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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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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九年春王正月 公如齊注+無傳하다
[經]公至自齊注+無傳하다
[經]夏 仲孫蔑如京師하다
[經]齊侯伐萊注+無傳하다
[經]秋 取根牟注+根牟 東夷國也 今琅邪陽都縣東有牟鄕 [附注] 林曰 取言公 不言公 非公命也 自宣而下 征伐在大夫矣하다
[經]八月 滕子卒注+하다
[經]九月 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會于扈注+[附注] 林曰 扈 鄭地 하다
[經]晉荀林父帥師伐陳하다
[經]辛酉 晉侯黑臀卒于扈注+卒於竟外 故書地 四與文同盟 九月無辛酉 日誤하다
[經]冬十月癸酉 衛侯鄭卒注+無傳 三與文同盟 하다
[經]宋人圍滕하다
[經]楚子伐鄭하니 晉郤缺帥師救鄭하다
[經]陳殺其大夫洩冶注+洩冶直諫於淫亂之朝以取死 故不爲春秋所貴而書名 하다
[傳]九年春 王使來徵聘注+徵 召也 言周也 徵聘不書 微加諷 不指斥 하다
孟獻子聘於周하니 王以爲有禮라하야 厚賄之하다
[傳]秋 取根牟라하니 言易也
[傳]滕昭公卒注+爲宋圍滕傳 하다
[傳]會于扈하니 討不睦也注+謀齊陳
陳侯不會注+前年與楚成故하니 晉荀林父以諸侯之師伐陳注+不書諸侯師 林父帥之 無將帥 하다
晉侯卒于扈하니 乃還하다
[傳]冬 宋人圍滕하니 因其喪也注+[附注] 林曰 滕恃晉 而宋圍之 以見晉霸之衰也
[傳]陳靈公與孔寧儀行父通於夏姬하야 皆衷其衵服하고 以戲于朝注+二子 陳卿 夏姬 鄭穆公女 陳大夫御叔妻 衷 懷也 衵服 近身衣 [附注] 林曰 君臣皆懷夏姬近身之內衣 어늘
洩冶諫曰 公卿宣淫이면 民無效焉注+宣 示也 이오 且聞不令注+[附注] 林曰 且所聞 非令美之事이니 君其納之注+納藏衵服하소서 公曰 吾能改矣라하고 公告二子하다
二子請殺之호대 公弗禁하니 遂殺洩冶하다
孔子曰
注+辟 邪也 辟 法也 詩大雅 言邪辟之世 不可立法 國無道 危行言孫ᄂ저
[傳]楚子爲厲之役故 伐鄭注+六年楚伐鄭 取成於厲 旣成 鄭伯逃歸 事見十一年 하다
[傳]晉郤缺救鄭하다
鄭伯敗楚師于柳棼注+柳棼 鄭地하니 國人皆喜로되 唯子良憂曰 是國之災也 吾死無日矣注+自是晉楚交伐鄭 十二年卒有楚子入鄭之禍라하다


9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선공宣公나라에 갔다.注+이 없다.
선공宣公나라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여름에 중손멸仲孫蔑경사京師에 갔다.
제후齊侯내국萊國토벌討伐하였다.注+이 없다.
가을에 근모根牟하였다.注+근모根牟동이東夷국명國名이다. 지금 낭야琅邪양도현陽都縣 동쪽에 모향牟鄕이 있다. [부주]林: 을 말해야 하는데 을 말하지 않은 것은 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공宣公 이후로는 정벌征伐하는 일의 권한이 대부大夫에게 있게 되었다.
8월에 등자滕子하였다.注+동맹同盟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9월에 진후晉侯송공宋公위후衛侯정백鄭伯조백曹伯에서 회합會合하였다.注+[부주]林: 나라 땅이다.
나라 순임보荀林父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신유일辛酉日진후晉侯흑둔黑臀에서 하였다.注+국외國外에서 하였기 때문에 지명地名기록記錄한 것이다. 문공文公과 네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9월에는 신유일辛酉日이 없으니 날짜가 잘못 기록된 것이다.
겨울 10월 계유일癸酉日위후衛侯하였다.注+이 없다. 문공文公과 세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송인宋人나라를 포위包圍하였다.
초자楚子나라를 토벌討伐하니, 나라 극결郤缺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설야洩冶를 죽였다.注+설야洩冶음란淫亂조정朝廷직간直諫하다가 죽음을 자초自招하였기 때문에 《춘추春秋》에 하게 여기지 않고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9년 봄에 주왕周王사자使者나라에 와서 빙문사聘問使를 보내 줄 것을 요구要求하였다.注+은 부름이니, 나라가 불렀다는 말이다. 징빙徵聘을 기록하지 않고 약간의 풍유諷諭(넌지시 타이름)만을 한 것은 감히 지적指摘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름에 맹헌자孟獻子나라에 빙문聘問하니, 주왕周王맹헌자孟獻子가 있다고 하여 예물禮物을 내렸다.
