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陳나라가 그 대부大夫경호慶虎 및 경인慶寅을 죽였다.注+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들 모두 국정國政을 전단專斷하고 임금을 배반背叛한 것을 죄책罪責한 것이다. ‘급及’이라고 말한 것은 사관史官이 문사文辭를 달리한 것일 뿐, 특별한 의례義例가 없다.
진후陳侯의 아우 황黃이 초楚나라에서 진陳나라로 돌아왔다.注+망명亡命한 사람을 제후諸侯가 도와 본국本國으로 들여보내는 것을 ‘귀歸’라 한다. 황黃이 초楚나라로 가서 소송訴訟을 제기提起해 승소勝訴하였기 때문에 초楚나라가 그를 들여보낸 것이다.
진晉나라 난영欒盈이 진晉나라로 다시 들어가서注+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간 것을 ‘복입復入’이라 한다.곡옥曲沃으로 들어갔다.注+전쟁戰爭에 패배敗北하자 곡옥曲沃으로 도망가서 곡옥曲沃의 민중民衆에 의지하여 도리어 그 임금과 다투었고, 출분出奔하여 타국他國에 붙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반背叛’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가을에 제후齊侯가 위衛나라를 토벌討伐하고서 드디어 진晉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두 일이기 때문에 ‘수遂(드디어)’라고 말한 것이다. [부주]林: 이곳에 ‘수遂’字를 쓴 것은 어째서인가? 제齊나라가 비로소 맹주盟主를 토벌討伐하였기 때문이다. 성공成公 2년에 원루袁婁에서 결맹結盟한 뒤로 제齊나라는 대대로 진晉나라에 복종服從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비로소 배반背叛하였으니, 이는 진晉나라의 패업霸業이 쇠衰하여 제후諸侯가 두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진晉나라가 쇠衰한 것은 제하諸夏(中國)의 우환憂患이다.
8월에 숙손표叔孫豹가 군대를 거느리고 진晉나라를 구원救援하러 가서 옹유雍楡에 주둔駐屯하였다.注+숙손표叔孫豹가 진晉나라를 구원救援하고서 옹유雍楡에서 명命을 기다렸기 때문에 ‘차次(駐屯)’라고 한 것이다. 옹유雍楡는 진晉나라 땅이다. 급군汲郡조가현朝歌縣 동쪽에 옹성雍城이 있다. [부주]林: 주둔駐屯[次]한 뒤에 구원救援하는 것은 구원救援하려는 형세形勢를 숨기기 위함이고, 구원救援하기 전에 먼저 주둔駐屯하는 것은 구원救援한다는 소문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진晉나라를 구원救援한 뒤로 천하天下에 더욱 사고事故가 많아졌다. 송宋나라에서 결맹結盟하자(襄公 27년) 남북南北의 형세形勢(晉나라와 초楚나라의 형세가 대등對等해졌음)가 이루어졌고, 신申의 회합會合에(昭公 4년) 회이淮夷가 참여하였고, 계보雞父의 전쟁戰爭(昭公 23년)에 오吳나라가 육국六國(頓‧호胡‧침沈‧채蔡‧진陳‧허許)을 패배敗北시키고 월越나라가 오吳나라에 편입編入되었으니, 춘추春秋가 끝난 것이 대개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그러므로 삼가는 뜻에서 이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맹주盟主를 구원救援한 뒤부터는 타국他國을 구원救援한 것은 모두 기록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소공昭公 21년에 진晉나라가 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송宋나라를 구원救援한 것과 30년에 초楚나라가 서徐나라를 구원救援한 유類는 모두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겨울 10월 을해일乙亥日에 장손흘臧孫紇이 주邾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가 계씨季氏에게 아첨阿諂해 순종順從하여 도자悼子를 위해 장자長子를 폐廢하고 소자少子를 세웠다가 도망가는 화禍를 자초自招하였기 때문에 그를 죄책罪責한 것이다.
진인晉人이 난영欒盈을 죽였다.
제후齊侯가 거莒나라를 습격襲擊하였다.注+경무장輕武裝한 군대를 거느리고 신속迅速히 가서 상대相對가 대비對備하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공격攻擊하는 것을 ‘습襲’이라 한다. 진晉나라를 토벌討伐하고 돌아오다가 거莒나라를 습격襲擊한 것인데, ‘수遂(드디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중간에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주]林: 《춘추春秋》에 습격한 것을 기록한 것은 특필特筆(특별히 기록함)이다.
傳
23년 봄에 기효공杞孝公이 졸卒하자 진도공晉悼公의 부인夫人이 상복喪服을 입었는데도注+도공悼公의 부인夫人은 진평공晉平公의 어머니이고 기효공杞孝公의 자매姊妹이다.진평공晉平公은 음악音樂을 정지停止하지 않았으니 예禮가 아니다.注+철徹은 철거徹去(거두어 치움)하는 것이다. [부주]林: 기공친期功親의 상喪에 성악聲樂을 철거撤去하지 않은 것은 상喪을 당한 사람의 예禮가 아니다.
예禮에 의하면 이웃 나라에 상사喪事가 있으면 음악音樂을 정지停止하는 것이다.注+예禮에 제후諸侯는 기복朞服 이하는 복服을 입지 않기 때문에 이웃 나라의 예禮로써 꾸짖은 것이다.
傳
진후陳侯가 초楚나라에 가니,注+조현朝見하기 위해 초楚나라에 간 것이다.공자公子황黃이 두 경씨慶氏를 초楚나라에 제소提訴하였다.
초인楚人이 두 경씨慶氏를 부르니注+이경二慶은 경호慶虎와 경인慶寅이다. 양공襄公 20년에 이경二慶이 공자公子황黃을 초楚나라에 참소讒訴하니 황黃이 초楚나라로 출분出奔하여 자신自身의 무죄無罪를 변명辨明하였다. 지금 진후陳侯가 초楚나라에 가니 초인楚人은 황黃의 말을 믿고서 이경二慶을 부른 것이다. 두 경씨慶氏는 감히 가지 못하고 경락慶樂을 대신 보내었다.
초인楚人이 경락慶樂을 죽이니注+경락慶樂은 이경二慶의 종족宗族이다. 이경二慶은 주살誅殺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감히 직접 가지 못한 것이다. [부주]林: 초인楚人이 경락慶樂을 죽인 것이다. 경씨慶氏는 진陳나라 인민人民을 거느리고 초楚나라를 배반背叛하였다.注+진후陳侯가 초楚나라에 가 있는 기회機會를 이용利用해 초楚나라를 배반背叛한 것이다. 경經에 ‘반叛’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노魯나라에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에 초楚나라 굴건屈建이 군대를 거느리고 진후陳侯를 따라가서 진陳나라를 포위包圍하니, 진인陳人이 방어防禦하기 위해 성城을 쌓는데注+성城을 수리修理하여 임금을 막은 것이다. 굴건屈建은 초楚나라 막오莫敖이다. 판자板子가 떨어져 사람이 맞아 죽었다.
그러자 역부役夫들이 서로 명命을 전傳하여 그 장長(監督官)을 죽이고서注+경씨慶氏가 판자板子를 떨어뜨린 것에 화를 내어 드디어 성城을 쌓던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역부役夫들이 노하여 반란叛亂을 일으킨 것이다. [부주]林: 역부役夫들은 경씨慶氏가 그 사람을 죽인 것에 노하여 서로 고告하여 난亂을 일으킨 것이다. 드디어 경호慶虎와 경인慶寅을 죽이니, 초인楚人이 공자公子황黃을 진陳나라로 들여보냈다.
군자君子는 경씨慶氏를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謂]하였다.
“불의不義를 용서容恕[肆]할 수 없다.注+사肆는 방放(놓아줌)이다. [부주]林: 사람들의 윗자리에 앉혀서[放]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천명天命은 항상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注+서書는 〈주서周書강고康誥〉이다. 의義가 있으면 보존保存되고 의義가 없으면 멸망滅亡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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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晉나라가 오吳나라로 딸을 출가出嫁시키려 하니, 제후齊侯는 석귀보析歸父에게 잉첩媵妾을 호송護送해 진晉나라로 가게 하면서 휘장을 친 수레 안에 난영欒盈과 그 종자從者들을 태우고 가서注+번藩은 휘장이 있는 수레이다. 잉첩媵妾이 그 안에 타고 있는 것처럼 위장僞裝한 것이다. [부주]林: 난영欒盈과 그 심복心腹무사武士[爪牙]들을 태운 것이다. 곡옥曲沃으로 들여보내게 하였다.注+곡옥曲沃은 난영欒盈의 읍邑이다.
