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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4)

춘추좌씨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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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좌씨전(4)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經]二十有三年春王二月癸酉朔 日有食之注+無傳 하다
[經]三月己巳 杞伯匄卒注+五同盟 하다
[經]夏 邾畀我來奔注+無傳 畀我是庶其之黨 同有竊邑叛君之罪 來奔 故書 하다
[經]葬杞孝公注+無傳 하다
[經]陳殺其大夫慶虎及慶寅注+書名 皆罪其專國叛君 言及 史異辭 無義例 하다
[經]陳侯之弟黃自楚歸于陳注+諸侯納之曰歸 黃至楚自理得直 故爲楚所納 하다
[經]晉欒盈復入于晉注+以惡入曰復入 하야 入于曲沃注+兵敗奔曲沃 據曲沃衆 還與君爭 非欲出附他國 故不言叛 하다
[經]秋 齊侯伐衛하야 注+兩事 故言遂 [附注] 林曰 此其書遂何 齊始伐盟主也 自袁婁以來 齊世從晉 於是始叛 則晉伯衰而諸侯二矣 晉之衰 諸夏之憂也 하다
[經]八月 叔孫豹帥師救晉하야 次于雍楡注+豹救晉 待命于雍楡 故書次 雍楡 晉地 汲郡朝歌縣東有雍城 [附注] 林曰 次而後救 匿其救之之形也 救而先次 宣其救之之聲也 自救晉而天下益多故矣 盟于宋而南北之勢成 會于申而淮夷至 戰于雞父而吳之敗者六國 於越入吳 春秋終焉 蓋於是焉始 故謹而書之也 是故自救盟主 他救皆不書 如昭二十一年晉以諸侯之師救宋 三十年楚救徐之類 皆不書 以爲不足書也 하다
[經]己卯 仲孫速卒注+孟莊子也 하다
[經]冬十月乙亥 臧孫紇出奔邾注+書名者 阿順季氏 爲之廢長立少 以取奔亡 罪之 하다
[經]晉人殺欒盈하다
[經]齊侯襲莒注+輕行 掩其不備曰襲 因伐晉還襲莒 不言遂者 間有事 [附注] 林曰 春秋書襲者 此特筆也 하다
[傳]二十三年春 杞孝公卒커늘 晉悼夫人喪之注+悼夫人 晉平公母 杞孝公姊妹 로되 平公不徹樂하니 非禮也注+徹 去也 [附注] 林曰
爲鄰國闕注+禮 諸侯絶期 故以鄰國責之 하나니라
[傳]陳侯如楚注+朝也 하니 公子黃愬二慶於楚하다
楚人召之注+二慶 虎及寅也 二十年 二慶譖黃 黃奔楚自理 今陳侯往 楚乃信黃 爲召二慶 하니 使慶樂往하다
殺之注+慶樂 二慶之族 二慶畏誅 故不敢自往 [附注] 林曰 楚殺慶樂 하니 慶氏以陳叛注+因陳侯在楚而叛之 不書叛 不以告 하다
屈建從陳侯圍陳하니 陳人城注+治城以距君 屈建 楚莫敖 板隊而殺人하다
注+慶氏忿其板隊 遂殺築人 故役人怒而作亂 [附注] 林曰 執役之人怒慶氏殺人 乃相告作亂하고 遂殺慶虎慶寅하니 楚人納公子黃하다
君子謂慶氏호대
注+肆 放也 [附注] 林曰 言不可放在人上
故書曰 惟命不于常注+周書康誥 言有義則存 無義則亡 이라하니라
[傳]晉將嫁女于吳하니 齊侯使析歸父媵之하야 以藩載欒盈及其士注+藩 車之有障蔽者 使若媵妾在其中 [附注] 林曰 載欒盈及其腹心爪牙之士 하야 納諸曲沃注+欒盈邑也 하다
欒盈夜見胥午而告之注+胥午 守曲沃大夫 [附注] 林曰 夜見 不欲使人知 告以欲襲晉 하니 對曰 不可
天之所廢 誰能興之리오
子必不免하리라
吾非愛死也 知不集也注+集 成也 ᄅ새니라
盈曰 雖然이나 因子而死 吾無悔矣리라
注+言我雖不爲天所祐 子無天咎 故可因 하라 許諾하다
伏之而觴曲沃人注+胥午匿盈而飮其衆 할새 樂作 午言曰 今也得欒孺子何如注+孺子 欒盈 對曰 得主而爲之死라도 猶不死也라하고 皆歎하며 有泣者하다
爵行 又言하니 皆曰 得主 何貳之有리오
盈出하야 徧拜之注+謝衆之思己 하다
四月 欒盈帥曲沃之甲하고 因魏獻子하야 以晝入絳注+獻子 魏舒 絳 晉國都 [附注] 林曰 以晝入絳 輕兵掩晉之不備也 朱曰 衆皆樂爲之用 故以晝入焉 하다
欒盈佐魏莊子於下軍注+莊子 魏絳 獻子之父 할새 獻子私焉이라
故因之注+私 相親愛 하다
趙氏以原屛之難怨欒氏注+成八年 莊姬譖之 欒郤爲徵 하고 韓趙方睦注+韓起讓趙武 故和睦 하며 注+十四年晉伐秦 欒黶違荀偃命 曰余馬首欲東 하고 而固與范氏和親注+范宣子佐中行偃於中軍 하며 知悼子少하야 而聽於中行氏注+悼子 知罃之子荀盈也 少 年十七 知氏中行氏同祖 故相聽從 하고 程鄭嬖於公注+鄭亦荀氏宗 하다
樂王鮒侍坐於范宣子러니 或告曰 欒氏至矣라한대 宣子懼어늘 桓子曰 奉君以走固宮이면 必無害也注+桓子 樂王鮒 리이다
且欒氏多怨하고 子爲政하며 欒氏自外하고 子在位하니 其利多矣
旣有利權하고 又執民柄注+賞罰爲民柄 하니 將何懼焉
欒氏所得 其唯魏氏乎ᄂ저 而可强取也注+[附注] 林曰 魏獻子雖與欒盈 其心未 可以强劫而取之
夫克難在權하니 子無懈矣注+[附注] 林曰 無懈怠於用權可矣 어다
公有姻喪注+하다
王鮒使宣子墨縗冒絰注+晉自殽戰還 遂常墨縗 [附注] 林曰 樂王鮒使宣子墨縗以絰蒙冒其首 一云縗冒絰三者 皆墨之 하고 二婦人輦以如公注+하야 奉公以如固宮注+固宮 宮之有臺觀備守者 하다
范鞅逆魏舒注+用王鮒計 欲强取之 하니 則成列旣乘하고 將逆欒氏矣注+[附注] 林曰 魏獻子之兵 成行列旣乘車 將迎欒盈 與之合師矣 러라
趨進曰 欒氏帥賊以入일새 鞅之父與二三子在君所矣注+二三子 諸大夫 使鞅逆吾子하니 注+驂乘必持帶 備隋隊 하고
遂超乘注+跳上獻子車 하야 右撫劒하고 左援帶注+劫之 하야 命驅之出注+[附注] 林曰 范鞅命驅車出 하다
僕請注+請所至 한대 鞅曰 之公注+[附注] 林曰 之 往也 言往公所 하라
宣子逆諸階注+逆獻子也 하야 執其手하고 賂之以曲沃注+恐不與己同心 하다
斐豹 隷也 著於注+蓋犯罪沒爲官奴 以丹書其罪 하다 欒氏之力臣曰督戎注+[附注] 林曰 欒盈有勇力之臣曰督戎 이니 國人懼之하다
