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一年春 狄侵衛하다注+無傳 爲邢故
하다注+鹿上 宋地 汝陰有原鹿縣 宋爲盟主 故在齊人上
[經]夏 大旱하다注+ 自夏及秋 五稼皆不收
[經]秋 하다注+盂 宋地 楚始與中國行會禮 故稱爵 [附注] 林曰 楚始書子 宋楚初爭長也
執宋公以伐宋하다注+不言楚執宋公者 宋無德而爭盟 爲諸侯所疾 故摠見衆國共執之文 [附注] 林曰 不言楚執宋公 不以夷狄執中國之辭也
[經]冬 公伐邾하다注+無傳
[經]楚人使宜申來하다注+無傳 獻宋捷也 不言宋者 秋伐宋 冬來獻捷 事不異年 從可知 不稱楚子 使來不稱君命行禮 [附注] 林曰 楚大夫始見經
十有二月癸丑 公會諸侯盟于薄하고 釋宋公하다注+諸侯旣與楚共伐宋 宋服 故爲薄盟以釋之 [附注] 林曰 書諸侯 不予楚之專執專釋也
[傳]二十一年春 宋人爲鹿上之盟하야 以求諸侯於楚注+[附注] 林曰 乞靈於楚 以求諸侯爲霸하니 楚人許之하다
公子目夷曰 小國爭盟 禍也 宋其亡乎ㄴ저
幸而後敗로다注+謂軍敗 [附注] 林曰 以敗軍爲天幸
[傳]夏 大旱하니 公欲焚巫尫注+巫尫 女巫也 主祈禱請雨者 或以爲尫非巫也 瘠病之人 其面上向 俗謂天哀其病 恐雨入其鼻 故爲之旱 是以公欲焚之한대
臧文仲曰
非旱備也注+[附注] 林曰 言非備旱之道
脩城郭注+[附注] 林曰 脩築城郭 則飢民得就食하고 貶食省用注+[附注] 林曰 君去盛饌 减省費用하고 務穡勸分注+穡 儉也 勸分 有無相濟 [附注] 朱曰 整理已旱之稼穡 又勸富者 分給貧民 此其務也
니이다
巫尫何爲릿가注+[附注] 林曰 巫尫何能爲旱
天欲殺之勿生注+[附注] 林曰 殺之可以弭旱 是天欲殺之 則天何如勿生此人이오 若能爲旱이면 焚之滋甚이리이다注+[附注] 林曰 若使此人果能爲旱 焚之則逆天意 將愈甚其旱
公從之하다
是歲也 饑而不害하다注+不傷害民
[傳]秋 諸侯會宋公于盂하다
子魚曰 禍其在此乎ㄴ저
君欲已甚하니 리오注+[附注] 林曰 其何以堪成霸之事 言必不堪得諸侯也 朱曰 言襄公圖霸 貪欲太甚 諸侯不堪其求 必生變也
於是 楚執宋公하야 以伐宋하다
會于薄以釋之注+[附注] 林曰 宋公請服於楚 故爲會於薄地以釋宋公하니 子魚曰
禍猶未也注+[附注] 林曰 子魚見宋公得釋殊無戒懼之心 知襄公猶貪諸侯 禍尙未已
未足以懲君이로다注+爲二十二年戰泓傳
[傳]任宿須句顓臾 風姓也
實司大皥與有濟之祀注+司 主也 大皥 伏羲 四國 伏羲之後 故主其祀 任 今任城縣也 顓臾 在泰山南武陽縣東北 須句 在東平須昌縣西北 四國封近於濟 故世祀之 [附注] 林曰 濟 濟水하야 以服事諸夏하다注+與諸夏同服
邾人滅須句 須句子來奔하니 因成風也注+須句 成風家
成風爲之言於公曰
崇明祀保小寡 周禮也注+明祀 大皥有濟之祀 保 安也 蠻夷猾夏 周禍也注+此邾滅須句而曰蠻夷 昭二十三年 曰 邾又夷也 然則邾雖曹姓之國 迫近諸戎 雜用夷禮 故極言之 猾夏 亂諸夏 [附注] 林曰 諸侯皆周之臣子 故言周室之禍 若封須句 是崇皥濟而脩祀紓禍也注+紓 解也 爲明年伐邾傳


21년 봄에 적인狄人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이 없다. 나라가 나라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송인宋人제인齊人초인楚人녹상鹿上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녹상鹿上나라 땅이다. 여음汝陰원록현原鹿縣이 있다. 나라가 맹주盟主가 되었기 때문에 제인齊人 위에 기록한 것이다.
