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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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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十有三年春 公至自晉하다
[經]夏 取邿注+邿 小國也 任城亢父縣有邿亭 傳例曰 書取 言易也 하다
[經]秋九月庚辰 楚子審卒注+共王也 成二年 大夫盟于蜀 하다
[經]冬 城防注+[附注] 林曰 防 臧氏邑 하다
[傳]十三年春 公至自晉하다
孟獻子書勞于廟하니 禮也注+書勳勞於策也 桓二年傳曰 公至自唐 告於廟也 凡公行 告於宗廟 策勳焉 禮也 桓十六年傳又曰 公至自伐鄭 以飮至之禮也 然則還告廟及飮至及書勞三事 偏行一禮 則亦書至 悉闕乃不書至 傳因獻子之事 以發明凡例 釋例詳之
[傳]夏 邿亂하야 分爲三注+國分爲三部 志力各異 이어늘 師救邿라가 遂取之注+魯師也 經不稱師 不滿二千五百人 傳通言之 하다
凡書取 言易也注+不用師徒 及用師徒而不勞 雖國亦曰取 用大師焉曰滅注+敵人距戰 斬獲俘馘 用力難重 雖邑亦曰滅 이오 弗地曰入注+謂勝其國邑 不有其地 이라
[傳]하다
注+爲將命軍帥也 必蒐而命之 所以與衆共 하야 使士匄將中軍하니 辭曰 伯游長注+伯游 荀偃 이니이다
昔臣習於知伯이라 是以佐之 非能賢也注+七年 韓厥老 知罃代將中軍 士匄佐之 匄今將讓 故謂爾時之擧 不以己賢 事見九年 請從伯游하노이다
荀偃將中軍注+代荀罃 하고 士匄佐之注+位如故 하다
使韓起將上軍하니 辭以趙武하다
又使欒黶注+以武位卑 故不聽 更命黶 하니 辭曰 臣不如韓起니이다
韓起願上趙武하니 君其聽之하소서
使趙武將上軍注+ 代荀偃 하고 韓起佐之注+位如故 하며 欒黶將下軍하고 魏絳佐之注+黶亦如故 絳自新軍佐超一等 代士魴 하다
新軍無帥注+將佐皆遷 하니 晉侯難其人하여 率其卒乘官屬하야 以從於下軍하니 禮也注+得愼擧之禮
晉國之民 是以大和하고 諸侯遂睦하다
君子曰
禮之主也
其下皆讓하고 欒黶爲汰로되 弗敢違也注+[附注] 朱曰 雖以欒黶之汰侈不遜 亦讓韓起將上軍也
晉國以平하야 數世賴之하니 刑善也夫注+刑 法也 [附注] 林曰 言士匄以遜讓 爲群臣法至善也 ᄂ저
書曰 하야 其寧惟永이라하니 其是之謂乎注+周書呂刑也 一人 天子也 寧 安也 永 長也 義取上有好善之慶 則下賴其福 ᄂ저
周之興也 其詩曰 儀刑文王이면 萬邦作孚注+詩大雅 言文王善用法 故能爲萬國所信 孚 信也 라하니 言刑善也 及其衰也하야 其詩曰 大夫不均하야 注+詩小雅 幽王役使不均 故從事者怨恨 稱己之勞 以爲獨賢 無讓心 이라하니 言不讓也
世之治也 君子尙能而讓其下注+能者在下位 則貴尙而讓之 하고 小人農力以事其上이라
是以上下有禮하야 而讒慝黜遠하니 由不爭也
謂之懿德이라
及其亂也하얀 君子稱其功以加小人注+加 陵也 君子 在位者 하고 小人伐其技以馮君子注+馮 亦陵也 自稱其能爲伐
是以上下無禮하야 亂虐竝生하니 由爭善也注+爭自善也
謂之昏德이니
國家之敝 恒必由之注+傳言晉之所以興 니라
[傳]楚子疾 告大夫曰 으로 少主社稷호라
生十年而喪하야 未及習師保之敎訓而注+多福 謂爲君 이라
是以不德하야 而亡師于鄢注+鄢在成十六年 하야 以辱社稷하고 爲大夫憂 其弘多矣注+弘 大也 [附注] 朱曰 爲辱爲憂 旣大且多
若以大夫之靈으로 하야 以沒於地 注+窀 厚也 穸 夜也 厚夜 猶長夜 春秋 謂祭祀 長夜 謂葬埋 所以從先君注+從先君代爲禰廟 請爲靈若厲注+欲受惡諡 以歸先君也 亂而不損曰靈 戮殺不辜曰厲 하노라
