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정축일에 부인夫人강씨姜氏가 노魯나라로 들어왔다.注+강씨姜氏는 애강哀姜이다. 《공양전公羊傳》에 “강씨姜氏가 장공莊公과 약속하고서 장공莊公과 함께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 것은 맹임孟任 때문인 듯하다. 그러므로 정축일丁丑日에 들어와서 그 이튿날 종묘宗廟에 알현謁見한 것이다.
무인일에 대부大夫와 종부宗婦들이 부인夫人을 뵐 적에 예폐禮幣를 사용하였다.注+종부宗婦는 동성同姓대부大夫의 아내이다. 예禮에 소군小君이 시집오면 대부大夫가 예폐禮幣를 가지고 알현謁見하여 신하의 도리를 밝히는 것인데, 장공莊公은 부인夫人을 사치스럽게 대우하고자 하였으므로 대부와 종부宗婦들로 하여금 동일하게 예폐禮幣를 가지고 알현하게 한 것이다.
조기曹羇가 진陳나라로 도망하였다.注+전傳이 없다. 기羇는 조曹나라 세자世子인 듯하다. 선군先君조장공曹莊公을 이미 장사葬事지냈는데도 작爵을 칭하지 않은 것은 기羇가 미약微弱하여 스스로 위치位置를 안정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조인曹人이 이름을 기록해 노魯나라에 통고通告한 듯하다.
적赤이 조曹나라로 돌아갔다.注+전傳이 없다. 적赤은 조희공曹僖公이다. 융戎이 들여보냈기 때문에 ‘귀歸’라 한 듯하다.
곽공郭公이다.注+전傳이 없다. 아마도 경문經文이 빠지거나 잘못된 듯하다. 그러나 조기曹羇 이하에 대해 《공양전公羊傳》과 《곡량전穀梁傳》의 설說이 이미 분명하지 않다. 또 이 설說을 인용해 《좌전左傳》을 해석하기에는 적합지 않기 때문에 채용採用하지 않은 것이다.
傳
24년 봄에 묘廟의 서까래에 조각彫刻을 하였으니 모두 예禮가 아니다.注+묘廟 서까래에 붉은 칠을 한 것과 함께 모두 예禮가 아니기 때문에 ‘개皆’라고 말한 것이다.
어손御孫이 간諫하기를 “신이 듣건대 ‘검약儉約은 덕德 중에 큰 것이고, 사치는 악惡 중에 큰 것이다.’고 하였습니다.注+어손御孫은 노魯나라 대부이다.
을 가지셨는데 군君께서는 선군先君을 대악大惡 속에 모시려 하시니,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注+기둥에 붉은 칠을 하지 않고 서까래에 조각을 하지 않는 것이 공손共孫이다.
傳
가을에 애강哀姜이 노魯나라로 오자, 장공莊公이 종부宗婦들에게 애강哀姜를 알현謁見할 때 폐백幣帛을 올리게 하였으니, 예禮가 아니다.注+전傳에 대부大夫을 말하지 않은 것은 정상正常이 아닌 예禮를 거행擧行하였기 때문이다.