여름에 크게 가물었다. 注+우제雩祭를 지냈는데도 비가 내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물었다’고 기록한 것이다. 여름서부터 가을까지 가물어서 오곡五穀을 모두 수확收穫하지 못하였다.
가을에 송공宋公초자楚子진후陳侯채후蔡侯정백鄭伯허남許男조백曹伯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나라 땅이다. 나라가 비로소 중국中國회맹會盟에 참여하여 회례會禮를 행하였기 때문에 을 칭한 것이다. [부주]林: 나라 임금을 비로소 ‘’로 칭한 것은 나라와 나라가 서로 패주霸主가 되기를 다투었기 때문이다.
송공宋公을 잡고서 나라를 토벌하였다.注+초자楚子송공宋公을 잡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송공宋公도 없으면서 맹주盟主가 되기를 다투어 제후諸侯의 미움을 샀기 때문에 여러 나라가 함께 잡은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 [부주]林: 초자楚子송공宋公을 잡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이적夷狄중국中國의 임금을 잡은 것으로 글을 만들지 않은 것이다.
겨울에 나라를 토벌하였다. 注+이 없다. 나라가 수구須句하였기 때문에 토벌한 것이다.
초인楚人의신宜申을 보내어 와서 헌첩獻捷하였다.注+이 없다. 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서 얻은 전리품戰利品을 바친 것인데, ‘’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가을에 나라를 토벌하고 겨울에 와서 헌첩獻捷한 것이 동년同年의 일이어서 ‘’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초자楚子라고 칭하지 않은 것은 사자使者가 와서 임금의 이라 칭하지 않고 를 행하였기 때문이다. [부주]林: 나라 대부大夫가 비로소 에 나타났다.
12월 계축일癸丑日제후諸侯회합會合하여 에서 결맹結盟하고서 송공宋公석방釋放하였다. 注+제후諸侯나라와 함께 나라를 토벌하자, 나라가 항복降服하였으므로 에서 결맹結盟하고서 송공宋公석방釋放한 것이다. 희공僖公은 본래 회기會期통보通報받지 못하였으나, 회합會合한다는 소식을 듣고 갔기 때문에 ‘제후諸侯회합會合하였다.’고 기록한 것이다. [부주]林: ‘제후諸侯’라고 기록한 것은 나라가 마음대로 잡고 마음대로 풀어 준 것을 옳게 여기지 않은 뜻이다.
21년 봄에 송인宋人녹상鹿上에서 결맹結盟하고서 에게 제후諸侯가 자기를 맹주盟主추대推戴하도록 도와주기를 요구하니注+[부주]林: 나라의 위세威勢를 빌어 제후諸侯패주霸主가 되기를 구한 것이다.초인楚人이 허락하였다.
공자公子목이目夷가 말하기를, “소국小國맹주盟主가 되기를 다투는 것은 를 부르는 것이니 나라는 망할 것이다.
注+전쟁에 패배하는 것이다. [부주]林: 패전敗戰천행天幸으로 여기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름에 크게 가뭄이 드니 무왕巫尫을 태워 죽이려 하였다.注+무왕巫尫은 여자 무당으로 기도해 비를 비는 일을 맡은 자이다. 혹자或者는 “은 무당이 아니고 앞 곱사이다. 그 얼굴이 위를 향하기 때문에 세속世俗에서는 ‘하늘이 그 병을 가엾게 여겨 비를 내리면 비가 그 코로 들어갈 것을 염려하여 가물게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희공僖公이 그들을 태워 죽이고자 한 것이다.”고 하였다.
장문중臧文仲이 말하였다.
“이는 한재旱災에 대한 대비책對備策이 아닙니다.注+[부주]林: 한재旱災를 대비하는 방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성곽城郭수축修築하고注+[부주]林: 성곽城郭수축修築하면 주린 백성들이 먹을 수 있다. 먹는 것을 줄이고 비용費用을 절약하며注+[부주]林: 임금의 성찬盛饌을 없애고 비용費用을 줄이는 것이다.농사農事에 힘쓰고 나누어 먹기를 권하는 것이注+검소儉素이다. 권분勸分은 있고 없는 것을 서로 나누어서 융통融通구제救濟하게 하는 것이다. [부주]朱: 이미 가문 농사를 다시 정리하고, 또 부자富者권유勸誘하여 빈민貧民에게 나누어 주게 하는 것이다.급선무急先務입니다.
