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十有八年春
에 白狄來
注+不言朝 不能行朝禮 하다
[經]夏
에 晉人執衛行人石買
注+石買 卽是伐曹者 宜卽懲治本罪 而晉因其爲行人之使執之 故書行人以罪晉 하다
[經]秋
에 齊師伐我北鄙
注+不書齊侯 齊侯不入竟 하다
[經]冬十月
에 公會晉侯宋公衛侯鄭伯曹伯莒子邾子滕子薛伯杞伯小邾子同圍齊
注+齊數行不義 諸侯同心俱圍之 하다
傳
[傳]十八年春
에 白狄始來
注+白狄 狄之別名 未嘗與魯接 故曰始 하다
傳
[傳]夏
에 晉人執衛行人石買于長子
하고 執孫蒯于純留
注+長子純留二縣 今皆屬上黨郡 孫蒯不書 父在位 蒯非卿 하니 爲曹故也
注+前年衛伐曹 라
傳
夢與厲公訟
하야 弗勝
注+厲公 獻子所弑者 하다 公以戈擊之
하니 首隊於前
이어늘
跪而戴之
하야 奉之以走
라가 見梗陽之巫皐
注+梗陽 晉邑 在太原晉陽縣南 皐 巫名也 夢幷見之 하다 他日
에 見諸道
하야 與之言
하니 同
注+巫亦夢見獻子與厲公訟 이라
巫曰
어니와 若有事於東方
이면 則可以逞
注+巫知獻子有死徵 故勸使決意伐齊 [附注] 林曰 主 大夫之稱 이리라 獻子許諾
하다
傳
晉侯伐齊
하야 將濟河
할새 獻子以朱絲繫玉二瑴
注+雙玉曰瑴 [附注] 朱曰 將以禮神 故以朱絲繫玉 하야 而禱曰
齊環怙恃其險
하고 負其衆庶
注+環 齊靈公名 負 依也 하야 棄好背盟
하고 陵虐神主
注+神主 民也 謂數伐魯 殘民人 ᄅ새 彪將率諸侯以討焉
注+彪 晉平公名 稱臣者 明上有天子 以謙告神 曾臣 猶末臣 하니 其官
實先後之
注+守官之臣 偃 獻子名 [附注] 林曰 實先後而輔佐之 라
苟捷有功
하야 無作神羞
注+羞 恥也 [附注] 朱曰 庶幾勝齊 而有成功 不至敗事貽神之辱也 면 注+偃信巫言 故以死自誓 리니 唯爾有神裁之
하라하고 沈玉而濟
하다
傳
冬十月
에 注+[附注] 林曰 會諸侯于魯之濟地 하야 尋湨梁之言
하고 同伐齊
注+湨梁 在十六年 盟曰同討不庭 하다
齊侯禦諸平陰
호되 塹防門而守之
하니 廣里
注+平陰城 在濟北縣東北 其城南有防 防有門 於門外作塹橫行 廣一里 故經書圍 [附注] 朱曰 平陰 齊邑名 러라
諸侯之士門焉
注+[附注] 林曰 攻其城門 하니 齊人多死
라
范宣子告析文子
注+析文子 齊大夫子家 曰 吾知子
하노니 敢匿情乎
注+[附注] 林曰 言我與子相知 不敢隱匿其情實 아
魯人莒人皆請以車千乘
으로 自其鄕入
이어늘 旣許之矣
注+[附注] 林曰 魯莒在齊之東 言自其鄕入 蓋自東道以入齊 라
晏嬰聞之
하고 曰 君固無勇
이어늘 而又聞是
注+[附注] 林曰 言齊侯固無勇敢 又聞此言 하니 弗能久矣
注+不能久敵晉 리라
傳
晉人使司馬斥山澤之險
하야 雖所不至
라도 必旆而疏陳之
注+斥 候也 疏建旌旗以爲陳 示衆也 하고 使乘車者左實右僞
하야 以旆先
注+僞以衣物爲人形也 建旆以先驅 하고 輿曳柴而從之
注+以揚塵 [附注] 林曰 輿 衆也 衆曳柴從車後以揚塵 朱曰 凡此皆詐爲兵多 以恐齊也 하다
齊侯見之
하고 畏其衆也
하야 注+脫 不張旗幟 하니 丙寅晦
에 齊師夜遁
하다
師曠告晉侯
注+[附注] 朱曰 樂師名曠 曰 鳥烏之聲樂
하니 齊師其遁
注+鳥烏得空營 故樂也 이라 邢伯告中行伯
注+邢伯 晉大夫邢侯也 中行伯 獻子 曰
注+夜遁 馬不相見 故鳴 班 別也 하니 齊師其遁
이라 叔向告晉侯曰 城上有烏
하니 齊師其遁
注+[附注] 朱曰 當時齊以夜遁 晉未知也 故三子因所聞見而知齊師之遁 이라
傳
夙沙衛連大車以塞隧而殿
注+ [附注] 朱曰 奔而居後曰殿 이어늘 殖綽郭最曰 子殿國師
는 齊之辱也
注+奄人殿師 故以爲辱 [附注] 林曰 殖綽郭最 齊之勇士 니 子姑先乎
ᄂ저하고 乃代之殿
하니 衛殺馬於隘以塞道
注+恨二子 故塞其道 欲使晉得之 하다
晉州綽及之
하야 射殖綽