斐豹謂宣子曰 苟焚丹書 我殺督戎하리다 宣子喜 曰 而殺之注+[附注] 林曰 而 汝也 所不請於君焚丹書者 有如日注+言不負要 明如日 이라하고 乃出豹而閉之注+閉著門外 하다
督戎從之하니 注+隱 短牆也 [附注] 林曰 督戎見斐豹出門 從之拒戰 斐豹乃踰短牆而待其至 라가 督戎踰入 豹自後擊而殺之하다
范氏之徒在臺後注+公臺之後 하니 欒氏乘公門注+乘 登也 [附注] 林曰 欒氏之兵登公宮之門 하다
宣子謂鞅曰 矢及君屋하니 死之注+[附注] 林曰 令其致死力戰 리라
鞅用劒以帥卒注+用劒 短兵接敵 欲致死 하니 欒氏退어늘
注+鞅攝宣子戎車 타가 遇欒樂注+樂 盈之族 曰 樂 注+[附注] 林曰 范鞅呼其名而謂之曰 樂免之 言不免汝 어다
將訟女於天注+言雖死猶不舍女罪 하리라
樂射之不中하니 又注注+注 屬矢於弦也 러니 則乘槐本而覆注+欒樂車轢槐而覆 이어늘 或以戟鉤之하니 斷肘而死하고 欒魴傷하다
欒盈奔曲沃하니 晉人圍之注+魴 欒氏族 [附注] 朱曰 戰而中傷 하다
[傳]秋 齊侯伐衛하다
先驅 穀榮御王孫揮하고 召揚爲右注+先驅 前鋒軍 [附注] 林曰 王孫揮爲前鋒帥 穀榮爲御 하며 申驅 成秩御莒恒하고 申鮮虞之傅摯爲右注+申驅 次前軍 傅摯 申鮮虞之子 [附注] 林曰 莒恒爲次前軍帥 成秩爲御 하며 曹開御戎하고 晏父戎爲右注+公御右也 하며 貳廣 上之登御邢公하고 盧蒲癸爲右注+貳廣 公副車 [附注] 林曰 邢公爲二廣帥 上之登爲御 하며 牢成御襄罷師하고 狼蘧疏爲右注+左翼曰啓 [附注] 林曰 襄罷師爲左翼帥 牢成爲御 하며 商子車御侯朝하고 桓跳爲右注+右翼曰胠 [附注] 林曰 侯朝爲右翼帥 商子車爲御 하며 大殿 商子游御夏之御寇하고 崔如爲右注+大殿 後軍 [附注] 林曰 夏之御寇爲大殿後軍帥 商子游爲御 하며 燭庸之越駟乘注+四人共乘殿車也 傳具載此 言莊公廢舊臣 任武力 하야 自衛將遂伐晉하다
晏平仲曰 君恃勇力以伐盟主하니 若不濟 國之福也注+[附注] 朱曰 若伐晉而不勝 則君知恐懼而修德 齊之福也 어니와 不德而有功이면 憂必及君하리다
崔杼諫曰 不可하다
臣聞之컨대 小國間大國之敗而毁焉注+[附注] 林曰 言齊間晉有欒盈之禍而伐之 이면 必受其咎라하니 君其圖之하소서 弗聽하다
陳文子見崔武子注+文子 陳完之孫須無 武子 崔杼也 曰 將如君何注+[附注] 林曰 言君將伐晉如之何 武子曰 吾言於君이로되 君弗聽也
以爲盟主而利其難注+[附注] 林曰 以晉爲諸侯之盟主 反利其國有難而欲伐之 하니 群臣若急이면 君於何有注+言有急不能顧君 欲弑之以說晉 리오
子姑止之注+[附注] 林曰 且往止君使勿伐晉 하라
文子退하야 告其人曰 崔子將死乎ᄂ저
謂君甚而又過之注+弑君之惡 過於背盟主 [附注] 朱曰 謂君伐盟主 其惡已甚 而杼欲弑君 則其惡又過於背盟主也 하니 不得其死注+[附注] 朱曰 必不得以善終 리라
過君以義라도 猶自抑也어늘 況以惡乎注+自抑損 [附注] 林曰 所行之義 有過於君 人臣之道 猶自抑損 不敢求過 況欲以惡過其君乎 朱曰 以義理救其君之過 尙當自抑 不敢是己非君 況欲行弑逆之惡乎
齊侯遂伐晉하야 取朝歌注+朝歌 今屬汲郡 하고 爲二隊하야 入孟門하고 登大注+二隊 分兵爲二部 孟門 晉隘道 大行山在河內郡北 하다
於熒庭注+張武軍 謂築壘壁 熒庭 晉地 하야 戍郫邵注+取晉邑而守之 하고 封少水注+封晉尸於少水 以爲京觀 하야 以報平陰之役하고 乃還注+平陰役在十八年 하다
趙勝帥東陽之師以追之하야 獲晏氂注+趙勝 趙旃之子 東陽 晉之山東 魏郡廣平以北 晏氂 齊大夫 하다
[傳]八月 叔孫豹帥師救晉하야 次于雍楡하니 禮也注+救盟主 故曰禮
[傳]季武子無適子하고 公彌長이로되 而愛悼子하야 欲立之注+公彌 公鉏 悼子 紇也 [附注] 朱曰 二子皆庶出 公彌爲兄 而季孫獨愛少子 欲立悼子爲後하야 訪於申豐 曰
彌與紇 吾皆愛之어니와 注+[附注] 林曰 難言立少 故言欲立有才者 하노라
申豐趨退歸하야 注+申豐 季氏屬大夫 하다
他日 又訪焉한대 對曰 其然이면 將具敝車而行注+其然 猶必爾 하리다하니 乃止注+止 不立紇 하다
訪於臧紇한대 臧紇曰 飮我酒 吾爲子立之하리라
季氏飮大夫酒할새 臧紇爲客注+爲上賓 하다
旣獻注+已獻酒 注+酒樽旣新 復絜澡之 하고 하니 大夫皆起注+臧孫下迎悼子 하다
及旅 而召公鉏注+하야 注+使從庶子之禮 列在悼子之下 하니 季孫失色注+恐公鉏不從 하다
季氏以公鉏爲馬正注+馬正 하니 慍而不出注+[附注] 朱曰 被廢而怒 不出視事 하다
閔子馬見之注+閔子馬 閔馬父 하고 曰子無然하라
禍福無門이라 唯人所召 爲人子者 患不孝 不患無所注+所 位處 니라
敬共父命이면 何常之有注+言廢置在父 無常位也 리오
若能孝敬이면 富倍季氏可也注+父寵之 則可富 어니와 姦回不軌 禍倍下民可也注+禍甚於貧賤
公鉏然之하야 敬共朝夕하야 恪居注+次 舍也 하니 季孫喜하야 使飮己酒注+[附注] 林曰 使公鉏爲武子設燕禮 하고 而以具往하야 盡舍旃注+具 饗燕之具 [附注] 林曰 季武子以享燕之具往公鉏家 盡棄其具以與公鉏 하다
故公鉏氏富하고 又出爲公左宰注+出季氏家 臣仕於公 [附注] 林曰 公鉏又自季氏家臣 出仕於公 爲左宰 하다
孟孫惡臧孫注+不相善 하고 季孫愛之注+愛其成己志 하다
孟氏之豐點好羯也注+羯 孟莊子之庶子 孺子秩之弟孝伯也 [附注] 林曰 豐點 孟莊子御騶之官 하야 曰 從余言이면 必爲孟孫注+爲孟孫後 하리라 再三云注+[附注] 林曰 豐點再三爲羯言之 하니 羯從之하다
孟莊子疾 豐點謂公鉏호대 苟立羯이면 請讐臧氏注+使孟氏與公鉏共憎臧孫 하리라
公鉏謂季孫曰 注+固所當立 어니와 若羯立이면注+臧氏因季孫之欲而爲定之 猶爲有力 今若專立孟氏之少 則季氏有力過於臧氏 리라 弗應하다
己卯 孟孫卒하니 注+戶側 喪主 [附注] 朱曰 戶側 喪主之位 하다
季孫至하야 入哭而出曰 秩焉在 公鉏曰 羯在此矣니이다
季孫曰 孺子長이라 公鉏曰 何長之有릿가
唯其才也注+季孫廢鉏立紇 云欲擇才 故以此答之 니이다
且夫子之命也注+遂誣孟孫 라하고 遂立羯하니 秩奔邾하다
