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十有六年春
에 季孫行父會齊侯于陽穀
한대 齊侯弗及盟
하다注+及 與也
[經]夏五月
에 公四不視朔
하다注+諸侯每月必 今公以疾闕 不得視二月三月四月五月朔也 春秋十二公 以疾不視朔 非一也 義無所取 故特擧此以表行事 因明公之實有疾 非詐齊
[經]六月戊辰
에 公子遂及齊侯盟于
丘
하다注+信公疾 且以賂故 郪丘齊地
[經]秋八月辛未
에 人姜氏薨
하다注+僖公夫人 文公母也
[經]冬十有一月
에 人弑其君杵臼
하다注+稱君 君無道也 例在宣四年
傳
[傳]十六年春王正月
에 及齊平
하다注+齊前年再伐魯 魯爲 故平
公有疾
하야 使季文子會齊侯于陽穀
하야 請盟
하니 齊侯不肯曰 請俟君間
이라하다注+間 疾療
傳
[傳]有蛇自泉宮出
하야 入于國
이 如先君之數
라注+伯禽至僖公十七君 [附注] 林曰 泉宮 卽泉臺
秋八月辛未
에 聲姜薨
하니 毁泉臺
하다注+魯人以爲蛇妖所出而聲姜薨 故壞之
傳
[傳]楚大饑
하니 戎伐其西南
하야 至于阜山
하야 師于大林
이라가 又伐其東南
하야 至於陽丘
하야 以侵訾枝
하다注+戎 也 大林陽丘訾枝 皆楚邑
庸人帥
以叛楚
注+庸 今上庸縣 屬楚之小國하고 麇人率
聚於選
하야 將伐楚
注+選 楚地 百濮 夷也하니 於是申息之北門不啓
注+備中國하고 楚人謀徙於阪高
하다注+楚險地
夫麇與百濮이 謂我饑不能師라 故伐我也니 若我出師면 必懼而歸하리이다
百濮離居
하야 將各走其邑
注+[附注] 林曰 百濮無屯聚 皆離散而居 將各走保其邑이리니 誰暇謀人
이릿가注+[附注] 林曰 誰暇謀伐人國
乃出師
하니 旬有五日
에 百濮乃罷
하다注+濮夷無屯聚 見難則散歸
注+往 往伐庸也 振 發也 廩 倉也 同食 上下無異饌也 [附注] 林曰 自楚之廬邑 以往伐庸하야 次于句澨
하다注+楚西界也
使廬戢黎侵庸
注+戢黎 廬大夫하야 及庸方城
注+方城 庸地 上庸縣東有方城亭하니 庸人逐之
하야 囚子揚窓
하다注+窓 戢黎官屬
三宿而逸
注+[附注] 林曰 被囚三宿而走歸曰 庸師衆
하고 羣蠻聚焉
하니 不如
注+還復句澨師하고 且起
하야 合而後進
이라 師叔曰 不可
하다注+師叔 楚大夫潘尫也
姑又與之遇以驕之
하라注+[附注] 林曰 且又與庸兵遇以驕其心
彼驕我怒而後可克
이니 先君蚡冒所以服陘隰也
라注+蚡冒 楚武王父 陘隰 地名 [附注] 林曰 蚡冒 楚武王諸父也 朱曰 蚡冒 史記以爲武王兄也
又與之遇
하야 七遇皆北
注+軍走曰北하니 唯裨鯈魚人實逐之
하다注+裨鯈魚 庸三邑 魚 魚復縣 今巴東永安縣 輕楚 故但使三邑人逐之
楚子乘馹
하야 會師于臨品
注+馹 也 臨品 地名하야 分爲二隊
注+隊 部也 兩道攻之하야 子越自石溪
하고 子貝自仞以伐庸
注+子越 鬪椒也 石溪仞 入庸道하니
秦人巴人從楚師
注+[附注] 林曰 二國從楚師伐庸하고 羣蠻從楚子盟
注+蠻見楚强故하야 遂滅庸
하다注+傳言楚有謀臣 所以興
傳
[傳]宋公子鮑禮於國人
注+鮑 昭公庶弟文公也 [附注] 朱曰 欲結人心 而爲簒弑之計하야 宋饑
에 竭其粟而貸之
注+[附注] 林曰 公子鮑自竭其私家之粟 以借貸飢民 言鮑之恤民也하고 年自七十以上
은 無不饋詒也