난영欒盈이 밤에 서오胥午를 찾아가서 반란叛亂을 일으키겠다고 고告하니注+서오胥午는 곡옥曲沃을 지키는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밤에 만난 것은 진晉나라를 습격襲擊하고자 한다고 고告하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서오胥午가 대답하기를 “안 됩니다.
하늘이 폐기廢棄한 사람을 누가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반드시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注+집集은 성成이다. 라고 하였다.
난영欒盈이 말하기를 “비록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대에 의지하여 죽는다면 나는 후회後悔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成功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는 내가 실로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이니 그대는 자신의 허물로 여기지 말라.”注+나는 비록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지만 그대는 하늘에 죄罪를 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니, 서오胥午가 허락하였다.
서오胥午는 난영欒盈을 숨겨 놓고서 곡옥曲沃 사람들을 불러 술을 대접待接할 때注+서오胥午가 난영欒盈을 숨겨 놓고서 대중大衆에게 술을 대접待接한 것이다. 음악音樂이 연주演奏되자 서오胥午가 말하기를 “지금 난유자欒孺子를 만난다면 어찌하겠는가?”注+유자孺子는 난영欒盈이다. 라고 하니, 곡옥曲沃 사람들이 “주인主人을 만날 수 있다면 비록 그를 위해 죽는다 해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고서 모두 탄식歎息하며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술잔이 몇 바퀴 돈 뒤에 서오胥午가 다시 말하자, 모두 “주인主人을 만난다면 어찌 두마음을 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난영欒盈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두루 절을 하며 감사感謝를 표表하였다.注+대중大衆이 자기를 잊지 않고 생각해 준 것에 대해 사례謝禮한 것이다.
傳
4월에 난영欒盈은 곡옥曲沃의 갑병甲兵을 거느리고서 위헌자魏獻子에 의지하여(魏獻子의 내응內應에 의지함) 대낮에 강성絳城으로 쳐들어갔다.注+헌자獻子는 위서魏舒이다. 강絳은 진晉나라 국도國都이다. [부주]林: 대낮에 강성絳城으로 쳐들어간 것은 경병輕兵으로 진晉나라가 대비對備하지 않은 틈을 타서 몰래 습격襲擊한 것이다. [부주]朱: 대중大衆이 모두 난영欒盈의 쓰임이 되는 것을 즐거워했기 때문에 대낮에 쳐들어간 것이다.
조씨趙氏는 원原(趙同)과 병屛(趙括)이 화난禍難을 당한 일로 난씨欒氏에게 원한怨恨을 품었고注+성공成公 8년에 장희莊姬가 〈원原과 병屛이 난亂을 일으키려 한다고 진경공晉景公에게〉 참소할 때 난씨欒氏와 극씨郤氏가 이를 입증立證하였다. 한씨韓氏와 조씨趙氏는 바야흐로 화목和睦하였으며,注+한기韓起가 상군上軍의 장將을 조무趙武에게 사양하였기 때문에(襄公 12년 전傳) 서로 화목和睦하였다. 중행씨中行氏는 진秦나라를 토벌討伐한 전쟁戰爭 때의 일로 난씨欒氏에게 원한怨恨을 품었고注+양공襄公 14년에 진晉나라가 진秦나라를 칠 때 난염欒黶이 순언荀偃의 명命을 어기고서 말하기를 “내 말머리는 동쪽으로 향向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본래부터 범씨范氏와 화목和睦하였으며,注+범선자范宣子가 중군中軍에서 중행언中行偃을 보좌輔佐하였다. 지도자知悼子는 나이가 어려서 모든 일을 중행씨中行氏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注+도자悼子는 지앵知罃의 아들 순영荀盈이다. 어리다는 것은 이때 나이가 17세였다. 지씨知氏와 중행씨中行氏는 한 조상祖上의 자손子孫이기 때문에 서로 시키는 대로 따른 것이다. 정정程鄭은 진평공晉平公의 총애寵愛를 받고 있었다.注+정정程鄭도 순씨荀氏의 종족宗族이다.
그러므로 오직 위씨魏氏 및 칠여대부七輿大夫만이 난영欒盈을 도왔다.注+칠여七輿는 관명官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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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왕부樂王鮒가 범선자范宣子를 모시고 앉아 있는데 어떤 이가 와서 “난씨欒氏가 쳐들어옵니다.”라고 고告하자 선자宣子가 두려워하니, 환자桓子가 말하기를 “임금을 모시고 고궁固宮(別宮의 이름)으로 도주逃走하면 반드시 해害가 없을 것입니다.注+환자桓子는 악왕부樂王鮒이다.
그리고 또 난씨欒氏에게는 원수怨讐가 많고 당신은 정권政權을 쥐고 있으며, 난씨欒氏는 밖에서 들어왔고 당신은 집정執政의 지위地位에 있으니 유리有利한 점이 많습니다.
이미 유리有利한 조건條件과 권력權力을 가진데다가 백성을 상벌賞罰할 수 있는 권한權限[柄]까지 가졌으니注+상벌賞罰은 백성을 다스리는 권병權柄이다. 두려워할 게 뭐 있습니까?
난씨欒氏를 돕는 사람은 오직 위씨魏氏뿐인데, 그 또한 무력武力으로 겁박劫迫해 잡아 올 수 있습니다.注+[부주]林: 위헌자魏獻子가 비록 난영欒盈을 돕지만 그 마음을 아직 굳히지 않았으니 무력武力으로 겁박劫迫해 그를 잡아 올 수 있다는 말이다.
반란叛亂을 평정平定[克]하는 것은 권력權力에 달렸으니 당신은 게을리 하지 마소서.”注+[부주]林: 권력權力을 사용使用하는 일에 게을리 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왕부王鮒가 선자宣子에게 검은 상복喪服을 입고 두건頭巾을 쓰고 요질腰絰을 띠고서注+진晉나라는 효殽의 전쟁戰爭(僖公 33년)에서 돌아온 뒤부터 드디어 검은 상복喪服을 상용常用하였다. [부주]林: 악왕부樂王鮒가 선자宣子에게 검은 상복喪服을 입고 질絰을 그 머리에 쓰게 한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최縗(喪服)‧모冒(帽子)‧질絰(腰帶) 세 가지에 모두 검은 물을 들인 것이라고 하였다. 두 부인婦人과 함께 수레를 타고 평공平公이 있는 곳으로 가서注+난씨欒氏의 내응자內應者가 있어 길을 막을 우려憂慮가 있기 때문에 부인婦人의 복장服裝을 하고서 들어간 것이다. 평공平公을 모시고 고궁固宮으로 갔다.注+고궁固宮은 궁宮에 대臺와 관觀이 있어 방비防備해 지킬 수 있는 곳이다.
범앙范鞅이 위서魏舒를 맞이하기 위해 가서 보니,注+악왕부樂王鮒의 계책計策에 따라 겁박劫迫해 위서魏舒를 잡아 오고자 한 것이다. 위서魏舒는 이미 군대의 배열排列을 끝내고서 수레를 타고 난씨欒氏를 맞이하기 위해 출발出發하려는 참이었다.注+[부주]林: 위헌자魏獻子의 군대가 항렬行列을 이루고 이미 수레에 올라 난영欒盈의 군대를 맞이해 연합聯合하려 한 것이다.
범앙范鞅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말하기를 “난씨欒氏가 반적叛賊을 거느리고 쳐들어왔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와 여러 대부大夫들이 모두 임금님의 처소處所에 가 계시면서注+이삼자二三子는 제대부諸大夫이다. 나를 보내어 당신을 맞이하게 하셨으니, 나는 당신의 참승驂乘이 되겠다.”고 하고서 위서魏舒의 의대衣帶를 잡고注+참승驂乘은 반드시 대帶를 잡아 수레에서 떨어지는 것을 방비防備한다.