臧孫入哭 甚哀多涕하다注+[附注] 林曰 弔畢而出 커늘 其御曰 孟孫之惡子也로되 而哀如是하니 季孫若死 其若之何
臧孫曰 季孫之愛我 注+常志相順從 身之害 孟孫之惡我 注+常志相違戾 猶藥石之療疾
夫石 猶生我注+愈己疾也 어니와 疢之美 其毒滋多
孟孫死하니 吾亡無日矣注+[附注] 林曰 愚按此乃臧武仲廢鉏立紇 作不順於先 及見公鉏廢秩立羯 則知禍將及己 哭甚哀多涕 蓋有所感而傷之也 其御不解而問 故據理以答之 此其所以爲多知也 리라
孟氏閉門하고 告於季孫曰 臧氏將爲亂하야 不使我葬注+欲爲公鉏讐臧氏 이라 季孫不信이나 臧孫聞之하고注+戒 爲備也 하다
冬十月 孟氏將辟하야 藉除於臧氏注+辟 穿藏也 於臧氏借人除葬道 [附注] 林曰 孟氏將葬穿藏 한대 臧孫助之注+正夫 遂正 하고 除於東門 甲從己而視之注+畏孟氏 故從甲士視作者 하다
孟氏又告季孫하니 季孫怒하야 命攻臧氏注+見其有甲故 하다
乙亥 臧紇斬鹿門之關以出奔邾注+魯南城東門 하다
臧宣叔娶于鑄하야 生賈及爲而死注+鑄國 濟北蛇丘縣어늘 繼室以其姪注+女子謂兄弟之子爲姪 하니 穆姜之姨子也注+姪 穆姜姨母之子 與穆姜爲姨昆弟
生紇하야 長於公宮하니 姜氏愛之
故立之注+立爲宣叔嗣 [附注] 林曰 姪與穆姜親 故紇長育於公宮 하다
臧賈臧爲出在鑄注+還舅氏也 러니 臧武仲自邾使告臧賈하고 且致大蔡焉注+大蔡 大龜 [附注] 林曰 大蔡 龜名也 龜出蔡地 因以爲名 曰 紇不佞하야 失守宗祧注+遠祖廟爲祧 [附注] 林曰 近親廟爲宗 하니 注+不爲天所弔恤 하노라
紇之罪 不及不祀注+言應有後 하니 子以大蔡納請이면 其可注+請爲先人立後 [附注] 林曰 子 謂臧賈 以大蔡納魯 請爲先人立後 其可得立 리라
賈曰 是家之禍也 非子之過也 賈聞命矣라하고 再拜受龜하야 使爲以納請注+賈使爲爲己請 한대 遂自爲也注+하다
臧孫如防注+防 臧孫邑 하야 使來告曰 紇非能害也 知不足也注+言使甲從己 但慮事淺耳
非敢私請注+이라 苟守先祀하야 無廢二勳注+二勳 文仲宣叔 이면 敢不辟邑注+據邑請後 故 [附注] 林曰 敢不辟防邑而去 이리오
乃立臧爲注+[附注] 林曰 乃立臧爲爲臧氏後 하다 臧紇致防而奔齊注+[附注] 林曰 得立後 乃致其邑而奔 하다
注+[附注] 林曰 防邑之人 其盟我乎注+謂陳其罪惡 盟諸大夫以爲戒 ᄂ저 臧孫曰 無辭注+廢長立少 季孫所忌 故謂無辭以罪己 리라
將盟臧氏注+[附注] 林曰 魯果將盟臧氏以爲戒 季孫召外史掌惡臣하야 而問盟首焉注+惡臣 諸奔亡者 盟首 載書之章首 한대 對曰
盟東門氏也注+[附注] 林曰 在宣公十八年 曰 毋或如 不聽公命하고 殺適立庶注+文公命立子惡 公子遂殺之 立宣公 하라하고
盟叔孫氏也注+[附注] 林曰 在成公十六年 曰 毋或如叔孫僑如 欲廢國常하고 蕩覆公室注+謂譖公與季孟於晉 하라하니라
季孫曰 臧孫之罪 皆不及此하니라
孟椒曰 盍以其犯門斬關잇가 季孫用之하야 乃盟臧氏曰 無或如臧孫紇 干國之紀하고 犯門斬關注+干 亦犯也 하라하다
臧孫聞之하고 曰 國有人焉이라
誰居
其孟椒乎注+孟椒 孟獻子之孫子服惠伯 居 猶與也 ᄂ저
[傳]晉人克欒盈于曲沃하고 盡殺欒氏之族黨하니 欒魴出奔宋하다
書曰 晉人殺欒盈이라하고 不言大夫 言自外也注+自外犯君而入 非復晉大夫
[傳]齊侯還自晉하야 不入注+不入國 하고 遂襲莒하야 門于且于注+且于 莒邑 타가 傷股而退注+齊侯傷 하다
明日 將復戰하야 期于壽舒注+壽舒 莒地 하다
杞殖華還載甲하고 夜入且于之隧하야 宿於莒郊注+二子 齊大夫 且于隧 狹路 하다
明日 先遇莒子於蒲侯氏注+蒲侯氏 近莒之邑 하다 莒子重賂之하야 注+欲以盟要二子 無致死戰 하노라 華周對曰 貪貨棄命 亦君所惡也注+華周 卽華還
昏而受命하고 日未中而棄之 何以事君이릿가
莒子親鼓之하여 從而伐之하야 獲杞梁注+杞梁 卽杞殖 하다
莒人行成注+勝大國益懼 故行成 하다
齊侯歸 遇杞梁之妻於郊注+梁戰死 妻行迎喪 하야 使弔之한대 辭曰 注+言若有罪 不足弔 이릿가
若免於罪 猶有先人之敝廬在하니 注+婦人無外事故 下 猶賤也 니이다
齊侯弔諸其室注+傳善婦人有禮 하다
[傳]齊侯將爲臧紇田注+與之田邑 한대 臧孫聞之하고하니 齊侯與之言伐晉注+齊侯自道伐晉之功 하다
對曰 多則多矣注+[附注] 林曰 上多字 戰功也 下多字 多少也 어니와 抑君似鼠니이다
夫鼠 晝伏夜動하고 하니 畏人故也注+[附注] 林曰 寢廟人多 鼠不卽以爲窋穴 니이다
今君聞晉之亂而後作焉注+作 起兵也 하고 寧將事之리니 非鼠如何注+[附注] 朱曰 晉寧又將事之 猶鼠之晝伏也 잇가 乃弗與田注+臧孫知齊侯將敗 不欲受其邑 故以比鼠 하다
仲尼曰 知之難也注+[附注] 林曰 用知之難也 로다
有臧武仲之知注+謂能辟齊禍 로도 而不容於魯國 有由也 注+[附注] 朱曰 循理之謂順 推己之謂恕 季氏廢長立少 是作不順 己所不欲而施之人 是施不恕
夏書曰 注+逸書也 念此事在此身 言行事當常念如在己身也 라하니 順事恕施也注+[附注] 朱曰 釋書之意 以爲作事必順而施之必恕 니라


23년 봄 주왕周王 2월 초하루 계유일癸酉日일식日食이 있었다.注+이 없다.
3월 기사일己巳日기백杞伯하였다.注+양공襄公과 다섯 차례 동맹同盟하였다.
여름에 주비아邾畀我내분來奔하였다.注+이 없다. 비아畀我서기庶其으로 서기庶其와 함께 절취竊取해 임금을 배반背叛를 짓고서 나라로 도망해 왔기 때문에 기록한 것이다.
기효공杞孝公장사葬事 지냈다.注+이 없다.
나라가 그 대부大夫경호慶虎경인慶寅을 죽였다.注+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들 모두 국정國政전단專斷하고 임금을 배반背叛한 것을 죄책罪責한 것이다. ‘’이라고 말한 것은 사관史官문사文辭를 달리한 것일 뿐, 특별한 의례義例가 없다.
진후陳侯의 아우 나라에서 나라로 돌아왔다.注+망명亡命한 사람을 제후諸侯가 도와 본국本國으로 들여보내는 것을 ‘’라 한다. 나라로 가서 소송訴訟제기提起승소勝訴하였기 때문에 나라가 그를 들여보낸 것이다.