무왕巫尫이 무슨 힘이 있어 가뭄을 불렀겠습니까?注+[부주]林: 무왕巫尫이 무슨 능력으로 가뭄을 불렀겠느냐는 말이다.
하늘이 그를 죽이고자 하였다면 응당 내지 않았을 것이고,注+[부주]林: 그를 죽여 한재旱災를 막을 수 있다면 이는 하늘이 그를 죽이려 하는 것이니, 그렇다면 하늘은 이 사람을 내지 않은 것이 어떠했느냐는 말이다. 저가 가뭄을 불렀다면 태워 죽이면 가뭄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注+[부주]林: 이 사람이 과연 가뭄을 불렀다면 이 사람을 태워 죽이면 하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어서 가뭄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말이다.
이 그의 말을 따랐다.
이해에 기근饑饉이 들었으나 백성이 를 입지는 않았다.注+백성을 상해傷害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가을에 제후諸侯송공宋公에서 회합會合하였다.
자어子魚가 말하기를, “가 이번 회합會合에 있을 것이다.
임금의 욕심이 너무 심하니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는가?”注+[부주]林: 어찌 패자霸者의 일을 이룰 수 있겠느냐는 뜻이니 반드시 제후諸侯를 얻을 수 없다는 말이다.[부주]朱: 송양공宋襄公패업霸業도모圖謀함에 있어 탐욕貪慾이 너무 심하므로 제후諸侯가 그의 요구를 감당堪當할 수 없으니 반드시 변란變亂이 생길 것이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초자楚子송공宋公을 잡고서 나라를 토벌하였다.
겨울에 에서 회맹會盟하고서 송공宋公석방釋放하니,注+[부주]林: 송공宋公나라에 복종服從하기를 청하였기 때문에 에서 회맹會盟하고서 송공宋公석방釋放한 것이다.자어子魚가 말하였다.
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注+[부주]林: 자어子魚송공宋公석방釋放될 때 자못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는 것을 보고서, 양공襄公은 여전히 제후諸侯맹주盟主되기를 탐할 것이므로 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을 안 것이다.
임금에 대한 징벌懲罰이 부족하다.”注+희공僖公 22년에 에서 전쟁한 의 배경이다.
宿수구須句전유顓臾풍성風姓이다.
태호太皥유제有濟의 제사를 맡아注+주관主管하는 것이다. 태호太皥복희伏羲이다. 네 나라는 모두 복희伏羲후손後孫이기 때문에 그 제사를 주관한 것이다. 은 지금의 임성현任城縣이다. 전유顓臾태산泰山 남쪽과 무양현武陽縣 동북쪽에 있고, 수구須句동평東平수창현須昌縣 서북쪽에 있다. 네 나라의 봉지封地제수濟水에 가깝기 때문에 대대로 제수濟水에 제사를 지냈다. [부주]林: 제수濟水이다.제하諸夏에 복종하여 섬겼다.注+제하諸夏와 함께 왕사王事를 행한 것이다.
주인邾人수구須句하자 수구자須句子나라로 도망해 왔으니 성풍成風에 의지하기 위해서이다.注+수구須句희공僖公의 어머니 성풍成風친가親家이다.
성풍成風이 그를 위해 에게 말하였다.
명사明祀를 높이고 소국小國보호保護하는 것은 나라의 이고,注+명사明祀태호太皥유제有濟의 제사이다. 안정安定시키는 것이다.만이蠻夷제하諸夏를 어지럽히는 것은 나라의 이니,注+이곳에는 나라가 수구須句하자 나라를 만이蠻夷라고 하였고, 소공昭公 23년 숙손표叔孫豹가 ‘나라는 또 오랑캐이다.’고 하였으니, 나라가 비록 조성曹姓의 나라이지만 그 나라가 제융諸戎인접隣接이례夷禮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표현해 만이蠻夷라고 말한 것이다. 활하滑夏제하諸夏를 어지럽히는 것이다. [부주]林: 제후諸侯는 모두 나라의 신하이기 때문에 나라 왕실王室라고 한 것이다. 만약 수구須句해 준다면 이는 태호太皥유제有濟를 높여 제사를 수행修行하고 를 푸는 일이오.”注+는 푸는 것이다. 명년明年나라를 친 의 배경이다.


