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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3)

춘추좌씨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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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五年春王二月 葬衛定公注+無傳하다
[經]三月乙巳 仲嬰齊卒注+無傳 襄仲子 公孫歸父弟 宣十八年 逐東門氏 旣而又使嬰齊紹其後 曰仲氏 하다
[經]癸丑 公會晉侯衛侯鄭伯曹伯宋世子成齊國佐邾人同盟于戚하다
晉侯執曹伯하야 歸于京師注+不稱人以執者 曹伯罪不及民 歸之京師 禮也 하다
[經]公至自會注+無傳 하다
[經]夏六月 宋公固卒注+四同盟 하다
[經]楚子伐鄭하다
[經]秋八月庚辰 葬宋共公注+하다
[經]宋華元出奔晉하다
[經]宋華元自晉于宋注+華元欲挾晉以自重 故以外納告 하다
[經]宋殺其大夫山注+不書氏 明背其族하다
[經]宋魚石出奔楚注+公子目夷之曾孫 하다
[經]冬十有一月 叔孫僑如會晉士燮齊高無咎宋華元衛孫林父鄭公子鰌邾人하야 會吳于鍾離注+吳夷未嘗與中國會 今始來通 晉帥諸侯大夫而會之 故殊會 明本非同好 鍾離 楚邑 淮南縣하다
[經]許遷于葉注+許畏鄭 南依楚 故以自遷爲文 葉 今南陽葉縣也 하다
[傳]十五年春 會于戚하니 討曹成公也注+討其殺大子而自立 事在十三年
執而歸諸京師어늘 注+惡不及民
凡君不道於其民하야 諸侯討而執之 則曰某人執某侯注+稱人 示衆所欲執 라하고 不然則否注+謂身犯不義者
諸侯將見子臧於王而立之하니 子臧辭曰 前志有之曰 注+聖人應天命 不拘常禮 하고 次守節注+謂賢者 하고 下失節注+愚者妄動 이라하니 爲君 非吾節也
雖不能聖이나 敢失守乎注+[附注] 林曰 敢爲愚者失其所守乎아하고 遂逃하야 奔宋하다
[傳]夏六月 宋共公卒注+爲下宋亂起 하다
[傳]楚將北師注+侵鄭衛 하니 子囊曰 新與晉盟而背之 無乃不可乎잇가 子反曰 敵利則進이니 何盟之有注+晉楚盟在十二年 子囊 莊王子公子貞 [附注] 朱曰 制敵之道 見利則進 何必顧盟 리오
申叔時老矣 在申注+老歸本邑 [附注] 林曰 叔時 楚大夫 이러니 聞之曰
子反必不免이리라
信以守禮하고 禮以庇身이니 信禮之亡이면 欲免得乎注+言不得也
楚子侵鄭하야 及暴隧注+[附注] 林曰 暴隧 鄭地 라가 遂侵衛하야 及首止注+[附注] 林曰 首止 衛地 하다
鄭子罕侵楚하야 取新石注+新石 楚邑 하다
欒武子欲報楚注+[附注] 林曰 欲報楚侵鄭之師 하니 韓獻子曰
無庸注+庸 用也 이라
使重其罪 民將叛之注+背盟數戰 罪也 리니 無民이면 孰戰注+爲明年晉敗楚於鄢陵傳 이리오
[傳]秋八月 葬宋共公하다
於是華元爲右師하고 爲左師하고 蕩澤爲司馬注+蕩澤 公孫壽之孫하고 華喜爲司徒注+華父督之玄孫하고 公孫師爲司城注+莊公孫하고 向爲人爲大司寇하고 鱗朱爲少司寇注+鱗矔孫하고 向帶爲大宰하고 魚府爲少宰하다
蕩澤弱公室하야 殺公子肥注+輕公室以爲弱 故殺其枝黨 肥 文公子 하니 華元曰 我爲右師하니 君臣之訓 師所司也注+[附注] 林曰 凡宋國敎訓君臣上下之道 此右師職守之所司主也어늘 今公室卑로되 而不能正注+不能討蕩澤 하니 吾罪大矣
不能하니 아하고 乃出奔晉하다