나라 난영欒盈나라로 다시 들어가서注+군대를 거느리고 쳐들어간 것을 ‘복입復入’이라 한다.곡옥曲沃으로 들어갔다.注+전쟁戰爭패배敗北하자 곡옥曲沃으로 도망가서 곡옥曲沃민중民衆에 의지하여 도리어 그 임금과 다투었고, 출분出奔하여 타국他國에 붙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반背叛’했다고 말하지 않은 것이다.
가을에 제후齊侯나라를 토벌討伐하고서 드디어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注+두 일이기 때문에 ‘(드디어)’라고 말한 것이다. [부주]林: 이곳에 ‘’字를 쓴 것은 어째서인가? 나라가 비로소 맹주盟主토벌討伐하였기 때문이다. 성공成公 2년에 원루袁婁에서 결맹結盟한 뒤로 나라는 대대로 나라에 복종服從하였는데, 이때에 와서 비로소 배반背叛하였으니, 이는 나라의 패업霸業하여 제후諸侯가 두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다. 나라가 한 것은 제하諸夏(中國)의 우환憂患이다.
8월에 숙손표叔孫豹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구원救援하러 가서 옹유雍楡주둔駐屯하였다.注+숙손표叔孫豹나라를 구원救援하고서 옹유雍楡에서 을 기다렸기 때문에 ‘(駐屯)’라고 한 것이다. 옹유雍楡나라 땅이다. 급군汲郡조가현朝歌縣 동쪽에 옹성雍城이 있다. [부주]林: 주둔駐屯[次]한 뒤에 구원救援하는 것은 구원救援하려는 형세形勢를 숨기기 위함이고, 구원救援하기 전에 먼저 주둔駐屯하는 것은 구원救援한다는 소문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나라를 구원救援한 뒤로 천하天下에 더욱 사고事故가 많아졌다. 나라에서 결맹結盟하자(襄公 27년) 남북南北형세形勢(晉나라와 나라의 형세가 대등對等해졌음)가 이루어졌고, 회합會合에(昭公 4년) 회이淮夷가 참여하였고, 계보雞父전쟁戰爭(昭公 23년)에 나라가 육국六國(頓‧)을 패배敗北시키고 나라가 나라에 편입編入되었으니, 춘추春秋가 끝난 것이 대개 이때부터 비롯하였다. 그러므로 삼가는 뜻에서 이를 기록한 것이다. 그러므로 맹주盟主구원救援한 뒤부터는 타국他國구원救援한 것은 모두 기록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소공昭公 21년에 나라가 제후諸侯의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구원救援한 것과 30년에 나라가 나라를 구원救援는 모두 기록하지 않았으니, 이는 모두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기묘일己卯日중손속仲孫速하였다.注+중손속仲孫速맹장자孟莊子이다.
겨울 10월 을해일乙亥日장손흘臧孫紇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이름을 기록한 것은 그가 계씨季氏에게 아첨阿諂순종順從하여 도자悼子를 위해 장자長子하고 소자少子를 세웠다가 도망가는 자초自招하였기 때문에 그를 죄책罪責한 것이다.
진인晉人난영欒盈을 죽였다.
제후齊侯나라를 습격襲擊하였다.注+경무장輕武裝한 군대를 거느리고 신속迅速히 가서 상대相對대비對備하지 않는 틈을 타서 몰래 공격攻擊하는 것을 ‘’이라 한다. 나라를 토벌討伐하고 돌아오다가 나라를 습격襲擊한 것인데, ‘(드디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중간에 다른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주]林: 《춘추春秋》에 습격한 것을 기록한 것은 특필特筆(특별히 기록함)이다.
23년 봄에 기효공杞孝公하자 진도공晉悼公부인夫人상복喪服을 입었는데도注+도공悼公부인夫人진평공晉平公의 어머니이고 기효공杞孝公자매姊妹이다.진평공晉平公음악音樂정지停止하지 않았으니 가 아니다.注+철거徹去(거두어 치움)하는 것이다. [부주]林: 기공친期功親성악聲樂철거撤去하지 않은 것은 을 당한 사람의 가 아니다.
에 의하면 이웃 나라에 상사喪事가 있으면 음악音樂정지停止하는 것이다.注+제후諸侯기복朞服 이하는 을 입지 않기 때문에 이웃 나라의 로써 꾸짖은 것이다.
진후陳侯나라에 가니,注+조현朝見하기 위해 나라에 간 것이다.공자公子이 두 경씨慶氏나라에 제소提訴하였다.
초인楚人이 두 경씨慶氏를 부르니注+이경二慶경호慶虎경인慶寅이다. 양공襄公 20년에 이경二慶공자公子나라에 참소讒訴하니 나라로 출분出奔하여 자신自身무죄無罪변명辨明하였다. 지금 진후陳侯나라에 가니 초인楚人의 말을 믿고서 이경二慶을 부른 것이다. 경씨慶氏는 감히 가지 못하고 경락慶樂을 대신 보내었다.
초인楚人경락慶樂을 죽이니注+경락慶樂이경二慶종족宗族이다. 이경二慶주살誅殺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감히 직접 가지 못한 것이다. [부주]林: 초인楚人경락慶樂을 죽인 것이다. 경씨慶氏나라 인민人民을 거느리고 나라를 배반背叛하였다.注+진후陳侯나라에 가 있는 기회機會이용利用나라를 배반背叛한 것이다. 에 ‘’이라고 기록하지 않은 것은 나라에 통고通告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름에 나라 굴건屈建이 군대를 거느리고 진후陳侯를 따라가서 나라를 포위包圍하니, 진인陳人방어防禦하기 위해 을 쌓는데注+수리修理하여 임금을 막은 것이다. 굴건屈建나라 막오莫敖이다. 판자板子가 떨어져 사람이 맞아 죽었다.
그러자 역부役夫들이 서로 하여 그 (監督官)을 죽이고서注+경씨慶氏판자板子를 떨어뜨린 것에 화를 내어 드디어 을 쌓던 사람을 죽였기 때문에 역부役夫들이 노하여 반란叛亂을 일으킨 것이다. [부주]林: 역부役夫들은 경씨慶氏가 그 사람을 죽인 것에 노하여 서로 하여 을 일으킨 것이다. 드디어 경호慶虎경인慶寅을 죽이니, 초인楚人공자公子나라로 들여보냈다.
군자君子경씨慶氏를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謂]하였다.
불의不義용서容恕[肆]할 수 없다.注+(놓아줌)이다. [부주]林: 사람들의 윗자리에 앉혀서[放]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서경書經》에 ‘천명天命은 항상 한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다.’注+는 〈주서周書강고康誥〉이다. 가 있으면 보존保存되고 가 없으면 멸망滅亡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나라가 나라로 딸을 출가出嫁시키려 하니, 제후齊侯석귀보析歸父에게 잉첩媵妾호송護送나라로 가게 하면서 휘장을 친 수레 안에 난영欒盈과 그 종자從者들을 태우고 가서注+은 휘장이 있는 수레이다. 잉첩媵妾이 그 안에 타고 있는 것처럼 위장僞裝한 것이다. [부주]林: 난영欒盈과 그 심복心腹무사武士[爪牙]들을 태운 것이다. 곡옥曲沃으로 들여보내게 하였다.注+곡옥曲沃난영欒盈이다.
난영欒盈이 밤에 서오胥午를 찾아가서 반란叛亂을 일으키겠다고 하니注+서오胥午곡옥曲沃을 지키는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밤에 만난 것은 나라를 습격襲擊하고자 한다고 하는 것을 사람들이 모르게 하고자 한 것이다. 서오胥午가 대답하기를 “안 됩니다.
하늘이 폐기廢棄한 사람을 누가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반드시 죽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목숨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성공成功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注+이다. 라고 하였다.
난영欒盈이 말하기를 “비록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그대에 의지하여 죽는다면 나는 후회後悔하지 않을 것이다.
성공成功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는 내가 실로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이니 그대는 자신의 허물로 여기지 말라.”注+나는 비록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하지만 그대는 하늘에 를 진 것이 없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니, 서오胥午가 허락하였다.