어손御孫이 말하기를 “남자男子의 폐백은 신분身分이 존귀尊貴한 자는 옥백玉帛을 가지고 가서 알현하고注+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은 옥玉을, 제후諸侯의 세자世子와 부용국附庸國의 고경孤卿은 백帛을 가지고 가서 알현謁見한다.신분이 낮은 자는 금조禽鳥를 가지고 가서 알현謁見하여注+경卿은 염소, 대부는 기러기, 사士는 꿩을 가지고 가서 알현謁見한다.각각 같지 않은 물건으로 신분身分의 등급等級을 드러내고,注+가지고 간 물건을 드러내 보여 신분身分의 귀천貴賤을 구별하는 것이다.[부주]林: 염소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를 이루어 그 무리를 잃지 않는 것을 취한 것이고, 기러기를 사용하는 것은 때를 기다려 가는 것을 취한 것이고, 꿩을 사용하는 것은 절개를 지켜 죽어도 절개를 잃지 않는 것을 취한 것이다.여자女子의 폐백은 개암‧밤‧대추‧건육乾肉을 사용하여 정성을 표시表示할 뿐인데,注+진榛은 소율小栗이고, 수脩는 포脯이고, 건虔은 경敬이니, 모두 그 명칭名稱을 취하여 공경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부주]林: 율栗은 전율戰栗의 뜻을, 조棗는 조기早起(일찍 일어남)의 뜻을, 수脩는 자수自脩(지신을 닦음)의 뜻을 취한 것이다. 오직 진榛에만 설명說明이 없으니, 이는 진榛의 음音이 건虔에 가깝기 때문에 일에 경건하다는 뜻을 취한 것인 듯하다. 지금 남녀男女가 동일한 폐백을 사용하게 하였으니 이는 남녀男女의 분별分別을 무시한 것입니다.
남녀의 분별은 나라의 큰 예절禮節인데,注+[부주]林: 집안이 다스려진 뒤에 나라가 다스려지기 때문에 남녀의 분별이 나라의 큰 예절이 되는 것이다.부인夫人으로 말미암아 이 분별을 어지럽혔으니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였다.
傳
진晉사위士蔿가 또 여러 공자公子들과 모의謀議하여 유씨游氏의 두 아들을 죽이게 하고서,注+유씨游氏의 두 아들도 환숙桓叔‧장백莊伯의 종족宗族이다.진후晉侯에게 고告하기를 “됐습니다.
2년이 지나지 않아서 임금께서는 반드시 걱정이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蓋以孟任 :
孔穎達의 《正義》에는 “《公羊傳》에 다만 약속했다고만 말하였을 뿐이니, 약속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孟任 때문인 듯하다고 한 것이다.”고 하였다. 孟任은 魯나라 大夫黨氏의 딸로 莊公과 팔뚝을 베어 맹세하고 莊公의 아내가 되어 公子般을 낳은 여자이다. 莊公 32년 傳에 보인다.
역주2歸 :
外國으로 도망가 있는 諸侯를 다른 제후들이 도와서 歸國시키는 것을 ‘歸’라고 한다. 《春秋左傳成公十八年傳》
역주3自曹羇……旣不了 :
《公羊傳》에는 “曹羇는 누구인가? 曹나라 大夫이다. 曹나라에는 大夫가 없는데, 여기에 어째서 大夫라고 기록했는가? 훌륭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을 훌륭하게 여겼는가? 戎이 曹나라를 치려 할 때 曹羇가 曹伯에게 諫하기를 ‘戎은 군대가 많고 禮義가 없으니, 君께서 스스로 대적하지 마소서.’라고 하였으나, 曹伯은 듣지 않았다. 세 차례 간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으니, 曹羇는 드디어 나라를 떠났다. 그러므로 君子는 그가 君臣의 의리를 옳게 행하였다고 여긴 것이다.”라고 하였고, 《穀梁傳》에는 “赤은 郭公인 듯하다. 어째서 이름을 기록했는가? 禮에 諸侯는 外國에 歸依하는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外國에 歸依하는 것은 正道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역주4洪德(큰 德) :
杜注에는 ‘共’을 ‘恭’의 뜻으로 해석하였으나, 恭德과 大惡은 서로 對가 되지 않으니, 아무리 보아도 해석이 구차하다. 《集韻》에 “共은 ‘洪’과 通用하니 ‘大’의 뜻이다.”고 하였고, 楊伯峻의 《春秋左傳注》에도 “共은 洪으로 읽어야 하니 大의 뜻이다. 從前에 ‘共’을 ‘恭’의 뜻으로 읽은 것은 잘못이다.”고 하였다. 楊氏의 說에 따라 ‘洪德’으로 번역하였다.
역주5時 :
대본에는 ‘侯’로 되어 있으나 《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時’로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