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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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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四年春 宋公使華元來聘하다
[經]三月壬申 鄭伯堅卒注+無傳 二年 壬申 二月二十八日 하다
[經]杞伯來朝하다
[經]夏四月甲寅 臧孫許卒注+無傳하다
[經]公如晉하다
[經]葬鄭襄公注+無傳 하다
[經]秋 公至自晉하다
[經]冬 城鄆注+無傳 公欲叛晉 故城而爲備 하다
[經]鄭伯伐許하다
[傳]四年春 宋華元來聘하니 通嗣君也注+宋共公卽位
[傳]杞伯來朝하니 歸叔姬故也注+將出叔姬 先脩禮朝魯 言其故
[傳]夏 公如晉하니 晉侯見公 不敬하다
季文子曰 晉侯必不免注+言將不能壽終也 後十年陷厠而死 이리라
詩曰 敬之敬之어다
天惟顯思 命不易哉注+詩 頌 言天道顯明 受其命甚難 不可不敬以奉之라하니라
夫晉侯之命 在諸侯矣 可不敬乎注+敬諸侯 則得天命 [附注] 朱曰 言晉侯爲諸侯盟主 諸侯之從違 天命之去留係焉 不敬諸侯 是所以自絶于天也
[傳]秋 公至自晉하야 欲求成于楚而叛晉注+[附注] 朱曰 公怒晉侯不敬己 故欲與楚結好而叛晉 한대 季文子曰 不可니이다
晉雖無道 未可叛也니이다
國大臣睦하고 而邇於我注+邇 近也 하며 諸侯聽焉하니 未可以貳注+聽 服也 니이다
史佚之志有之注+周文王大史하니 曰 非我族類 其心必異라하니이다
楚雖大 非吾族也注+與魯異姓 其肯字我乎잇가 公乃止注+字 愛也하다
[傳]冬十一月 鄭公孫申帥師疆許田注+前年鄭伐許 侵其田 今正其界하니 許人敗諸展陂하다
鄭伯伐許하야 取鉏任泠敦之田注+展陂 亦許地하다
[傳]晉欒
書將中軍注+代郤克 하고 荀首佐之하고 士燮佐上軍하야 以救許伐鄭하야注+祭 鄭地 成臯縣東有氾水 하다
楚子反救鄭하니 鄭伯與許男訟焉注+於子反前 爭曲直 하다 皇戌攝鄭伯之辭注+代之對 하니 子反不能決也하야
君若辱在寡君注+[附注] 林曰 子反告鄭許二君曰 君若屈辱 自至楚國 이면 寡君與其二三臣共聽兩君之所欲하리니 注+欲使自屈在楚子前決之 [附注] 林曰 成 平也 二國之平 其可知也 어니와 不然이면 側不足以知二國之成注+側 子反名 爲明年許愬鄭於楚張本 이노라
[傳]晉趙嬰通于趙莊姬注+趙嬰 趙盾弟 莊姬 趙朔妻 朔 盾之子 [附注] 朱曰 莊姬 晉成公之女 하다


4년 봄에 송공宋公화원華元을 보내 와서 빙문聘問하였다.
3월 임신일壬申日정백鄭伯하였다.注+이 없다. 성공成公 2년에 나라 대부大夫에서 결맹結盟하였다. 임신일壬申日은 2월 28일이다.
기백杞伯이 와서 조현朝見하였다.
여름 4월 갑인일甲寅日장손허臧孫許하였다.注+이 없다.
성공成公나라에 갔다.
정양공鄭襄公장사葬事 지냈다.注+이 없다.
가을에 성공成公나라에서 돌아왔다.
겨울에 에 성을 쌓았다.注+이 없다. 성공成公나라를 배반背叛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을 쌓아 방비防備한 것이다.
정백鄭伯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4년 봄에 나라 화원華元이 와서 빙문聘問하였으니, 이는 사군嗣君즉위卽位통고通告하기 위함이었다.注+송공공宋共公즉위卽位한 것이다.
기백杞伯이 와서 조현朝見하였으니, 이는 숙희叔姬를 돌려보내는 일을 알리기 위함이었다.注+숙희叔姬축출逐出하려고 먼저 를 갖추어 나라에 조현朝見하여 그 이유理由설명說明한 것이다.
여름에 성공成公나라에 가니, 진후晉侯성공成公을 만나볼 때 공경恭敬하지 않았다.
계문자季文子가 말하기를, “진후晉侯는 반드시 화난禍難하지 못할 것이다.注+장차 수명壽命대로 살지 못한다는 말이다. 과연 10년 뒤에 측간厠間에 빠져 죽었다.
시경詩經》에 ‘공경恭敬하고 공경恭敬할지어다.