大夫擇焉하라 莫對하다
及五命 乃許하다
秋楚共王卒하다
子囊謀諡하니 大夫曰 君有命矣
子囊曰 君命以共하니 若之何毁之注+[附注] 朱曰 君之所命 其辭甚恭 若之何以惡諡而毁辱之 리오
赫赫楚國 而君臨之하야 撫有蠻夷하고 奄征南海하야 以屬諸夏로되 而知其過하니 可不謂共乎
請諡之共하노라 大夫從之注+傳言子囊之善 하다
[傳]吳侵楚어늘 養由基奔命注+[附注] 林曰 奔命以禦吳師 하니 子庚以師繼之注+子庚 楚司馬 하다
養叔曰 吳乘我喪하니 謂我不能師也注+養叔 養由基也 라하야 必易我而不戒注+戒 備也 리라
子爲三覆以待我注+覆 伏兵 하라
我請誘之하리라 子庚從之하다
戰于庸浦注+庸浦 楚地 하야 大敗吳師하고 獲公子黨하다
君子以吳爲不弔注+不用天道相弔恤
詩曰 이라 亂靡有定注+言不爲昊天所恤 則致罪也 爲明年會向傳 이라하니라
[傳]冬 城防하다
書事 時也注+土功雖有常節 通以事間爲時
於是將早城이어늘 臧武仲請俟畢農事하니 禮也
[傳]鄭良霄太宰石㚟猶在楚注+十一年 楚人執之至今 하다
石㚟言於子囊曰 注+先征五年而卜吉凶也 征 謂巡守征行 하고 而歲習其祥하야 祥習則行注+五年五卜 皆同吉 乃巡守 [附注] 林曰 習 同也 祥 吉也 하고 不習則增修德而改卜注+不習 謂卜不吉 이라
注+不能修德與晉競
注+卿 謂良霄 [附注] 朱曰 貴者多則相偪 今執鄭一卿 乃所以除其國內相偪之患 하야 使睦而疾楚하야 以固於晉이니 焉用之注+位不偪則大臣睦 怨疾楚則事晉固
使歸而廢其使注+行而見執於楚 鄭又遂堅事晉 是鄭廢本見使之意 [附注] 朱曰 言往年鄭遣良霄使楚 其意 正欲楚執良霄而鄭得堅事晉國 今遣良霄歸鄭 則鄭不得堅事晉 乃所以廢其遣使之本意也 하고 怨其君以疾其大夫而相牽引也注+[附注] 朱曰 良霄久留於楚 今若歸之 則必怨恨其君 而憎疾其大夫 使相牽引 令鄭國大臣不和 則事晉之心不固 不猶愈乎注+[附注] 林曰 豈不勝於久執之乎 楚人歸之하다


13년 봄에 양공襄公나라에서 돌아왔다.
여름에 시국邿國하였다.注+소국小國이다. 임성任城항부현亢父縣시정邿亭이 있다. 전례傳例(隱公 4년 )에 “라고 기록한 것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얻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다.
가을 9월 경진일庚辰日초자楚子하였다.注+초자楚子공왕共王이다. 성공成公 2년에 나라 대부大夫성공成公에서 회맹會盟하였다.
겨울에 방읍防邑을 쌓았다.注+[부주]林: 장씨臧氏이다.
13년 봄에 양공襄公나라에서 돌아왔다.
맹헌자孟獻子종묘宗廟에서 공로功勞기록記錄하였으니 에 맞았다.注+훈로勳勞에 기록한 것이다. 환공桓公 2년 에 “환공桓公에서 돌아왔으니[至], 종묘宗廟한 것이다. 출행出行할 때엔 종묘宗廟출행出行하고, 돌아와서는 음지飮至하고 술잔[爵]을 내려놓고서 훈로勳勞에 기록하는 것이 이다.”고 하였고, 환공桓公 16년 에 “나라 토벌討伐에서 돌아와 음지飮至거행擧行하였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돌아와서 고묘告廟음지飮至서로書勞 등 세 가지 일 중에 한 가지 거행擧行한 경우에는 ‘’라고 기록하고, 모두 거행하지 않은 경우에는 ‘’라고 기록하지 않는다. 이 헌자獻子의 일을 인해 범례凡例를 밝힌 것이다. 《춘추석례春秋釋例》에 자세히 보인다.
