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여름 4월에
주공周公기보忌父‧
왕자王子당黨이
제齊나라
습붕隰朋에서
회합會合하여
혜공惠公을
진후晉侯로 세웠다.
注+주공周公기보忌父는 주周나라 경사卿士이고, 왕자王子당黨은 주周나라 대부大夫이다.
진후晉侯는
이극里克을 죽여
설명說明하였다.
注+찬탈簒奪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해설解說한 것이다.
진후晉侯가 이극里克을 죽이려고 할 때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이극里克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注+[부주]朱: 미微는 무無이다.
그러나 그대는 두 임금과 한 대부大夫를 죽였으니 그대의 임금 노릇하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해제奚齊와 탁자卓子를 폐출廢黜하지 않았다면 임금님께서 어찌 일어설 수 있었겠습니까.
신臣에게
죄罪를 씌우고자 하신다면 어찌 핑계댈 말이 없겠습니까?
注+나에게 죄罪를 씌우고자 한다면 핑계 댈 말이 없는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신은 명을 따르겠습니다.”라고 하고서 칼에 엎어져 죽었다.
이때 비정丕鄭은 빙문사聘問使로 진秦나라에 가 있었고, 또 뇌물이 늦어진 것에 대해 사과謝過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화禍가 미치지 않은 것이다.
注+비정丕鄭은 이극里克의 당黨이다. 진秦나라에 가 있었기 때문에 이극里克과 함께 죽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또 진秦나라에게 혜공惠公을 도와 진晉나라로 들여 보내준 데 대한 보답報答의 뇌물이 늦어지는 것을 사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극里克의 화禍에 미치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