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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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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二十有六年春王正月己未 公會莒子衛寗速盟于向하다注+向 莒地 寗速 衛大夫 莊子也
[經]하다注+公逐齊師 遠至齊地 故書之 濟北穀城縣西有地名酅下
[經]夏 齊人伐我北鄙하다注+孝公未入魯竟 先使微者伐之 [附注] 林曰 此齊侯也 其稱人何 自隱以來 以兵加我 君大夫將皆書人 君將書君 自文十五年齊懿公始 大夫將書大夫 自齊高厚始 訖春秋惟邾莒書人
[經]衛人伐齊하다
[經]公子遂如楚乞師하다注+公子遂 魯卿也 乞 不保得之辭 [附注] 林曰 乞師始此 內乞師不書 書乞師于楚 誌中國之屈於夷狄也
[經]秋 楚人滅夔하고 以夔子歸하다注+夔 楚同姓國 今建平秭歸縣 夔有不祀之罪 故不譏楚滅同姓
[經]冬 楚人伐宋圍緡하다
[經]公以楚師伐齊取穀하다注+傳例曰 師能左右之曰以
[經]公 하다注+無傳
[傳]二十六年春王正月 公會莒玆丕公注+玆丕 時君之號 莒 夷 無諡 以號爲稱 寗莊子盟于向하니 尋洮之盟也注+洮盟 在前年
[傳]齊師侵我西鄙하니 討是二盟也注+[附注] 林曰 侵魯 討魯與衛莒爲洮向之二盟
[傳]夏 齊孝公伐我北鄙어늘 衛人伐齊하니 洮之盟故也
公使展喜犒師注+勞齊師할새 使受命于展禽하다注+柳下惠 [附注] 林曰 使展喜受勞師之辭命于柳下惠
齊侯未入竟 展喜從之注+[附注] 林曰 展喜往從齊侯而勞之하야
寡君聞君親擧玉趾하야 將辱於敝邑하고 使下臣犒執事하니이다注+言執事 不敢斥尊
齊侯曰 魯人恐乎 對曰 小人恐矣어니와 君子則否니이다
齊侯曰 室如縣罄하고 野無靑草어늘 何恃而不恐注+如 而也 時夏四月 今之二月 野物未成 故言居室而資糧縣盡 在野則無蔬食之物 所以當恐 對曰 恃先王之命이니이다
昔周公大公股肱周室하야 夾輔成王하니 成王勞之하사 而賜之盟 曰 世世子孫無相害也하라 載在盟府注+載 載書也하야 大師職之니이다注+職 主也 太公爲大師 兼主司盟之官
桓公是以糾合諸侯하야 而謀其不協하고 彌縫其闕하고 而匡救其災注+[附注] 林曰 彌縫諸侯之闕失 正救諸侯之災害하니 昭舊職也니이다
及君卽位 諸侯之望曰 其率桓之功하리라注+率 循也 我敝邑用不敢保聚注+用此舊盟 故不聚衆保守曰 豈其嗣世九年 而棄命廢職이리오注+[附注] 朱曰 棄先王之命 廢太公之職
其若先君何
君必不然이리라
恃此以不恐이니이다
齊侯乃還하다
[傳]東門襄仲臧文仲如楚乞師하다라注+襄仲居東門 故以爲氏 臧文仲爲襄仲副使 故不書
臧孫見子玉而道之伐齊宋하니 注+言其不臣事周室 可以此罪責而伐之
[傳]夔子不祀祝融與鬻熊하다注+祝融 高辛氏之火正 楚之遠祖也 鬻熊 祝融之十二世孫 夔 楚之別封 故亦世紹其祀 楚人讓之한대 對曰
我先王熊摯有疾注+[附注] 林曰 熊摯 卽楚熊渠之中子紅 立爲卾王者也 鬼神弗赦ᄅ새 而自竄于夔하니라注+熊摯楚嫡子 有疾不得嗣位 故別封爲夔子
吾是以失楚어늘 又何祀焉이리오注+廢其常祀 而飾辭文過
楚成得臣鬪宜申帥師滅夔하고 以夔子歸하다注+成得臣 令尹子玉也 鬪宜申 司馬子西也
[傳]宋以其善於晉侯也注+重耳之出也 宋襄公贈馬二十乘 叛楚卽晉하니 楚令尹子玉司馬子西帥師伐宋하야 圍緡하다
公以楚師伐齊하야 取穀하다
凡師能左右之曰以注+左右 謂進退在己
寘桓公子雍於穀하고 易牙奉之하야 以爲魯援注+雍本與孝公爭立 故使居穀以逼齊하니 楚申公叔侯戍之하다注+爲二十八年 楚子使申叔去穀張本
桓公之子七人 爲七大夫於楚하다注+言孝公不能撫公族


26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기미일己未日거자莒子영속寗速과 회합하여 에서 결맹結盟하였다.注+나라 땅이다. 영속寗速나라 대부大夫장자莊子이다.