서오胥午난영欒盈을 숨겨 놓고서 곡옥曲沃 사람들을 불러 술을 대접待接할 때注+서오胥午난영欒盈을 숨겨 놓고서 대중大衆에게 술을 대접待接한 것이다. 음악音樂연주演奏되자 서오胥午가 말하기를 “지금 난유자欒孺子를 만난다면 어찌하겠는가?”注+유자孺子난영欒盈이다. 라고 하니, 곡옥曲沃 사람들이 “주인主人을 만날 수 있다면 비록 그를 위해 죽는다 해도 죽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하고서 모두 탄식歎息하며 눈물을 흘리는 자까지 있었다.
술잔이 몇 바퀴 돈 뒤에 서오胥午가 다시 말하자, 모두 “주인主人을 만난다면 어찌 두마음을 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그러자 난영欒盈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두루 절을 하며 감사感謝하였다.注+대중大衆이 자기를 잊지 않고 생각해 준 것에 대해 사례謝禮한 것이다.
4월에 난영欒盈곡옥曲沃갑병甲兵을 거느리고서 위헌자魏獻子에 의지하여(魏獻子의 내응內應에 의지함) 대낮에 강성絳城으로 쳐들어갔다.注+헌자獻子위서魏舒이다. 나라 국도國都이다. [부주]林: 대낮에 강성絳城으로 쳐들어간 것은 경병輕兵으로 나라가 대비對備하지 않은 틈을 타서 몰래 습격襲擊한 것이다. [부주]朱: 대중大衆이 모두 난영欒盈의 쓰임이 되는 것을 즐거워했기 때문에 대낮에 쳐들어간 것이다.
당초에 난영欒盈하군下軍에서 위장자魏莊子보좌輔佐할 때注+장자莊子헌자獻子의 아버지 위강魏絳이다. 헌자獻子친분親分이 두터웠다.
그러므로 헌자獻子에게 의지한 것이다.注+는 서로 친애親愛한 것이다.
조씨趙氏(趙同)과 (趙括)이 화난禍難을 당한 일로 난씨欒氏에게 원한怨恨을 품었고注+성공成公 8년에 장희莊姬가 〈을 일으키려 한다고 진경공晉景公에게〉 참소할 때 난씨欒氏극씨郤氏가 이를 입증立證하였다. 한씨韓氏조씨趙氏는 바야흐로 화목和睦하였으며,注+한기韓起상군上軍조무趙武에게 사양하였기 때문에(襄公 12년 ) 서로 화목和睦하였다. 중행씨中行氏나라를 토벌討伐전쟁戰爭 때의 일로 난씨欒氏에게 원한怨恨을 품었고注+양공襄公 14년에 나라가 나라를 칠 때 난염欒黶순언荀偃을 어기고서 말하기를 “내 말머리는 동쪽으로 하고자 한다.”고 하였다. 본래부터 범씨范氏화목和睦하였으며,注+범선자范宣子중군中軍에서 중행언中行偃보좌輔佐하였다. 지도자知悼子는 나이가 어려서 모든 일을 중행씨中行氏가 시키는 대로 따르고,注+도자悼子지앵知罃의 아들 순영荀盈이다. 어리다는 것은 이때 나이가 17세였다. 지씨知氏중행씨中行氏는 한 조상祖上자손子孫이기 때문에 서로 시키는 대로 따른 것이다. 정정程鄭진평공晉平公총애寵愛를 받고 있었다.注+정정程鄭순씨荀氏종족宗族이다.
그러므로 오직 위씨魏氏칠여대부七輿大夫만이 난영欒盈을 도왔다.注+칠여七輿관명官名이다.
악왕부樂王鮒범선자范宣子를 모시고 앉아 있는데 어떤 이가 와서 “난씨欒氏가 쳐들어옵니다.”라고 하자 선자宣子가 두려워하니, 환자桓子가 말하기를 “임금을 모시고 고궁固宮(別宮의 이름)으로 도주逃走하면 반드시 가 없을 것입니다.注+환자桓子악왕부樂王鮒이다.
그리고 또 난씨欒氏에게는 원수怨讐가 많고 당신은 정권政權을 쥐고 있으며, 난씨欒氏는 밖에서 들어왔고 당신은 집정執政지위地位에 있으니 유리有利한 점이 많습니다.
이미 유리有利조건條件권력權力을 가진데다가 백성을 상벌賞罰할 수 있는 권한權限[柄]까지 가졌으니注+상벌賞罰은 백성을 다스리는 권병權柄이다. 두려워할 게 뭐 있습니까?
난씨欒氏를 돕는 사람은 오직 위씨魏氏뿐인데, 그 또한 무력武力으로 겁박劫迫해 잡아 올 수 있습니다.注+[부주]林: 위헌자魏獻子가 비록 난영欒盈을 돕지만 그 마음을 아직 굳히지 않았으니 무력武力으로 겁박劫迫해 그를 잡아 올 수 있다는 말이다.
반란叛亂평정平定[克]하는 것은 권력權力에 달렸으니 당신은 게을리 하지 마소서.”注+[부주]林: 권력權力사용使用하는 일에 게을리 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이때 진후晉侯에게 인척姻戚이 있었다.注+부인夫人에게 기백杞伯이 있었다.
왕부王鮒선자宣子에게 검은 상복喪服을 입고 두건頭巾을 쓰고 요질腰絰을 띠고서注+나라는 전쟁戰爭(僖公 33년)에서 돌아온 뒤부터 드디어 검은 상복喪服상용常用하였다. [부주]林: 악왕부樂王鮒선자宣子에게 검은 상복喪服을 입고 을 그 머리에 쓰게 한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喪服)‧(帽子)‧(腰帶) 세 가지에 모두 검은 물을 들인 것이라고 하였다. 부인婦人과 함께 수레를 타고 평공平公이 있는 곳으로 가서注+난씨欒氏내응자內應者가 있어 길을 막을 우려憂慮가 있기 때문에 부인婦人복장服裝을 하고서 들어간 것이다. 평공平公을 모시고 고궁固宮으로 갔다.注+고궁固宮이 있어 방비防備해 지킬 수 있는 곳이다.
범앙范鞅위서魏舒를 맞이하기 위해 가서 보니,注+악왕부樂王鮒계책計策에 따라 겁박劫迫위서魏舒를 잡아 오고자 한 것이다. 위서魏舒는 이미 군대의 배열排列을 끝내고서 수레를 타고 난씨欒氏를 맞이하기 위해 출발出發하려는 참이었다.注+[부주]林: 위헌자魏獻子의 군대가 항렬行列을 이루고 이미 수레에 올라 난영欒盈의 군대를 맞이해 연합聯合하려 한 것이다.
범앙范鞅은 빠른 걸음으로 달려가 말하기를 “난씨欒氏반적叛賊을 거느리고 쳐들어왔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와 여러 대부大夫들이 모두 임금님의 처소處所에 가 계시면서注+이삼자二三子제대부諸大夫이다. 나를 보내어 당신을 맞이하게 하셨으니, 나는 당신의 참승驂乘이 되겠다.”고 하고서 위서魏舒의대衣帶를 잡고注+참승驂乘은 반드시 를 잡아 수레에서 떨어지는 것을 방비防備한다.
수레에 뛰어올라注+헌자獻子의 수레에 뛰어오른 것이다. 오른손에는 칼을 쥐고 왼손으로는 의대衣帶를 잡고서注+위서魏舒겁박劫迫한 것이다. 수레를 몰아 출발出發하라고 하였다.注+[부주]林: 범앙范鞅이 수레를 몰아 출발出發하라고 한 것이다.
어자御子가 갈 곳을 묻자,注+갈 곳을 물은 것이다. 범앙范鞅은 “임금님이 계신 곳으로 가라.”注+[부주]林: 이니, 임금이 있는 곳으로 가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고궁固宮당도當到하자 선자宣子계단階段 아래까지 내려와 영접迎接하며注+헌자獻子를 맞이한 것이다. 위서魏舒의 손을 잡고서 곡옥曲沃식읍食邑으로 주겠다고 하였다.注+자기와 합심合心하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곡옥曲沃을 주겠다고 한 것이다.