二華 戴族也注+華元 華喜 [附注] 林曰 宋戴公之子孫 司城 莊族也 六官者 皆桓族也注+魚石蕩澤向爲人鱗朱向帶魚府 皆出桓公
魚石將止華元하니 魚府曰 右師反이면 必討리니 是無桓氏也注+恐華元還討蕩澤 竝及六族
魚石曰 右師苟獲反이면 雖許之討라도 必不敢注+言畏桓族强 이리라
且多大功하야 國人與之하니 不反이면 懼桓氏之無祀於宋也注+華元大功 克合晉楚之成 劫子反以免宋圍 [附注] 林曰 若華元不得歸宋 恐國人怨桓氏逐華元 遂滅其族 是不得祭祀於宋國也
右師討라도 猶有戌在注+向戌 桓公曾孫 言其賢 華元必不討 하니 桓氏雖亡이나 注+偏 不盡 이리라 魚石自止華元于河上하니 請討어늘 許之注+[附注] 林曰 華元請討蕩澤 魚石許其討하다
乃反하야 使華喜公孫師帥國人攻蕩氏하야 殺子山注+喜師非桓族 故使攻之 [附注] 林曰 子山 卽蕩澤 하다
書曰宋殺其大夫山 言背其族也注+蕩氏 宋公族 還害公室 故去族以示其罪
魚石向爲人朱向帶魚府出舍於睢上注+睢 水名 五大夫畏同族罪及 將出奔 이어늘 華元使止之한대 不可注+[附注] 林曰 使人喩止五大夫無出奔 五大夫不從 어늘
冬十月 華元自止之로되 不可하니 乃反注+五子不止 華元還 하다
魚府曰 今不從注+[附注] 林曰 今不從華元而歸 이면 不得入矣注+不得復入宋 리라
右師視速而言疾하니 有異志焉이라
若不我納이면 今將馳矣注+[附注] 朱曰 若華元不欲納我 今則馳驅而去矣리라하고 登丘而望之則馳注+[附注] 林曰 魚府乃登高丘而望華元之歸 果馳驅而去 어늘
騁而從之注+五子亦馳逐之하니 則決睢澨注+澨 水涯 決 壞也 하고 閉門登陴矣注+[附注] 林曰 閉宋城門 登陴守禦矣 러라
左師二司寇二宰遂出奔楚注+四大夫不書 獨魚石告 하다
華元使向戌爲左師하고 老佐爲司馬하고 樂裔爲司寇하야 以靖國人注+老佐 戴公五世孫 하다
[傳]晉三郤害伯宗注+[附注] 林曰 三郤 郤錡郤至郤犫也 疾害伯宗之賢 하야 譖而殺之하고 及欒弗忌注+欒弗忌 晉賢大夫 하니 伯州犂奔楚注+伯宗子 하다
韓獻子曰 郤氏其不免乎ᄂ저
善人 天地之注+[附注] 林曰 夫人之有善德行者 天地之綱紀也 어늘 而驟絶之하니 不亡何待注+旣殺伯宗 又及弗忌 故曰驟也 爲十七年晉殺三郤傳 리오
伯宗每朝 其妻必戒之曰
注+[附注] 朱曰 言主人非得罪於盜者 而盜憎之 治民者未必得罪於民 而民惡之 이라
子好直言하니 必及於難注+傳見雖婦人之言 不可廢 이리라
[傳]十一月 會吳于鍾離하니 始通吳也注+始與中國接
[傳]許靈公畏偪于鄭하야 請遷于楚하니 辛丑 楚公子申遷許于葉하다


15년 봄 주왕周王이월二月위정공衛定公장사葬事 지냈다.注+이 없다.
3월 을사일乙巳日중영제仲嬰齊하였다.注+이 없다. 중영제仲嬰齊양중襄仲의 아들이고 공손公孫귀보歸父의 아우이다. 선공宣公 18년에 동문씨東門氏축출逐出하고서, 얼마 뒤에 다시 영제嬰齊로 하여금 그 뒤를 잇게 하고 ‘중씨仲氏’라 하였다.
계축일癸丑日성공成公진후晉侯, 위후衛侯, 정백鄭伯, 조백曹伯, 나라 세자世子, 나라 국좌國佐, 주인邾人회합會合하여 에서 동맹同盟하였다.
진후晉侯조백曹伯을 잡아 경사京師로 보냈다.注+조백曹伯을 잡은 진후晉侯를 ‘’으로 하지 않은 것은 조백曹伯가 백성에게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백曹伯경사京師로 보낸 것은 이다.
성공成公회합會合에서 돌아왔다.注+이 없다.
