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겨울에
제후齊侯가
관이오管夷吾를 보내어
융인戎人을
주왕周王과
화평和平시키고,
습붕濕朋을 보내어
융인戎人을
진晉나라와
화평和平시켰다.
注+평平은 화和이다. 전년前年에 진晉나라가 주周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융戎을 쳤기 때문에 융戎이 주周‧진晉나라와 불화不和하였다.
왕王이 상경上卿의 예禮로 관중管仲을 접대接待하니, 관중管仲이 사양하며 말하였다.
제齊나라에는
천자天子의 두
수신守臣국씨國氏‧
고씨高氏가 있으니,
注+제齊나라의 국자國子와 고자高子는 천자天子가 명命하여 제齊나라의 수신守臣으로 삼았으니 모두 상경上卿이다. 장공莊公 22년 고혜高傒가 처음으로 경經에 보이고, 희공僖公 28년 전傳에 국귀보國歸父가 보인다. 귀보歸父의 아버지는 의중懿仲이고, 고혜高傒의 아들은 장자莊子인데, 지금은 누구의 세대世代인지 알 수 없다. 만약 봄과 가을철에 저들이 와서
왕명王命을 받든다면 어떤
예禮로써 저들을 대우하시겠습니까.
注+절節은 시時이다. [부주]朱: 가령 춘조春朝나 추근秋覲 때에 고자高子와 국자國子 두 경卿이 왕조王朝로 와서 왕명王命을 받든다면 장차 어떤 예禮로 저들을 대우하겠느냐는 말이다.
배신陪臣은 감히 사양하겠나이다.”
注+제후諸侯의 신하를 배신陪臣이라 한다.
“
구씨舅氏야,
注+백구伯舅의 사신使臣이기 때문에 구씨舅氏라고 한 것이다.나는 그대의
공훈功勳을 嘉尙히 여기고 그대의 아름다운 德을 보답하려는 것이다.
”
注+공훈功勳과 미덕美德이 정당正當하여 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관중管仲의 지위地位를 말하지 않고 직職을 말한 것은 관중管仲이 낮은 지위로 제齊나라의 국정國政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직職으로 그를 존대尊待하고자 한 것이다. [부주]朱: 독督은 독후篤厚이니, 나는 그대의 공을 아름답게 여겨 그대의 덕을 보답하려는 것이니 그대의 공功과 덕德을 독후篤厚하게 여겨 잊지 않겠다는 말이다.
관중管仲은
하경下卿의
예우禮遇를 받고 돌아왔다.
注+관중管仲은 직職이 높다고 감히 자만自慢하지 않고 끝내 자신의 지위地位에 맞는 하경下卿의 예우禮遇를 받았다.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관씨管氏는 대대로 제사가 이어지는 것이 마땅하다.
시詩에 ‘
개제愷悌한
군자君子여
신神이 돕는 바이다.’라고 하였다.”
注+시詩는 《시경詩經》 〈대아大雅한록편旱鹿篇〉이다. 개愷는 낙樂이고 제悌는 이易이니, 낙이樂易한 군자君子는 신神의 노래勞來를 받기 때문에 대대로 제사를 받는다는 말이다. 그러나 관중管仲의 후손後孫이 다시 제齊나라 기록에 보이지 않으니 전傳에도 선행善行에 대한 효험效驗이 없는 것을 들어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