여름에 시국邿國에 난리가 일어나 나라가 셋으로 쪼개지자,注+나라가 셋으로 갈라진 것은 뜻과 힘이 각각 달랐기 때문이다.노군魯軍시국邿國구원救援하러 갔다가 드디어 시국邿國하였다.注+노사魯師(魯軍)이다. 에 ‘’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2천 5백 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은 〈에 ‘’를 말하지 않은 를〉 통틀어 말한 것이다.
범례凡例에 의하면 에 ‘’로 기록한 것은 힘들이지 않고 쉽게 얻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注+군대를 사용하지 않았거나, 군대를 사용하였으되 힘들이지 않고 〈함락陷落한 경우에는〉 비록 그것이 나라라 하더라도 ‘’로 기록한다. 대군大軍을 사용해 승리勝利하였으면 ‘’이라 하고,注+적인敵人항전抗戰으로 인해 의 목을 베고 귀를 자르느라 많은 힘을 들였으면 비록 그곳이 이라 하더라도 ‘’로 기록한다. 〈나라나 함락陷落하고도 그〉 땅을 점유占有하지 않으면 ‘’이라 한다.注+은 그 나라나 함락陷落(勝利)하고도 그 땅을 소유所有하지 않는 것을 이른다.
순앵荀罃사방士魴하였다.
진후晉侯면상綿上에서 군대를 검열檢閱하고서注+장차 장수將帥임명任命하려 할 때에 반드시 군사훈련軍事訓鍊을 하고서 임명任命하니, 이는 군중軍衆과 함께하기 위함이다. 사개士匄에게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니, 사양하기를 “백유伯游(荀偃)가 보다 연장자年長者입니다.注+백유伯游순언荀偃이다.
예전에 지백知伯친근親近[習]하였기 때문에 그의 (副帥)가 되었던 것이고 현능賢能해서가 아니었으니,注+양공襄公 7년에 한궐韓厥치사致仕하고 지앵知罃(荀罃)이 그 뒤를 이어 중군中軍을 거느렸을 적에 사개士匄가 그를 보좌輔佐하였다. 사개士匄가 지금 사양하려 하였기 때문에, 그때 천거薦擧된 것이 내가 현능賢能해서가 아니었다고 말한 것이다. 이 일은 양공襄公 9년 에 보인다. 백유伯游를 따르기를 원합니다.”고 하였다.
순언荀偃에게 중군中軍을 거느리게 하고注+순앵荀罃의 뒤를 이어 중군中軍을 거느린 것이다. 사개士匄에게 그를 보좌輔佐하게 하였다.注+지위地位가 전과 같다.
한기韓起에게 상군上軍을 거느리게 하니 조무趙武에게 사양하였다.
난염欒黶에게 거느리게 하니注+조무趙武지위地位가 낮기 때문에 〈진후晉侯한기韓起의 말을〉 듣지 않고서 다시 난염欒黶임명任命한 것이다. 사양하기를 “한기韓起만 못합니다.
한기韓起조무趙武상장上將으로 삼기를 원하니 께서는 그의 원을 들어주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조무趙武상군수上軍帥에,注+조무趙武신군수新軍帥에서 4등급을 뛰어올라 순언荀偃의 뒤를 이어 상군수上軍帥가 되었다. 한기韓起부수副帥에,注+지위地位가 전과 같다. 난염欒黶하군수下軍帥에, 위강魏絳부수副帥임명任命하였다.注+난염欒黶지위地位는 전과 같다. 위강魏絳신군新軍에서 한 을 뛰어 사방士魴의 뒤를 이어 하군下軍가 되었다.
신군新軍을 거느릴 장수將帥가 없자注+신군新軍를 모두 다른 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진후晉侯적임자適任者[其人]를 찾기 어려워 그 신군新軍십리什吏로 하여금 졸승卒乘관속官屬을 거느리고서 하군下軍을 따르게 하였으니 에 맞았다.注+신중愼重거용擧用하는 에 맞은 것이다.
이 때문에 나라 백성들이 크게 화합和合하였고 제후諸侯들도 드디어 나라와 화목和睦하였다.
군자君子는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사양은 의 근본이다.
