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에 진인晉人이 적적赤狄갑씨甲氏와 유우留吁를 격멸擊滅하였다.注+갑씨甲氏와 유우留吁는 적적赤狄의 별종別種이다. 진인晉人이 이미 노씨潞氏를 격멸擊滅하고서, 이제 또 그 여당餘黨까지 아울러 다 격멸擊滅한 것이다. 사회士會를 ‘인人’으로 칭稱한 것은 부고赴告에 따른 것이다.
여름에 성주成周의 선사宣榭에 불이 났다.注+전례傳例에 “사람이 불을 지른 것이다.”고 하였다. 성주成周는 낙양洛陽이다. 선사宣榭는 강무옥講武屋으로 따로 낙양洛陽에 있던 것이다. 《이아爾雅》에 “방실房室이 없는 것을 ‘사榭’라 한다.”고 하였으니, 옥屋에 벽壁이 없는 것을 이른다.
진후晉侯가 주왕周王에게 사회士會의 관직官職을 올려줄 것을 요청要請하자,注+[부주]朱: 사회士會를 명경命卿(天子가 임명任命한 제후諸侯의 경卿)으로 삼아 주기를 요청要請한 것이다.주왕周王이 무신일戊申日에 불면黻冕을 내리어 사회士會에게 중군中軍을 거느리도록 명命하고 태부太傅까지 겸임兼任하게 하니,注+순임보荀林父의 뒤를 이어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고, 또 태부太傅의 관직官職까지 준 것이다. 불면黻冕은 명경命卿의 복장服裝이다. 태부太傅는 고경孤卿이다. 이때 진晉나라의 도적盜賊이 모두 진秦나라로 도망갔다.
양설직羊舌職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우왕禹王이 선인善人을 등용登用하자注+칭稱은 거용擧用하는 것이다. 불선인不善人들이 멀리 피해 갔다고 하니, 바로 이런 경우를 이른 것이다.
《시경詩經》에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깊은 물가에 임한 듯이, 얇은 얼음을 밟은 듯이 한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인善人이 윗자리에 있기 때문이다.注+선인善人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경계警戒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다.
선인善人이 윗자리에 있으면 나라 안에 요행僥倖을 바라는 백성이 없어진다.注+[부주]林: 선인善人이 높은 자리에 있으면 나라 안에 요행僥倖을 바라는 백성이 없는 것은 상벌賞罰이 참람僭濫(지나침)하지 않기 때문이다.
속담俗談에 ‘백성에게 요행僥倖이 많은 것은 국가國家의 불행不幸이다.’고 하였으니, 이는 선인善人이 없음을 이른 것이다.”고 하였다.
傳
여름에 성주成周의 선사宣榭에 불이 났으니, 이는 사람이 불을 지른 것이다.
모든 화재火災에 사람이 방화放火한 것을 ‘화火’라 하고, 자연적自然的으로 발생發生한 불을 ‘재災’라 한다.
傳
가을에 담백희郯伯姬가 돌아왔으니, 이는 축출逐出되어 돌아온 것이다.注+[부주]林: 백희伯姬는 노군魯君의 딸로 담국郯國으로 시집갔던 여자이다.
傳
모씨毛氏와 소씨召氏의 화난禍難으로 인해注+모씨毛氏와 소씨召氏의 화난禍難은 전년前年에 있었다.왕실王室이 다시 어지러우니, 왕손王孫소蘇가 진晉나라로 달아났다.
진인晉人이 그를 데려다가 원래原來의 직위職位에 회복恢復시켰다.注+모씨毛氏와 소씨召氏의 당黨이 소씨蘇氏를 토벌討伐하려 하였기 때문에 출분出奔한 것이다.
傳
겨울에 진후晉侯가 사회士會를 보내어 왕실王室의 분란紛亂을 화평和平시키니, 정왕定王이 향례享禮로 그를 접대接待하는데 원양공原襄公이 상례相禮(儀式을 거행擧行할 때 그 절차節次를 맡아 진행進行하는 사람)가 되었다.注+원양공原襄公은 주周나라의 대부大夫이다. 상相은 돕는 것이다.
이때 효증殽烝(骨節을 절단切斷해 도마에 올린 것)이 있는 것을 보고注+증烝은 올리는 것이니, 뼈가 붙은 고기[殽]를 도마에 올리는 것이다. 무자武子가 사사로이 원양공原襄公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注+향례享禮에는 체천體薦하는 것이 당연한데, 효증殽烝하였기 때문에 괴이怪異해서 물은 것이다. 무武는 사회士會의 시諡이고 계季는 그의 자字이다. 정왕定王이 이 말을 듣고 무자武子를 불러 말하기를, “계씨季氏야 그대는 듣지 못했는가?注+[부주]林: 계季는 사회士會의 자字이다. 그러므로 계씨季氏라고 한 것이다. 이而는 너이다.
왕王이 향례享禮를 베풀 때는 체천體薦注+향례享禮에는 희생犧牲의 몸을 반으로 쪼개어 올리는 것이니, 이는 검소儉素함을 보이기 위함이다.(犧牲의 반체半體를 도마에 올림)하고, 연례宴禮를 베풀 때는 절조折俎注+해체解體해 썬 것을 도마에 올려 고기[物]를 모두 먹을 수 있게 한 것이니, 이는 자혜慈惠를 보이기 위함이다. (바로 효증殽烝으로 고기를 삶아 뼈가 붙은 채 절단切斷해 도마에 올림)한다는 말을.
제후諸侯에게는 향례享禮를 베풀고, 제후諸侯의 경卿에게는 연례宴禮를 베푸는 것이 왕실王室의 예禮이다.”注+공公은 제후諸侯를 이른다. [부주]林: 공公에게는 체천體薦하는 향례享禮를 베풀어야 하고, 경卿에게는 절조折俎하는 연례宴禮를 베풀어야 한다.고 하였다.
무자武子가 돌아온 뒤에 예전禮典을 강구講求하여 진晉나라의 법도法度를 수명修明(整理해 밝게 만듦)하였다.注+전문傳文은 전례典禮가 폐지廢止된 지 오래임을 말한 것이다.
역주
역주1成周 洛陽……謂屋歇前 :
成周는 周나라의 下都이다. 이 榭를 따로 洛陽에 세우고서 武事를 講習하려면 그곳으로 갔다. 歇前은 壁이 없는 것이다. 〈疏〉
역주2郯伯姬來歸 :
郯國의 임금에게 시집갔던 魯君의 딸이 버림을 받고 魯나라로 돌아온 것이다.
역주3王享有體薦 宴有折俎 :
享과 宴은 때로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달리 쓰였다. 여기의 享은 形式만 갖출 뿐 먹지는 않는 것이고, 宴은 고기를 익혀 썰어서 賓主가 함께 먹는 것이다. 〈楊注〉를 參照할 것.
역주4燕[宴] :
저본에는 ‘燕’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를 참고하여 ‘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慶[廢] :
저본에는 ‘慶’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廢’로 바로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