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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1)

춘추좌씨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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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十有八年春주왕王三月에 日有食之注+無傳 不書日 官失之하다
[經]夏에 장공公追융戎于제수濟西注+융戎來侵魯 장공公逐之於제수濟水之西 [附注] 林曰 魯始治융戎하다
[經]秋에 有𧌒注+𧌒 蓋以舍沙射人爲災 [附注] 林曰 本草 謂之射工하다
[經]冬十月이라
傳
[傳]十八年春에 괵공虢公진후晉侯朝주왕王하니 주왕王饗醴하고 注+주왕王之覲群后 始則行饗禮 先置醴酒 示不忘古 飮宴則命以幣物 宥 助也 所以助歡敬之意 言備設 [附注] 林曰 時惠주왕王新卽位 故西괵공虢公與진후晉獻괵공公俱朝于주왕周하야 皆賜玉五瑴馬三匹하니 非禮也注+雙玉爲殼라
王命諸侯에 名位不同하야 禮亦異數하니 不以禮假人注+侯而與公同賜 是借人禮이니라
傳
[傳]괵공虢公晉侯鄭伯 使원장공原莊公 逆王后于진陳하다
진규陳嬀歸于경사京師注+괵공虢晉朝王 鄭伯又以齊執其卿 故求王爲援 皆在周 倡義爲王定昏 진규陳人敬從 得同姓宗國之禮 故傳詳其事 不書 不告하니 實혜후惠后注+진규陳嬀後號혜후惠后 寵愛少子 亂周室 事在僖二十四年 故傳於此並正其혜후后稱라
傳
[傳]夏에 장공公追융戎于제수濟西하다
不言其來는 諱之也注+융戎來侵魯 魯人不知 去乃追之 故諱不言其來라
傳
[傳]秋에 有𧌒하니 爲災也일새니라
傳
[傳]初에 초무왕楚武王克권국權하고 使투민鬪緡尹之注+권국權 권국國名 南郡當陽縣東南 有권국權城 투민鬪緡 초무왕楚大夫러니 以叛이어늘 圍而殺之注+투민緡以권국權叛하다
遷권국權於나처那處注+나처那處 초楚地 南郡編縣東南 有나처那口城하고 使염오閻敖尹之注+염오閻敖 초楚大夫하다
及초문왕文王卽位하야 與巴人伐신국申而驚其師注+驚巴師하니 巴人叛초문왕楚而伐나처那處取之하고 遂門于초문왕楚注+攻초문왕楚城門하다
염오閻敖游涌而逸注+涌水 在南郡華容縣 염오閻敖 旣不能守城 又遊涌水而走하니 초자楚子殺之하다
其族爲亂하니 冬에 巴人因之以伐楚하다