범선자范宣子(士匄)가 사양하자 아랫사람이 모두 사양하였고, 교만불손驕慢不遜[汰]한 난염欒黶도 감히 어기지 못하였다.注+[부주]朱: 교만불손驕慢不遜난염欒黶조차도 한기韓起에게 상군上軍을 거느리도록 사양하였다는 말이다.
나라가 이로 인해 화평和平하여 수대數代 동안 이를 힘입었으니, 이는 을 본받은 결과結果이다.注+은 본받는 것이다. [부주]林: 사개士匄가 겸손과 사양으로 군신群臣으로 하여금 지극한 을 본받게 하였다는 말이다.
한 사람이 을 본받으면 백성이 안락安樂하고 화목和睦하니, 을 본받는 일에 힘쓰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서경書經》에 ‘한 사람이 을 행하면 백성이 이를 힘입어 나라의 안녕安寧영원永遠하리라.’고 하였으니, 이는 아마도 나라와 같은 경우를 두고 말한 것인 듯하다.注+는 《주서周書》 〈여형편呂刑篇〉이다. 일인一人천자天子이다. 이고, 이다. 윗사람에게 을 좋아하는 경사慶事가 있으면 아랫사람이 그 을 힘입는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나라가 흥성興盛할 때에는 그 에 ‘문왕文王을 본받으면 만방萬邦신복信服한다.’注+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문왕편文王篇〉이다. 문왕文王을 잘 썼기 때문에 만방萬邦신뢰信賴를 받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다. 고 하였으니, 이는 을 본받은 것을 말한 것이고, 나라가 쇠퇴衰頹할 때에 미쳐서는 그 에 ‘대부大夫공평公平하지 못하여 나에게만 유독 괴로운 일을 시키네.’注+는 《시경詩經》 〈소아小雅북산편北山篇〉이다. 유왕幽王역사役使공평公平하지 못한 것을 풍자諷刺한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役使종사從事하는 자가 원한怨恨하여 자기의 공로功勞를 자랑하며 ‘내가 유독 현능賢能하기 때문이다.’고 하고 사양辭讓하는 마음이 없었다. 라고 하였으니, 이는 사양하지 않는 것을 말한 것이다.
세상이 잘 다스려진 때에는 군자君子능력能力을 높여 아랫사람에게 양보讓步하고,注+능력能力이 있는 자가 하위下位에 있으면 윗자리에 있는 자가 그 능력能力을 귀하게 여겨 그 자리를 그 사람에게 사양한다는 말이다. 소인小人노력努力[農力]하여 윗사람을 섬겼다.
그러므로 상하上下가 있어 사악邪惡[讒慝]한 무리가 멀리 축출逐出되었으니, 이는 서로 다투지 않은 데서 연유한 것이다.
이를 일러 의덕懿德이라 한다.
세상이 어지러워짐에 미쳐서는 군자君子는 자기의 공로功勞를 자랑하여 소인小人멸시蔑視하고注+(업신여김)이고, 군자君子는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이다. 소인小人은 자기의 기능技能을 자랑하여 군자君子능멸陵蔑하였다.注+도 업신여기는 것이다. 스스로 자기의 기능技能을 자랑하는 것을 ‘’이라 한다.
그러므로 상하上下가 없어 변란變亂포학暴虐이 아울러 생겼으니, 이는 상하上下가 서로 잘한다고 다투는 데서 연유한 것이다.注+스스로 잘한다고 서로 다투는 것이다.
이를 일러 혼덕昏德이라 한다.
국가國家쇠퇴衰頹하는 것은 항상 여기에서 연유緣由하였다.”注+전문傳文나라가 흥성興盛하게 된 이유를 말한 것이다.
초자楚子을 앓을 때 대부大夫에게 하기를 “나는 도 없는 몸으로 어린 나이에 사직社稷주지主持하는 임금이 되었다.
열 살 때 선군先君을 여의어, 미처 사보師保교훈敎訓학습學習하기도 전에 많은 을 받았노라(임금이 되었노라).注+다복多福은 임금이 된 것을 이른다.