하야 中肩
하니 兩矢夾脰
注+脰 頸也 하다
曰 止
하면 將爲三軍獲
注+[附注] 林曰 將生爲三軍俘獲 이어니와 不止
면 將取其衷
注+不止 復欲射兩矢中央 하리라
顧曰 爲私誓
하라 州綽曰 有如日
注+言必不殺汝 明如日 이라하고
乃弛弓而自後縛之
注+反縛之 하니 其右具丙
注+州綽之右 도 亦舍兵而縛郭最
하다
皆衿甲面縛
注+衿甲 不解甲 [附注] 林曰 反縛 惟露其面 하야 坐于中軍之鼓下
하다
傳
己卯
에 荀偃士匄以中軍克京玆
注+在平陰城東南 [附注] 林曰 京玆 齊邑 하고 乙酉
에 魏絳欒盈以下軍克邿
注+欒黶死 其子盈佐下軍 平陰西有邿山 하고 趙武韓起以上軍圍盧
나 弗克
注+[附注] 林曰 盧 齊邑 하다
十二月戊戌
에 하야 伐雍門之
注+秦周 魯大夫 趙武及之共伐萩也 雍門 齊城門 하다
范鞅門于雍門
하니 其御追喜以戈殺犬于門中
注+殺犬示間暇 하고 孟莊子斬其橁
이러니 以爲公琴
注+莊子 孺子速也 橁 木名 [附注] 林曰 斬雍門之橁木以爲魯公之琴 하다
己亥
에 焚雍門及西郭南郭
注+[附注] 林曰 焚 以火攻也 城之外爲郭 하고 劉難士弱率諸侯之師焚申池之竹木
注+二子 晉大夫 [附注] 林曰 申池 齊南城西門 齊城無池 惟此門有池 文十八年 弑懿公 納諸竹中 其地多竹木 하다
壬寅
에 焚東郭北郭
하고 范鞅門于揚門
注+齊西門 하다
州綽門于東閭
注+齊東門 이러니 하야 還于門中
하니 注+枚 馬檛也 闔 門扇也 數其板 示不恐 하다
傳
齊侯駕
하야 將走郵棠
注+郵棠 齊邑 한대 大子與郭榮扣馬
注+大子 光也 榮 齊大夫 曰 師速而疾
하니 略也
注+言欲略行其地 無久攻意 라
輕則失衆
이니 君必待之
하소서 將犯之
注+[附注] 林曰 齊侯將犯之而行 한대 大子抽劒斷鞅
하니 乃止
注+[附注] 林曰 在馬腹曰鞅 하다
甲辰
에 東侵及濰
하고 南及沂
注+濰水在東莞東北 至北海都昌縣入海 沂水出東莞蓋縣 至下邳入泗 하다
傳
[傳]鄭子孔欲去諸大夫
注+ [附注] 林曰 子孔 卽公子嘉 하야 將叛晉而起楚師以去之
하야 使告子庚
하니 子庚弗許
注+子庚 楚令尹公子午 하다
楚子聞之
하고 使揚(楊)豚尹宜告子庚
注+[附注] 朱曰 揚(楊)豚邑尹 名宜也 曰 國人謂不穀主社稷而不出師
하니 死不從禮
注+不能承先君之業 死將不得從先君之禮 라
不穀卽位
가 於今五年
이로되 師徒不出
하니 人其以不穀爲自逸而忘先君之業矣
注+謂己未嘗統師自出 리니 大夫圖之
하라 其若之何
오
吾以利社稷也
라 見使者
하고 稽首而對曰 諸侯方睦於晉
이나 臣請嘗之
注+嘗 試其難易也 하리니 若可
어든 君而繼之
하시고 不可
면 注+[附注] 林曰 若鄭可攻 君以師繼其後 若不可攻 臣請兵而歸 하소서
傳
於是子蟜伯有子張從鄭伯伐齊
注+子張 公孫黑肱 하고 子孔子展子西守
注+[附注] 林曰 公子嘉公孫舍之公孫夏留守鄭國 하다
二子知子孔之謀
注+二子 子展子西 하고 注+完城郭 內保守 하니 子孔不敢會楚師
注+[附注] 林曰 子孔見二子爲備 故不敢出會楚師 하다
楚師伐鄭
하야 次於魚陵
注+魚陵 魚齒山也 在南陽犫縣北 鄭地 하다
右師城上棘
하고 遂涉潁
하야 次于旃然
注+將涉潁 故於水邊權築小城 以爲進退之備 旃然水出熒陽成臯縣 東入汴 하다 蔿子馮公子格率銳師侵費滑胥靡獻于雍梁
注+胥靡獻于雍梁 皆鄭邑 河南陽翟縣東北有雍氏城 하고 右回梅山
注+在熒陽密縣東北 [附注] 林曰 楚師右回鄭之梅山 하야 侵鄭東北
하고 至于蟲牢而反
하다
子庚門于純門
하야 信于城下而還
注+信 再宿也 하야 涉於魚齒之下
注+魚齒山之下有滍水 故言涉 할새 甚雨及之
注+[附注] 朱曰 適有大雨 遂及楚兵 하야 楚師多凍
하고 하다
傳
吾驟歌北風
하고 又歌南風
컨대 南風不競
注+歌者 吹律以詠 南風音微 故曰不競也 師曠唯歌南北風者 聽晉楚之强弱 하야 注+[附注] 朱曰 多有死喪之聲 이리다