여름 6월에 송공宋公하였다.注+네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초자楚子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가을 8월 경진일庚辰日송공공宋共公장사葬事 지냈다.注+죽은 지 석 달 만에 장사葬事 지냈으니 빨랐다.
나라 화원華元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나라 화원華元나라에서 나라로 돌아갔다.注+화원華元나라에 의지해 자신의 위치位置중요重要하게 만들고자 하였기 때문에 외국外國이 들여보낸 것[外納]으로 나라에 부고赴告한 것이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을 죽였다.注+기록記錄하지 않아, 그가 종족宗族배반背反한 것을 밝혔다.
나라 어석魚石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어석魚石공자公子목이目夷증손曾孫이다.
겨울 11월에 숙손교여叔孫僑如나라 사섭士燮, 나라 고무구高無咎, 나라 화원華元, 나라 손임보孫林父, 나라 공자公子, 주인邾人회합會合하여 종리鍾離에서 오인吳人회견會見하였다.注+나라는 이적夷狄이어서 중국中國회합會合한 적이 없었는데, 이제 비로소 와서 교통交通하고자 하기 때문에 나라가 제후諸侯대부大夫를 거느리고 회견會見한 것이다. 그러므로 를 달리 기록하여 본래 동호同好가 아님을 밝혔다. 종리鍾離나라 으로 지금의 회남현淮南縣이다.
나라가 나라를 으로 옮겼다.注+나라는 나라를 두려워하여 남쪽의 나라에 의지하였다. 그러므로 스스로 옮긴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 은 지금의 남양南陽섭현葉縣이다.
15년 봄에 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이는 조성공曹成公토벌討伐하기 위함이었다.注+조백曹伯태자太子를 죽이고 스스로 임금이 된 토벌討伐한 것이다. 태자太子를 죽인 일은 성공成公 13년에 있었다.
조성공曹成公을 잡아서 경사京師로 보냈는데, 에 “진후晉侯조백曹伯을 잡았다.”고 기록한 것은 조백曹伯죄악罪惡이 그 백성에게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注+조백曹伯죄악罪惡이 백성에게는 미치지 않은 것이다.
범례凡例에 의하면 임금이 그 백성에게 부도不道하여 제후諸侯토벌討伐해 그를 잡은 경우에는 “모인某人모후某侯를 잡았다.”注+’으로 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잡고 싶어 한 자라는 것을 암시暗示하는 것이다. 고 기록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렇게 기록하지 않는다.注+자신이 불의不義한 자를 이른다.
제후諸侯자장子臧주왕周王에게 알현謁見시키고서 그를 나라의 임금으로 세우려 하니, 자장子臧이 사양하기를, “옛 기록에 ‘성인聖人은 모든 행위行爲분의分義[節]에 맞고,注+성인聖人천명天命순응順應하고 상례常禮구속拘束되지 않는다.현인賢人[次]은 분의分義를 지키고,注+현자賢者를 이른다. 하우下愚분의分義를 잃는다.’注+우자愚者는 함부로 행동한다. 고 하였으니, 임금이 되는 것은 나의 분의分義가 아니다.
비록 성인聖人에는 미칠 수 없다 하더라도 감히 지킬 바를 잃겠는가?”注+[부주]林: 감히 우자愚者가 되어 지킬 바를 상실喪失하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도망하여 나라로 달아났다.
여름 6월에 송공공宋共公하였다.注+하문下文나라에 이 일어난 배경背景이다.
나라가 으로 출병出兵하여 나라와 나라를 치려 하니,注+나라와 나라를 침공侵攻하려 한 것이다.자낭子囊이 말하기를, “이제 겨우 나라와 결맹結盟하였는데, 그 맹약盟約을 저버린다면 불가不可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자반子反이 말하기를, “적국敵國정황情況이 우리에게 유리有利하면 진격進擊하는 것이지, 맹약盟約을 생각할 것이 뭐 있는가?”注+나라와 나라가 결맹結盟한 것은 성공成公 12년에 있었다. 자낭子囊초장왕楚莊王의 아들 공자公子이다. [부주]朱: 제압制壓하는 방법方法유리有利한 기회를 보면 진격進擊하는 것이니, 맹약盟約을 돌아볼 필요가 뭐 있느냐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때 신숙시申叔時고로告老(致仕)하고서 신읍申邑에 있었는데,注+고로告老하고서 자기의 본읍本邑으로 돌아간 것이다. [부주]林: 신숙시申叔時나라 대부大夫이다. 이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반子反은 반드시 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신의信義로써 를 지키고 로써 몸을 보호保護하는 것이니, 신의信義가 없다면 를 면하고자 한들 될 수 있겠는가?”注+될 수 없다는 말이다.