注+[附注] 林曰 無不饋遺以飮食 詒 遺也하고 時加羞珍異
하다注+羞 進也 [附注] 林曰 言鮑之養老
無日不數於六卿之門
注+數 不疏 [附注] 林曰 無一日不造請頻數於宋六卿之門하고 國之材人無不事也
注+有賢材者 [附注] 林曰 言鮑之尊賢하고 親自桓以下無不恤也
하다注+桓 鮑之曾祖 [附注] 林曰 言鮑之親親
公子鮑美而豔
일새 襄夫人欲通之
注+鮑 適祖母나 而不可
注+以禮自防閑 [附注] 林曰 鮑能以禮自防閑하니 하다注+[附注] 林曰 乃助鮑以施於國
於是華元爲右師
注+元 華督曾孫 代公子成하고 公孫友爲左師
注+[附注] 林曰 友 目夷子하고 華耦爲司馬
注+代公子卬하고 鱗矔爲司徒
注+[附注] 林曰 矔 桓公孫하고 蕩意諸爲司城
하고 公子朝爲司寇
하다注+代華御事
初
에 司城蕩卒
하니 公孫壽辭司城
注+壽 蕩之子하고 請使意諸爲之
하다注+意諸 壽之子
旣而告人曰 君無道
하고 吾官近
하니 懼及焉
이라注+禍及己 [附注] 林曰 吾司城之官 爲近君 懼禍及己
棄官則族無所庇
라注+[附注] 林曰 若棄司城之官 則無以庇覆其宗族
子
는 身之貳也
注+[附注] 林曰 我之有子 此身之副貳也니 姑紓死焉
하리라注+姑 且也 紓 緩也
旣
에 夫人將使公田孟諸而殺之
注+[附注] 林曰 旣 卒事也 襄夫人將使昭公田獵于宋孟諸之大藪而殺之한대
蕩意諸曰 盍適諸侯
잇가 公曰 不能其大夫至于君祖母以及國人
注+君祖母 諸侯祖母之稱 謂襄夫人 [附注] 林曰 大夫 謂公子鮑等하니 諸侯誰納我
리오
且旣爲人君
이라가 而又爲人臣
은 不如死
라하고 盡以其寶賜左右而使行
하다注+行 去也 [附注] 林曰 使去以避難
夫人使謂司城去公
注+[附注] 林曰 使人告蕩意諸 使去昭公하니 對曰
冬十一月甲寅
에 宋昭公將田孟諸
러니 未至
에 夫人王姬
攻而殺之
하다注+襄夫人 周襄王姊 故稱王姬 帥甸 郊甸之師 [附注] 林曰 使人帥郊甸之師 攻昭公而殺之 蕩意諸死之
하다注+不書 不告
文公卽位
하야 使母弟須爲司城
注+代意諸하고 華耦卒
에 而使蕩虺爲司馬
하다注+虺 意諸之弟
16년 봄에
계손행보季孫行父가
제후齊侯와
양곡陽穀에서
회합會合하였으나
제후齊侯는 그와 더불어
결맹結盟하지 않았다.
注+급及은 여與이다.
여름 5월에
공公이 네 달째
시삭視朔하지 않았다.
注+제후諸侯는 매월每月 반드시 곡삭告朔하고서 그 달에 시행할 정무政務를 처리[聽政]한 뒤에 이어 종묘宗廟에 제사를 지낸다.[朝廟] 그러나 지금 공公은 질병으로 곡삭告朔을 폐지하고 2월, 3월, 4월, 5월의 삭일朔日에 시삭視朔하지 않은 것이다. 《춘추春秋》의 12공公 중에 질병으로 시삭視朔하지 못한 임금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그 의례義例를 취할 곳이 없기 때문에 특별히 이것을 들어 행사行事를 드러내고 이어 공公에게 실지로 질병이 있었기 때문이고 제齊나라를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밝힌 것이다.
6월에
공자수公子遂가
제후齊侯와
처구郪丘에서
결맹結盟하였다.