董叔曰 天道多在西北
注+歲在豕韋 月又建亥 故曰多在西北 [附注] 林曰 晉大夫董叔 이어늘 南師不時
하니 注+不時 謂觸歲月 이리다
叔向曰 在其君之德也
注+言天時地利不如人和 니이다
18년 봄에
백적白狄이 우리나라에 왔다.
注+‘조朝’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조례朝禮를 능히 행行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여름에
진인晉人이
위衛나라
행인行人석매石買를 잡았다.
注+석매石買는 바로 조曹나라를 토벌討伐한 자이니, 즉시 본죄本罪를 징치懲治하는 것이 마땅한데, 진인晉人은 그가 행인行人의 사자使者가 된 것을 인因하여 그를 잡았다. 그러므로 ‘행인行人’이라고 기록하여 진晉나라에 죄罪를 돌린 것이다.
가을에
제군齊軍이 우리나라의 북쪽
변읍邊邑을
침벌侵伐하였다.
注+제후齊侯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제후齊侯가 노魯나라 경내境內까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 10월에
양공襄公이
진후晉侯‧
송공宋公‧
위후衛侯‧
정백鄭伯‧
조백曹伯‧
거자莒子‧
주자邾子‧
등자滕子‧
설백薛伯‧
기백杞伯‧
소주자小邾子와
회합會合하여
제齊나라를
포위包圍하였다.
注+제齊나라가 자주 불의不義를 행하니, 제후諸侯가 합심合心하여 함께 포위包圍한 것이다.
조백曹伯부추負芻가
군중軍中에서
졸卒하였다.
注+전傳이 없다. 장례葬禮를 허남許男과 같게 치르는 것이 마땅하다. 노魯나라와 세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초楚나라 공자公子오午가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정鄭나라를 토벌하였다.
傳
18년 봄에
백적白狄이 비로소 왔다.
注+백적白狄은 적狄의 별명別名이다. 일찍이 노魯나라와 접촉接觸한 적이 없기 때문에 ‘비로소’라고 한 것이다.
傳
여름에
진인晉人이
위衛나라의
행인行人석매石買를
장자長子에서 잡고,
손괴孫蒯를
순류純留에서 잡았으니,
注+장자長子와 순류純留 두 현縣은 지금 모두 상당군上黨郡에 속屬한다. 경經에 손괴孫蒯를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 아비는 경卿의 위位에 있지만 손괴孫蒯는 경卿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曹나라 때문이었다.
注+전년前年에 위衛나라가 조曹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傳
가을에 제후齊侯가 우리나라의 북쪽 변읍邊邑을 침벌侵伐하니 중행헌자中行獻子(荀偃)가 제齊나라를 토벌하려 하였다.
꿈에 ‘
선군先君여공厲公과
송사訟事를 하여
승소勝訴하지 못하자,
注+여공厲公은 헌자獻子가 시해弑害한 임금이다. 여공厲公이 창으로 치니 머리가 잘려 앞에 떨어졌다.
무릎을 꿇고 앉아 떨어진 머리를 집어 목 위에 얹고 두 손으로 붙들고서 달아나다가
경양梗陽의 무당
고皐를 만났다.’
注+경양梗陽은 진晉나라 읍邑으로 태원太原진양현晉陽縣 남쪽에 있다. 고皐는 무당의 이름이다. 헌자獻子가 꿈에 그 무당을 만난 것이다. 후일後日에 길에서 그 무당을 만나 이야기하니 그도 똑같은 꿈을 꾸었다.
注+무당도 꿈에 헌자獻子가 여공厲公과 송사訟事하는 것을 본 것이다.