제인齊人이 우리의 서쪽 변방을 침공侵攻하니, 제군齊軍추격追擊까지 갔으나 미치지 못하였다.注+제군齊軍을 추격해 멀리 나라 땅까지 갔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제북濟北곡성현穀城縣 서쪽에 지명地名휴하酅下란 곳이 있다.
여름에 제인齊人이 우리나라의 북쪽 변방을 토벌하였다.注+제효공齊孝公나라 경내境內로 들어오기에 앞서 먼저 미천微賤한 신하를 보내어 나라를 치게 한 것이다. [부주]林: 이번에 쳐들어온 자가 제후齊侯인데 ‘’으로 칭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은공隱公 이후로 군대를 거느리고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것을 기록할 때 임금이나 대부大夫가 군대를 거느리고 왔어도 모두 ‘’으로 기록하였다. 임금이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온 경우, ‘’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문공文公 15년의 제의공齊懿公부터이고, 대부大夫가 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온 경우, ‘대부大夫’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양공襄公 17년의 나라 고후高厚부터이다. 그러나 《춘추春秋》가 끝날 때까지 나라와 나라만은 ‘’으로 기록하였다.
위인衛人나라를 토벌하였다
공자수公子遂나라에 가서 원군援軍을 빌었다.注+공자수公子遂나라 이다. 은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이 없을 때 쓰는 말이다. [부주]林: 외국外國에게 원군援軍을 빌기 시작한 것이 이때부터이다. 나라가 걸사乞師한 것은 기록하지 않는 것인데, 나라에 걸사乞師한 것을 기록한 것은 중국中國이적夷狄에게 굴복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가을에 초인楚人나라를 격멸擊滅하고서 기자蘷子를 데리고 돌아갔다.注+나라의 동성국同姓國이다. 지금의 건평建平자귀현秭歸縣이다. 나라가 제사 지내지 않은 가 있기 때문에 동성국同姓國을 격멸한 나라를 비난하지 않은 것이다.
겨울에 초인楚人나라를 토벌하여 을 포위하였다.
초군楚軍을 거느리고서 나라를 토벌하여 을 취하였다.注+전례傳例에 “군대를 마음대로 지휘指揮하는 것을 ‘’라 한다.”고 하였다.
나라 토벌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26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자비공玆丕公영장자寗莊子회합會合하여注+자비玆丕는 당시 거군莒君이다. 나라는 오랑캐여서 가 없으므로 호칭號稱으로 삼았다.에서 결맹結盟하였으니 이는 에서의 맹약盟約을 다시 다지기 위함이었다.注+결맹結盟전년前年에 있었다.
제군齊軍이 우리나라의 서쪽 변방을 침공侵攻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두 곳의 회맹會盟에 참여한 것을 징벌懲罰[討]하기 위함이었다. 注+[부주]林: 나라를 침공侵攻한 것은 나라가 나라‧나라가 함께 에서 두 번 맹약盟約한 것을 징벌懲罰한 것이다.