注+문공文公의 질병이 사실이고, 또 뇌물을 주었기 때문에 제후齊侯가 결맹結盟에 응한 것이다. 처구郪丘는 제齊나라 땅이다.
가을 8월
신미일辛未日에
부인夫人강씨姜氏가
훙薨하였다.
注+희공僖公의 부인夫人이고 문공文公의 어머니이다.
천대泉臺를 허물었다.
注+천대泉臺는 대臺의 이름이다. 훼毁는 허문 것이다.
초인楚人과 진인秦人과 파인巴人이 용庸나라를 멸滅하였다.
겨울 11월에
송인宋人이 그 임금
저구杵臼를
시해弑害하였다.
注+임금의 이름을 칭한 것은 임금이 무도無道했기 때문이다. 그 예例가 선공宣公 4년에 보인다.
傳
16년 봄 정월에
제齊나라와
화평和平하였다.
注+제齊나라가 전년前年에 노魯나라를 두 차례 침벌侵伐하자 노魯나라가 제齊나라에 항복降服하였기 때문에 화평和平한 것이다.
공公은 병이 있어 갈 수 없으므로
계문자季文子를 보내어
제후齊侯와
양곡陽穀에서
회합會合하여
결맹結盟을 청하게 하니
제후齊侯는 결맹하려 하지 않으며 “
노군魯君의 병이 낫기를 기다리겠다.”
注+간間은 병이 낫는 것이다.고 하였다.
傳
여름 5월에 공公이 네 달째 시삭視朔하지 않았으니 질병 때문이었다.
공公이 양중襄仲을 보내어 제후齊侯에게 뇌물을 바쳤기 때문에 처구郪丘에서 결맹結盟한 것이다.
傳
뱀이
천궁泉宮에서 나와서
노魯나라
국도國都로 들어온
수數가
선군先君의
수數와 같았다.
注+백금伯禽으로부터 희공僖公까지가 모두 17군君이다. [부주]林: 천궁泉宮은 바로 천대泉臺이다.
가을 8월
신미일辛未日에
성강聲姜이
훙薨하니
천대泉臺를 허물었다.
注+노인魯人은 사요蛇妖(뱀의 요사妖邪)가 생겨나서 성강聲姜이 훙薨하였다고 여겼기 때문에 천대泉臺를 허문 것이다.
傳
초楚나라에 크게
기근饑饉이 드니
융인戎人이
초楚나라의 서남쪽
변경邊境을
침벌侵伐하여
부산阜山까지 들어와서
대림大林에 주둔하였다가 또
초楚나라의 동남쪽
변경邊境을
침벌侵伐하여
양구陽丘까지 들어가서
자지訾枝를
침공侵攻하였다.
注+융戎은 산이山夷이다. 대림大林‧양구陽丘‧자지訾枝는 모두 초楚나라 읍邑이다.
용인庸人은
군만群蠻을 거느리고
초楚나라를 배반하고,
注+용庸나라는 지금의 상용현上庸縣인데 초楚나라에 속屬한 소국小國이다.균인麇人은
백복百濮을 거느리고
선選에 모여
초楚나라를 치려 하니,
注+선選은 초楚나라 땅이다. 백복百濮은 만이蠻夷이다. 이때
초楚나라는
신읍申邑과
식읍息邑의
북문北門을
봉쇄封鎖하고
注+중국中國의 침략을 대비하기 위해서이다.판고阪高로
천도遷都할 것을
계획計劃하였다.
注+초楚나라의 험지險地이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곳이면 적敵도 갈 수 있으니, 용庸나라를 치는 것만 못합니다.
저 균麇나라와 백복百濮은 우리가 기근饑饉으로 출병出兵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 우리를 침벌侵伐한 것이니, 만약 우리가 출병出兵한다면 저들은 반드시 겁을 먹고 돌아갈 것입니다.
백복인百濮人은
분산分散해
거주居住하기 때문에 각각 저희들의
읍邑으로 달려가려 할 것이니
注+[부주]林: 백복百濮은 한 곳에 모여 살지 않고 모두 흩어져 살기 때문에 각각 달려가서 저희들의 읍邑을 보호하려할 것이라는 말이다. 어느 겨를에 남을
도모圖謀하겠습니까?”