수레에 뛰어올라注+헌자獻子의 수레에 뛰어오른 것이다. 오른손에는 칼을 쥐고 왼손으로는 의대衣帶를 잡고서注+위서魏舒를 겁박劫迫한 것이다. 수레를 몰아 출발出發하라고 명命하였다.注+[부주]林: 범앙范鞅이 수레를 몰아 출발出發하라고 명命한 것이다.
어자御子가 갈 곳을 묻자,注+갈 곳을 물은 것이다. 범앙范鞅은 “임금님이 계신 곳으로 가라.”注+[부주]林: 지之는 왕往이니, 임금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고궁固宮에 당도當到하자 선자宣子는 계단階段 아래까지 내려와 영접迎接하며注+헌자獻子를 맞이한 것이다. 위서魏舒의 손을 잡고서 곡옥曲沃을 식읍食邑으로 주겠다고 하였다.注+자기와 합심合心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곡옥曲沃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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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에 비표斐豹는 죄罪를 범犯해 관노官奴가 된 자로 그 죄상罪狀이 단서丹書에 실려 있고,注+죄罪를 범犯해 끌려가 관노官奴가 되어, 붉은 글씨로 그 죄상罪狀이 기록된 것이다.난씨欒氏에게는 독융督戎이라는 힘센 가신家臣이 있었는데注+[부주]林: 난영欒盈에게는 독융督戎이라는 용력勇力이 있는 가신家臣이 있었다. 국인國人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비표斐豹가 선자宣子에게 말하기를 “단서丹書를 불태운다면 내가 독융督戎을 죽이겠습니다.”라고 하니, 선자宣子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네가 독융督戎을 죽였는데도注+[부주]林: 이而는 여汝(너)이다. 내가 임금께 청請하여 단서丹書를 불태우지 않는다면 저 태양太陽이 증인證人이 될 것이다.”注+약속約束을 저버리지 않기를 밝은 태양太陽을 두고 맹서盟誓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이에 비표斐豹를 밖으로 내보내고서 궁문宮門을 닫았다.注+문이 닫히자 문밖에 붙은 것이다.
독융督戎이 비표斐豹의 뒤를 쫓으니 비표斐豹는 담을 넘어 몸을 숨기고서 기다리다가注+은隱은 낮은 담이다. [부주]林: 독융督戎은 비표斐豹가 문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서 따라가 막아 싸우려 하니, 비표斐豹는 낮은 담을 넘어 숨어서 그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독융督戎이 담을 넘어오자 뒤에서 공격攻擊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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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씨范氏의 무리가 대臺 뒤에 있으니注+공대公臺(固宮의 대臺)의 뒤이다.난씨欒氏의 군대가 궁문宮門으로 올라왔다.注+승乘은 등登(오름)이다. [부주]林: 난씨欒氏의 군대가 고궁固宮의 문門으로 올라온 것이다.
범선자范宣子가 범앙范鞅에게 말하기를 “화살이 임금이 계시는 지붕에까지 미치니, 너는 가서 죽기로 싸우라.”注+[부주]林: 범앙范鞅에게 죽을 힘을 다해 싸우게 한 것이다. 고 하였다.
범앙范鞅이 칼을 뽑아 들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맞아 싸우니注+칼을 사용한 것은 짧은 무기武器를 들고 서로 맞붙어 싸워 목숨을 바치고자 한 것이다. 난씨欒氏가 패퇴敗退하였다.
범앙范鞅은 병거兵車에 뛰어올라 난씨欒氏를 추격追擊하다가注+범앙范鞅이 선자宣子의 융거戎車를 대신 탄 것이다. 난악欒樂注+난악欒樂은 난영欒盈의 종족宗族이다. 을 만나 말하기를 “악樂아, 전투戰鬪하지 말라.注+[부주]林: 범앙范鞅이 난악欒樂의 이름을 부르며 ‘악면지樂免之’라고 한 것은 너를 살려 주지 않겠다는 말이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장차 너를 하느님께 제소提訴할 것이다.”注+죽어서도 너의 죄罪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난악欒樂이 활을 쏘았으나 맞지 않으니, 다시 시위에 화살을 메기는데注+주注는 화살을 시위에 메기는 것이다. 그때 난악欒樂의 병거兵車가 괴목槐木 뿌리에 걸려 엎어지자,注+난악欒樂의 수레가 괴목槐木의 뿌리에 걸리어 엎어진 것이다. 어떤 병사兵士가 가지가 달린 창으로 그를 찍어 당기니 팔뚝이 잘려 죽었고, 난방欒魴은 중상重傷을 입었다.
난영欒盈이 곡옥曲沃으로 달아나니, 진인晉人이 곡옥曲沃을 포위包圍하였다.注+난방欒魴은 난씨欒氏의 종족宗族이다. [부주]朱: 싸우다가 부상負傷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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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제후齊侯가 위衛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선구先驅(第一先鋒)는 곡영穀榮이 왕손휘王孫揮의 전거戰車를 몰고 소양召揚이 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선구先驅는 전봉군前鋒軍이다. [부주]林: 왕손휘王孫揮가 전봉군前鋒軍의 장수將帥가 되고 곡영穀榮이 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신구申驅(第二先鋒)는 성질成秩이 거항莒恒의 전거戰車를 몰고 신선우申鮮虞의 아들 부지傅摯가 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신구申驅는 차전군次前軍이다. 부지傅摯는 신선우申鮮虞의 아들이다. [부주]林: 거항莒恒이 차전군次前軍의 장수將帥가 되고, 성질成秩이 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조개曹開가 제후齊侯의 융거戎車를 몰고 안부융晏父戎이 융우戎右가 되었으며,注+제장공齊莊公의 어우御右(車右)가 된 것이다. 이광二廣(齊侯의 부거副車)은 상지등上之登이 형공邢公의 전거戰車를 몰고 노포계盧蒲癸가 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이광貳廣은 제장공齊莊公의 부거副車이다. [부주]林: 형공邢公이 이광二廣의 장수將帥가 되고, 상지등上之登이 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계啓(左翼)는 뇌성牢成이 양파사襄罷師의 전거戰車를 몰고 낭거소狼蘧疏가 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좌익군左翼軍을 계啓라 한다. [부주]林: 양파사襄罷師가 좌익군左翼軍의 장수將帥가 되고, 뇌성牢成이 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거胠(右翼)는 상자거商子車가 후조侯朝의 전거戰車를 몰고 환도桓跳가 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우익군右翼軍을 거胠라 한다. [부주]林: 후조侯朝가 우익군右翼軍의 장수將帥가 되고, 상자거商子車가 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대전大殿(後軍)은 상자유商子游가 하지어구夏之御寇의 전거戰車를 몰고 최여崔如가 거우車右가 되고注+대전大殿은 후군後軍이다. [부주]林: 하지어구夏之御寇가 대전후군大殿後軍의 장수將帥가 되고, 상자유商子游가 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촉용지월燭庸之越이 사승駟乘하여,注+사승駟乘은 네 사람이 함께 전거殿車를 탄 것이다. 전傳에 이를 기재한 것은 제장공齊莊公이 구신舊臣을 버리고 무력武力을 믿은 것을 말한 것이다. 위衛나라에서 출발出發하여 진晉나라를 토벌討伐하려 하였다.
傳
안평중晏平仲이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용력勇力만을 믿고 맹주盟主를 치려 하시니, 만약 승리勝利하지 못한다면 제齊나라의 복福이 되겠지만注+[부주]朱: 만약 진晉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가 승리勝利하지 못하면 제군齊君은 두려운 줄을 알아 덕행德行을 닦을 것이므로 제齊나라의 복福이 된다.덕德도 없으면서 공功을 세운다면 임금님께 반드시 우환憂患이 미칠 것입니다.”고 하였다.
최저崔杼가 간諫하기를 “진晉나라를 쳐서는 안 됩니다.
신臣이 듣건대 소국小國이 대국大國에 화난禍難[敗]이 있는 틈을 타서 공격攻擊[毁]하면注+[부주]林: 제군齊君이 진晉나라에 난영欒盈의 화난禍難이 있는 틈을 타서 진晉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반드시 재앙災殃을 받는다고 하였으니, 임금님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으나, 제후齊侯는 듣지 않았다.
진문자陳文子가 최무자崔武子를 보고注+문자文子는 진완陳完의 손자孫子수무須無이고, 무자武子는 최저崔杼이다. 말하기를 “이 일을 장차 어쩌면 좋겠습니까?”注+[부주]林: 임금께서 진晉나라를 치려 하시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자, 무자武子가 말하기를 “내가 임금님께 말씀드렸으나 임금님께서 듣지 않으셨다.