여름에 제효공齊孝公이 우리나라의 북쪽 변방을 토벌하자 위인衛人나라를 토벌하여 나라를 구원하였으니, 이는 에서 결맹結盟하였기 때문이다.
제군齊軍호궤犒饋하기 위해 전희展喜를 보낼 때注+제군齊軍을 위로하는 것이다.전금展禽에게 가서 가르침[命]을 받아 가지고 가게 하였다.注+전금展禽유하혜柳下惠이다. [부주]林: 전희展喜유하혜柳下惠에게 보내어 제군齊軍을 위로할 때 응대應對할 말을 받아 가지고 가게 한 것이다.
제후齊侯가 아직 나라의 경내境內로 들어오지 않았는데 전희展喜는 그를 찾아가서 말하였다.注+[부주]林: 전희展喜제군齊君이 있는 곳으로 찾아가서 위로한 것이다.
“우리 임금께서 께서 친히 귀한 발걸음을 옮겨[擧玉趾] 우리나라로 오신다는 말을 들으시고 하신下臣을 보내어 집사執事호궤犒饋하게 하셨습니다.”注+집사執事라고 한 것은 감히 존귀尊貴제군齊君을 지적해 말할 수 없어서이다.
제후齊侯가 “노인魯人은 두려워하는가?”라고 묻자, 전희展喜는 “소인小人(下流階級)은 두려워하지만 군자君子(上流階級)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제후齊侯가 “집에는 경쇠를 달아 놓은 것 같아 안이 텅 비었고, 들에는 푸성귀 하나도 없는데 무엇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인가?”注+이다. 이때의 여름 4월은 지금의 2월이어서 들에 곡물穀物이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에 거실居室에는 식량食糧이 다 떨어졌고, 들에는 먹을 수 있는 푸성귀도 없으니 당연히 두려워해야 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자, 전희展喜는 “선왕先王을 믿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주공周公태공太公나라 왕실王室수족手足이 되어 성왕成王을 좌우에서 보좌輔佐하니, 성왕成王은 두 분의 공로를 위로하시고 두 분에게 결맹結盟하도록 명하시며 ‘대대로 자자손손子子孫孫 서로 해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재서載書(盟書)가 맹부盟府에 보관되어注+재서載書이다. 태사太師가 맡아 관리하고 있습니다.注+은 주관하는 것이다. 태공太公태사太師로서 사맹司盟관직官職까지 겸하였다는 말이다.
환공桓公이 이 때문에 제후諸侯규합糾合하여 제후諸侯 사이의 불화不和를 해결하기를 도모圖謀하고, 제후諸侯들의 궐실闕失미봉彌縫하며 재난災難을 구제하였으니,注+[부주]林: 제후의 궐실闕失미봉彌縫하고 제후의 재해災害를 구제한 것이다. 이는 옛날 태공太公직분職分을 밝힌 것입니다.
께서 즉위卽位함에 미쳐 제후들은 께서 환공桓公공업功業을 따를 것으로注+은 따르는 것이다. 기대하였고, 우리나라도 이 때문에 감히 을 지키지도 군대를 모으지도 않고서注+옛 맹약을 믿기 때문에 무리를 모아 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이다. ‘어찌 대를 이어 임금이 된 지 9년 만에 선왕先王을 버리고 태공太公직분職分폐기廢棄하겠는가?注+[부주]朱: 선왕先王의 명을 버리고 태공太公의 직분을 폐기하는 것이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무슨 낯으로 선군先君을 대하겠는가?
은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군자君子들은 이를 믿고서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 말을 들은 제후齊侯는 즉시 환군還軍하였다.
동문양중東門襄仲장문중臧文仲나라에 가서 원군援軍을 빌었다.注+양중襄仲동문東門에 살았기 때문에 동문東門로 삼은 것이다. 장문중臧文仲양중襄仲부사副使였기 때문에 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장손臧孫자옥子玉을 만나 나라와 나라를 토벌하라고 [道]하였으니 이는 나라와 나라가 나라를 섬기지 않기 때문이다.注+나라와 나라가 나라 왕실王室을 섬기지 않으니, 이 를 꾸짖어 토벌해야 한다는 말이다.