초자楚子나라를 침공侵攻하여 폭수暴隧까지 쳐들어갔다가注+[부주]林: 폭수暴隧나라 땅이다. 드디어 나라를 침공侵攻하여 수지首止까지 쳐들어갔다.注+[부주]林: 수지首止나라 땅이다.
나라 자한子罕나라를 침공侵攻하여 신석新石하였다.注+신석新石나라 이다.
난무자欒武子나라에 보복報復하고자 하니,注+[부주]林: 나라가 나라를 침공侵攻한 것을 보복報復하고자 한 것이다.한헌자韓獻子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럴 필요必要 없다.注+이다.
자반子反으로 하여금 스스로 자기의 를 더욱 무겁게 만들도록 내버려 두면 백성들은 장차 그를 배반背叛할 것이니,注+맹약盟約을 저버리고 자주 전쟁戰爭하는 것이 이다. 백성이 없다면 누가 전쟁戰爭을 하겠는가?”注+명년明年진군晉軍언릉鄢陵에서 초군楚軍패배敗北시킨 배경背景이다.
가을 8월에 송공공宋共公장사葬事 지냈다.
이때 화원華元우사右師, 어석魚石좌사左師, 탕택蕩澤사마司馬,注+탕택蕩澤공손公孫손자孫子이다. 화희華喜사도司徒,注+화희華喜화부독華父督현손玄孫이다.공손公孫사성司城,注+공손公孫송장공宋莊公손자孫子이다. 상위인向爲人대사구大司寇, 인주鱗朱소사구少司寇,注+인주鱗朱인관鱗矔손자孫子이다. 상대向帶태재太宰, 어부魚府소재少宰였다.
탕택蕩澤공실公室약화弱化시키기 위해 공자公子를 죽이니,注+공실公室을 깔보아 위세威勢약화弱化시키고자 하였기 때문에 공실公室지당枝黨을 죽인 것이다. 송문공宋文公의 아들이다. 화원華元이 말하기를, “내가 우사右師가 되었으니, 임금과 신하를 교훈敎訓하는 일은 우사右師소관所管인데,注+[부주]林: 나라 군신君臣에게 상하上下도리道理교훈敎訓하는 것은 우사右師가 맡아 주관主管하는 직무職務라는 말이다. 지금 공실公室위세威勢가 낮아지는데도 바로잡지 못하니,注+탕택蕩澤토벌討伐할 수 없다는 말이다. 나의 가 크다.
관리官吏로서 직책職責도 다하지 못하면서 감히 총위寵位(임금의 총애寵愛를 받는 존귀尊貴한 자리)를 [賴]하겠는가?”라고 하고,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화씨華氏대공戴公후손後孫이고,注+화씨華氏화원華元화희華喜이다. [부주]林: 송대공宋戴公자손子孫이다.사성司城장공莊公후손後孫이고, 여섯 관인官人은 모두 환공桓公후손後孫이다.注+어석魚石, 탕택蕩澤, 상위인向爲人, 인주鱗朱, 상대向帶, 어부魚府는 모두 송환공宋桓公자손子孫이다.
어석魚石화원華元출분出奔만류挽留하려 하니, 어부魚府가 말하기를, “우사右師가 돌아오면 반드시 탕택蕩澤토벌討伐할 것이니, 우리 환씨桓氏일족一族이 없어질 것이다.”注+화원華元이 돌아와서 탕택蕩澤토벌討伐하면 그 육족六族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어석魚石이 말하기를, “만약 우사右師가 돌아온다면 비록 그에게 탕택蕩澤을 치도록 허락許諾하여도 감히 토벌討伐하지 못할 것이다.注+환족桓族함을 두려워해 토벌討伐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또 그는 대공大功을 많이 세워서 국인國人이 그를 친애親愛하니, 그를 돌아오게 하지 않으면 우리 환씨桓氏나라에서 조선祖先제사祭祀를 지낼 수 없게 될까 두렵다.注+화원華元대공大功나라와 나라의 우호友好성립成立시킨 일(成公 12년에)과, 자반子反위협威脅하여 나라의 포위包圍를 풀게 한 일(宣公 15년에)을 이른다. [부주]林: 만약 화원華元나라로 돌아오게 하지 않는다면 국인國人환씨桓氏화원華元축출逐出한 것을 원망怨望하여 드디어 환족桓族격멸擊滅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나라에서 조선祖先제사祭祀를 지낼 수 없게 될까 두렵다는 말이다.
