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三十年春王正月이라
[經]夏 狄侵齊하다
[經]秋 衛殺其大夫元咺及公子瑕하다注+咺見殺稱名者 訟君求直 又先歸立公子瑕 非國人所與 罪之也 瑕立經年 未會諸侯 故不稱君
[經]衛侯鄭歸于衛하다注+魯爲之請 故從諸侯納之例
[經]晉人秦人圍鄭하다注+晉軍函陵 秦軍氾南 各使微者圍鄭 故稱人
[經]介人侵하다注+無傳
[經]冬 天王使宰周公來聘하다注+周公 天子三公 兼冢宰也
[經]公子遂如京師라가 遂如晉하다注+如京師 報宰周公
[傳]三十年春 晉人侵鄭하여 以觀其可攻與否러니 狄間晉之有鄭虞也하야 狄侵齊하다注+齊 晉與國
[傳]晉侯使醫衍酖衛侯하다注+衍 醫名 晉侯實怨衛侯 欲殺而罪不及死 故使醫因治疾而加酖毒
寗兪貨醫하야 使薄其酖하니 不死하다注+寗兪視衛侯衣食 故得知之
公爲之請하야 納玉於王與晉侯 皆十하니 王許之하다注+雙玉曰瑴 公本與衛同好 故爲之請
乃釋衛侯하다
[傳]衛侯使賂周歂廑曰 苟能納我 吾使爾爲卿하리라注+恐元咺距己 故賂周冶 周冶殺元咺及子適子儀하다注+子儀 瑕母弟 不書殺 賤也 [附注] 林曰 子適 卽公子瑕
公入하야 祀先君 周冶旣服하고 將命하다注+服卿服 將入廟受命
周歂先入이라가 及門하야 遇疾而死하니 冶廑辭卿하다注+見周歂死而懼
[傳]九月甲午 晉侯秦伯圍鄭하니 以其無禮於晉注+文公亡過鄭 鄭不禮之이요 且貳於楚也
晉軍函陵하고 秦軍氾南하다注+此東氾也 在熒陽中牟縣南
佚之狐言於鄭伯曰
國危矣니이다
若使燭之武見秦君이면 師必退하리이다注+佚之狐 燭之武 皆鄭大夫
公從之하다
辭曰
臣之壯也에도 猶不如人이러니 今老矣 無能爲也已니이다
公曰
吾不能早用子라가 今急而求子하니 是寡人之過也
然鄭亡이면 子亦有不利焉하리라注+[附注] 林曰 子之宗族家室 亦有所不免於害
許之하고 縋而出注+縋 縣城而下하야 見秦伯曰
秦晉圍鄭하니 鄭旣知亡矣니이다
若亡鄭而有益於君이면 敢以煩執事릿가注+執事 亦謂秦 越國以鄙遠 君知其難也注+設得鄭以爲秦邊邑 則越晉而難保 [附注] 林曰 鄭在東 秦在西 晉居其間 鄙 邊也
焉用亡鄭以陪鄰注+陪 益也 [附注] 林曰 鄰 謂晉也이닛가
鄰之厚 君之薄也注+[附注] 林曰 鄰國土地廣大富厚 則秦國土地自見狹小薄惡
하야 行李之往來 共其乏困注+行李 使人 [附注] 林曰 乏 闕也 困 憊也 言供其舍館資糧之闕乏이면 君亦無所害리이다
러니 朝濟而夕設版焉 君之所知也注+晉君 謂惠公也 焦瑕 晉河外五城之二邑 言背秦之速 [附注] 林曰 言向年嘗納晉惠公 有賜於晉矣 朱曰 言前此 晉惠曾許賂秦穆公求納矣니이다
夫晉何厭之有잇가
旣東封鄭이면 又欲肆其西封注+封 疆也 肆 申也 [附注] 林曰 旣滅鄭以其土地爲東方封疆之界 又欲申廣其西方之封土하리니 若不闕秦이면 將焉取之릿가注+[附注] 林曰 闕 猶削小也
秦伯說하여 與鄭人盟하고 使杞子逢孫楊孫戍之하고 乃還하다注+三子 秦大夫 反爲鄭守
子犯請擊之한대 公曰
不可하다
微夫人之力이면 不及此注+請擊秦也 夫人 謂秦穆公
因人之力而敝之 不仁注+[附注] 林曰 本因秦力以得晉國 今反害秦 仁者不爲也이오 失其所與 不知注+[附注] 林曰 以亂易整 不武注+秦晉和整 而還相攻 更爲亂也 吾其還也리라하고
亦去之하다
[傳]初 鄭公子蘭出奔晉注+蘭 鄭穆公이러니 從於晉侯伐鄭하여 請無與圍鄭하니 許之하야 使待命于東하다注+晉東界
鄭石甲父侯宣多逆以爲大子하야 以求成于晉하니 晉人許之하다注+二子 鄭大夫 言穆公所以立
[傳]冬 王使周公閱來聘하다
饗有昌歜白黑形鹽注+昌歜 昌蒲葅 白 熬稻 黑 熬黍 形鹽 鹽形象虎하니 辭曰