무당이 말하기를 “금년에
대부大夫는 반드시 죽을 것이지만
동방東方의 나라와
전쟁戰爭을 한다면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注+무당은 헌자獻子가 죽을 징조가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결심決心해 제齊나라를 토벌討伐하도록 권勸한 것이다. [부주]林: 주主는 대부大夫의 칭호稱號이다. 고 하니,
헌자獻子가 허락하였다.
傳
진후晉侯가
제齊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하수河水를 건너려 할 때
헌자獻子가 붉은 실로
옥玉 두 쌍을 묶어
注+한 쌍雙의 옥玉을 ‘곡瑴’이라 한다. [부주]朱: 신神에게 예물禮物로 바치고자 하였기 때문에 붉은 실로 옥玉을 묶은 것이다. 기도祈禱하기를
“
제齊나라
환環이
험險한
지세地勢와 많은
병력兵力을 믿고서
注+환環은 제영공齊靈公의 이름이다. 부負는 의지하는 것이다. 우호友好와
맹약盟約을 저버리고
인민人民을
잔해殘害[陵虐]하므로
注+신神의 주인主人은 백성이다. 제齊나라가 자주 노魯나라를 침벌侵伐하여 인민人民을 잔해殘害한 것을 이른다. 배신陪臣표彪가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제齊나라를
토벌討伐하려 하니,
注+표彪는 진평공晉平公의 이름이다. ‘신臣’이라고 칭稱한 것은 위에 천자天子가 계심을 밝힌 것이니 겸손한 말로 신神에게 고告한 것이다. 증신曾臣은 말신末臣과 같은 말이다. 그
관신官臣언偃이 실로
전후前後에서 그를
보좌輔佐하겠습니다.
注+관신官臣은 관직官職이 있는 신하臣下이고, 언偃은 헌자獻子의 이름이다. [부주]林: 실로 앞뒤에서 진군晉君을 보좌補佐하겠다는 말이다.
만약
전쟁戰爭에서
승리勝利하여
신神께
수치羞恥를 끼치지 않게 된다면
注+수羞는 치恥이다. [부주]朱: 제齊나라에 승리勝利해 성공成功을 거두고, 일을 실패失敗하여 신神에게 수치羞恥를 끼치는 데 이르지 않기를 바란 것이다. 관신官臣언偃은 감히 다시
하수河水를 건너오지 않을 것이니,
注+순언荀偃은 무당의 말을 믿었기 때문에 죽을 것으로 스스로 맹서盟誓한 것이다. 신神께서
재결裁決하기 바랍니다.”라고 하고서 그
옥玉을 물에 던져 넣고서
하수河水를 건넜다.
傳
겨울 10월에
노제魯濟 가에
회합會合하여
注+[부주]林: 노魯나라의 제수濟水 가에서 제후諸侯와 회합會合한 것이다.격량湨梁에서
맹약盟約한 말을
중수重修하고 함께
제齊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注+격량湨梁의 회맹會盟은 양공襄公 16년에 있었는데, 맹약盟約하기를 “맹주盟主에게 불충不忠하는 나라를 함께 토벌討伐할 것이다.”고 하였다.
제후齊侯가
평음平陰에서
방어防禦하되
방문防門에 해자를 파고
수비守備하니 그 해자의 너비가 1
리里였다.
注+평음성平陰城은 제북濟北노현盧縣 동북쪽에 있다. 그 성城 남쪽에 제방堤防이 있고 제방堤防에 문이 있는데, 문밖에 횡렬橫列[橫行]로 해자를 팠으니, 그 너비가 1리里였다. 그러므로 경經에 ‘포위包圍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부주]朱: 평음平陰은 제齊나라 읍명邑名이다.
숙사위夙沙衛가 말하기를 “여기서는
제후군諸侯軍과
전쟁戰爭할 수 없으니
험고險固한 곳으로 가서 지키는 것만 못합니다.”
注+방문防門이 험險한 요새要塞가 되기에 부족不足하다는 것을 이른 말이다. 라고 하였으나,
제후齊侯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제후諸侯의 군대가
방문防門을 공격하니
注+[부주]林: 그 성문城門을 공격攻擊한 것이다. 제인齊人이 많이 죽었다.
범선자范宣子가
제齊나라
석문자析文子注+석문자析文子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자가子家이다. 에게 말하기를 “나는 그대와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이니 감히
실정實情을 숨기겠는가?
注+[부주]林: 내가 그대와 서로 아는 사이므로 감히 실정實情을 숨기지 않겠다는 말이다.
노인魯人과
거인莒人이 모두
병거兵車천승千乘을 거느리고 각기 자기들의 고장에서
제齊나라로 쳐들어가기를 청하기에 우리가 이미 허락하였다.
注+[부주]林: 노魯나라와 거莒나라가 제齊나라의 동쪽에 있으니, 그 고장에서 들어간다고 한 것은 동도東道에서 제齊나라로 쳐들어간다는 말인 듯하다.