우사右師탕택蕩澤토벌討伐하더라도 상술向戌은 그대로 둘 것이니,注+상술向戌송환공宋桓公증손曾孫이다. 상술向戌현자賢者이므로 반드시 화원華元이 토벌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비록 우리 환씨桓氏멸망滅亡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한 계파系派는 남을 것이다.”注+은 다 죽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 하고서, 어석魚石이 스스로 황하黃河 가로 가서 화원華元출분出奔만류挽留하니, 화원華元탕택蕩澤토벌討伐하는 일을 허락許諾하라고 요청要請하였다.
어석魚石이 이를 허락許諾하니,注+[부주]林: 화원華元탕택蕩澤토벌討伐하겠다고 요청要請하니 어석魚石이 그 토벌討伐허락許諾한 것이다.화원華元은 돌아와서 화희華喜공손公孫에게 국인國人을 거느리고 가서 탕씨蕩氏공격攻擊하여 자산子山을 죽이게 하였다.注+화희華喜공손公孫환족桓族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탕택蕩澤공격攻擊하게 한 것이다. [부주]林: 자산子山이 바로 탕택蕩澤이다.
에 ‘나라가 그 대부大夫을 죽였다.’고 기록한 것은 탕택蕩澤이 그 종족宗族배반背叛한 것을 말한 것이다.注+탕씨蕩氏나라의 공족公族으로 도리어 공실公室쳤기 때문에 그 을 기록하지 않아 그 명시明示한 것이다.
어석魚石, 상위인向爲人, 인주鱗朱, 상대向帶, 어부魚府수수睢水 가로 나가 머무니,注+수명水名이다. 다섯 대부大夫동족同族에게 가 미칠 것이 두려워서 출분出奔하려 한 것이다. 화원華元이 사람을 보내어 만류挽留하였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注+[부주]林: 사람을 보내어 다섯 대부大夫에게 출분出奔하지 말도록 타일렀으나, 다섯 대부大夫가 따르지 않은 것이다.
겨울 10월에 화원華元이 직접 가서 만류挽留하였으나 역시 듣지 않자,注+다섯 사람이 멈추지 않자, 화원華元이 돌아간 것이다. 화원華元은 돌아갔다.
어부魚府가 말하기를, “이번에 화원華元만류挽留를 따르지 않으면注+[부주]林: ‘지금 화원華元을 따라 돌아가지 않는다면’이라는 말이다. 앞으로 다시는 국도國都로 들어갈 수 없을 것이다.注+다시는 나라로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다.
우사右師의 눈동자가 빨리 움직이고 말이 빠르니, 다른 뜻이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를 진심眞心으로 받아들이려 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쯤 아마 빨리 달려가고 있을 것이다.”注+[부주]朱: 화원華元이 우리를 받아들이고자 한 것이 아니라면 지금쯤 달려서 돌아갈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고서, 언덕에 올라 바라보니 과연 빨리 달려가고 있었다.注+[부주]林: 어부魚府가 높은 언덕에 올라 화원華元이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니, 과연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는 말이다.
다섯 사람도 급히 달려 화원華元을 따라갔는데,注+다섯 사람도 급히 달려 화원華元을 따라간 것이다. 나라 국도國都도착到着해 보니, 화원華元은 이미 수수睢水제방堤防을 터서 길을 막고,注+는 물가이다. 제방堤防을 터놓은 것이다. 성문城門을 닫고 성가퀴로 올라가 방어防禦하고 있었다.注+[부주]林: 나라의 성문城門을 닫고 성가퀴로 올라가 수어守禦하였다는 말이다.
좌사左師와 두 사구司寇와 두 는 드디어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대부大夫출분出奔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가 어석魚石출분出奔만을 나라에 부고赴告하였기 때문이다.
화원華元상술向戌좌사左師로, 노좌老佐사마司馬로, 악예樂裔사구司寇로 삼아 국인國人안정安定시켰다.注+노좌老佐송대공宋戴公오세손五世孫이다.