國君文足昭也하고 武可畏也注+[附注] 林曰 文德足以昭明於人 武德可以畏服於人 則有備物之하야 以象其德하고 薦五味하며 羞嘉穀하며 鹽虎形注+嘉穀 熬稻黍也 以象其文也 鹽虎形 以象武也 [附注] 林曰 羞 進也하야 注+[附注] 林曰 以獻其文武之功하나니 吾何以堪之릿가
[傳]東門襄仲將聘于周하다
遂初聘于晉하다注+公旣命襄仲聘周 未行 故曰將 又命自周聘晉 故曰遂 自入春秋 魯始聘晉 故曰初 [附注] 林曰 東門襄仲 卽公子遂


30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이다.
여름에 적인狄人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가을에 나라가 그 대부大夫원훤元咺공자公子를 죽였다.注+원훤元咺살해殺害 당한 것을 기록하면서 그의 이름을 칭한 것은 임금을 제소提訴하여 구직求直(勝訴)하였고, 또 먼저 나라로 돌아가서 공자公子를 임금으로 세웠으나, 국인國人이 인정하는 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나무라는 뜻에서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는 임금이 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제후諸侯회합會合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으로 칭하지 않은 것이다.
위후衛侯나라로 돌아갔다.注+노희공魯僖公위후衛侯석방釋放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제후諸侯호송護送해 들여보낸[納之]에 따라 ‘’로 기록한 것이다. 성공成公 18년에 보인다.
진인晉人진인秦人나라를 포위하였다.注+진군晉軍함릉函陵주둔駐屯하고 진군秦軍범남氾南주둔駐屯해 있으면서 각각 비미卑微한 사람을 보내어 나라를 포위包圍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으로 칭한 것이다.
개인介人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이 없다.
겨울에 천왕天王주공周公을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注+주공周公천자天子삼공三公으로 총재冢宰겸임兼任한 자이다.
공자수公子遂경사京師로 갔다가 드디어 나라로 갔다.注+경사京師로 간 것은 주공周公빙문聘問보답報答하기 위함이다.
30년 봄에 진인晉人나라를 침범侵犯하여 공격攻擊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관찰觀察하였는데, 적인狄人나라가 나라 치는 일로 근심하고 있는 틈을 이용해 여름에 적인狄人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注+나라는 나라의 맹방盟邦이다.
진후晉侯의원醫員을 보내어 위후衛侯독살毒殺하게 하였다.注+은 의원의 이름이다. 진후晉侯위후衛侯를 원망하여 죽이고자 하였으나, 죽일 만한 가 아니었기 때문에 의원을 보내어 병을 치료治療하는 기회를 이용해 약물藥物을 넣게 한 것이다.
영유寗兪의원醫員에게 뇌물賂物을 주어 을 조금 넣게 하니 죽지 않았다.注+영유寗兪위후衛侯의식衣食을 보살폈기 때문에 그 낌새를 안 것이다.
노희공魯僖公위후衛侯석방釋放을 청하며 진후晉侯에게 모두 열 쌍의 을 바치니 석방釋放을 허락하였다.注+을 ‘’이라 한다. 희공僖公은 본래 위후衛侯와 서로 우호友好하였기 때문에 그를 위해 석방을 요청한 것이다.