당초에 비표斐豹관노官奴가 된 자로 그 죄상罪狀단서丹書에 실려 있고,注+해 끌려가 관노官奴가 되어, 붉은 글씨로 그 죄상罪狀이 기록된 것이다.난씨欒氏에게는 독융督戎이라는 힘센 가신家臣이 있었는데注+[부주]林: 난영欒盈에게는 독융督戎이라는 용력勇力이 있는 가신家臣이 있었다. 국인國人이 모두 그를 두려워하였다.
비표斐豹선자宣子에게 말하기를 “단서丹書를 불태운다면 내가 독융督戎을 죽이겠습니다.”라고 하니, 선자宣子가 기뻐하며 말하기를 “네가 독융督戎을 죽였는데도注+[부주]林: (너)이다. 내가 임금께 하여 단서丹書를 불태우지 않는다면 저 태양太陽증인證人이 될 것이다.”注+약속約束을 저버리지 않기를 밝은 태양太陽을 두고 맹서盟誓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이에 비표斐豹를 밖으로 내보내고서 궁문宮門을 닫았다.注+문이 닫히자 문밖에 붙은 것이다.
독융督戎비표斐豹의 뒤를 쫓으니 비표斐豹는 담을 넘어 몸을 숨기고서 기다리다가注+은 낮은 담이다. [부주]林: 독융督戎비표斐豹가 문밖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서 따라가 막아 싸우려 하니, 비표斐豹는 낮은 담을 넘어 숨어서 그가 오기를 기다린 것이다. 독융督戎이 담을 넘어오자 뒤에서 공격攻擊해 죽였다.
범씨范氏의 무리가 뒤에 있으니注+공대公臺(固宮의 )의 뒤이다.난씨欒氏의 군대가 궁문宮門으로 올라왔다.注+(오름)이다. [부주]林: 난씨欒氏의 군대가 고궁固宮으로 올라온 것이다.
범선자范宣子범앙范鞅에게 말하기를 “화살이 임금이 계시는 지붕에까지 미치니, 너는 가서 죽기로 싸우라.”注+[부주]林: 범앙范鞅에게 죽을 힘을 다해 싸우게 한 것이다. 고 하였다.
범앙范鞅이 칼을 뽑아 들고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맞아 싸우니注+칼을 사용한 것은 짧은 무기武器를 들고 서로 맞붙어 싸워 목숨을 바치고자 한 것이다. 난씨欒氏패퇴敗退하였다.
범앙范鞅병거兵車에 뛰어올라 난씨欒氏추격追擊하다가注+범앙范鞅선자宣子융거戎車를 대신 탄 것이다. 난악欒樂注+난악欒樂난영欒盈종족宗族이다. 을 만나 말하기를 “아, 전투戰鬪하지 말라.注+[부주]林: 범앙范鞅난악欒樂의 이름을 부르며 ‘악면지樂免之’라고 한 것은 너를 살려 주지 않겠다는 말이다.
내가 죽는다면 나는 장차 너를 하느님께 제소提訴할 것이다.”注+죽어서도 너의 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난악欒樂이 활을 쏘았으나 맞지 않으니, 다시 시위에 화살을 메기는데注+는 화살을 시위에 메기는 것이다. 그때 난악欒樂병거兵車괴목槐木 뿌리에 걸려 엎어지자,注+난악欒樂의 수레가 괴목槐木의 뿌리에 걸리어 엎어진 것이다. 어떤 병사兵士가 가지가 달린 창으로 그를 찍어 당기니 팔뚝이 잘려 죽었고, 난방欒魴중상重傷을 입었다.
난영欒盈곡옥曲沃으로 달아나니, 진인晉人곡옥曲沃포위包圍하였다.注+난방欒魴난씨欒氏종족宗族이다. [부주]朱: 싸우다가 부상負傷한 것이다.
가을에 제후齊侯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
선구先驅(第一先鋒)는 곡영穀榮왕손휘王孫揮전거戰車를 몰고 소양召揚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선구先驅전봉군前鋒軍이다. [부주]林: 왕손휘王孫揮전봉군前鋒軍장수將帥가 되고 곡영穀榮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신구申驅(第二先鋒)는 성질成秩거항莒恒전거戰車를 몰고 신선우申鮮虞의 아들 부지傅摯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신구申驅차전군次前軍이다. 부지傅摯신선우申鮮虞의 아들이다. [부주]林: 거항莒恒차전군次前軍장수將帥가 되고, 성질成秩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조개曹開제후齊侯융거戎車를 몰고 안부융晏父戎융우戎右가 되었으며,注+제장공齊莊公어우御右(車右)가 된 것이다. 이광二廣(齊侯의 부거副車)은 상지등上之登형공邢公전거戰車를 몰고 노포계盧蒲癸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이광貳廣제장공齊莊公부거副車이다. [부주]林: 형공邢公이광二廣장수將帥가 되고, 상지등上之登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左翼)는 뇌성牢成양파사襄罷師전거戰車를 몰고 낭거소狼蘧疏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좌익군左翼軍라 한다. [부주]林: 양파사襄罷師좌익군左翼軍장수將帥가 되고, 뇌성牢成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右翼)는 상자거商子車후조侯朝전거戰車를 몰고 환도桓跳거우車右가 되었으며,注+우익군右翼軍라 한다. [부주]林: 후조侯朝우익군右翼軍장수將帥가 되고, 상자거商子車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대전大殿(後軍)은 상자유商子游하지어구夏之御寇전거戰車를 몰고 최여崔如거우車右가 되고注+대전大殿후군後軍이다. [부주]林: 하지어구夏之御寇대전후군大殿後軍장수將帥가 되고, 상자유商子游어자御者가 된 것이다. 촉용지월燭庸之越사승駟乘하여,注+사승駟乘은 네 사람이 함께 전거殿車를 탄 것이다. 에 이를 기재한 것은 제장공齊莊公구신舊臣을 버리고 무력武力을 믿은 것을 말한 것이다. 나라에서 출발出發하여 나라를 토벌討伐하려 하였다.
안평중晏平仲이 말하기를 “임금님께서 용력勇力만을 믿고 맹주盟主를 치려 하시니, 만약 승리勝利하지 못한다면 나라의 이 되겠지만注+[부주]朱: 만약 나라를 토벌討伐하였다가 승리勝利하지 못하면 제군齊君은 두려운 줄을 알아 덕행德行을 닦을 것이므로 나라의 이 된다.도 없으면서 을 세운다면 임금님께 반드시 우환憂患이 미칠 것입니다.”고 하였다.
최저崔杼하기를 “나라를 쳐서는 안 됩니다.
이 듣건대 소국小國대국大國화난禍難[敗]이 있는 틈을 타서 공격攻擊[毁]하면注+[부주]林: 제군齊君나라에 난영欒盈화난禍難이 있는 틈을 타서 나라를 치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반드시 재앙災殃을 받는다고 하였으니, 임금님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으나, 제후齊侯는 듣지 않았다.
진문자陳文子최무자崔武子를 보고注+문자文子진완陳完손자孫子수무須無이고, 무자武子최저崔杼이다. 말하기를 “이 일을 장차 어쩌면 좋겠습니까?”注+[부주]林: 임금께서 나라를 치려 하시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자, 무자武子가 말하기를 “내가 임금님께 말씀드렸으나 임금님께서 듣지 않으셨다.
나라를 맹주盟主로 받들면서 그 나라의 화난禍難을 우리의 이익으로 여기시니,注+[부주]林: 나라를 제후諸侯맹주盟主로 여기면서 도리어 그 나라에 화난禍難이 있는 것을 나라의 이익利益으로 여겨 나라를 치고자 한다는 말이다. 군신群臣위급危急하게 되면 어느 겨를에 임금을 생각하겠는가?注+사태事態위급危急하면 임금을 돌아보지 않고 도리어 임금을 시해弑害하여 나라를 기쁘게 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그대는 우선 임금께 가서 나라를 치지 마시도록 말리라.”注+[부주]林: 우선 임금님께 가서 나라를 치지 말도록 말리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문자文子가 물러나와 그 종자從者에게 말하기를 “최자崔子는 아마도 죽을 것이다.