하늘은 밝으시니 천명天命을 받기가 쉽지 않다.’注+는 《시경詩經》 〈주송周頌경지편敬之篇〉이다. 천도天道현명顯明하기 때문에 천명天命을 받기가 매우 어려우니 공경恭敬해 받들지 않을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진후晉侯운명運命제후諸侯에게 달렸으니, 공경恭敬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注+제후諸侯공경恭敬하면 천명天命을 얻는다는 말이다. [부주]朱: 진후晉侯제후諸侯맹주盟主가 되었으니, 제후諸侯복종服從하느냐 배반背叛하느냐에 따라 천명天命이 떠나느냐 머무느냐가 결정決定되는데, 제후諸侯공경恭敬하지 않으니 이는 스스로 천명天命단절斷絶함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가을에 성공成公나라에서 돌아와 나라에 화친和親하고 나라를 배반背叛하고자 하자,注+[부주]朱: 성공成公진후晉侯가 자기를 공경恭敬하지 않은 데 하였기 때문에 나라와 우호友好를 맺고 나라를 배반背叛하고자 한 것이다.계문자季文子가 말하기를, “안 됩니다.
나라가 비록 무도無道하지만 배반背叛해서는 안 됩니다.
나라가 크고 신하들이 화목和睦하며, 우리나라와 거리가 가깝고注+이다. 제후諸侯들이 나라의 을 따르니, 두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注+복종服從함이다.
사일史佚기록記錄注+사일史佚주문왕周文王태사太史였다. ‘우리의 족류族類(同族)가 아니면 그 마음이 반드시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라가 비록 강대强大하지만 우리의 족류族類가 아니니,注+나라는 나라와 이성異姓이다. 어찌[其] 우리를 사랑하려 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성공成公은 즉시 그만두었다.注+는 사랑함이다.
겨울 11월에 나라 공손公孫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나라의 토지土地구획區劃하니,注+전년前年나라가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침탈侵奪한 땅을 금년에 그 경계境界획정劃定하려 한 것이다.허인許人전피展陂에서 정군鄭軍패배敗北시켰다.
정백鄭伯나라를 토벌討伐하여 서임鉏任영돈泠敦 땅을 하였다.注+전피展陂나라 땅이다.
나라 난서欒書중군中軍이 되고 순수荀首가 되고注+극극郤克의 뒤를 이어 중군장中軍將이 된 것이다.사섭士燮상군上軍가 되어 나라를 구원救援하기 위해 나라를 토벌討伐하여 하였다.注+나라 땅이다. 성고현成臯縣 동쪽에 범수氾水가 있다.
나라 자반子反이 군대를 거느리고 와서 나라를 구원救援하니, 정백鄭伯허남許男자반子反에게 송사訟事제기提起하였다.注+자반子反 앞에서 곡직曲直쟁송爭訟한 것이다.
나라 대부大夫황술皇戌정백鄭伯대신代身발언發言하니,注+정백鄭伯을 대신해 대답한 것이다. 자반子反판결判決할 수가 없어서 말하기를,
“두 임금께서 만약 우리 임금께 가셔서 문후問候한다면注+[부주]林: 자반子反나라와 나라 두 임금에게 하기를 ‘두 임금께서 만약 굴욕屈辱을 참고 스스로 나라로 간다면…….’이라고 한 것이다. 우리 임금과 몇몇 신하臣下가 함께 두 임금의 원하는 바를 청취聽取할 것이니 그 시비是非가 공정하게 판결判決될 것을 알 수 있지만,注+두 임금으로 하여금 스스로 몸을 굽혀 나라로 가서 초자楚子 앞에서 판결判決받게 한 것이다.[부주]林: 화평和平이니, 두 나라가 화평和平을 이룰 것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나로서는 두 나라의 시비를 판결判決할 수 없다.”注+자반子反의 이름이다. 명년明年나라가 나라에 나라를 고소告訴장본張本이다. 고 하였다.
나라 조영趙嬰조장희趙莊姬간통姦通하였다.注+조영趙嬰조돈趙盾의 아우이고, 장희莊姬조삭趙朔이고, 조삭趙朔조돈趙盾의 아들이다.[부주]朱: 장희莊姬진성공晉成公의 딸이다.


역주
역주1 大夫盟于蜀 : 鄭나라 大夫가 와서 蜀에서 成公과 結盟하였기 때문에 經에 鄭伯의 이름을 기록했다는 말이다.
역주2 汜[氾] : 저본에는 ‘汜’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氾’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汜[氾] : 저본에는 ‘汜’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氾’으로 바로잡았다. 이하 ‘汜’를 ‘氾’으로 바로잡은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역주4 成其可知也 : 成其可知也의 成은 質成의 成으로, 그 是非를 判斷해 두 쪽 모두 억울함이 없도록 判決하여 그 爭訟을 그치게 하는 것이다. 〈楊注〉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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