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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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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六年春 하다
[經]夏四月이라
[經]秋八月注+無傳하다
[經]冬十月이라
[傳]六年春 晉衛侵陳하니 陳卽楚故也
[傳]夏 定王使子服求后于齊注+子服 周大夫 하다
[傳]秋 赤狄伐晉하야 圍懷及邢丘注+邢丘 今河內平皐縣 어늘 晉侯欲伐之한대 中行桓子曰
注+驕則數戰 爲民所疾 하야 이면 將可殪也注+殪 盡也 貫 猶習也 리이다
注+周書 康誥也 義取周武王以兵伐殷 盡滅之 이라하니 此類之謂也注+爲十五年晉滅狄傳 니이다
[傳]冬 桓公逆王后于齊注+召桓公 王卿士 事不關魯 故不書 爲成二年王甥舅張本하다
[傳]楚人伐鄭하야 取成而還注+九年十一年傳所稱厲之役 蓋在此 하다
[傳]鄭公子曼滿與王子伯廖語 欲爲卿注+二子 鄭大夫 [附注] 林曰 語 相語也 하니 伯廖告人曰 無德而貪注+[附注] 林曰 言曼滿身無德行而厚貪爵祿 其在周易豐☳☲注+離下震上 豐 之離☲☲注+豐上六變而爲純離也 周易論變 故雖不筮 必以變言其義 豐上六曰 豐其屋 蔀其家 闚其戶 閴其無人 三歲不覿 凶 義取無德而大其屋 不過三歲必滅亡 하니 注+不過三年 리라 間一歲 鄭人殺之하다


6년 봄에 나라 조돈趙盾나라 손면孫免나라를 침공侵攻하였다.
여름 4월이다.
가을 8월에 황재蝗災가 있었다.注+이 없다.
겨울 10월이다.
6년 봄에 나라와 나라가 나라를 침공侵攻하였으니, 이는 나라가 나라에 붙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정왕定王자복子服나라로 보내어 제녀齊女왕후王后로 삼기를 하였다.注+자복子服나라의 대부大夫이다.
가을에 적적赤狄나라를 토벌討伐하여 포위包圍하고 형구邢丘까지 쳐들어오자,注+형구邢丘는 지금의 하내河內평고현平皐縣이다.진후晉侯적적赤狄토벌討伐하려 하니, 중행환자中行桓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적적赤狄으로 하여금 그 백성을 괴롭혀注+교만驕慢하면 자주 전쟁戰爭을 일으켜 백성의 미움을 산다는 말이다. 죄악罪惡이 극에 이르게 하면 장차 저들을 섬멸殲滅할 수 있을 것입니다.注+이고, 과 같다.
주서周書〉에 ‘큰 나라를 섬멸殲滅하였다.’고 하였으니,注+주서周書는 〈강고康誥〉이다. 주무왕周武王이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쳐서 다 섬멸殲滅한 뜻을 한 것이다. 바로 이런 경우를 이른 것입니다.”注+선공宣公 15년에 나라가 격멸擊滅배경背景이다.
겨울에 소환공召桓公나라로 가서 왕후王后를 맞이하였다.注+소환공召桓公주왕周王경사卿士이다. 나라와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에 《춘추春秋》에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성공成公 2년 주왕周王이 ‘나라는 생구甥舅의 나라이다.’고 한 장본張本이다.
초인楚人나라를 토벌討伐하여 화친和親하고 돌아갔다.注+선공宣公 9년과 11년 에 말한 전쟁戰爭이 이때 있었던 듯하다.
나라 공자公子만만曼滿왕자王子백료伯廖와 이야기하는 중에 “나는 이 되고 싶다.”고 하니,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부주]林: 는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다.백료伯廖가 어떤 이에게 하기를, “도 없으면서 높은 벼슬을 하는 것은注+[부주]林: 만만曼滿자신自身에게 덕행德行도 없으면서 크게 작록爵祿한다는 말이다.길흉吉凶을 말한 것이 《주역周易》의 注+하괘下卦이고 상괘上卦인 것이 풍괘豐卦이다. 之離에 있으니,注+풍괘豐卦상육上六하여 순전純全이괘離卦가 된 것이다. 《주역周易》은 변화變化한 글이므로 비록 점을 치지 않아도 반드시 변화變化로써 그 뜻을 말할 수 있다. 풍괘豐卦상육上六효사爻辭에 “그 집을 크게 지었으나, 그 집에 차양遮陽을 달았다. 그 문안을 엿보아도 고요하여 사람이 없어서 3년이 되어도 사람을 볼 수 없으니 하다.”고 하였다. 도 없으면서 그 집을 크게 지으면 3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멸망滅亡한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3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다.”고 하였는데,注+3년을 넘기지 못한다는 말이다. 과연 한 해를 거른 뒤에 정인鄭人이 그를 죽였다.


역주
역주1 晉趙盾衛孫免侵陳 : 晉成公이 처음 卽位하자, 鄭穆公은 楚나라를 버리고 晉나라에 服從하였으니, 이는 夷狄인 楚나라를 따르는 것이 마음에 愉快하지 않았고, 또 晉나라 新君에 의지해 保護받기를 바라서였다. 그런데 晉나라에 服從한 지 얼마 되지 않아 國君이 弑害되는 內亂이 일어났는데도 晉나라는 그 罪를 묻지도 않았고, 楚軍이 세 차례나 쳐들어오는 外患이 일어났는데도 晉나라는 救援하지 않았다. 鄭나라는 晉나라에 服從한 결과 福은 받지 못하고 한갓 楚나라를 버린 害만을 받았으니, 楚나라에 近接한 弱國이 어찌 晉나라에 失望하고 楚나라를 더욱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陳나라가 楚나라에 붙은 것도 실로 鄭나라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晉나라는 反省하지 않고 衛나라와 聯合하여 陳나라를 쳤으니, 陳나라가 비록 弱國이지만 당연히 服從하지 않을 것이다. 6년 사이에 한 번 救援하고 한번 侵攻하였으니, 어찌 陳나라만이 晉나라를 믿지 않을 뿐이겠는가? 이 또한 國事를 擔當해 政治를 잘못한 趙盾의 罪이다. 徐壽錫 《潁水全集》
역주2 使疾其民 : 杜氏는 疾을 疾惡(미움)의 뜻으로 풀었으나, 譯者는 이를 따르지 않고 病(괴롭힘)의 뜻으로 飜譯하였다.
역주3 以盈其貫 : 晉나라가 應戰하지 않고 弱함을 보여, 저 赤狄으로 하여금 敵을 無視하는 驕慢한 마음이 생겨 자주 戰爭을 일으켜 그 백성을 괴롭히는 罪惡이 극에 달하게 하라는 말이다. 貫은 돈을 꿰는 꿰미인데, 盈貫은 惡行이 極에 달한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杜氏는 貫을 習의 뜻으로 풀었으나, 譯者는 이를 따르지 않고 罪惡이 극에 달하는 것으로 飜譯하였다.
역주4 周書曰 殪戎殷 : 周武王이 殷紂의 罪惡이 極에 이르기를 기다린 뒤에 一擧에 殷나라를 滅亡시켰 듯이 우리도 赤狄을 이와 같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楊注〉에 “戎은 大이니, ‘殪戎殷’은 大國殷을 滅亡시킨 것이다.”고 하였다.
역주5 名[召] : 저본에는 ‘名’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召’로 바로잡았다.
역주6 弗過之矣 : 이 말은 三歲不覿의 뜻을 미루어 말한 것이고, 《周易》의 爻辭가 아니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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