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春秋左氏傳(2)

춘추좌씨전(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춘추좌씨전(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三年春 狄侵衛하다注+傳在前年春
[經]夏四月 葬陳宣公하다注+無傳
[經]公會齊侯宋公陳侯衛侯鄭伯許男曹伯于鹹하다注+鹹 衛地 東郡濮陽縣東南有鹹城 [附注] 林曰 兵車之會二
[經]秋九月 大雩하다注+無傳 書過
[經]冬 公子友如齊하다注+無傳
[傳]十三年春 齊侯使仲孫湫聘于周하고 且言王子帶注+前年王子帶奔齊 言欲復之러니
事畢 不與王言注+不言子帶事하고하야 復命曰
未可니이다
王怒未怠하니 其十年乎注+[附注] 林曰 十者 數之盈也 故子帶罪重 必十年 乃可復ㄴ저
不十年이면 王弗召也리이다
[傳]夏 會于鹹하니 淮夷病杞故 且謀王室也
[傳]秋 爲戎難故 諸侯戍周하다
齊仲孫湫致之하다注+戍 守也 致諸侯戍卒于周
[傳]冬 晉荐饑注+麥禾皆不熟하야 使乞糴于秦하다
秦伯謂子桑호되 與諸乎 對曰
重施而報 君將何求릿가注+言不損秦
重施而不報 其民必攜하리니 攜而討焉이면 無衆必敗리이다注+不義故民離
謂百里호되 與諸乎注+百里 秦大夫 [附注] 林曰 百里 卽百里奚 對曰
天災流行 國家代有注+[附注] 林曰 言飢饉乃天降之災 如水流行 無有定止 有國家者 更代而有此灾 救災恤鄰 道也 行道 有福이리이다注+[附注] 朱曰 今按百里奚之言 質實渾寡 無計較利害之心 眞賢臣也
丕鄭之子豹在秦이러니 請伐晉注+欲爲父報怨한대 秦伯曰 其君是惡어니와 其民何罪 秦於是乎輸粟于晉하야 自雍及絳相繼하다注+雍 秦國都 絳 晉國都
命之曰汎舟之役이라하다注+


13년 봄에 적인狄人나라를 침범侵犯하였다. 注+전년前年 봄에 보인다.
여름 4월에 진선공陳宣公장사葬事 지냈다. 注+이 없다.
희공僖公제후齊侯송공宋公진후陳侯위후衛侯정백鄭伯허남許男조백曹伯에서 회합會合하였다. 注+나라 땅이다. 동군東郡복양현濮陽縣 동남쪽에 함성鹹城이 있다. [부주]林: 이것이 두 번째 병거지회兵車之會이다.
가을 9월에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注+이 없다. 시기時期가 지난 뒤에 지냈기 때문이 기록한 것이다.
겨울에 공자公子나라에 갔다. 注+이 없다.
13년 봄에 제후齊侯중손추仲孫湫를 보내어 나라에 빙문聘問하고, 또 왕자王子의 일을 말하게 하였다.注+전년前年왕자王子나라로 도망갔으므로 에게 말하여 그를 귀국歸國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중손추仲孫湫빙문聘問의 일을 마친 뒤에 에게 말하지 않고,注+자대子帶의 일을 말하지 않은 것이다. 돌아와서 복명復命하였다.
“아직은 불가능不可能합니다.
의 노여움이 아직 누그러지지 않았으니, 10년은 지나야 할 것입니다.注+[부주]林: 은 가득 찬 이다. 자대子帶가 중하기 때문에 반드시 10년이 되어야 회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10년이 되기 전에는 이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여름에 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이는 회이淮夷나라를 괴롭히기 때문이고, 또 나라 왕실王室의 안정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
가을에 융인戎人이 난리를 일으킨 일 때문에 제후諸侯가 군대를 보내어 나라를 지키게 하였다.
나라 중손추仲孫湫가 군대들을 거느리고 갔다.注+이다. 제후諸侯수졸戍卒을 거느리고 나라로 간 것이다.
겨울에 나라에 거듭 흉년凶年이 들어注+천기荐饑는 보리와 벼가 모두 여물지 않아 수확收穫할 것이 없는 것이다.나라에 사신使臣을 보내어 양곡구매糧穀購買를 요청하였다.
진백秦伯자상子桑에게 “주어야 하는가?”고 묻자, 자상子桑이 대답하였다.
“거듭 은혜를 베풀었다가 보답報答을 받는다면 임금께서는 다시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注+나라에 손해가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거듭 은혜를 베풀었는데도 보답하지 않는다면 나라 백성의 마음이 반드시 혜공惠公에게서 떠날 것이니, 백성의 마음이 떠난 뒤에 토벌하면 그를 돕는 무리가 없어서 반드시 패망敗亡할 것입니다.”注+의리가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백리百里에게 “주어야겠는가?”고 묻자,注+백리百里나라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백리百里는 바로 백리해百里奚이다.백리百里가 대답하였다.
천재天災유행流行하는 것은 나라마다 번갈아 있는 일이고,注+[부주]林: 기근饑饉은 하늘이 내리는 재앙災殃으로 물이 흘러가듯이 정해진 곳이 없어서 나라마다 번갈아 이런 재앙이 생긴다는 말이다.재난災難구제救濟하고 이웃 나라를 구휼救恤하는 것이 도리道理이니, 도리를 행하면 복이 있을 것입니다.”注+[부주]朱: 지금 백리해百里奚의 말을 살펴보면 꾸밈없이 성실하고 혼후渾厚하면서도 말수가 적어서 이해利害를 따지는 마음이 없으니 참으로 어진 신하이다.
이때 비정丕鄭의 아들 나라에 있었는데, 나라를 토벌討伐하기를 청하자注+아비의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다.진백秦伯은 “그 임금은 밉지만 그 백성들이야 무슨 죄가 있느냐.”고 하고서 나라는 이에 나라로 곡식穀食수송輸送하였는데, 수송하는 항렬行列에서 에까지 이어졌다.注+나라 국도國都이고 나라 국도國都이다.
이를 일러 ‘범주지역泛舟之役’이라고 명명命名하였다.注+위수渭水에서 뱃길로 운송運送하여 황하黃河분수汾水로 들어간 것이다.


역주
역주1 從渭水運入河汾 : 運送船이 渭水에서 출발하여 동으로 가다가 弘農華陽縣에 이르러 黃河로 들어가서 물을 거슬러 北上하다가 河東汾陰縣에 이르러 汾水로 들어가 물을 거슬러 동으로 가면 絳에 닿는다.

춘추좌씨전(2) 책은 2022.01.20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50 서울시 종로구 삼봉로81, 1332호(두산위브파빌리온)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