진晉나라를 맹주盟主로 받들면서 그 나라의 화난禍難을 우리의 이익으로 여기시니,注+[부주]林: 진晉나라를 제후諸侯의 맹주盟主로 여기면서 도리어 그 나라에 화난禍難이 있는 것을 제齊나라의 이익利益으로 여겨 진晉나라를 치고자 한다는 말이다. 군신群臣이 위급危急하게 되면 어느 겨를에 임금을 생각하겠는가?注+사태事態가 위급危急하면 임금을 돌아보지 않고 도리어 임금을 시해弑害하여 진晉나라를 기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대는 우선 임금께 가서 진晉나라를 치지 마시도록 말리라.”注+[부주]林: 우선 임금님께 가서 진晉나라를 치지 말도록 말리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문자文子가 물러나와 그 종자從者에게 말하기를 “최자崔子는 아마도 죽을 것이다.
임금이 심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임금보다 더 심하니注+임금을 시해弑害하는 악행惡行이 맹주盟主를 배반背叛하는 잘못보다 더 크다는 말이다. [부주]朱: 맹주盟主를 치려 하는 임금의 악행惡行을 너무 심하다고 여기면서 최저崔杼 자신은 임금을 시해弑害하고자 하니, 그 악행惡行이 맹주盟主를 배반背叛하는 임금의 악행惡行보다 더욱 심하다는 말이다. 제 명命에 죽지 못할 것이다.注+[부주]朱: 반드시 제 명命에 죽지 못한다는 말이다.
도의道義를 행行하는 것이 임금보다 지나쳐도 오히려 겸양謙讓[抑]해야 하는데 하물며 악惡을 행하는 것이겠는가?”注+스스로 억손抑損(謙讓)하는 것이다. [부주]林: 자신이 행行한 도의道義가 임금보다 지나쳐도 신하臣下의 도리道理로는 오히려 스스로 겸양謙讓하여 감히 임금보다 지나치기를 구求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물며 악행惡行을 그 임금보다 지나치게 하고자 하는 것이겠는가? [부주]朱: 의리義理로써 그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음에 있어서도 오히려 스스로 겸양謙讓하여 감히 자기는 옳고 임금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 것인데, 하물며 시역弑逆의 죄악罪惡을 행行하고자 하는 것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傳
제후齊侯는 드디어 진晉나라를 토벌하여 조가朝歌를 취取(占領)하고서注+조가朝歌는 지금 급군汲郡에 소속所屬되었다. 군대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맹문孟門으로 진격進擊해 들어가고 하나는 태행산太行山으로 오르게 하였다.注+이대二隊는 군대를 나누어 두 부대部隊로 만든 것이다. 맹문孟門은 진晉나라의 애도隘道(좁은 길)이고, 태행산太行山은 하내군河內郡 북쪽에 있다.
형정熒庭에 무군武軍을 쌓고 군대를 보내어注+장무군張武軍은 누벽壘壁(城壁)을 쌓은 것이다. 형정熒庭은 진晉나라 땅이다. 비소郫邵를 지키게 하고,注+진晉나라 읍邑을 취取(占領)하여 지킨 것이다. 진군晉軍의 시체屍體를 수습收拾하여 소수少水에 묻고서注+진군晉軍의 시체屍體를 수습收拾해 소수少水에 묻고 봉분封墳을 높이 쌓아 경관京觀을 만든 것이다. 봉분封墳을 높이 쌓아 평음平陰에서의 패전敗戰을 보복報復하고서 환군還軍하였다.注+평음平陰의 전쟁戰爭은 양공襄公 18년에 있었다.
조승趙勝이 동양東陽의 군대를 거느리고 제군齊軍을 추격追擊하여 안리晏氂를 생포生捕하였다.注+조승趙勝은 조전趙旃의 아들이다. 동양東陽은 진晉나라의 산동山東으로 위군魏郡광평廣平이북以北이다. 안리晏氂는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다.
傳
8월에 숙손표叔孫豹가 군대를 거느리고 진晉나라를 구원救援하러 가서 옹유雍楡에 주둔駐屯하였으니 예禮에 맞았다.注+맹주盟主를 구원救援하였기 때문에 ‘예禮에 맞았다’고 한 것이다.
傳
계무자季武子에게는 적자適子가 없고, 서자庶子 중에 공미公彌가 장자長子였으나 도자悼子를 사랑하여 그를 후계자後繼者로 세우고자 하여注+공미公彌는 공서公鉏이고 도자悼子는 흘紇이다. [부주]朱: 두 사람은 모두 서출庶出이다. 공미公彌가 형兄이었으되 계손季孫은 유독 작은아들만을 사랑하여 도자悼子를 세워 후계자後繼者로 삼으려 한 것이다. 신풍申豐에게 묻기를
“미彌와 흘紇(悼子)을 내가 모두 사랑하지만 재능才能이 있는 아이를 선택選擇해 후계자後繼者로 세우고자 한다.”注+[부주]林: 작은아들을 세우겠다고 말하기 곤난困難하기 때문에 재능이 있는 자를 세우겠다고 한 것이다. 고 하니,
신풍申豐은 황급遑急히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서 가솔家率을 모두 데리고 떠나려 하였다.注+신풍申豐은 계씨季氏의 속대부屬大夫이다.
며칠 뒤에 계무자季武子가 또 신풍申豐에게 묻자, 신풍申豐이 대답하기를 “꼭 그렇게 하시겠다면 나는 나의 수레[敝車]를 끌고 떠나겠습니다.”注+기연其然은 필이必爾(必然)와 같다. 라고 하니, 이에 무자武子는 그 일을 중지하였다.注+지止는 흘紇을 세우지 않은 것이다.
傳
장흘臧紇에게 묻자, 장흘臧紇이 말하기를 “연회宴會를 열어 나에게 술을 접대接待하면 내가 당신을 위해 도자悼子를 후계자後繼者로 세워 주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계씨季氏는 대부大夫들을 초청招請해 술을 접대接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서 장흘臧紇을 상객上客으로 삼았다.注+상빈上賓으로 삼은 것이다.
헌주獻酒(主人이 빈賓과 개介(副賓)와 중빈衆賓(一般賓客)에게 술을 올림)가 끝나자注+이미 빈객賓客에게 술을 올린 것이다. 장흘臧紇이 북쪽에 자리를 포개어 깔고 새 술잔을 깨끗이 씻어 그 앞에 놓도록 명命하고서注+술잔이 이미 새 것인데도 다시 깨끗이 씻게 한 것이다. 〈사람을 시켜〉 도자悼子를 불러오게 하여, 장흘臧紇이 계단階段을 내려가 그를 맞이하니 대부大夫가 모두 일어났다.注+장손臧孫이 내려가서 도자悼子를 맞이한 것이다.
여수旅酬(衆賓이 다 같이 술을 권勸하는 것)할 때에 미쳐 공서公鉏를 불러注+헌수獻酬(賓主가 서로 술을 권하는 것)의 예禮가 끝나면 통행通行(衆賓이 다 같이 서로 술을 권하는 예禮를 행함)하는 것이 ‘여旅’이다. 중빈衆賓과 나란히 앉게 하니注+서자庶子의 예禮를 따라 서열序列을 도자悼子의 아래에 있게 한 것이다. 계손季孫이 얼굴빛이 변變하였다.注+공서公鉏가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 얼굴빛이 변한 것이다.
傳
계손季孫이 공서公鉏를 마정馬正으로 삼으니注+마정馬正은 가사마家司馬이다.공서公鉏는 화를 내며 출사出仕하지 않았다.注+[부주]朱: 버림을 받은 것에 노怒하여 나와서 직사職事를 살피지 않은 것이다.
민자마閔子馬注+민자마閔子馬는 민마보閔馬父이다. 가 공서公鉏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이렇게 하지 말라.
화복禍福은 문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부르는 바에 달렸을 뿐이니, 자식 된 자는 불효不孝를 걱정할 것이요 지위地位가 없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다.注+소所는 위처位處(地位)이다.