가을에 근모根牟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쉽게 점령占領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등소공滕昭公하였다.注+나라가 나라를 포위包圍배경背景이다.
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이는 나라에 복종服從하지 않는 나라를 토벌討伐할 것을 모의謀議하기 위함이었다.注+나라와 나라를 토벌討伐할 것을 모의謀議한 것이다.
진후陳侯회합會合에 오지 않으니,注+전년前年나라와 화친和親하였기 때문에 오지 않은 것이다. 나라 순임보荀林父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제후諸侯의 군대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순임보荀林父전군全軍통솔統率하였고, 제후군諸侯軍에 다른 장수將帥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때 진후晉侯에서 하니 제후諸侯의 군대가 돌아갔다.
겨울에 송인宋人나라를 포위包圍하였으니, 이는 나라에 상사喪事가 난 틈을 이용한 것이다.注+[부주]林: 나라는 나라를 믿는 나라인데도 나라가 나라를 포위包圍하였으니, 이로써 나라의 패권霸權했음을 볼 수 있다.
진영공陳靈公공녕孔寧, 의행보儀行父와 더불어 하희夏姬하고서, 세 사람 모두 하희夏姬의 속옷을 속에 입고 조정朝廷에서 서로 희롱戱弄하였다.注+두 사람은 나라의 이다. 하희夏姬정목공鄭穆公의 딸로 나라 대부大夫어숙御叔의 아내이다. (속에 입다)이고 일복衵服은 살갗에 가까이 닿는 옷이다. [부주]林: 군신君臣이 모두 하희夏姬의 살갗 가까이 닿은 내의內衣를 속에 입은 것이다.
설야洩冶하기를, “군왕君王음란淫亂한 짓 한 것을 이처럼 드러내면 백성들은 본받을 곳이 없고,注+은 보여줌이다. 또 소문도 좋지 않을 것이니注+[부주]林: 또 소문所聞도 아름다운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속옷을 감추소서.”라고 하니,注+일복衵服을 감추라는 말이다. 영공靈公은 “나는 잘못을 고치겠다.”고 하고서 두 사람에게 하였다.
두 사람이 그를 죽이기를 청하는데도 영공靈公금지禁止하지 않으니 드디어 설야洩冶를 죽였다.
이에 대해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시경詩經》에 ‘백성에게 사벽邪辟한 일이 많을 때는 스스로 을 세우지 말라.’고 하였으니, 설야洩冶의 경우를 이름인 듯하다.”注+다벽多辟이고, 입벽立辟이다. 는 《시경詩經》 〈대아大雅판편板篇〉이다. 사벽邪辟한 세상에는 을 세워서는 안 되니, 나라에 가 없을 때에는 행동은 준엄峻嚴히 하되 말은 공손恭遜히 해야 한다는 말이다.
초자楚子에서 있었던 전쟁戰爭보복報復하기 위해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선공宣公 6년에 나라가 나라를 토벌討伐하고서 에서 화친和親하였는데, 화친和親을 맺은 뒤에 정백鄭伯이 도망해 돌아갔다. 이 일은 선공宣公 11년에 있다.
나라 극결郤缺나라를 구원救援하였다.
정백鄭伯유분柳棼에서 초군楚軍패배敗北시키니,注+유분柳棼나라 땅이다.나라 사람이 모두 기뻐하였으되, 유독 자량子良만이 근심하며 “이번의 승리勝利국가國家재난災難이니, 우리가 멸망滅亡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였다.注+이때부터 나라와 나라가 번갈아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선공宣公 12년에 끝내 초자楚子나라의 국도國都입성入城하는 화란禍亂이 있게 된다.


역주
역주1 未同盟 : 同盟한 나라의 임금이 죽으면 그 이름을 기록하는 것인데, 滕子의 이름을 記錄하지 않은 것은 同盟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역주2 微[徵] : 저본에는 ‘微’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徵’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論[諭] : 저본에는 ‘論’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諭’로 바로잡았다.
역주4 孔子曰……其洩冶之謂乎 : 《左傳》에 孔子의 말이라고 引用한 것이 과연 孔子의 말인지 의심스러운 것이 많다. 洩冶로 말하면 昏淫한 君臣을 깨우치기 위해 直諫하다 죽었으니, 賞讚할 일이지 어찌 비난할 일인가? 孔子가 衛靈公의 無道를 尸諫한 史魚를 높이 評價한 것으로 보면, 어찌 죽음을 각오하고 直諫한 洩冶를 비난했을 리가 있겠는가? 이 말은 孔子의 말로 믿을 수 없다. 朴致遠의 《雪溪隨錄》에 “左氏의 無自立辟論은 매우 옳지 않다. 草野에 있는 사람이라면 無自立辟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大夫의 班列에 있는 사람으로 無自立辟하고 비굴하게 임금의 비위나 맞추어 名位를 竊取해야 하겠는가? 이 말은 洩冶를 잘 論評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역주5 共[兵] : 저본에는 ‘共’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兵’으로 바로잡았다.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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