만약 저들이 쳐들어간다면 제군齊君은 반드시 나라를 잃을 것이니, 어찌 깊이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하였다.
자가子家(析文子)가 이 말을 제영공齊靈公에게 고告하니 영공靈公이 두려워하였다.
안영晏嬰이 듣고 말하기를 “우리 임금은 본래
용기勇氣가 없는데 또 이런 말을 들었으니
注+[부주]林: 제후齊侯는 본래 용감勇敢하지 못한데 또 이런 말을 들었다는 말이다. 오래
저항抵抗하지 못할 것이다.”
注+진군晉軍을 오래 대적對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傳
제후齊侯가
무산巫山에 올라
진군晉軍을
조망眺望하였다.
注+무산巫山은 노현盧縣 동북쪽에 있다.
진인晉人은
사마司馬를 보내어
산택山澤의 험한 곳을
정탐偵探(斥)하여 군대가 이를 수 없는 곳에도 반드시 깃발을 듬성듬성 세워
진세陳勢를 펼치게 하고(敵을 속이기 위해 군대가 있는 것처럼
위장僞裝해
진陳을 치게 한 것임),
注+척斥은 후候(偵探)이다. 정기旌旗를 듬성듬성 세워 진陳을 쳐서 무리가 많은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병거兵車의 왼쪽에만 사람을 태우고 오른쪽에는 허수아비를 앉히고서
대기大旗가 앞에서 인도하고
注+인형人形에 옷을 입혀 사람으로 위장僞裝한 것이다. 깃발을 세우고서 선구先驅(先導)한 것이다. 수레에 섶을 매달아 끌고 그 뒤를 따르게 하였다
注+먼지가 일게 한 것이다. [부주]林: 여輿는 많은 병사兵士이다. 많은 병사兵士들에게 섶을 끌고 수레 뒤를 따라 먼지가 일게 한 것이다. [부주]朱: 이것은 모두 병사兵士가 많은 것처럼 위장僞裝하여 제齊나라를 두렵게 한 것이다. (먼지를 일게 하여
대군大軍이 달려가는 것처럼
위장僞裝한 것임).
제후齊侯는 이를 보고
진군晉軍이 많은 것을 두려워하여
군중軍中을 빠져나와 돌아가니,
注+탈脫은 기치旗幟를 펼치지 않는 것이다. 그믐
병인일丙寅日 밤에
제군齊軍이 도망갔다.
사광師曠이
진후晉侯에게
고告하기를
注+[부주]朱: 악사樂師로 이름이 광曠이다. “까마귀 소리가 즐거우니
제군齊軍이 도망간 듯합니다.”
注+까마귀가 빈 진영陣營을 만났기 때문에 즐겁게 운 것이다. 고 하고,
형백邢伯이
중행백中行伯에게
注+형백邢伯은 진晉나라 대부大夫형후邢侯이고, 중행백中行伯은 헌자獻子이다. 고告하기를 “말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으니
注+밤에 도망하다 보니 말[馬]이 서로 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운 것이다. 반班은 별別이다.제군齊軍이 도망간 듯합니다.”고 하였고,
숙향叔向이
진후晉侯에게
고告하기를 “
성城 위에 까마귀가 있는 것이 보이니
제군齊軍이 도망간 듯합니다.”
注+[부주]朱: 이때 제군齊軍이 밤을 이용해 도망가니 진인晉人은 이를 몰랐다. 그러므로 세 사람이 듣고 본 바로 인해 제군齊軍이 도망간 것을 안 것이다. 라고 하였다.
傳
11월 초하루 정묘일丁卯日에 진군晉軍이 평음平陰으로 들어가서 드디어 제군齊軍을 추격追擊하였다.
숙사위夙沙衛가 큰 수레를 연결하여 길을 막고서 스스로
후미後尾의
방어防禦를
담당擔當하자,
注+이것은 숙사위夙沙衛가 험險한 곳을 지키고자 한 것이다. [부주]朱: 패전敗戰하고 도망할 때 군대의 후미後尾에 있는 것을 ‘전殿’이라 한다. 식작殖綽과
곽최郭最가 말하기를 “네가
국가國家 군대의
후미後尾를
담당擔當하는 것은
제齊나라의
치욕恥辱이니
注+엄인奄人(宦官)이 군대 후미後尾의 방어防禦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이를 치욕恥辱으로 여긴 것이다. [부주]林: 식작殖綽과 곽최郭最는 제齊나라의 용사勇士이다. 너는 일단 먼저 돌아가라.”고 하고서 대신
후미後尾를
담당擔當하니,
숙사위夙沙衛는 말을 죽여 좁은 길을 막았다.
注+숙사위夙沙衛는 두 사람에게 원한怨恨을 품었기 때문에 그들의 퇴로退路를 막아 진군晉軍이 그들을 잡게 하고자 한 것이다.