부친父親의 명命을 공경恭敬히 받든다면 어찌 사정事情에 변화變化가 생기지 않겠는가?注+이미 세운 사람을 폐廢하고 새로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버지에게 달렸으니, 상위常位(固定된 지위地位)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효도孝道하고 공경恭敬한다면 부富가 계씨季氏의 배倍가 될 수 있지만注+아버지가 총애寵愛하면 부유富裕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간사奸邪하여 법도法度를 어긴다면 화禍가 백성의 배倍가 될 것이다.”注+화禍가 빈천貧賤한 사람들보다 심하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공서公鉏가 그 말을 옳게 여겨, 공경恭敬히 아침저녁으로 문안問安하고 신중愼重히 관직官職[官次]을 수행修行하니注+차次는 사舍(머무는 곳)이다. 계손季孫은 기뻐하여, 공서公鉏에게 연회宴會를 열어 자기를 초대招待해 술을 접대接待하게 하고는注+[부주]林: 공서公鉏에게 무자武子를 위해 연례燕禮를 베풀게 한 것이다. 그 연회宴會에 필요한 기구器具를 가지고 가서 모두 공서公鉏의 집에 남겨 두었다.注+구具는 향연饗宴에 필요한 기구器具이다. [부주]林: 계무자季武子가 향연饗宴에 필요한 기구器具를 가지고 공서公鉏의 집으로 가서 그 기구器具를 모두 포기抛棄하여 공서公鉏에게 준 것이다.
그러므로 공서씨公鉏氏는 부유富裕해졌고, 또 출사出仕하여 양공襄公의 좌재左宰가 되었다.注+계씨季氏의 사가私家에서 나와서 공가公家에 벼슬하여 임금의 신하臣下가 된 것이다. [부주]林: 공서公鉏는 또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으로 공가公家에 출사出仕하여 양공襄公의 좌재左宰가 된 것이다.
傳
맹손孟孫(莊子)은 장손臧孫(臧紇)을 미워하고注+서로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이다.계손季孫(武子)은 장손臧孫을 좋아하였다.注+장흘臧紇이 계무자季武子의 뜻을 이루어 주었기 때문에 무자武子가 장흘臧紇을 좋아한 것이다.
맹씨孟氏의 어추御騶(말 기르는 일과 수레 모는 일을 겸한 관직官職) 풍점豐點이 갈羯(孟莊子의 서자庶子)을 좋아하여,注+갈羯은 맹장자孟莊子의 서자庶子로 유자孺子질秩의 아우 효백孝伯이다. [부주]林: 풍점豐點은 맹장자孟莊子의 어추관御騶官이다. 갈羯에게 “나의 말을 따르면 반드시 그대가 맹손씨孟孫氏의 후계자後繼者가 될 것이다.”注+맹손孟孫의 후사後嗣가 된다는 말이다. 고 두 번 세 번 말하니注+[부주]林: 풍점豐點이 갈羯을 위해 재삼再三 말한 것이다. 갈羯이 그의 말을 따랐다.
맹장자孟莊子가 병病을 앓자, 풍점豐點은 공서公鉏에게 말하기를 “만약 갈羯을 맹씨孟氏의 후사後嗣로 세워 준다면 내가 갈羯에게 청請하여 장씨臧氏를 원수怨讐로 여기게 하겠다.”注+맹씨孟氏로 하여금 공서公鉏와 함께 장손臧孫을 미워하게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공서公鉏가 계무자季武子에게 말하기를 “유자孺子질秩은 본래 당연히 맹씨孟氏의 후사後嗣가 되도록 정定해진 자이니注+본래 당연히 후사後嗣가 될 사람이란 말이다. 〈그를 세워 주더라도 우리의 공로功勞가 되지 않지만〉 만약 갈羯을 세워 준다면 계씨季氏의 공로功勞[力]가 실로 장씨臧氏보다 더 크게 됩니다.”注+장씨臧氏는 계손季孫의 욕망欲望에 따라 도자悼子를 후계자後繼者로 세워 주었을 뿐인데도 오히려 공로功勞[有力]가 되었는데, 지금 만약 전단專斷하여 맹씨孟氏의 소자少子를 후계자後繼者로 세워 준다면 계씨季氏의 공로功勞가 장씨臧氏의 공로功勞를 초과超過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계무자季武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묘일己卯日에 맹장자孟莊子가 죽으니, 공서公鉏가 갈羯을 부축해 호측戶側(喪主의 자리)에 서서 빈객賓客의 조상弔喪을 받게 하였다.注+호측戶側은 상주喪主의 자리이다. [부주]朱: 호측戶側은 상주喪主의 자리이다.
계무자季武子가 와서 들어가 곡哭하고 나와서 “질秩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공서公鉏가 “갈羯이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계무자季武子가 “유자孺子질秩이 갈羯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니, 공서公鉏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고 적음을 따질 게 뭐 있습니까?
오직 갈羯이 재능才能이 있기 때문입니다.注+계손季孫이 공서公鉏를 버리고 흘紇을 세울 때 재능才能이 있는 자를 선택選擇하고자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 말로써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또 부자夫子(孟莊子)의 명命이기도 합니다.”注+드디어 맹손孟孫의 명命이라고 속인 것이다. 고 하고서 드디어 갈羯을 후사後嗣로 세우니, 질秩이 주邾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傳
장손臧孫이 들어가 곡哭을 하는데 매우 슬퍼하고 눈물을 많이 흘리고서 나오자,注+[부주]林: 조상弔喪을 마치고 나온 것이다. 그 어자御者가 말하기를 “맹손孟孫은 당신을 미워하는데도 이처럼 슬퍼하시니 만약 계손季孫이 죽는다면 그 슬픔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장손臧孫이 말하기를 “계손季孫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나에게 질병疾病과 같고注+항상 서로 순종順從하기만을 생각하는 것은 몸에 해害가 된다는 말이다. 맹손孟孫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에게 약석藥石(藥劑와 석침石鍼)과 같다.注+항상 서로 어그러지기만을 생각하는 것은 약석藥石이 병病을 치료治療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고통苦痛이 없는 질병疾病[美疢]이 고통苦痛이 있는 약석藥石[惡石]만 못하다.
약석藥石은 오히려 나를 살리지만注+내 병病을 치유治愈한다는 말이다. 고통苦痛이 없는 질병疾病은 그 해독害毒이 매우 많다.
맹손孟孫이 죽었으니 내가 멸망滅亡할 날도 멀지 않았다.”注+[부주]林: 내가 고찰考察하건대 이것은 장무중臧武仲이 전에 공서公鉏를 폐廢하고 흘紇(悼子)을 세워 순리順理에 맞지 않는 일을 하였다가 이번에 공서公鉏가 질秩을 폐廢하고 갈羯을 세운 것을 보고는 장차 화禍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알고서 슬피 곡哭하고 눈물을 많이 흘린 것이니, 이는 대개 느낌이 있어서 마음 아파한 것이다. 그 어자御者는 까닭을 알 수 없어 물었기 때문에 사리事理에 의거依據해 대답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장무중臧武仲이 지혜가 많다고 평가評價된 이유이다. 고 하였다.
맹씨孟氏는 문門을 닫고서 계손季孫에게 고告하기를 “장씨臧氏가 난亂을 일으키려 하여 우리에게 장사葬事를 지내지 못하게 합니다.”注+공서公鉏를 위해 장씨臧氏에게 복수復讐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니, 계손季孫은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장손臧孫은 그 소식을 듣고 경계警戒하였다.注+계戒는 대비對備한 것이다.
겨울 10월에 맹씨孟氏가 묘도墓道를 닦으려고 장씨臧氏에게 제도除徒(길을 닦는 역도役徒)를 빌리기를 청하니,注+벽辟은 천장穿藏(葬道를 뚫음)이다. 장씨臧氏에게 인부人夫를 빌려 장도葬道를 닦은 것이다. [부주]林: 맹씨孟氏가 장사葬事 지내기 위해 장도葬道를 닦으려 한 것이다. 장손臧孫은 정부正夫(遂正이 관리하는 역도役徒)를 보내어 돕게 하고서注+정부正夫는 수정遂正이다. 동문東門 밖에 묘도墓道를 닦을 때 장손臧孫이 갑사甲士를 거느리고 가서 일하는 것을 시찰視察하였다.注+맹씨孟氏가 두려웠기 때문에 갑사甲士를 거느리고 가서 일하는 자들을 시찰視察한 것이다.