임금이 심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임금보다 더 심하니注+임금을 시해弑害하는 악행惡行맹주盟主배반背叛하는 잘못보다 더 크다는 말이다. [부주]朱: 맹주盟主를 치려 하는 임금의 악행惡行을 너무 심하다고 여기면서 최저崔杼 자신은 임금을 시해弑害하고자 하니, 그 악행惡行맹주盟主배반背叛하는 임금의 악행惡行보다 더욱 심하다는 말이다. 에 죽지 못할 것이다.注+[부주]朱: 반드시 제 에 죽지 못한다는 말이다.
도의道義하는 것이 임금보다 지나쳐도 오히려 겸양謙讓[抑]해야 하는데 하물며 을 행하는 것이겠는가?”注+스스로 억손抑損(謙讓)하는 것이다. [부주]林: 자신이 도의道義가 임금보다 지나쳐도 신하臣下도리道理로는 오히려 스스로 겸양謙讓하여 감히 임금보다 지나치기를 하지 않아야 하는데 하물며 악행惡行을 그 임금보다 지나치게 하고자 하는 것이겠는가? [부주]朱: 의리義理로써 그 임금의 잘못을 바로잡음에 있어서도 오히려 스스로 겸양謙讓하여 감히 자기는 옳고 임금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 것인데, 하물며 시역弑逆죄악罪惡하고자 하는 것이겠는가? 라고 하였다.
제후齊侯는 드디어 나라를 토벌하여 조가朝歌(占領)하고서注+조가朝歌는 지금 급군汲郡소속所屬되었다. 군대를 둘로 나누어 하나는 맹문孟門으로 진격進擊해 들어가고 하나는 태행산太行山으로 오르게 하였다.注+이대二隊는 군대를 나누어 두 부대部隊로 만든 것이다. 맹문孟門나라의 애도隘道(좁은 길)이고, 태행산太行山하내군河內郡 북쪽에 있다.
형정熒庭무군武軍을 쌓고 군대를 보내어注+장무군張武軍누벽壘壁(城壁)을 쌓은 것이다. 형정熒庭나라 땅이다. 비소郫邵를 지키게 하고,注+나라 (占領)하여 지킨 것이다. 진군晉軍시체屍體수습收拾하여 소수少水에 묻고서注+진군晉軍시체屍體수습收拾소수少水에 묻고 봉분封墳을 높이 쌓아 경관京觀을 만든 것이다. 봉분封墳을 높이 쌓아 평음平陰에서의 패전敗戰보복報復하고서 환군還軍하였다.注+평음平陰전쟁戰爭양공襄公 18년에 있었다.
조승趙勝동양東陽의 군대를 거느리고 제군齊軍추격追擊하여 안리晏氂생포生捕하였다.注+조승趙勝조전趙旃의 아들이다. 동양東陽나라의 산동山東으로 위군魏郡광평廣平이북以北이다. 안리晏氂나라 대부大夫이다.
8월에 숙손표叔孫豹가 군대를 거느리고 나라를 구원救援하러 가서 옹유雍楡주둔駐屯하였으니 에 맞았다.注+맹주盟主구원救援하였기 때문에 ‘에 맞았다’고 한 것이다.
계무자季武子에게는 적자適子가 없고, 서자庶子 중에 공미公彌장자長子였으나 도자悼子를 사랑하여 그를 후계자後繼者로 세우고자 하여注+공미公彌공서公鉏이고 도자悼子이다. [부주]朱: 두 사람은 모두 서출庶出이다. 공미公彌이었으되 계손季孫은 유독 작은아들만을 사랑하여 도자悼子를 세워 후계자後繼者로 삼으려 한 것이다. 신풍申豐에게 묻기를
(悼子)을 내가 모두 사랑하지만 재능才能이 있는 아이를 선택選擇후계자後繼者로 세우고자 한다.”注+[부주]林: 작은아들을 세우겠다고 말하기 곤난困難하기 때문에 재능이 있는 자를 세우겠다고 한 것이다. 고 하니,
신풍申豐황급遑急히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서 가솔家率을 모두 데리고 떠나려 하였다.注+신풍申豐계씨季氏속대부屬大夫이다.
며칠 뒤에 계무자季武子가 또 신풍申豐에게 묻자, 신풍申豐이 대답하기를 “꼭 그렇게 하시겠다면 나는 나의 수레[敝車]를 끌고 떠나겠습니다.”注+기연其然필이必爾(必然)와 같다. 라고 하니, 이에 무자武子는 그 일을 중지하였다.注+을 세우지 않은 것이다.
장흘臧紇에게 묻자, 장흘臧紇이 말하기를 “연회宴會를 열어 나에게 술을 접대接待하면 내가 당신을 위해 도자悼子후계자後繼者로 세워 주겠습니다.”고 하였다.
이에 계씨季氏대부大夫들을 초청招請해 술을 접대接待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서 장흘臧紇상객上客으로 삼았다.注+상빈上賓으로 삼은 것이다.
헌주獻酒(主人이 (副賓)와 중빈衆賓(一般賓客)에게 술을 올림)가 끝나자注+이미 빈객賓客에게 술을 올린 것이다. 장흘臧紇이 북쪽에 자리를 포개어 깔고 새 술잔을 깨끗이 씻어 그 앞에 놓도록 하고서注+술잔이 이미 새 것인데도 다시 깨끗이 씻게 한 것이다. 〈사람을 시켜〉 도자悼子를 불러오게 하여, 장흘臧紇계단階段을 내려가 그를 맞이하니 대부大夫가 모두 일어났다.注+장손臧孫이 내려가서 도자悼子를 맞이한 것이다.
여수旅酬(衆賓이 다 같이 술을 하는 것)할 때에 미쳐 공서公鉏를 불러注+헌수獻酬(賓主가 서로 술을 권하는 것)의 가 끝나면 통행通行(衆賓이 다 같이 서로 술을 권하는 를 행함)하는 것이 ‘’이다. 중빈衆賓과 나란히 앉게 하니注+서자庶子를 따라 서열序列도자悼子의 아래에 있게 한 것이다. 계손季孫이 얼굴빛이 하였다.注+공서公鉏가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 얼굴빛이 변한 것이다.
계손季孫공서公鉏마정馬正으로 삼으니注+마정馬正가사마家司馬이다.공서公鉏는 화를 내며 출사出仕하지 않았다.注+[부주]朱: 버림을 받은 것에 하여 나와서 직사職事를 살피지 않은 것이다.
민자마閔子馬注+민자마閔子馬민마보閔馬父이다. 공서公鉏를 보고 말하기를 “그대는 이렇게 하지 말라.
화복禍福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사람이 부르는 바에 달렸을 뿐이니, 자식 된 자는 불효不孝를 걱정할 것이요 지위地位가 없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다.注+위처位處(地位)이다.
부친父親공경恭敬히 받든다면 어찌 사정事情변화變化가 생기지 않겠는가?注+이미 세운 사람을 하고 새로 다른 사람을 세우는 것이 아버지에게 달렸으니, 상위常位(固定된 지위地位)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효도孝道하고 공경恭敬한다면 계씨季氏가 될 수 있지만注+아버지가 총애寵愛하면 부유富裕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 간사奸邪하여 법도法度를 어긴다면 가 백성의 가 될 것이다.”注+빈천貧賤한 사람들보다 심하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공서公鉏가 그 말을 옳게 여겨, 공경恭敬히 아침저녁으로 문안問安하고 신중愼重관직官職[官次]을 수행修行하니注+(머무는 곳)이다. 계손季孫은 기뻐하여, 공서公鉏에게 연회宴會를 열어 자기를 초대招待해 술을 접대接待하게 하고는注+[부주]林: 공서公鉏에게 무자武子를 위해 연례燕禮를 베풀게 한 것이다. 연회宴會에 필요한 기구器具를 가지고 가서 모두 공서公鉏의 집에 남겨 두었다.注+향연饗宴에 필요한 기구器具이다. [부주]林: 계무자季武子향연饗宴에 필요한 기구器具를 가지고 공서公鉏의 집으로 가서 그 기구器具를 모두 포기抛棄하여 공서公鉏에게 준 것이다.