진晉나라
주작州綽이
추격追擊해 와서
식작殖綽에게 활을 쏘아 어깨를 맞히니 두 대의 화살이 목의 양쪽에 꽂혔다.
注+두脰는 경頸(목)이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그대가
정지停止한다면 그대를 우리
삼군三軍의
포로捕虜로 삼겠지만,
注+[부주]林: 살려서 삼군三軍의 포로捕虜로 삼고자 한 것이다. 정지停止하지 않는다면 장차 두 화살이 꽂혀 있는 중간을 쏘겠다.”
注+정지停止하지 않으면 꽂혀 있는 두 화살의 중앙中央을 다시 쏘아 죽이고자 한 것이다. 고 하였다.
식작殖綽이
주작州綽을 돌아보며 “맹세할 수 있는가?”라고 하니,
주작州綽이 “저
태양太陽을 두고
맹서盟誓하겠다.”
注+반드시 너를 죽이지 않을 것을 밝은 태양太陽을 두고 맹서盟誓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그리고서 활시위를 풀어
식작殖綽을 뒤에서
결박結縛하니,
注+뒷결박을 한 것이다. 주작州綽의
거우車右구병具丙도
注+주작州綽의 거우車右이다. 병기兵器를 내려놓고서
곽최郭最를
결박結縛하였다.
두 사람을 모두 갑옷을 입은 채로 뒷결박을 하여
注+금갑衿甲은 갑옷을 벗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뒷결박을 하고서 오직 그 얼굴만을 노출露出시킨 것이다. 중군中軍의 북 아래에 앉혀 두었다.
傳
진인晉人은 돌아가는
제군齊軍을
추격追擊하고자 하였으나,
노魯나라와
위衛나라가
험險한
요새要塞를
공격攻擊하기를 청하였다.
注+험고險固한 성城을 지키는 자를 공격攻擊하기를 청한 것이다.
기묘일己卯日에
순언荀偃과
사개士匄가
중군中軍을 거느리고 가서
경자京玆를
공격攻擊해
승리勝利하고,
注+경자京玆는 평음성平陰城 동남쪽에 있다. [부주]林: 경자京玆는 제齊나라 읍邑이다. 을유일乙酉日에
위강魏絳과
난영欒盈이
하군下軍을 거느리고 가서
시邿를 공격해 승리하고,
注+난염欒黶이 죽은 뒤에 그 아들 난영欒盈이 하군下軍의 좌佐가 되었다. 평음平陰의 서쪽에 시산邿山이 있다. 조무趙武와
한기韓起가
상군上軍을 거느리고 가서
노盧를
포위包圍하였으나
승리勝利하지 못하였다.
注+[부주]林: 노盧는 제齊나라 읍邑이다.
12월
무술일戊戌日에
조무趙武가
진주秦周에 당도하여
옹문雍門 밖의 가래나무를 베어 내었다.
注+진주秦周는 노魯나라 대부大夫이다. 조무趙武가 진주秦周에게 가서 함께 가래나무를 벤 것이다. 옹문雍門은 제齊나라 성문城門이다.
범앙范鞅이
옹문雍門을
공격攻擊하니 그
어자御者추희追喜는
성문城門 안에서 창으로 개를 찔러 죽이고,
注+개를 죽인 것은 한가함을 보인 것이다. 노魯나라
맹장자孟莊子는 그곳에 있는 참죽나무를 베었는데, 뒤에 이 나무로
양공襄公의 거문고를 만들었다.
注+맹장자孟莊子는 유자孺子속速이다. 춘橁은 나무 이름이다. [부주]林: 옹문雍門 밖의 참죽나무를 베어 그것으로 노공魯公의 거문고를 만든 것이다.
기해일己亥日에
옹문雍門과
서곽西郭 및
남곽南郭을 불태우고,
注+[부주]林: 분焚은 화공火攻한 것이다. 성城 밖을 곽郭이라 한다. 유난劉難과
사약士弱이
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신지申池 가의 대숲[竹木]을 불태웠다.
注+두 사람은 진晉나라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신지申池는 제齊나라 남성南城의 서문西門이다. 제성齊城에는 못[池]이 없는데 오직 이 문門에만 못이 있다. 문공文公 18년 전傳에 “병촉邴歜 등이 제의공齊懿公을 시해弑害하여 그 시체屍體를 신지申池의 대밭 속에 버렸다.”고 하였으니, 그곳에는 대나무가 많았던 것이다.
임인일壬寅日에
동곽東郭과
북곽北郭을 불태우고
범앙范鞅은
양문揚門을
공격攻擊하였다.
注+양문揚門은 제齊나라 서문西門이다.
주작州綽이
동려東閭(東門)를
공격攻擊하는데
注+동려東閭는 제齊나라 동문東門이다. 왼쪽
참마驂馬가 장애물에 걸리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문안에서 빙빙 도니
주작州綽은 문짝에 박혀 있는 젖꼭지 모양의 못대가리 수를 세었다.