그러므로 이 없어 언릉鄢陵에서 패전敗戰하여注+언릉鄢陵패전敗戰성공成公 16년에 있었다. 사직社稷되게 하고 대부大夫들에게 근심을 끼친 것이 다대多大하였다.注+이다. [부주]朱: 치욕恥辱을 끼치고 근심을 끼친 것이 이미 크고도 많았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부大夫들의 도움으로 수령首領보전保全하여 지하地下에 묻힐 수 있다면 이는(諡號를 짓는 일) 제사祭祀안장安葬의 일이고注+이고 이다. 후야厚夜장야長夜(깊은 땅속은 항상 캄캄한 밤)와 같다. 춘추春秋는 제사를 이르고, 장야長夜매장埋葬을 이른다. 선군先君을 따라 대신 예묘禰廟묘호廟號로 삼기 위함이니,注+선군先君을 따라 〈종묘宗廟로 들어가서 선군先君〉 대신 예묘禰廟가 된다는 말이다. ’이나 ‘’로 짓기를 바라노라.注+악시惡諡를 받아 가지고 선군先君에게 돌아가고자 한 것이다. 혼란昏亂한데도 그 혼란昏亂을 줄이지 못한 것을 ‘’이라 하고, 무고無辜한 사람을 살육殺戮한 것을 ‘’라 한다.
그러니 대부大夫는 이 두 중에서 한 자를 골라 쓰도록 하라.”고 하니,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다섯 차례 하니 그제야 허락하였다.
가을에 초공왕楚共王하였다.
자낭子囊대부大夫들과 시호諡號논의論議하니, 대부大夫들이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이미 하신 것이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자낭子囊이 말하기를 “군왕君王께서 하신 말씀이 공손恭遜하셨으니, 어찌 그 공손恭遜훼상毁傷할 수 있겠는가?注+[부주]朱: 임금님께서 하신 말씀이 매우 공손恭遜하셨으니, 어찌 악시惡諡를 올려 그 공손恭遜훼상毁傷해서야 되겠느냐는 말이다.
혁혁赫赫나라를 군왕君王께서 통치統治하시어 만이蠻夷안무安撫하고 남해南海정벌征伐하여 제하諸夏각국各國귀속歸屬시키셨으되, 당신의 허물을 아셨으니 (恭遜)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호諡號를 ‘’으로 하기를 청하노라.”고 하니 대부大夫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注+전문傳文자낭子囊을 말한 것이다.
오인吳人나라를 침공侵攻하자, 양유기養由基을 받고 급히 전장戰場으로 달려가니注+[부주]林: 을 받고 달려가 오군吳軍방어防禦한 것이다.자경子庚이 군대를 거느리고 그 뒤를 따랐다.注+자경子庚나라 사마司馬이다.
양숙養叔(養由基)이 말하기를 “오인吳人이 우리나라에 국상國喪이 난 틈을 타서 쳐들어왔으니, 우리가 출병出兵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注+양숙養叔양유기養由基이다. 반드시 우리를 얕보고 경계警戒하지 않을 것이다.注+경비警備하는 것이다.
그대는 세 곳에 군대를 매복埋伏시키고서 나를 기다리라.注+복병伏兵이다.
내가 저들을 유인誘引하겠다.”고 하니, 자경子庚이 그의 말을 따랐다.
용포庸浦에서 교전交戰하여注+용포庸浦나라 땅이다. 오군吳軍대패大敗시키고서 공자公子을 사로잡았다.
군자君子오인吳人불선不善하게 여겼다.注+천도天道에 따라 서로 위로慰勞하고 구휼救恤하지 않는 것이다.
시경詩經》에 “하늘이 너희 나라를 불선不善하게 여기기 때문에 너희 나라에 화란禍亂안정安定될 날이 없다.”注+하늘의 구휼救恤을 받지 못하여 를 불렀다(罪는 대패大敗를 이름이니, 하늘에 를 얻어 대패大敗를 부름)는 말이다. 명년明年에서 회합會合의 배경이다. 고 하였다.
겨울에 방읍防邑을 쌓았다.
에 이 일을 기록한 것은 때에 맞았기 때문이다.
이때 좀 더 일찍 성을 쌓으려 하자, 장무중臧武仲농사農事가 끝나기를 기다리기를 청하였으니, 에 맞았다.注+토목공사土木工事에는 비록 일정한 철이 있으나, 모두 농사農事가 끝나 한가로운 때를 적시適時로 삼는다.
나라 양소良霄태재太宰석착石㚟이 여전히 나라에 억류抑留되어 있었다.注+양공襄公 11년에 초인楚人이 그들을 잡아 지금까지 억류抑留한 것이다.