맹씨孟氏가 또 계손季孫에게 고告하니, 계손季孫은 노怒하여 명命을 내려 장씨臧氏를 공격攻擊하게 하였다.注+장손臧孫에게 갑사甲士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을해일乙亥日에 장흘臧紇이 녹문鹿門의 빗장[關]을 자르고 나아가 주邾나라로 달아났다.注+노魯나라 남성南城의 동문東門이다.
傳
당초에 장선숙臧宣叔이 주국鑄國의 여자女子를 아내로 맞이하여 장고臧賈와 장위臧爲를 낳고서 그 아내가 죽자,注+주국鑄國은 제북濟北사구현蛇丘縣소치所治이다.선숙宣叔은 아내의 질녀姪女를 계실繼室로 삼으니注+여자女子가 형제兄弟의 자식을 일러 ‘질姪’이라 한다. 그녀는 목강穆姜(宣公의 부인夫人)의 이종姨從(姨母의 딸)이었다.注+질姪은 목강穆姜의 이모姨母의 자식이니 목강穆姜과는 이종형제姨從兄弟가 된다.
그녀가 장흘臧紇을 낳아 궁중宮中에서 기르니 목강穆姜이 그를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장흘臧紇을 선숙宣叔의 후사後嗣로 세웠다.注+장흘臧紇을 세워 선숙宣叔의 후사後嗣로 삼은 것이다. [부주]林: 질姪이 목강穆姜과 친척親戚이었기 때문에 장흘臧紇을 공궁公宮에서 양육養育한 것이다.
장고臧賈와 장위臧爲는 노魯나라를 떠나 주국鑄國에 가서 있었는데,注+외가外家(舅氏) 나라로 돌아간 것이다. 장무중臧武仲이 주邾나라에서 장고臧賈에게 사람을 보내어 고告하고 또 대채大蔡(큰 귀갑龜甲)를 바치며注+대채大蔡는 대귀大龜이다. [부주]林: 대채大蔡는 거북의 이름이다. 거북이 채蔡나라 땅에서 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채蔡’를 거북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말하기를 “내가 불민不敏하여 종조宗祧를 지킬 수 없게 되었으니,注+원조遠祖의 묘廟를 ‘조祧’라 한다. [부주]林: 근친近親의 묘廟를 ‘종宗’이라 한다. 감히 나의 부조不弔(無能)를 고告합니다.注+부조不弔는 하늘의 조휼弔恤(불쌍히 여겨 구휼救恤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흘紇의 죄罪가 제사祭祀를 단절斷絶하는 데는 미치지 않았으니注+응당 후사後嗣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형님께서 이 대채大蔡를 노魯나라에 바치고서 후사後嗣로 세워 주기를 청請하면 아마 들어줄 것입니다.”注+선인先人을 위하여 후사後嗣를 세워 주기를 청請하라는 말이다. [부주]林: 자子는 장고臧賈를 이른다. 대채大蔡를 노魯나라에 바치고서 선인先人을 위해 후사後嗣를 세워 주기를 청請하면 장고臧賈가 후사後嗣로 세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장고臧賈가 말하기를 “이는 우리 가문家門의 재화災禍이지 그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니, 나는 그대의 명命을 따르겠다.”라고 하고서 귀갑龜甲을 받아 장위臧爲를 보내어 귀갑龜甲을 노군魯君께 바치고서 자기를 후사後嗣로 세워 주기를 대신 청請하게 하였는데,注+장고臧賈가 장위臧爲를 보내어 자기를 위해 대신 청請하게 한 것이다. 장위臧爲는 드디어 자신을 후사後嗣로 세워 주기를 청請하였다.注+장위臧爲가 스스로 후사後嗣가 되기를 청請한 것이다.
장손臧孫이 방읍防邑으로 가서注+방防은 장손臧孫의 봉읍封邑이다. 노魯나라 조정朝廷으로 사람을 보내어 고告하기를 “내가 남을 해치려 한 것이 아니었으나 지혜智慧가 부족不足하였습니다.注+갑사甲士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한 것은 일을 꾀함이 얕았을 뿐이라는 말이다.
감히 개인個人을 위해 청請하는 것이 아니니,注+그 선인先人을 위해 청請한다는 말이다. 진실로 선대先代의 제사祭祀를 지켜 조부祖父문중文仲과 부친父親선숙宣叔의 공훈功勳이 폐기廢棄되지 않게 하신다면注+이훈二勳은 문중文仲과 선숙宣叔이다. 어찌 감히 이 봉읍封邑을 떠나지 않겠습니까?”注+읍邑을 점거占據하고서 후사後嗣 세워 주기를 청請하였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요군要君(임금을 협박脅迫함)’이라고 한 것이다. [부주]林: 감히 방읍防邑을 피避해 떠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노魯나라가 장위臧爲를 장씨臧氏의 후사後嗣로 세우니,注+[부주]林: 장위臧爲를 세워 장씨臧氏의 후사後嗣로 삼은 것이다. 장흘臧紇은 방읍防邑을 국가國家에 바치고 제齊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부주]林: 후사後嗣가 세워진 뒤에 장무중臧武仲은 그 봉읍封邑을 노魯나라에 돌려주고서 제齊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그 종자從者가 말하기를注+[부주]林: 기인其人은 방읍인防邑人이다. “우리를 두고 맹서盟誓하겠지요?”注+그 죄악罪惡을 진술陳述해 제대부諸大夫와 맹서盟誓하여 경계警戒로 삼는 것을 이른다. 라고 하자, 장손臧孫이 “맹서盟誓할 말이 없을 것이다.”注+장자長子를 폐廢하고 소자少子를 세운 것은 계손季孫이 꺼리는 바이니, 나에게 죄罪를 씌울 말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장씨臧氏를 두고 맹서盟誓하려 할 때注+[부주]林: 노魯나라는 과연 장씨臧氏를 두고 맹서盟誓하여 경계警戒로 삼으려 하였다. 계손季孫이 출분出奔한 신하臣下[惡臣]의 일을 맡은 외사外史를 불러 맹서盟誓하는 말[盟首]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묻자,注+악신惡臣은 도망간 자들을 이른다. 맹수盟首는 재서載書(盟誓文)의 장수章首(문장의 첫 글귀인 듯함)이다. 대답하기를
“동문씨東門氏를 두고 맹서盟誓할 때는注+[부주]林: 선공宣公 18년에 있었다. ‘혹시라도 동문수東門遂처럼 임금의 명命을 따르지 않고서 적자適子를 죽이고 서자庶子를 세우지 말라.’注+문공文公이 태자太子악惡을 임금으로 세우라고 명命하였으나 공자公子수遂가 악惡을 죽이고 선공宣公을 세웠다. 라 하였고,
숙손씨叔孫氏를 두고 맹서할 때는注+[부주]林: 성공成公 16년에 있었다. ‘숙손교여叔孫僑如처럼 국가國家의 상도常道를 폐기廢棄하여 공실公室을 전복顚覆시키지 말라.’注+성공成公과 계씨季氏‧맹씨孟氏를 진晉나라에 참소讒訴한 것을 이른다. 고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계손季孫이 “장흘臧紇의 죄罪가 이 정도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맹초孟椒가 말하기를 “어찌 그가 성문城門을 범犯하여 빗장을 자르고 나아간 것으로 말을 만들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계손季孫이 그의 말을 채용採用하여 장씨臧氏를 두고 대부大夫들과 맹서盟誓하기를, ‘장손흘臧孫紇처럼 나라의 기강紀綱을 범犯하여 성문城門을 범犯하고 빗장을 자르지 말라.’注+간干도 범犯이다. 고 하였다.
장손臧孫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나라에 인재人才가 있구나.
누구일까?
아마도 맹초孟椒일 것이다.”注+맹초孟椒는 맹헌자孟獻子의 손자 자복혜백子服惠伯이다. 거居는 여與(疑問助詞)와 같다. 고 하였다.
경經에 ‘진인晉人이 난영欒盈을 죽였다.’고 기록記錄하고 ‘대부大夫난영欒盈’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그가 국외國外에서 들어와 반란叛亂하였기 때문이다.注+국외國外에서 임금을 범犯하기 위해 들어왔으니 다시 진晉나라의 대부大夫가 아니기 때문이다.