注+매枚는 말채찍이다. 합闔은 문선門扇(문짝)이다. 그 문짝의 판자板子를 센 것은 두렵지 않다는 것을 보인 것이다.
傳
제후齊侯가 수레를 타고
우당郵棠으로 도망가려 하자,
注+우당郵棠은 제齊나라 읍邑이다.태자太子와
곽영郭榮이 말고삐를 잡고서
注+태자太子는 태자太子광光이고, 곽영郭榮은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다. 간諫하기를 “
적군敵軍의
행군行軍이 빠르고
공세攻勢가
맹렬猛烈하니, 이는
약탈掠奪하기 위함입니다.
注+약탈掠奪하려고 그 지방地方을 돌아다니니, 오랫동안 공격攻擊하려는 의사意思가 없다는 말이다.
곧 물러갈 것이니 군君께서는 무엇을 두려워하십니까?
그리고 사직社稷의 주인主人은 가벼이 움직여서는 안 됩니다.
가벼이 움직이면
대중大衆을 잃게 되니
군君께서는 반드시 기다리소서.”라고 하였으나,
제후齊侯는 듣지 않고 두 사람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 하자,
注+[부주]林: 제후齊侯가 두 사람을 짓밟고 지나가려 한 것이다. 태자太子가 칼을 뽑아 말 가슴걸이를 자르니 그제야 멈추었다.
注+[부주]林: 말의 배에 있는 끈을 ‘앙鞅’이라 한다.
갑진일甲辰日에
제후군諸侯軍이 동으로
진격進擊하여
유수濰水에 이르고, 남으로
진격進擊하여
기수沂水에 이르렀다.
注+유수濰水는 동완東莞 동북쪽에 있는데, 북해北海도창현都昌縣에 이르러 바다로 들어간다. 기수沂水는 동완東莞개현蓋縣에서 발원發源하여 하비下邳에 이르러 사수泗水로 들어간다.
傳
정鄭나라
자공子孔이
대부大夫들을
제거除去하고자 하여,
注+권력權力을 독점獨占하고자 해서였다. [부주]林: 자공子孔은 바로 공자公子가嘉이다. 진晉나라를
배반背叛하고
초군楚軍을 일으켜(이용해) 그들을
제거除去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초楚나라
영윤令尹자경子庚에게
고告하니
자경子庚이
허락許諾하지 않았다.
注+자경子庚은 초楚나라 영윤令尹공자公子오午이다.
초자楚子가 이 말을 듣고
양돈윤楊豚尹의宜를 보내어
자경子庚에게
고告하기를
注+[부주]朱: 양돈楊豚의 읍윤邑尹(邑長)으로 이름이 의宜이다. “
국인國人들은 내[不穀]가
사직社稷(國家)을
주지主持하면서
출사出師하지 않으니
사후死後에
선군先君과 같은
예우禮遇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注+선군先君의 대업大業을 계승繼承하지 않으니 죽어서도 장차 선군先君과 같은 예우禮遇를 받을 수 없다는 말이다.
내가
즉위卽位한 지 이제 5년이 되었으나 군대를
출동出動한 적이 없었으니, 사람들은 내가 스스로
안일安逸만을 탐하고
선군先君의
대업大業은 잊었다고 할 것이니
注+자기가 군대를 거느리고서 직접 출정出征한 적이 없었던 것을 이른 말이다. 대부大夫는 어찌해야 하겠는지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니,
자경子庚이 탄식歎息하며 말하기를 “군왕君王께서는 내[午]가 안일安逸만을 생각한다고 여기시는 모양이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사직社稷을 이롭게 하려는 것인데.”라고 하고서,
사자使者(楊豚尹
의宜)를
접견接見하고서 머리를 조아리며 대답하기를 “
제후諸侯가 바야흐로
진晉나라와
화목和睦하지만
신臣이 한번
시험試驗해 보겠으니,
注+상嘗은 정鄭나라 토벌討伐하는 일이 어려운지 쉬운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만약
유리有利할 성싶거든
군왕君王께서 곧
신臣의 뒤를 이어
출병出兵하시고,
불리不利할 성싶거든 군대를 거두어
퇴각退却하소서.
注+[부주]林: 만약 정鄭나라를 공격攻擊할 만하면 군君께서는 군대를 거느리고서 신臣의 뒤를 이어 오시고, 만약 공격攻擊할 만하지 못하면 신臣은 군대를 거두어 돌아오겠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면 군대의 피해被害도 없고 군왕君王께도 치욕恥辱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傳
자경子庚은 군대를 거느리고
분수汾水 가로 가서 군대를
검열檢閱하였다.
注+양성현襄城縣 동북쪽에 분구성汾丘城이 있다.