가을에 위후衛侯석방釋放하였다.
위후衛侯가 사람을 보내어 주천周歂야근冶廑에게 뇌물을 주며 말하기를 “만일 나를 받아들여 복위復位시켜 준다면 나는 그대들을 으로 삼을 것이다.”고 하니,注+원훤元咺이 자기의 입국入國을 막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주천周歂야근冶廑에게 뇌물을 준 것이다.주천周歂야근冶廑원훤元咺자적子適자의子儀를 죽였다.注+자의子儀모제母弟이다. 자의子儀살해殺害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미천微賤한 자이기 때문이다. [부주]林: 자적子適은 바로 공자公子이다.
이 들어와서 선군先君께 제사를 지낼 때 주천周歂야근冶廑은 이미 의 옷을 입고서 장자 종묘宗廟로 들어가서 임명任命을 받으려 하였다.注+의 옷을 입고서 종묘宗廟로 들어가서 임명任命을 받으려 한 것이다.
주천周歂이 먼저 들어가다가 묘문廟門에 이르러서 갑자기 병이 나서 죽으니 야근冶廑을 사양하였다.注+주천周歂이 죽는 것을 보고 겁이 났기 때문에 사양한 것이다.
9월 갑오일甲午日진후晉侯진백秦伯나라를 포위하였으니, 이는 정백鄭伯진문공晉文公에게 무례無禮하였고注+문공文公이 도망 다닐 때 나라를 방문訪問하니 정백鄭伯예우禮遇하지 않았다.나라에 붙어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진군晉軍함릉函陵에 주둔하고 진군秦軍범남氾南에 주둔하였다.注+동범東氾인데 형양熒陽중모현中牟縣 남쪽에 있다.
일지호佚之狐정백鄭伯에게 말하였다.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그러나 촉지무燭之武를 보내어 진군秦君을 만나게 한다면 저들의 군대가 반드시 물러갈 것입니다.”注+일지호佚之狐촉지무燭之武는 모두 나라 대부大夫이다.
이 이 말을 따랐다.
촉지무燭之武가 사양하였다.
장년壯年 때에도 오히려 남만 못하였는데, 이제는 늙었으니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이 말하였다.
“내 일찍이 그대를 등용登用하지 않았다가 이제 나라가 위급하게 되어 그대에게 요구하니 이는 과인寡人의 잘못이다.
그러나 나라가 망한다면 그대 또한 이롭지 못함이 있을 것이다.”注+[부주]林: 그대의 종족宗族가실家室를 면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촉지무燭之武정백鄭伯의 요청을 허락許諾하고서 밤에 밧줄을 타고 성밖으로 나가서注+는 밧줄을 타고 성에 매달려 내려간 것이다.진백秦伯을 만나 말하였다.
진군秦軍진군晉軍나라를 포위하였으니 나라가 망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나라를 멸망滅亡시켜 이익利益이 된다면 무엇 때문에 감히 이 일로 집사執事를 번거롭히겠습니까만注+집사執事진군秦君을 이름이다. 다른 나라를 넘어 먼 곳을 본국本國변읍邊邑으로 삼기 어렵다는 것은 께서도 알고 계실 것입니다.注+가령 나라를 점령占領하여 나라의 변읍邊邑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중간의 나라를 넘어서 가야 하기 때문에 보존保存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부주]林: 나라는 동쪽에 있고, 나라는 서쪽에 있는데, 나라가 그 사이에 끼어 있다. 이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나라를 멸망滅亡시켜 이웃 나라에게 영토領土를 보태어 주려 하십니까?注+(보태다)이다. [부주]林: 이웃 나라는 나라이다.
이웃 나라의 땅이 많아지는 것은[厚] 임금님의 땅이 줄어드는[薄] 것입니다.注+[부주]林: 이웃 나라의 토지土地가 넓어지고 많아지면[富厚]나라의 토지土地는 저절로 협소狹小해지고 적어진다[薄弱]는 말이다.