나라의 세 극씨郤氏백종伯宗모해謀害(남을 해치기를 꾀함)하여注+[부주]林: 삼극三郤극기郤錡, 극지郤至, 극주郤犫이다. 백종伯宗현능賢能함을 질투嫉妬모해謀害한 것이다. 참소讒訴해 죽이고서 난불기欒弗忌까지 연루連累[及]시켜 죽이니,注+난불기欒弗忌나라의 현대부賢大夫이다. 백주리伯州犂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백주리伯州犂백종伯宗의 아들이다.
한헌자韓獻子가 말하기를, “극씨郤氏는 아마도 하지 못할 것이다.
선인善人천지天地기강紀綱인데,注+[부주]林: 착한 덕행德行이 있는 사람은 천지天地기강紀綱이라는 말이다. 자주 선인善人을 죽였으니[絶], 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는가?”注+백종伯宗을 죽인 뒤에 또 불기弗忌를 죽였기 때문에 ‘자주[驟]’라고 한 것이다. 성공成公 17년에 나라가 삼극三郤을 죽인 배경背景이다. 라고 하였다.
당초에 백종伯宗조정朝廷으로 나아갈 때마다 그 아내는 반드시 다음과 같이 경계警戒하였다.
도적盜賊주인主人을 미워하고 백성은 윗사람을 싫어합니다.注+[부주]朱: 주인主人도적盜賊에게 를 짓지 않았으되 도적盜賊주인主人을 미워하고, 치민자治民者가 백성에게 반드시 를 짓지는 않았으되 백성은 치민자治民者를 미워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당신은 직언直言하기를 좋아하니 반드시 화난禍難에 미칠 것입니다.”注+전문傳文은 비록 부인婦人의 말이지만 폐기廢棄할 수 없음을 드러낸 것이다.
11월에 종리鍾離에서 나라와 회합會合하였으니, 비로소 나라와 교통交通한 것이다.注+비로소 중국中國접촉接觸한 것이다.
허령공許靈公나라의 핍박逼迫이 두려워 나라를 나라로 옮기기를 하니, 신축일辛丑日나라 공자公子나라를 으로 옮겨 주었다.


역주
역주1 三月而葬 速 : 제후는 死後 다섯 달 만에 葬事 지내는 것이 禮이다.
역주2 : 成公 18년 傳例에 “그 나라를 떠났을 때 國人이 그를 맞이해 임금으로 세웠으면 ‘入’이라 하고, 그를 원래의 자리로 恢復시켰으면 ‘復歸’라 하고, 諸侯가 그를 本國으로 들여보냈으면 ‘歸’라 하고, 武力으로 쳐들어왔으면 ‘復入’이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3 書曰晉侯執曹伯 不及其民也 : 曹成公의 罪는 曹宣公의 太子를 죽이고 스스로 임금이 된 것에 불과하고, 그 害惡이 백성에게는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잡은 사람을 ‘晉侯’로 기록하고 ‘晉人’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楊注〉
역주4 聖達節 : 節은 分(분수)이다. 〈疏〉
역주5 魚石 : 公子目夷의 曾孫이다. 〈楊注〉
역주6 治官 : 맡은 職務에 盡力하는 것이다.
역주7 敢賴寵乎 : 賴에는 利의 訓이 있고 利에는 貪의 訓이 있으므로 貪으로 飜譯하였다.
역주8 必偏 : 偏은 一部의 宗族은 살아남을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9 麟[鱗] : 저본에는 ‘麟’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鱗’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 紀(紀綱)는 治理의 뜻이다. 天地를 다스려 崩壞에 이르지 않은 것은 오로지 善人이 持撑하였기 때문이다. 天地가 開闢한 以來로 만약 善人은 없고 小人과 庸人만이 天地 사이에 가득하였다면 鳥獸처럼 무리 지어 내달리고 草木처럼 무성하였을 뿐이니 世界가 어찌 形成될 수 있었겠는가? 《左氏會箋》
역주11 盜憎主人 民惡其上 : 도둑이 主人을 미워하는 것은 主人이 도둑을 防禦해 財物을 훔칠 수 없게 하기 때문이고, 백성이 그 윗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자기들을 다스려 放縱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오직 자기를 不便하게 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다시 그 일의 善惡은 따지지 않으니, 奸人에게 直言은 도둑에게 主人, 백성에게 윗사람과 같다. 그러므로 ‘반드시 禍難에 미친다.’고 한 것이다. 《左氏會箋》

춘추좌씨전(3)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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