注+[부주]林: 어느 겨를에 남의 나라 치기를 도모圖謀하겠느냐는 말이다.
이에
출병出兵하니 15일 만에
백복百濮이
진陣을 풀고서 돌아갔다.
注+복이濮夷는 한 곳에 모여 살지 않기 때문에 곤난困難한 일을 당하면 흩어져 돌아간다.
초군楚軍이
여읍廬邑을 출발한 뒤로는 가는 곳마다 그 곳의
창고倉庫를 열어
상하上下가 같이 먹으면서
행군行軍하여
注+왕往은 용庸나라를 치기 위해 가는 것이다. 진振은 여는 것이고 늠廩은 창고이다. 동식同食은 상하上下가 찬饌을 달리하지 않는 것이다.[부주]林: 초楚나라 여읍廬邑에서 출발하여 용庸나라를 치러가는 것이다.구서句澨에 주둔하였다.
注+구서句澨는 초楚나라의 서계西界이다.
여집려廬戢黎를 보내어
용庸나라를
침공侵攻해
注+집려戢黎는 여읍廬邑의 대부大夫이다.용庸나라의
방성方城까지 쳐들어가게 하였는데,
注+방성方城은 용庸나라 땅이다. 상용현上庸縣 동쪽에 방성정方城亭이 있다.용군庸軍이
초군楚軍을 추격하여
자양창子揚窓을 사로잡았다.
注+창窓은 집려戢黎의 관속官屬이다.
자양창子揚窓이 잡힌 지 3일 만에 도망해 와서
注+[부주]林: 잡힌 지 3일 만에 도망해 돌아온 것이다. 말하기를 “
용庸나라는 군대가 많은데다가
군만群蠻까지
합세合勢하였으니, 다시
대군大軍을 일으키고
注+도로 구서句澨의 군중軍中으로 복귀復歸한다는 말이다. 또
왕군王軍까지 일으켜
양군兩軍이
연합聯合한 뒤에
진격進擊하는 것이 좋겠습니다.”고 하니,
사숙師叔이 말하기를 “옳지 않다.
注+사숙師叔은 초楚나라 대부大夫반왕潘尫이다.
우선 저들과 다시 만나서 저들을 교만하게 만들라.
注+[부주]林: 우선 다시 저들과 만나서 고의로 패전敗戰하여 저들의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라는 말이다.
저들이 교만해지고 우리가 분노한 뒤에야 승리할 수 있으니, 이것이
선군先君분모蚡冒께서
형습陘隰을
정복征服하신 방법이다.”
注+분모蚡冒는 초무왕楚武王의 아버지이다. 형습陘隰은 지명地名이다. [부주]林: 분모蚡冒는 초무왕楚武王의 제부諸父이다.[부주]朱: 《사기史記》에 의하면 분모蚡冒는 초무왕楚武王의 형兄이다.고 하였다.
이에
초군楚軍은 다시 저들과 만나
교전交戰하였는데 일곱 번 만나 모두
패주敗走하니,
注+군대가 패주敗走하는 것을 ‘배北’라 한다.비인裨人‧
조인鯈人‧
어인魚人만이
초군楚軍을 추격하였다.
注+비裨‧조鯈‧어魚는 용庸나라의 세 읍邑이다. 어魚는 어복현魚復縣으로 지금의 파동巴東영안현永安縣이다. 초군楚軍을 경시輕視하였기 때문에 세 읍인邑人만이 초군楚軍을 추격한 것이다.
용인庸人은 “초군楚軍은 함께 전투戰鬪할 만한 상대도 못 된다.”고 여겨 드디어 방비防備를 설치하지 않거늘
이에
초자楚子는
전거傳車를 타고 달려와서
임품臨品에
전군全軍을
집결集結시킨 뒤에
注+일馹은 전거傳車이다. 임품臨品은 지명地名이다. 군대를 두
부대部隊로 나누어
注+대隊는 부대部隊이다. 두 길로 나뉘어 가서 공격한 것이다.자월子越은
석계石溪로부터 출발하고
자패子貝는
인仞으로부터 출발하여
용庸나라를 토벌하게 하니
注+자월子越은 투초鬪椒이다. 석계石溪와 인仞은 용庸나라로 들어가는 길목이다.