이때에
정鄭나라
자교子蟜‧
백유伯有‧
자장子張은
정백鄭伯을 따라
제齊나라
토벌討伐에 나가고,
注+자장子張은 공손公孫흑굉黑肱이다. 자공子孔‧
자전子展‧
자서子西는
국내國內에 남아 나라를 지켰다.
注+[부주]林: 공자公子가嘉, 공손公孫사지舍之, 공손公孫하夏는 남아서 정鄭나라를 지킨 것이다.
두 사람은
자공子孔의
음모陰謀를 알고서
注+두 사람은 자전子展과 자서子西이다. 수비守備를
강화强化하고서
성보城堡로 들어가 굳게 지키니,
注+성곽城郭을 완전하게 손질하고, 들어가서 보호保護해 지킨 것이다. 자공子孔이 감히
초군楚軍과 만나지 못하였다.
注+[부주]林: 자공子孔은 두 사람이 대비對備하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감히 나가서 초군楚軍과 만나지 못한 것이다.
초군楚軍은
정鄭나라를
토벌討伐하기 위해
어릉魚陵에
주둔駐屯하였다.
注+어릉魚陵은 어치산魚齒山으로 남양南陽주현犫縣 북쪽에 있는데, 정鄭나라 땅이다.
우군右軍은
상극上棘에
성城을 쌓고서 드디어
영수潁水를 건너
전연旃然에
주둔駐屯하고,
注+장차 영수潁水를 건너려 하였기 때문에 물가에 임시로 작은 성城을 쌓아 진군進軍하거나 퇴군退軍할 때 사용할 근거지根據地로 준비準備한 것이다. 전연수旃然水는 형양熒陽성고현成臯縣에서 발원發源하여 동쪽으로 흘러 변수汴水로 들어간다. 위자빙蔿子馮과
공자公子격格은
정예병精銳兵을 이끌고
비활費滑‧
서미胥靡‧
헌우獻于‧
옹량雍梁을
침공侵攻하고서
注+서미胥靡, 헌우獻于, 옹량雍梁은 모두 정鄭나라 읍邑이다. 하남河南양적현陽翟縣 동북쪽에 옹씨성雍氏城이 있다. 매산梅山을
우회右回하여
注+매산梅山은 형양熒陽밀현密縣 동북쪽에 있다. [부주]林: 초군楚軍이 정鄭나라의 매산梅山을 우회右回한 것이다. 정鄭나라
동북부東北部를
침공侵攻하고
충뢰蟲牢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자경子庚은
순문純門을
공격攻擊하여
성城 아래에서 이틀 밤을 지내고
환군還軍하여
注+신信은 이틀 밤을 묵는 것이다. 어치산魚齒山 아래서
치수滍水를 건너는데
注+어치산魚齒山 아래에 치수滍水가 있기 때문에 ‘건넌다’고 말한 것이다. 마침 큰비가 내려
注+[부주]朱: 마침 큰비가 초군楚軍에게 내린 것이다. 초군楚軍에
동사자凍死者가 많이 생겼고
역도役徒는 거의 다 죽었다.
傳
진인晉人이 초군楚軍이 정鄭나라를 토벌討伐한다는 소식을 듣고 사광師曠이 말하기를 “우리에게 해로울 게 없습니다.
내가 여러 차례
북풍北風(北方의
악곡樂曲)을 노래해 보고 또
남풍南風(南方의
악곡樂曲)을 노래해 보건대
남풍南風(南曲)은 소리가
강强하지 못하고
注+노래하는 자는 율律(管樂器)을 불어 팔풍八風(八方의 음곡音曲)을 읊는데, 남풍南風은 음音이 미약微弱하기 때문에 강强하지 못하다고 한 것이다. 사광師曠이 오직 남풍南風과 북풍北風만을 노래한 것은 진晉나라와 초楚나라의 강약强弱을 듣기 위함이었다. 애절한 소리[死聲]가 많으니,
초楚나라는 반드시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입니다.”
注+[부주]朱: 사상死喪의 소리(애절한 소리)가 많은 것이다. 고 하였다.
동숙董叔이 말하기를 “금년에
천도天道(木星이
운행運行하는 길)가
서북西北에 있는 때가 많은데,
注+세성歲星(木星)이 시위豕韋(亥:서북西北)의 자리에 있고, 그 달도 건해월建亥月(12월)이기 때문에 서북西北에 있는 때가 많다고 한 것이다. [부주]林: 진晉나라 대부大夫동숙董叔이다. 남사南師(楚君)의
출동出動이
천시天時에 맞지 않으니 반드시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입니다.”
注+불시不時는 세歲와 월月에 저촉抵觸되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숙향叔向이 말하기를 “
전쟁戰爭의
승패勝敗는 그 나라 임금의
덕德이 어떠냐에 달린 것이지
注+천시天時와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천도天道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