역주
역주1 宋人齊人楚人盟于鹿上 : 李震相은 “楚나라가 中國의 會盟에 참여한 것은 魯나라와 陳나라가 앞에서 끌고 鄭나라가 뒤에서 밀면서 齊桓公 때의 友好를 重修하자고 가탁했기 때문이다. 諸侯들의 뜻은 宋公이 미워서 楚子를 끌어들인 것인데 宋公은 이를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楚나라에 도움을 청하였으니 어리석지 않은가?”라고 하였다.
역주2 雩不獲雨 故書旱 : 가뭄이 들면 반드시 雩祭를 지내는데, 우제를 지낸 뒤에 비가 내리면 우제를 지낸 것을 기록하고, 우제를 지냈으나 비가 내리지 않으면 가물었다고 기록한다.
역주3 宋公楚子……執宋公以伐宋 : 朴致遠은 “楚子를 諸侯의 위에 기록하고, 또 잡았다고 기록하여 中國의 제후들이 회합을 주관한 宋公을 救濟하지 않은 것을 나무란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4 爲邾滅須句故 : 《左氏會箋》에 의하면 僖公 19년에 邾나라가 宋나라의 命에 따라 魯나라의 사위인 鄫子를 제사에 犧牲으로 썼으나, 宋나라의 威勢가 두려워 감히 보복하지 못하였다가 이제 諸侯가 宋나라를 토벌하기 때문에 僖公이 邾나라를 토벌한 것이지 須句 때문에 토벌한 것이 아니다. 須句를 위해 邾나라를 토벌한 일은 僖公 22년에 보이니, 이 일이 아니다.
역주5 獻捷 : 전쟁에 勝利하고서 잡은 捕虜와 鹵獲物을 바치는 것이다.
역주6 公本無會期……故書公會諸侯 : 諸侯의 會合에 魯君이 늦게 가면 會合에 참여한 諸侯의 國名을 列記하지 않고 참여한 모든 나라를 ‘諸侯’로 묶어 기록하는 것이 例이다. 그러나 이번 會合에는 僖公이 늦게 간 것이 아닌데도 ‘諸侯’라고 칭한 것은 이번 會合에 참여한 諸侯가 가을에 盂에서 會合했던 諸侯이기 때문에 다시 國名을 列記하지 않고 ‘諸侯’라고 말한 것이다. 〈疏〉
역주7 幸運이……것이다 : 幸而後敗는 여러 가지 解釋이 있다. 楊伯峻은 僖公 15년 傳의 ‘幸而得囚’과 같은 句法으로 보아 전쟁에 패배만하고 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뜻으로 풀었고, 貴州人民出版社의 《左傳全釋》과 中州古籍出版社의 《春秋左傳》에는 나중에 패망하면 다행이겠다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杜注에는 敗만을 해석하고 幸而後에 대해서는 전혀 해석하지 않았으며, 林氏와 楊伯峻도 ‘後’를 해석하지 않았다. 두 飜譯本에는 ‘後’를 나중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譯者는 이상의 說들을 따르지 않고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8 脩城郭……此其務也 : 朴致遠은 “臧文仲이 말한 가뭄에 대비한 方策은 긴요하고 완전하다고 이를 만하다. 城郭을 수리하면 饑民이 먹을 수 있고, 음식과 비용을 절약하면 財穀이 넉넉해지고 농사를 힘쓰면 곡식을 수확할 수 있고, 나누어 먹기를 권면하면 가진 자가 갖지 못한 자를 구제하게 되니 救荒의 方策은 이와 같을 뿐이다.”고 하였다.
역주9 : 楊伯峻은 如는 應當의 뜻이라고 하였다.
역주10 其何以堪之 : 林氏는 堪을 能으로 보아 宋公이 霸業을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였다.
역주11 王事 : 朝聘, 征伐 등의 일이다.
역주12 叔孫豹 : 音訓에 “杜注에 인용한 말은 叔孫婼의 말인데, 지금 傳하는 板本에는 대부분 豹로 되어 있다. 轉寫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듯하니 婼로 바로잡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