석착石㚟자낭子囊에게 말하기를 “선왕先王정벌征伐하기 5년 전에 을 치고,注+정행征行(遠行)하기 5년 전에 그 길흉吉凶을 점친 것이다. 순수巡守하기 위해 원행遠行하는 것이다. 해마다 한지를 거듭 쳐서 이 거듭되면 행사行師(出兵)하였고注+5년 동안 다섯 차례의 점이 동일하게 하여야 순수巡守했다는 말이다. [부주]林: 이고 이다. 불길不吉하면 더욱 을 닦고 나서 다시 을 쳤습니다.注+불습不習은 점이 불길不吉한 것이다.
지금 나라가 실로 하지 못해서이니 행인行人(石㚟 자신을 이름)이 무슨 입니까.注+나라가 을 닦아 나라와 경쟁競爭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라의 한 억류抑留한 것은 나라 군신君臣핍박逼迫하는 사람을 없애 주어注+양소良霄를 이른 것이다. [부주]朱: 귀자貴者가 많으면 공로功勞를 가지고 서로 핍박逼迫하는 것인데, 지금 나라의 한 억류抑留한 것이 바로 나라 국내國內에 서로 핍박逼迫하는 우환憂患을 제거해 준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 군신君臣으로 하여금 화목和睦하게 지내며 나라를 미워하고 나라와 우호友好견고堅固하게 하는 것이니, 나라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注+각자各自지위地位를 핍박하지 않으면 대신大臣들이 화목和睦하고, 나라를 원망하고 미워하면 나라를 섬기는 마음이 견고堅固해진다는 말이다.
그러니 우리를 돌려보내어 나라가 우리를 사신使臣으로 보낸 본래의 의도意圖폐기廢棄하게 하고,注+양소良霄사신使臣으로 가서 나라에 억류抑留되었고 나라는 또 나라를 마침내 굳게 섬기게 되었으니 〈이는 나라가 사신使臣을 보낸 본래의 의도였으니, 양소良霄를 돌려보내면〉 이는 나라가 본래 양소良霄사신使臣으로 보낸 의도意圖폐기廢棄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부주]朱: 왕년에 나라가 양소良霄나라에 사신使臣으로 보낸 것은 그 의도意圖가 바로 나라로 하여금 양소良霄억류抑留하게 하여, 나라가 나라를 굳게 섬길 수 있게 되기를 바란 것인데, 지금 양소良霄나라로 돌려보내면 나라는 나라를 굳게 섬길 수 없게 되니, 이것이 나라가 양소良霄사신使臣으로 보낸 본래의 의도意圖폐기廢棄하게 하는 것이다. 또 우리로 하여금 그 임금을 원망하고 대부大夫를 미워하여 서로 견제牽制하게 하는 것이注+[부주]朱: 양소良霄나라에 오래 억류抑留되어 있었으므로 이제 돌아간다면 반드시 그 임금에게 원한怨恨을 품고 그 대부大夫들을 미워할 것이니, 양소良霄를 시켜 서로 견제牽制하여 나라의 대신大臣들을 불화不和하게 하면 나라를 섬기는 마음이 견고堅固하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오히려 낫지 않겠습니까.”注+[부주]林: 어찌 오래 잡아 두는 것보다 낫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초인楚人은 그들을 돌려보냈다.


역주
역주1 又[反] : 저본에는 ‘又’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反’으로 바로잡았다.
역주2 飮至舍爵 : 飮至는 宗廟에 歸還을 告하고서 술을 마시는 것이다. 임금이 國外로 나아가 會盟, 征伐 등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宗廟에 祭祀를 지내며 歸還을 告하고서 隨行한 사람들을 慰勞하는 것이다.
역주3 荀罃士魴卒 : 晉나라에는 將과 佐가 모두 8人이었는데 지금 두 사람이 죽었다. 〈楊注〉
역주4 晉侯蒐于綿上以治兵 : 蒐는 사냥으로 군사를 訓練시키는 것이고, 治兵은 檢閱하는 것이다. 〈楊注〉
역주5 武自新軍超四等 : 趙武는 본래 新軍帥로 8人의 卿 중에 그 序列이 7位였는데, 지금 3位가 된 것이다.
역주6 使其什吏 : 什吏는 五吏와 그 副官이다. 五吏는 軍尉, 司馬, 司空, 輿尉, 候奄인데, 이들에게는 각각 副官 한 명씩이 있기 때문이 什吏라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7 范宣子讓 : 范宣子는 士匄이다. 中軍帥를 荀偃에게 사양한 것이다.