18년 봄 주왕周王 3월에 일식日食이 있었다.注+전傳이 없다. 날짜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사관史官이 날짜를 잊은 것이다.
여름에 장공莊公이 제수濟水 서쪽에서 융戎을 추격하였다.注+융戎이 와서 노魯나라를 침범侵犯하니 장공莊公이 제수濟水 서쪽에서 그들을 추격한 것이다.[부주]林: 노魯나라가 비로소 융戎을 징벌懲罰한 것이다.
가을에 역𧌒이 있었다.注+역𧌒은 단호短狐인데, 모래를 입에 넣고 있다가 사람을 향해 그 모래를 내뿜어 재해災害를 입히는 괴물怪物이다.[부주]林: 《본초本草》에는 역𧌒을 사공射工이라 하였다.
겨울 10월이다.
傳
18년 봄에 괵공虢公과 진후晉侯가 주왕周王에게 조현朝見하니, 왕王이 단술을 대접하고 그들에게 폐물幣物을 내리라고 명하여注+왕王이 제후諸侯들의 조근朝覲을 받을 때에 처음에는 향례饗禮(賓客을 성대히 대접하는 예禮)를 거행하는데 먼저 단술로 연회宴會를 베풀어 옛날을 잊지 않는 뜻을 보이고, 음연飮宴(모두 한 곳에 모여 먹고 마시는 것)할 때에는 폐물幣物을 내리라고 명命한다. 유宥는 돕는 것이니, 빈객賓客이 기뻐서 주인主人을 존경尊敬하는 뜻이 일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빠짐없이 모두 갖추어 진설陳設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부주]林: 이때 혜왕惠王이 새로 즉위하였기 때문에 서괵공西虢公과 진헌공晉獻公이 함께 주周나라로 가서 혜왕惠王께 조현朝見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에게 옥玉 다섯 쌍과 말 세 필匹씩을 하사하였으니 예禮가 아니다.注+옥玉 한 쌍을 각殼이라 한다.
왕王이 제후諸侯에게 내린 작명爵命에는 명칭과 지위가 같지 않아 예우禮遇도 수數(等級)가 달라야 하니, 예禮를 함부로 사람에게 빌려 주어서는 안된다.注+후侯에게 공公과 똑같이 준 것이 바로 신분에 맞지 않은 예禮를 사람에게 베풀어 준 것이다.
傳
괵공虢公‧진후晉侯‧정백鄭伯이 원장공原莊公을 진陳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어 왕후王后를 맞이해 오게 하였다.
진규陳嬀가 경사京師로 시집갔으니注+괵공虢公과 진후晉侯는 왕王께 조현朝見하는 일로, 정백鄭伯은 제齊나라가 정鄭나라의 경卿을 잡았기 때문에 주왕周王에게 구원救援을 요청하기 위한 일로 모두 주周나라에 와 있었는데, 이들이 대의大義를 주창主唱하여 혜왕惠王을 위해 정혼문제定婚問題를 제기하여 진陳나라가 삼가 따르게 하였으니, 동성종국同姓宗國(周王室과 성姓이 같은 제후국諸侯國)으로서 예禮를 제대로 행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傳에 그 일을 자세히 기록한 것이다. 경經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노魯나라에 통고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가 실로 혜후惠后이다.注+진규陳嬀를 뒤에 혜후惠后라고 호칭號稱하였다. 혜후惠后는 작은 아들을 총애寵愛하여 주周나라 왕실王室을 어지럽혔다. 이 일이 희공僖公 24년에 보인다. 그러므로 전傳은 여기에서 후后의 호칭號稱까지 바룬 것이다.
傳
여름에 장공莊公이 제수濟水 서쪽에서 융戎을 추격追擊하였다.
그들이 쳐들어온 것을 말하지 않은 것은 그 사실을 숨긴 것이다.注+융戎이 와서 노魯나라를 침범하였는데도 노인魯人은 알지 못하였다가 그들이 떠난 뒤에야 알고서 추격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온 것을 숨기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傳
가을에 역𧌒이 있었으니, 재해災害가 되었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傳
당초에 초무왕楚武王이 권국權國을 쳐 승리하고서 투민鬪緡을 그곳의 윤尹(守令)으로 보냈는데,注+권權은 국명國名이다. 남군南郡당양현當陽縣 동남에 권성權城이 있다. 투민鬪緡은 초楚나라 대부이다. 투민鬪緡이 그곳의 군민軍民을 거느리고 초楚나라를 배반하니, 초나라는 권權을 포위包圍하여 투민鬪緡을 죽였다.注+투민鬪緡이 권權의 군민軍民을 거느리고 배반한 것이다.
그리고는 권국權國의 백성들을 나처那處로 이주移住시키고서注+나처那處는 초楚나라 땅이다. 남군南郡편현編縣 동남에 나구성那口城이 있다. 염오閻敖를 그곳의 윤尹으로 보냈다.注+염오閻敖는 초楚나라 대부이다.
초문왕楚文王이 즉위함에 미처 파인巴人과 함께 신국申國을 토벌하였는데, 초군楚軍이 파군巴軍을 놀라게 하니,注+파사巴師를 놀라게 한 것이다.파인巴人이 초나라를 배반하고 나처那處를 쳐서 점령占領하고는 . 드디어 초나라의 성문城門을 공격하였다注+초楚나라의 성문城門을 공격한 것이다.
염오閻敖가 용수涌水를 헤엄쳐 도망해 오니注+용수涌水는 남군南郡화용현華容縣에 있다. 염오閻敖는 이미 성城을 지키지도 못하였고, 또 용수涌水를 헤엄쳐 도망하였다.초자楚子는 그를 죽였다.
염오閻敖의 종족宗族이 난亂을 일으키니, 겨울에 파인巴人이 그 틈을 타서 초나라를 토벌하였다.


역주
역주1 短狐 : 短狐는 입 속에 모래를 넣고 있다가 사람 그림자에 그 모래를 뿜어 그 사람이 질병에 걸려 죽게 한다는 傳說 속의 怪物이다. 譯者는 “𧌒은 벼 잎을 갉아먹는 害蟲이라.”는 楊伯峻의 說이 옳다고 생각한다.
역주2 命之宥 : ‘命之宥’의 ‘宥’를 杜氏는 賓客의 즐거움을 돕기 위해 幣物을 주는 뜻으로 해석하였는데, 淸代王引之의 《經義述聞》에는 杜氏의 說을 반박하며 “杜氏의 說대로라면 傳에 당연히 ‘命宥之’라 했을 것이고 ‘命之宥’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 하고, 이어 “宥는 侑와 通用이고, 侑는 酬酢의 뜻과 같으니, ‘命之宥’는 惠王이 虢公과 晉侯에게 자신과 함께 酬酢(술잔을 주고 받음)하자고 명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命之宥’는 命하는 상대가 虢公과 晉侯가 되고, ‘命宥之’는 명하는 상대가 周王의 近臣이 되니, ‘命之宥’를 杜氏처럼 해석하는 것은 文法에 맞지 않는다. 그러나 아래에 玉과 말을 下賜했다는 말이 있으니, ‘宥’를 幣物의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할 듯하므로 文法에는 맞지 않지만 杜注에 따라 幣物로 번역하였다. 《楊伯峻春秋左傳注》

춘추좌씨전(1) 책은 2025.07.02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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