기자夔子축융祝融육웅鬻熊의 제사를 지내지 않으니注+축융祝融고신씨高辛氏화정火正으로 나라의 먼 조상祖上이고 육웅鬻熊축융祝融의 12대손이다. 나라의 별봉別封이기 때문에 대대로 이어가며 그 제사를 지냈다.초인楚人이 이를 꾸짖자 대답하였다.
“우리 선왕先王웅지熊摯께 병이 있을 때注+[부주]林: 웅지熊摯는 바로 나라 웅거熊渠중자中子으로 웅거熊渠에 의해 악왕鄂王으로 세워진 자이다.귀신鬼神에게 기도祈禱하였으나 귀신이 용서하지 않았으므로 스스로 로 가셨다.注+웅지熊摯나라의 적자嫡子였으나 병이 있어 왕위를 승계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별봉別封해서 기자蘷子로 삼은 것이다.
우리가 이 때문에 나라를 잃었는데 또 무엇 때문에 그 제사를 지내겠는가?” 注+상사常祀(固定된 제사祭祀)를 폐지해 놓고서 말을 꾸며 잘못을 수식修飾한 것이다.
가을에 나라 성득신成得臣투의신鬪宜申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멸討滅하고서 기자夔子를 잡아 가지고 돌아왔다.注+성득신成得臣영윤令尹자옥子玉이고 투의신鬪宜申사마司馬자서子西이다.
나라는 자기들이 진후晉侯를 잘 대우하였다 하여注+중이重耳출분出奔하였을 때 송양공宋襄公은 그에게 말 20을 주었다.나라를 배반하고 나라에 붙으니, 겨울에 나라 영윤令尹자옥子玉사마司馬자서子西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하여 을 포위하였다.
희공僖公초군楚軍를 거느리고[以]나라를 토벌하여 을 취하였다.
범례凡例에 의하면 군대를 좌지우지左之右之하는 것을 ‘’라 한다.注+좌우左右는 군대의 진퇴進退를 내 마음대로 지휘指揮하는 것이다.
제환공齊桓公의 아들 안치安置하고서 역아易牙에게 그를 모시게 하여 나라의 후원세력後援勢力으로 삼으니注+은 본디 효공孝公군위君位를 다툰 자이기 때문에 그를 거주居住시켜 나라를 위협하게 한 것이다.나라 신공申公숙후叔侯가 와서 을 지켰다.注+희공僖公 28년에 초자楚子신숙申叔에서 떠나게 한 장본張本이다.
제환공齊桓公의 아들 일곱이 나라의 일곱 대부大夫가 되었다.注+효공孝公공족公族을 잘 어루만지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 齊人侵我西鄙……至酅弗及 : 李震相은 “齊侯는 洮와 向의 結盟으로 魯나라를 의심하여 은밀히 군대를 이동해 魯나라 邊方을 侵掠하고서 魯軍이 나오기 전에 먼저 回軍하였고, 僖公은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서 齊나라 땅에 깊숙이 들어갔다가 돌아왔으니, 齊侯와 僖公이 모두 잘못이다.”고 하였다.
역주2 至自伐齊 : 朴致遠은 “사사로운 원한으로 夷狄에게 援軍을 빌어 中夏의 나라를 토벌하였기 때문에 ‘至自伐齊’라고 기록하여 비난한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3 : 救의 뜻이다.
역주4 以其不臣也 : 不臣은 신하로서 복종해 섬기지 않는 것이다. 杜注에 不臣을 齊나라와 宋나라가 周나라에 不臣한 것으로 해석한 것은 옳지 않다. 이때 楚나라는 이미 王號를 僭用하였으니 어찌 다시 尊周에 마음이 있었겠는가? 齊나라와 宋나라가 楚나라에 不臣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을 듯하므로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다. 李震相은 “王號를 僭用한 楚나라에게 周나라에 복종해 섬기지 않는 죄를 꾸짖게 하였으니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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