진인秦人과
파인巴人은
초군楚軍의 뒤를 따르고
注+[부주]林: 진秦나라와 파巴나라의 군대가 초군楚軍을 따라 용庸나라를 친 것이다.군만群蠻이
초자楚子에게
복종服從하고서
결맹結盟하여
注+만인蠻人은 초군楚軍의 강함을 보았기 때문에 항복한 것이다. 드디어
용庸나라를
멸滅하였다.
注+전傳의 말은 초楚나라에 모신謀臣이 있는 것이 흥성興盛하게 된 원인이라는 뜻이다.
傳
송宋나라
공자公子포鮑는
국인國人에게
예禮를 행하여,
注+포鮑는 소공昭公의 서제庶弟문공文公이다. [부주]朱: 인심人心을 얻어 찬시簒弑하려는 계획으로 그렇게 한 것이다.송宋나라에
기근饑饉이 들자 자기 집의
곡식穀食을 다 내어 백성들에게
대여貸與하였고,
注+[부주]林: 공자公子포鮑는 스스로 자기 사가私家의 곡식을 다 내어 주린 백성들에게 대여貸與한 것이다. 포鮑가 백성을 구휼救恤했다는 말이다. 나이가 70세 이상인
노인老人에게는 음식을 보내지 않은 곳이 없고,
注+[부주]林: 노인에게 음식을 보내지 않은 곳이 없다는 말이다. 이飴는 유遺(줌)이다. 또 철마다
진귀珍貴한 음식을 보내주었다.
注+수羞는 진進(올림)이다. [부주]林: 포鮑가 노인老人을 봉양奉養했다는 말이다.
육경六卿의 집으로 자주 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고,
注+삭數은 자주이다. [부주]林: 송宋나라 육경六卿의 집으로 자주 가서 도움을 청하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는 말이다.국중國中의
재능才能이 있는 사람은 모두 섬기고,
注+재인材人은 현재賢才가 있는 자이다. [부주]林: 포鮑가 현자賢者를 존경尊敬했다는 말이다.환공桓公 이하의
친족親族을 모두
구휼救恤하였다.
注+환공桓公은 포鮑의 증조曾祖이다. [부주]林: 포鮑가 친족親族을 친애親愛했다는 말이다.
공자公子포鮑는 얼굴이 아름답고 예쁘기 때문에
양부인襄夫人이
통정通情하고자 하였으나
注+양부인襄夫人은 포鮑의 적조모嫡祖母이다.공자公子가 듣지 않으니,
注+포鮑가 예禮로써 스스로 방어防禦한 것이다. [부주]林: 포鮑가 능히 예禮로써 스스로 방어防禦한 것이다.부인夫人은 그가 은혜 베푸는 일을 도왔다.
注+[부주]林: 부인夫人이 포鮑를 도와 국인國人에게 은혜를 베풀었다는 말이다.
소공昭公이 무도無道하니 국인國人이 공자公子포鮑를 받들고서 부인夫人에게 의지하였다.
이때
화원華元이
우사右師,
注+원元은 화독華督의 증손曾孫이다. 공자公子성成을 대신해 우사右師가 된 것이다.공손우公孫友가
좌사左師,
注+[부주]林: 우友는 목이目夷의 아들이다.화우華耦가
사마司馬,
注+공자公子앙卬을 대신해 사마司馬가 된 것이다.인관鱗矔이
사도師徒,
注+[부주]林: 관矔은 환공桓公의 손자이다.탕의제蕩意諸가
사성司城,
공자公子조朝가
사구司寇가 되었다.
注+화어사華御事를 대신해 사구司寇가 된 것이다.
과거
사성司城탕蕩이 죽었을 때
공손수公孫壽는
사성司城의
관직官職을 사양하고서
注+수壽는 탕蕩의 아들이다. 임금에게 청하여 아들
의제意諸를
사성司城으로 삼게 하였다.
注+의제意諸는 수壽의 아들이다.