그러니 나라를 그대로 놓아 두고서 동도東道의 주인으로 삼아 사신使臣왕래往來할 때에 부족한 물자物資유숙留宿사관舍館제공提供하게 한다면注+행리行李사신使臣이다. [부주]林: (부족)이고 은 피곤[憊]이니, 유숙留宿사관舍館과 부족한 물자物資양식糧食제공提供하게 하라는 말이다.께서도 해로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또 께서 진군晉君(惠公)에게 은혜를 베푸셨을 적에 진군晉君 등의 에 드리기로 약속하고서 아침에 하수河水를 건너 나라로 들어가자 저녁에 을 쌓은 일은 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注+진군晉君혜공惠公이다. 하외河外의 다섯 중의 두 이다. 아침에 하수河水를 건너 나라로 들어가자마자 저녁에 성을 쌓아 나라를 방비防備하였다는 것은 진후晉侯진백秦伯을 빨리 배신背信했다는 말이다. [부주]林: 전에 진목공秦穆公진혜공晉惠公을 도와 나라로 들여보내어 임금이 되게 한 것이 바로 나라에 은혜를 베푼 것이다.[부주]朱: 전에 진혜공晉惠公진목공秦穆公에게 뇌물賂物을 주겠다고 하면서 자신을 도와 나라로 들여 보내주기를 요청했던 일을 말한 것이다.
나라가 언제 만족滿足한 적이 있었습니까?
동쪽으로 나라를 강토疆土로 삼은 뒤에는 또 서쪽으로 강토疆土을 넓히려 할 것이니,注+이고, (넓힘)이다. [부주]林: 나라를 격멸擊滅하여 나라의 땅을 나라의 동계東界로 삼은 뒤에는 또 서쪽으로 강토疆土를 넓히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나라의 땅을 침탈侵奪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디에서 땅을 취하겠습니까?注+[부주]林: 은 남의 땅을 침탈侵奪하여 작게 만드는 것이다.
나라를 해치고 나라를 이롭게 하는 일이니 께서는 헤아리시기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진백秦伯은 기뻐하여 정인鄭人결맹結盟하고서 기자杞子봉손逢孫양손楊孫에게 나라를 지키게 하고 돌아갔다.注+세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로 도리어 나라를 위해 지킨 것이다.
자범子犯진군秦軍공격攻擊하기를 청하니 이 말하였다.
“안 된다.
저 사람[夫人]의 도움[力]이 아니었다면 내가 오늘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注+진군秦軍공격攻擊하자고 요청한 것이다. 부인夫人진목공秦穆公을 이름이다.
그 사람의 도움으로 인해 오늘의 내가 있게 되었는데 도리어 그 사람을 패배敗北시키는 것은 불인不仁이고,注+[부주]林: 진문공晉文公은 본래 진목공秦穆公의 도움으로 인해 나라를 얻었는데 지금 도리어 나라를 해치는 것은 인자仁者가 할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우방友邦을 잃는 것은 부지不知며,注+[부주]林: 나라가 우리와 마음을 한가지로 쓰지 않은데 그들과 일을 함께 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말이다.으로 안정安整을 바꾸는 것은 불무不武니,注+나라와 나라는 서로의 사이가 화목和睦하고 안정安整되었는데 도로 서로 공격하면 다시 분란紛亂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돌아갈 것이다.”
이에 진군晉軍 역시 나라를 떠났다.
당초當初정공자鄭公子나라로 출분出奔하였더니注+정목공鄭穆公이다.진후晉侯를 따라 나라를 토벌討伐하는 전쟁戰爭에 가서 나라를 포위하는 작전作戰에 참여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하니, 진후晉侯는 그의 요청을 허락하고서 동쪽에서 을 기다리게 하였다.注+나라 동계東界이다.
나라의 석갑보石甲父후선다侯宣多가 그를 맞이해 태자太子로 삼고서 나라에 화친和親요구要求하니 진인晉人이 허락하였다.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목공穆公이 임금이 된 배경을 말한 것이다.