역주8 一人刑善 百姓休和 : 一人은 원래 天子를 指稱하는 말인데 여기서는 在上者의 뜻으로 쓰였고, 百姓은 百官의 뜻으로 쓰였다.
역주9 一人有慶 兆民賴之 : 一人이 書에서는 天子를 指稱한 말이지만 여기에서는 書를 引用한 자가 原義와 관계없이 在上者의 뜻으로 使用하였고, 慶은 善이다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左氏會箋》에도 이 書를 引用하여 上文의 ‘一人刑善’을 證明한 것이니, 一人을 天子로 解釋하는 것은 옳지 않다. 慶은 善인데, 杜注에 ‘好善之慶’으로 해석하여 이 慶字를 如字(두 개 이상의 音訓이 있는 글자에 本音으로 읽는 것)로 읽은 것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역주10 我從事獨賢 : 獨賢을 獨勞로 解釋한 《詩傳集註》의 註釋을 취해 번역하였다. 이는 ‘執政한 大夫가 公平하지 못하여 나에게만 유독 괴로운 일을 시킨다.’는 말이다.
역주11 賴[刺] : 저본에는 ‘賴’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刺’로 바로잡았다.
역주12 不穀不德 : 不穀은 不善으로 諸侯의 謙稱이다.
역주13 成[先] : 저본에는 ‘成’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先’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4 應受多福 : 應은 膺으로 읽어야 하니, 膺受는 同意詞를 連用한 것이다. 〈楊注〉
역주15 獲保首領 : 獲保首領은 당시의 常套語로 善終(壽命대로 살다가 죽음)을 이른다. 首領은 목이니 首領을 보존한다는 것은 被殺되지 않는 것이다. 〈楊注〉
역주16 唯是春秋窀穸之事 : 楚王의 뜻은 스스로를 貶下하여 祭祀와 葬事를 모두 감히 先王의 禮를 따를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正義〉
역주17 唯是……於禰廟者 : 唯是……於禰廟者는 여러 註釋을 參考하였으나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楊注〉에 “唯是는 죽은 뒤에 諡를 議定하는 것을 이른 듯하고, 春秋는 祭祀를 가리킨 것이고, 窀穸은 埋葬을 가리킨 것이다.”고 하였으니, 죽은 뒤에 諡號를 짓는 것은 祭祀 지낼 때 부를 號稱과 葬事 지낼 때 亡人의 功德을 宣揚하기 위한 일인 동시에 先君의 뒤를 이어 禰廟의 廟號로 삼기 위함이라는 뜻 같으나 確言할 수 없다. 그렇다고 闕譯할 수도 없어,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음을 밝혀 둔다.
역주18 不弔昊天 : 不弔昊天은 昊天不弔의 倒置句로 하늘이 너를 좋게 여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楊注〉
역주19 先王卜征五年 : 《周禮》 〈春官太卜〉에 八命 중의 ‘征’을 鄭衆은 征伐로 해석하고 鄭玄은 征行으로 解釋하였는데, 鄭衆의 解釋이 옳다. 그러나 征伐하기 5년 전에 점을 치는 이런 이치는 없을 것 같다. 沈丹의 〈小疏〉에 “이것은 楚나라 先王의 故事인 듯하다. 楚子가 鄭나라를 치는 일에 不利(成功하지 못함)했던 것이 德을 닦지 않은 데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을 끌어다가 말한 것인 듯하다.”고 한 말이 그럴듯하다고 한 〈楊注〉의 설을 취해 征伐로 번역하였다.
역주20 今楚實不競 行人何罪 : 현재 鄭나라가 楚나라에 服從하지 않고 晉나라에 服從하는 것은 楚나라의 國力이 强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使臣으로 온 자들의 罪가 아니라는 말이다.
역주21 止鄭一卿 以除其偪 : 良霄는 사람됨이 剛愎(성질이 까다롭고 고집이 셈)하여 鄭나라 君臣을 逼迫하였는데, 지금 楚나라가 그를 抑留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鄭나라 君臣을 逼迫하는 사람을 除去해 준 것이라는 말이다. 〈楊注〉
역주22 勞[勢] : 朱註의 勞는 勢의 誤字이다. 朱註는 〈正義〉의 ‘貴者多則其勢相偪今止鄭一卿于楚以除其國內相偪之患’을 引用한 것이다.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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