傳
제후齊侯가 진晉나라에서 돌아와 국도國都로 들어가지 않고注+국도國都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드디어 거莒나라를 습격襲擊하여, 차우且于의 성문城門을 공격攻擊하다가注+차우且于는 거莒나라의 읍邑이다. 다리에 상처를 입고 퇴각退却하였다.注+제후齊侯가 부상負傷한 것이다.
이튿날 제후齊侯는 다시 전투戰鬪하려고 군대와 수서壽舒에서 만나기로 약속約束하였다.注+수서壽舒는 거莒나라 땅이다.
기식杞殖과 화환華還이 수레에 갑사甲士를 싣고 밤에 차우且于의 소로小路(隧)로 들어가 거莒나라의 교외郊外에 노숙露宿하였다.注+두 사람은 제齊나라 대부大夫이다. 차우수且于隧는 좁은 길이다.
이튿날 기식杞殖과 화환華還이 선발대先發隊로 가다가 포후씨蒲侯氏에서 거자莒子를 만나니,注+포후씨蒲侯氏는 거莒나라의 국도國都에서 가까운 읍邑이다. 거자莒子는 이들에게 많은 재물財物을 주고 전투戰鬪하지 말게 하며 “결맹結盟하기를 청請하노라.”注+두 사람과 맹약盟約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지 말게 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자, 화주華周(華還)가 대답하기를 “재물財物을 탐貪하여 임금의 명命을 버리는 것은 거군莒君께서도 싫어하실 것입니다.注+화주華周는 바로 화환華還이다.
어제 저녁에 명命을 받고 아직 정오正午도 되기 전에 그 명命을 버린다면 어찌 임금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거자莒子가 친히 북을 치며 제군齊軍을 추격追擊하여 기량杞梁(杞殖)을 죽였다.注+기량杞梁은 바로 기식杞殖이다.
거인莒人은 제齊나라와 화친和親하였다.注+대국大國(齊國)에 승리勝利한 것이 더욱 두려웠기 때문에 화친和親한 것이다.
傳
제후齊侯가 돌아올 때 남편의 상구喪柩(屍身)를 맞으려고 나온 기량杞梁의 아내를 교외郊外에서 만나注+기량杞梁이 전사戰死하였으므로 그 아내가 교외郊外로 가서 그 상喪(屍身)을 맞이한 것이다. 사람을 보내어 조문弔問하자, 기량杞梁의 아내가 그 조문弔問을 사절謝絶하며 말하기를 “기식杞殖에게 죄罪가 있다면 어찌 감히 임금님의 조문弔問를 받겠습니까?注+만약 죄罪가 있다면 조상弔喪할 가치價値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죄罪가 없다면 선인先人의 낡은 집이 있으니 하첩下妾(賤妾)은 교외郊外에서 조문弔問을 받을 수 없습니다.”注+부인婦人은 외사外事(家庭 밖의 일)가 없기 때문이다. 하下는 천賤과 같다. 고 하였다.
제후齊侯는 그 집으로 가서 조상弔喪하였다.注+전문傳文은 부인婦人으로서 예禮가 있는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傳
제후齊侯가 장흘臧紇에게 땅을 주려 하자,注+그에게 전읍田邑을 주려 한 것이다.장손臧孫이 이를 듣고 제후齊侯를 알현謁見하니, 제후齊侯가 장흘臧紇에게 진晉나라 토벌討伐한 일을 말하였다.注+제후齊侯가 진晉나라 토벌討伐한 공로功勞를 스스로 자랑해 말한 것이다.
장흘臧紇이 대답하기를 “전공戰功[多]이 많았습니다만注+[부주]林: 전공戰功을 ‘다多’라 하니, 위의 ‘다多’는 전공戰功이고, 아래의 ‘다多’는 다소多少이다. 임금님의 행위行爲는 쥐와 비슷하십니다.
쥐는 낮에는 숨고 밤에 활동하며 침묘寢廟(사람이 거처하는 침실寢室)에 굴을 파지 않으니 이는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注+[부주]林: 침묘寢廟에는 사람이 많으므로 쥐가 그곳에 굴을 파고 살지 않는다.
지금 임금님께서는 진晉나라의 내란內亂을 들으신 뒤에 군대를 일으키셨고,注+작作은 군대를 일으키는 것이다. 진晉나라가 다시 안정安定을 찾자 다시 섬기려 하시니 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注+[부주]朱: 진晉나라가 안정安定되자 또 진晉나라를 섬기려 하는 것이 쥐가 낮에 숨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제후齊侯는 땅을 주지 않았다.注+장손臧孫은 제후齊侯가 장차 패망敗亡하리라는 것을 알고 그 읍邑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쥐에 비유하여 제후齊侯를 노怒하게 하여 읍邑을 주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자 한 것이다.
중니仲尼께서 말하기를 “지혜롭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注+[부주]林: 지혜를 운용運用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장무중臧武仲과 같은 지혜로도注+능히 제齊나라의 화禍를 피避한 것을 이른 것이다. 노魯나라에서 용납容納되지 못한 데에는(臧紇이 제齊나라로 출분出奔한 것을 이름) 그 까닭이 있으니 일을 처리함에 있어 사리事理를 따르지 않고 일을 시행施行함에 있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注+[부주]朱: 사리事理를 따르는 것을 ‘순順’이라 하고,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서恕’라 한다. 계씨季氏에게 아첨하여 장자長子공서公鉏를 폐廢하고 소자少子도자悼子를 세운 것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사리事理를 따르지 않은 것이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베푼 것은 일을 시행施行함에 있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것이다.
〈하서夏書〉에 ‘이 일을 남에게 시행하려면 그 일을 나에게 시행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라.[念玆在玆]’注+일서逸書이다. 이 일이 이 몸에 달렸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니, 일을 행할 때 항상 그 일이 내 몸에 있는 것 같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으니, 이는 사리를 따르고 남의 마음을 헤아려 베풀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注+[부주]朱: 〈하서夏書〉의 뜻을 해석解釋하여,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도리道理를 따르고 일을 남에게 베풀 때에는 반드시 내 마음을 미루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遂伐晉 :
齊侯가 晉나라를 친 것을 비로소 기록하였으니, 이는 세상의 變亂과 큰 關係가 있기 때문이다. 齊侯는 본래 晉나라를 討伐하기로 計劃하였으나, 衛나라를 친다는 핑계로 出兵하여 衛나라 땅에 當到한 뒤에는 군대를 옮겨 晉나라로 向하였기 때문에 ‘遂’字를 써서 그 行軍의 次序를 드러낸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期功之喪……非遭喪之禮慶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句末에 ‘慶’字는 衍文인 듯하다.
역주3役人相命 各殺其長 :
옛날에는 城을 쌓을 때 양쪽에 板子를 대고 그 가운데 흙을 넣고 다졌는데, 이를 ‘版築’이라 한다. 흙을 다지던 役夫가 실수로 板子를 떨어뜨려 밑에 있던 사람이 맞아 죽자, 평소 二慶을 미워하던 役人들이 忿怒하여 서로 말을 傳해 亂을 일으켰다는 것이 《左氏會箋》의 解釋이다. 文理로 보나 事理로 보나 이 解釋이 옳을 것 같으므로 이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4不義不可肆也 :
肆는 赦이니 襄公 9년 傳의 ‘肆眚(실수로 저지른 罪는 용서함)’의 肆와 같다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容恕’로 번역하였다.
역주5我實不天 子無咎焉 :
일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이는 내가 실로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이고 그대의 허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杜注는 옳지 않다고 한 《左氏會箋》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6中行氏以伐秦之役怨欒氏 :
中行氏는 荀氏의 한 支派이다. 襄公 14년에 秦나라를 치는 戰爭 때 荀偃이 中軍帥였는데 欒黶이 命을 따르지 않으므로 인해 撤軍하였다. 〈楊注〉
역주7唯魏氏及七輿大夫與之 :
이 傳文은 양쪽의 力量을 敍述한 것이다. 韓氏‧趙氏‧范氏(知氏‧范氏‧中行氏는 모두 荀氏이다)는 一派로 結成되고 欒氏는 매우 孤立되었으므로 오직 魏氏와 七輿大夫만이 欒盈을 도왔을 뿐이다. 〈楊注〉
역주8因[固] :
저본에는 ‘因’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固’로 바로잡았다.
