을 때는 이미 소백小白이 들어간 뒤였다. 소백小白이 ‘들어갔다[入] ’고 칭하여 국역國逆(本國에서 맞아들임)의 문체文體를 사용한 것은 본래 위位가 없었기 때문이다.(만약 위位가 있었다면 ‘복귀復歸’라고 기록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가을 7월 정유일에 제양공齊襄公을 장사 지냈다.注+전傳이 없다. 아홉 달 만에 장사 지낸 것은 난리 때문이었다.
8월 경신일에 노魯나라 군대가 제齊나라 군대와 건시乾時에서 전투하다가 아군我軍이 대패大敗하였다.注+소백小白이 이미 임금으로 정해졌는데도 장공莊公은 퇴군退軍하지 않고 오랫동안 전쟁戰爭하다가 마침내 그 전쟁에서 대패大敗하였다. 경經에 “장공莊公이 전쟁戰爭하였다.”고 칭하지 않은 것은 장공莊公의 패배敗北를 숨긴 것이다. 건시乾時는 제齊나라 땅이다. 시수時水는 낙안樂安의 경계에 있는데, 지류支流에 가뭄이 들면 물이 마르기 때문에 ‘건시乾時’라고 한 것이다.
9월에 제인齊人이 자규子糾를 잡아 죽였다.注+공자公子가 적賊이 되어 난리를 일으키면 기록한다. 제齊나라가 실로 ‘죽였다[殺] ’고 통고通告하였는데, ‘제齊나라가 잡아 죽였다.’고 기록한 것은, 당시 사관史官이 제齊나라의 뜻이 속임수를 써서 관중管仲을 데려가려는 데 있고, 그 친족親族을 차마 죽이지 못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 아님을 미워하였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하여 경계의 뜻을 담은 것이다.
겨울에 수수洙水를 준설浚渫하였다.注+전傳이 없다 수수洙水는 노성魯城 북쪽에 있는데, 흘러가다가 사수泗水와 합류合流한다. 깊이 준설浚渫한 것은 제齊나라의 침공侵攻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傳
9년 봄에 옹름雍廩이 무지無知를 죽였다.
傳
장공莊公이 제齊나라 대부와 기蔇에서 결맹結盟하였으니, 이는 제齊나라에 임금이 없기 때문이다.
傳
여름에 장공莊公이 제齊나라를 토벌하여 자규子糾를 제齊나라의 임금으로 들여보내려 하였더니, 환공桓公이 거국莒國에서 먼저 제齊나라로 들어갔다.注+환공桓公은 소백小白이다.
傳
가을에 노魯나라 군대가 제齊나라 군대와 건시乾時에서 전투하다가 노魯나라 군대가 대패大敗하였다.
장공莊公은 융로戎路를 잃고서 다른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注+융로戎路는 병거兵車이다. 전승傳乘은 다른 수레를 탄 것이다.
진자秦子‧양자梁子가 장공莊公의 기旗를 가지고 하도下道(사잇길)로 피해 제군齊軍을 유인하였으므로注+두 사람은 장공莊公의 어御와 융우戎右이다. 제군齊軍를 현혹眩惑시킨 것이다.[부주]林: 장공莊公이 이미 전쟁에 패배敗北하고 그 수레까지 잃었으니, 혹시 제齊나라에 잡힐까 두려웠기 때문에 두 사람이 장공莊公의 기旗를 가지고 하도下道로 피하여 제군齊軍을 그르친 것이다.두 사람은 모두 제齊나라의 포로가 되었다.注+지止는 잡히는 것이다.
포숙鮑叔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말하기를 “자규子糾는 친족親族이니 노군魯君께서 그를 죽이고,注+포숙鮑叔이 승세勝勢를 타고 진군進軍한 것은 그 뜻이 관중管仲을 산 채로 데려가는 데 있었다. 그러므로 친족親族인 자규子糾을 차마 직접 죽일 수 없다는 말로 핑계 댄 것이다.[부주]林: 포숙鮑叔은 바로 숙아叔牙이다.관중管仲과 소홀召忽은 원수이니 우리가 인수引受해다가 속시원히 원수를 갚겠다.”고 하였다.注+관중管仲이 제환공齊桓公에게 활을 쏜 일이 있기 때문에 원수라고 한 것이다. 감심甘心은 통쾌하게 죽이는 것이다.
이에 생두生竇에서 자규子糾를 죽이니,注+생두生竇는 노魯나라 땅이다.소홀召忽은 자규子糾를 위해 죽고 관중管仲은 제齊나라의 포로捕虜가 되기를 요청하였다.
포숙鮑叔이 그를 인수引受해 가다가 당부堂阜에 이르러 그의 결박結縛을 풀어주었다.注+당부堂阜는 제齊나라 땅이다. 동완東莞몽음현蒙陰縣 서북에 이오정夷吾亭이 있는데, 혹자或者는 “포숙鮑叔이 여기에서 이오夷吾의 결박結縛를 풀어주었기 때문에 ‘이오夷吾’라고 이름한 것이다.”고 하였다.[부주]朱: 소홀召忽도 자규子糾의 스승이다. 그러므로 그 주인을 따라 죽은 것이다. 관중管仲은 제환공齊桓公을 보좌輔佐할 뜻이 있었기 때문에 포로가 되기를 요청한 것이다.
포숙이 돌아가서 제환공齊桓公에게 고하기를 “관이오管夷吾는 치국治國의 재능이 고혜高傒보다 뛰어나니,注+고혜高傒는 제齊나라의 경卿고경중高敬仲이다. 관중管仲이 정사政事를 다스리는 재주가 경중敬仲보다 뛰어나다는 말이다. 그를 승상丞相으로 삼으소서.” 하니, 환공桓公이 그의 말을 따랐다.
역주
역주1例在成十六年 :
成公 16년 傳의 “若有罪則君列諸會矣”라 한 杜注에 “諸侯가 비록 임금을 弑害하고 簒奪한 罪가 있다 하더라도 侯伯들이 이미 그와 會見하였으면 더 이상 討罪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역주2各 :
대본에는 ‘名’으로 되어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各’으로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