얼마 뒤에[旣]
공손수公孫壽는 어떤 이에게 말하기를 “임금이
무도無道한데 나의
관위官位가
군위君位에
근접近接하였으니
화禍가 미칠까 두려워 사양한 것이다.
注+화禍가 몸에 미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부주]林: 내 사성司城의 관직官職이 임금을 가까이 모셔야 하기 때문에 화禍가 몸에 미칠 것이 두려워 사양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관직官職을 버리면
종족宗族이
비호庇護받을 곳이 없어진다.
注+[부주]林: 만약 사성司城의 관직官職을 버린다면 종족宗族을 비호庇護할 수 없다는 말이다.
자식은 나의
대신代身이니
注+[부주]林: 나의 자식은 내 몸의 부이副貳(代身)라는 말이다. 자식을
사성司城으로 삼아 나의 죽음을 잠시 늦추려 한 것이다.
注+고姑는 차且(잠시)이고 서紓는 완緩(늦춤)이다.
비록 자식은 잃더라도 종족은 망하지 않을 수 있다.”
注+자기는 살아 있기 때문이다.고 하였다.
얼마 뒤에
부인夫人은
소공昭公에게
맹저孟諸로 사냥을 나가게 하고서 그 기회를 이용해 죽이려 하였다.
注+[부주]林: 기旣는 일을 마치고 난 뒤이다. 양부인襄夫人은 소공昭公에게 송宋나라 맹저孟諸의 대수大藪로 가서 사냥하게 하고서 기회를 이용해 소공昭公을 죽이려 한 것이다.
소공昭公은 그 음모陰謀를 알아채고서 보물을 다 챙겨 가지고 사냥을 떠났다.
탕의제蕩意諸가 말하기를 “어째서
제후국諸侯國으로 도망가지 않으십니까?”라고 하니,
소공昭公이 말하기를 “나는 나의
대부大夫로부터
군조모君祖母와
국인國人에게까지
신임信任을 받지 못하였으니,
注+군조모君祖母는 제후諸侯의 조모祖母의 칭호稱號이니 양부인襄夫人을 이름이다. [부주]林: 대부大夫는 공자公子포鮑 등이다. 어느
제후諸侯가 나를 받아주겠는가?
그리고 또 이미 임금이 되었다가 다시 남의 신하가 되는 것은 죽느니만 못하다.”고 하고서, 가져간 보물을
좌우左右의
시종侍從들에게 모두 나누어 주고서 도망가도록 하였다.
注+행行은 떠나는 것이다. [부주]林: 그들에게 떠나서 화난禍難를 피하게 한 것이다.
부인夫人이
사성司城에게 사람을 보내어
소공昭公을 버리라고 하니,
注+[부주]林: 탕의제蕩意諸에게 사람을 보내어 소공昭公에게서 떠나오게 한 것이다.탕의제蕩意諸가 대답하였다.
“그분의 신하가 되어 그분의
화난禍難을
피避한다면 다음 임금을 어떻게 섬길 수 있겠습니까?”
注+다음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겨울 11월
갑인일甲寅日에
송소공宋昭公이 사냥하기 위해
맹저孟諸로 가는데
맹저孟諸에 이르기 전에
왕희王姬가
수전帥甸을 보내어
소공昭公을 공격해 죽이게 하니,
注+양부인襄夫人은 주양왕周襄王의 누이이기 때문에 ‘왕희王姬’라고 칭한 것이다. 수전帥甸은 교전郊甸의 군대이다. [부주]林: 사람을 보내어 교전郊甸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소공昭公을 공격해 죽이게 한 것이다.탕의제蕩意諸는
소공昭公을 위해 죽었다.
注+경經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經에 “
송인宋人이 그 임금
저구杵臼를
시해弑害하였다.”고 기록하였으니, 이는
소공昭公이
무도無道하였기 때문이다.
注+시례始例가 신하의 죄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나 지금 국인國人으로 칭하였기 때문에 거듭 임금의 죄임을 밝힌 것이다.
문공文公이
즉위卽位하여
모제母弟수須를
사성司城으로 삼고,
注+의제意諸를 대신해 사성司城이 된 것이다.화우華耦가 죽자
탕훼蕩虺를
사마司馬로 삼았다.
注+훼虺는 의제意諸의 아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