겨울에 주공周公나라로 보내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그를 접대하는 에 창포김치[昌歜]‧흰쌀[白]‧검은 기장[黑]‧형염形鹽이 올라 있으니,注+창촉昌歜창포菖蒲로 담근 김치이고, 은 볶은 쌀이고, 은 볶은 기장이고, 형염形鹽은 호랑이 모양으로 깎은 소금이다.주공周公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국군國君문치文治사방四方에 드러날 만하고, 무공武功이 사람들을 외복畏服시킬 만하면注+[부주]林: 문덕文德이 사람들에게 드러날 만하고, 무덕武德이 사람들을 외복畏服시킬 만하다는 말이다.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접대하여 그의 문덕文德상징象徵하고, 오미五味가곡嘉穀과 호랑이 모양으로 깎은 소금을 올려注+가곡嘉穀은 볶은 쌀과 기장인데, 그것으로 문덕文德상징象徵하고, 호랑이 모양으로 소금을 깎아 그것으로 무공武功상징象徵한다. [부주]林: 는 올리는 것이다.무공武功상징象徵하는 것이니,注+[부주]林: 문무文武상징象徵한다는 말이다. 내가 어찌 이를 감당하겠습니까?”
동문양중東門襄仲나라에 빙문聘問가려 하였다.
드디어 처음으로 나라에 빙문聘問갔다.注+이 이미 양중襄仲에게 나라에 빙문聘問가도록 명하였으나, 아직 떠나기 전이기 때문에 ‘’이라 하였고, 이 또 나라에서 곧장 나라로 가서 빙문聘問하게 하였기 때문에 ‘’라 하였고, 춘추시대春秋時代로 접어든 뒤로 나라가 비로소 나라에 빙문聘問하였기 때문에 ‘’라고 한 것이다.[부주]林: 동문양중東門襄仲은 바로 공자수公子遂이다.


역주
역주1 例在成十八年 : 成公 18년 傳에 “亡命한 사람을 本國이 맞이하여 임금으로 세우는 것을 ‘入’이라 하고, 원래의 자리로 恢復시키는 것을 ‘復歸’라 하고, 諸侯가 護送해 歸國시키는 것을 ‘歸’라 하고, 武力을 사용해 들어가는 것을 ‘復入’이라고 한다.”고 하였다.
역주2 : 宋나라의 附庸國이다. 徐壽錫 《潁水全集》
역주3 : 각
역주4 治[冶] : 저본에는 ‘治’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冶’로 바로잡았다.
역주5 若舍鄭以爲東道主 : 秦나라가 諸侯와 戰爭하려면 반드시 동쪽으로 나와야 하고, 동쪽으로 나오려면 반드시 鄭나라를 經過해야 하므로 鄭나라를 치지 말고 그대로 두고서 秦나라가 東方을 往來할 때 모든 便宜를 提供하는 主人으로 삼으라는 말이다.
역주6 且君嘗爲晉君賜矣 : 賜는 은혜이다. 秦穆公이 晉惠公을 도와 晉나라로 들여보내어 임금으로 세워 준 일을 말한다.
역주7 許君焦瑕 : 晉惠公이 자신을 도와 晉나라의 임금으로 세워 주면 秦나라에 焦‧瑕 등 河外의 다섯 城을 주겠다고 약속한 일을 말한다.
역주8 朝濟河而夕設版築以距秦 : 版築은 築城이다. 晉惠公이 秦나라의 도움으로 晉나라로 들어가서 임금이 된 뒤에는 약속을 저버리고서 秦나라를 防備하기 위해 성을 쌓은 일을 말한다.
역주9 君[公] : 저본에는 ‘君’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公’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闕秦以利晉 : 秦나라가 晉나라를 도와 鄭나라를 치는 것은 秦나라의 땅을 깎아서 晉나라를 이롭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말이다.
역주11 唯君圖之 : 唯는 願의 뜻이다.
역주12 秦不同心……是失也 : 林註의 해석은 옳지 않다. 失其所與의 與는 ‘더불어’의 뜻이 아니고, 與國(友邦 또는 盟邦)의 뜻이다. 秦나라를 공격하면 우방을 잃게 된다는 말이다.
역주13 享[饗] : 저본에는 ‘享’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饗’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4 以獻其功 : 獻은 象과 같은 뜻으로 쓰였다. 楊伯峻 《春秋左傳注》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