역주9夫人有杞喪 :
이때 晉平公의 어머니 晉悼夫人이 親家의 오빠 杞伯의 喪을 입고 있었다.
역주10恐欒氏……爲婦人服而入 :
城中에 혹시 欒盈을 內應하는 무리가 范宣子의 길을 막을 憂慮가 있기 때문에 宣子에게 晉悼夫人과 같은 喪服을 입도록 하여 夫人의 侍女로 僞裝한 것이다.
역주11鞅請驂乘 持帶 :
“杜氏는 驂乘과 持帶를 모두 范鞅이 請한 것으로 생각했으니, 이는 옳지 않다. 단지 驂乘만을 請한 것이니 持帶는 아래의 遂超乘에 붙여서 읽어야 한다. 范鞅이 魏獻子의 衣帶를 잡고서 獻子의 수레에 뛰어오른 것이다.”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驂乘은 높은 사람을 모시고 함께 수레에 타는 것이다.
역주18欲擇才焉而立之 :
古禮에 嫡子가 없으면 庶子 중의 長子를 後嗣로 세우는 것인데, 여기에 ‘才能이 있는 아이를 選擇하고자 한다.’고 한 것은 紇을 세우려는 핑계였다. 〈楊注〉
역주19盡室將行 :
申豐은 이 일에 參與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서 온 家族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생각한 것이다. 〈楊注〉
역주20臧孫命北面重席 新樽[尊]絜之 :
臧孫은 바로 臧紇이다. 魯나라는 季‧孟‧叔‧臧‧郈 등 五氏의 位를 이은 자들을 모두 ‘孫’으로 칭하였다. 北面은 悼子를 위해 자리를 設置하여 南面하게 한 것이니 그를 높인 것이다. 重席은 두 層(겹)으로 깐 자리이다. 古代에는 땅에 자리를 깔고 앉았는데 자리의 層數를 그 地位의 高下에 따라 마련하였다. 《儀禮》 〈鄕飮酒禮〉에 “公은 三重이고 大夫는 二重이다.”고 하였으니, 重席은 大夫의 자리이다. ‘尊’은 본래 ‘樽’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經典釋文》에 의거하여 ‘尊’으로 訂正하였다. 新尊은 新酒杯이다. 〈楊注〉
역주21召悼子 降逆之 :
臧孫이 사람을 시켜 紇을 불러오게 하고, 紇이 오자 臧孫이 일어나 階段을 내려가서 紇을 맞이해 들어와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역주22獻酬禮畢 而通行爲旅 :
《儀禮》 〈鄕飮酒禮〉에 의하면 主人은 阼階(東階) 위에 西向해 자리를 펴고, 賓의 자리는 堂戶 서쪽에 南向해 펴며, 介의 자리는 西階 위에 東向해 펴고, 衆賓의 자리는 上賓의 서쪽에 南向해 편다. 처음 賓‧介 및 衆賓이 到着하여 문밖에서 東向해 서 있으면 主人이 나아가 문밖에서 西向해 맞이한다. 主人이 賓을 맞이해 들어가면 介와 衆賓은 西階 밑에 序列에 따라 선다. 主人이 賓에게 揖하고 올라가서 主人이 阼階 위에서 잔에 술을 따라 절하고 賓에게 올리면 賓은 西階 위에서 절하고 그 잔을 받아 다 마시고서 그 잔에 술을 따라 主人에게 돌리면 主人은 阼階 위에서 받아 그 술을 다 마신다. 主人이 또 술을 따라 자신이 먼저 마시고서 賓에게 잔을 돌리면 賓은 절하고 그 잔을 받아 자리 동쪽에 놓고서 내려간다. 主人이 또 西階 위에서 잔에 술을 따라 介에게 올리면 介는 西階 위에서 그 잔을 받아 다 마시고서 그 잔에 술을 따라 主人에게 돌리면 주인이 西階 위에서 그 잔을 받아 다 마신다. 그런 뒤에 介가 내려간다. 主人이 또 西階 위에서 술을 따라 衆賓에게 올리면 衆賓은 그 술을 다 마시고서 내려간다. 主人이 樂工을 이끌어 들여 詩를 노래하게 하고서 主人이 樂工에게 獻酒하고, 또 笙人을 이끌어 들여 堂下에 세워 놓고서 主人이 笙師에게 獻酒한 뒤에 主人과 賓‧介 및 衆賓이 모두 堂으로 올라가서 자리에 앉는다. 杜注에 ‘獻酬禮畢’이라 말한 것은 賓과 介와 衆賓에게 獻酬하는 禮가 끝난 것을 이르고, ‘通行爲旅’라고 말한 것은 한 사람이 賓을 향해 술잔을 들면 衆賓이 서로 술잔을 돌려 下位의 사람에까지 이른 것을 이른다. 〈正義〉
역주23使與之齒 :
旅酬 때에 미쳐 비로소 公鉏를 부르고, 또 公鉏를 일반 賓客과 나란히 앉게 하였으니, 公鉏를 庶子로 取扱한 것이다. 〈楊注〉
역주24家司馬 :
《周禮》 〈夏官〉의 家司馬注에 “卿大夫의 采地에는 王이 특별히 司馬를 두지 않고 각자 그 家臣을 司馬로 삼아, 그 土地의 軍賦를 主管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역주27孺子秩固其所也 :
이미 孺子로 稱하였으니 孟氏의 後嗣로 定해진 것이다. ‘固其所’는 본래 孟氏의 承繼人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28季氏信有力於臧氏矣 :
《晉語》 注에 “力은 功이다.”고 하였다. 秩은 본래 당연히 後繼者가 되도록 定해진 사람이니 그를 세워 주더라도 季氏의 功勞가 되기에 부족하지만, 羯은 後繼者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니 季氏가 그를 세워 준다면 진실로 功勞가 된다는 말로 羯이 반드시 季氏의 恩惠에 感動할 것이라는 뜻이다. 《左氏會箋》
역주29公鉏奉羯立于戶側 :
古代의 喪禮에 의하면 死者의 屍身이 아직 방 안에 있으면 後嗣가 된 자는 戶側(屍身이 있는 방문 옆)에서 南向해 서서 賓客의 弔喪을 받는다. 《禮記》 〈檀弓下〉에 “大夫의 喪에 庶子는 弔喪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羯이 이미 戶側에 서서 弔喪을 받았다면 孺子秩은 繼承人이 아닌 것이다. 〈楊注〉 羯이 喪主가 되어 賓客에게 절을 하였다면 孺子秩은 그 列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季孫이 ‘秩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0疾疢也 :
상대가 나를 사랑하여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잘못을 指摘하지 않는 것은 내 몸을 망치는 疾病과 같다는 말이다.
역주31藥石也 :
상대가 나를 미워하여 항상 나의 잘못만을 말하는 것은 나의 病을 治療하는 藥石과 같다는 말이다.
역주32美疢不如惡石 :
美疢은 苦痛이 없는 病이고, 惡石은 苦痛이 있는 石鍼이다. 〈楊注〉
역주41使無死曰 請有盟 :
〈楊注〉에는 “두 사람이 甲士를 거느리고 밤에 險한 길로 莒나라 郊外의 邑으로 들어갔다가 莒子가 거느린 大軍을 만났으니, 戰爭을 하면 반드시 죽을 形勢였다. 莒子는 그들에게 戰爭하지 말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結盟하기를 請해 그들을 물러가게 하려 한 것이다.”고 하였고, 《左氏會箋》에는 “莒子는 齊나라에 和親을 求하고자 하였으므로 두 사람을 죽이면 齊나라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財物을 주어 戰爭하지 말고 물러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두 사람은 齊軍의 本陣을 떠나 莒나라의 大軍을 만났으니 戰爭을 하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므로 ‘戰’을 ‘死’라고 말한 것뿐이고, ‘致死戰’을 이른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이 두 說의 뜻을 취하여 ‘無死’를 ‘無戰’으로 번역하였다.
역주42殖之有罪 何辱命焉 :
杞殖에게 罪가 있다면 어찌 감히 임금의 弔喪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43下妾不得與郊弔 :
古例에 의하면 賤者만이 郊外에서 弔問을 받는다. 杞梁은 大夫였기 때문에 그 아내가 郊外에서의 弔問을 謝絶한 것이다. 〈楊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