그러므로 공서씨公鉏氏부유富裕해졌고, 또 출사出仕하여 양공襄公좌재左宰가 되었다.注+계씨季氏사가私家에서 나와서 공가公家에 벼슬하여 임금의 신하臣下가 된 것이다. [부주]林: 공서公鉏는 또 계씨季氏가신家臣으로 공가公家출사出仕하여 양공襄公좌재左宰가 된 것이다.
맹손孟孫(莊子)은 장손臧孫(臧紇)을 미워하고注+서로 사이가 좋지 못한 것이다.계손季孫(武子)은 장손臧孫을 좋아하였다.注+장흘臧紇계무자季武子의 뜻을 이루어 주었기 때문에 무자武子장흘臧紇을 좋아한 것이다.
맹씨孟氏어추御騶(말 기르는 일과 수레 모는 일을 겸한 관직官職) 풍점豐點(孟莊子의 서자庶子)을 좋아하여,注+맹장자孟莊子서자庶子유자孺子의 아우 효백孝伯이다. [부주]林: 풍점豐點맹장자孟莊子어추관御騶官이다. 에게 “나의 말을 따르면 반드시 그대가 맹손씨孟孫氏후계자後繼者가 될 것이다.”注+맹손孟孫후사後嗣가 된다는 말이다. 고 두 번 세 번 말하니注+[부주]林: 풍점豐點을 위해 재삼再三 말한 것이다. 이 그의 말을 따랐다.
맹장자孟莊子을 앓자, 풍점豐點공서公鉏에게 말하기를 “만약 맹씨孟氏후사後嗣로 세워 준다면 내가 에게 하여 장씨臧氏원수怨讐로 여기게 하겠다.”注+맹씨孟氏로 하여금 공서公鉏와 함께 장손臧孫을 미워하게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공서公鉏계무자季武子에게 말하기를 “유자孺子은 본래 당연히 맹씨孟氏후사後嗣가 되도록 해진 자이니注+본래 당연히 후사後嗣가 될 사람이란 말이다. 〈그를 세워 주더라도 우리의 공로功勞가 되지 않지만〉 만약 을 세워 준다면 계씨季氏공로功勞[力]가 실로 장씨臧氏보다 더 크게 됩니다.”注+장씨臧氏계손季孫욕망欲望에 따라 도자悼子후계자後繼者로 세워 주었을 뿐인데도 오히려 공로功勞[有力]가 되었는데, 지금 만약 전단專斷하여 맹씨孟氏소자少子후계자後繼者로 세워 준다면 계씨季氏공로功勞장씨臧氏공로功勞초과超過한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계무자季武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기묘일己卯日맹장자孟莊子가 죽으니, 공서公鉏을 부축해 호측戶側(喪主의 자리)에 서서 빈객賓客조상弔喪을 받게 하였다.注+호측戶側상주喪主의 자리이다. [부주]朱: 호측戶側상주喪主의 자리이다.
계무자季武子가 와서 들어가 하고 나와서 “은 어디에 있느냐?”고 묻자, 공서公鉏가 “이 여기에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계무자季武子가 “유자孺子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니, 공서公鉏가 말하기를 “나이가 많고 적음을 따질 게 뭐 있습니까?
오직 재능才能이 있기 때문입니다.注+계손季孫공서公鉏를 버리고 을 세울 때 재능才能이 있는 자를 선택選擇하고자 한다고 하였기 때문에 이 말로써 대답한 것이다.
그리고 또 부자夫子(孟莊子)의 이기도 합니다.”注+드디어 맹손孟孫이라고 속인 것이다. 고 하고서 드디어 후사後嗣로 세우니,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장손臧孫이 들어가 을 하는데 매우 슬퍼하고 눈물을 많이 흘리고서 나오자,注+[부주]林: 조상弔喪을 마치고 나온 것이다.어자御者가 말하기를 “맹손孟孫은 당신을 미워하는데도 이처럼 슬퍼하시니 만약 계손季孫이 죽는다면 그 슬픔이 어떠하겠습니까?”라고 하니,
장손臧孫이 말하기를 “계손季孫이 나를 좋아하는 것은 나에게 질병疾病과 같고注+항상 서로 순종順從하기만을 생각하는 것은 몸에 가 된다는 말이다. 맹손孟孫이 나를 미워하는 것은 나에게 약석藥石(藥劑와 석침石鍼)과 같다.注+항상 서로 어그러지기만을 생각하는 것은 약석藥石치료治療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고통苦痛이 없는 질병疾病[美疢]이 고통苦痛이 있는 약석藥石[惡石]만 못하다.
약석藥石은 오히려 나를 살리지만注+치유治愈한다는 말이다. 고통苦痛이 없는 질병疾病은 그 해독害毒이 매우 많다.
맹손孟孫이 죽었으니 내가 멸망滅亡할 날도 멀지 않았다.”注+[부주]林: 내가 고찰考察하건대 이것은 장무중臧武仲이 전에 공서公鉏하고 (悼子)을 세워 순리順理에 맞지 않는 일을 하였다가 이번에 공서公鉏하고 을 세운 것을 보고는 장차 가 자기에게 미칠 것을 알고서 슬피 하고 눈물을 많이 흘린 것이니, 이는 대개 느낌이 있어서 마음 아파한 것이다. 그 어자御者는 까닭을 알 수 없어 물었기 때문에 사리事理의거依據해 대답한 것이니, 이것이 바로 장무중臧武仲이 지혜가 많다고 평가評價된 이유이다. 고 하였다.
맹씨孟氏을 닫고서 계손季孫에게 하기를 “장씨臧氏을 일으키려 하여 우리에게 장사葬事를 지내지 못하게 합니다.”注+공서公鉏를 위해 장씨臧氏에게 복수復讐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니, 계손季孫은 그 말을 믿지 않았으나, 장손臧孫은 그 소식을 듣고 경계警戒하였다.注+대비對備한 것이다.
겨울 10월에 맹씨孟氏묘도墓道를 닦으려고 장씨臧氏에게 제도除徒(길을 닦는 역도役徒)를 빌리기를 청하니,注+천장穿藏(葬道를 뚫음)이다. 장씨臧氏에게 인부人夫를 빌려 장도葬道를 닦은 것이다. [부주]林: 맹씨孟氏장사葬事 지내기 위해 장도葬道를 닦으려 한 것이다. 장손臧孫정부正夫(遂正이 관리하는 역도役徒)를 보내어 돕게 하고서注+정부正夫수정遂正이다. 동문東門 밖에 묘도墓道를 닦을 때 장손臧孫갑사甲士를 거느리고 가서 일하는 것을 시찰視察하였다.注+맹씨孟氏가 두려웠기 때문에 갑사甲士를 거느리고 가서 일하는 자들을 시찰視察한 것이다.
맹씨孟氏가 또 계손季孫에게 하니, 계손季孫하여 을 내려 장씨臧氏공격攻擊하게 하였다.注+장손臧孫에게 갑사甲士가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을해일乙亥日장흘臧紇녹문鹿門의 빗장[關]을 자르고 나아가 나라로 달아났다.注+나라 남성南城동문東門이다.
당초에 장선숙臧宣叔주국鑄國여자女子를 아내로 맞이하여 장고臧賈장위臧爲를 낳고서 그 아내가 죽자,注+주국鑄國제북濟北사구현蛇丘縣소치所治이다.선숙宣叔은 아내의 질녀姪女계실繼室로 삼으니注+여자女子형제兄弟의 자식을 일러 ‘’이라 한다. 그녀는 목강穆姜(宣公의 부인夫人)의 이종姨從(姨母의 딸)이었다.注+목강穆姜이모姨母의 자식이니 목강穆姜과는 이종형제姨從兄弟가 된다.
그녀가 장흘臧紇을 낳아 궁중宮中에서 기르니 목강穆姜이 그를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장흘臧紇선숙宣叔후사後嗣로 세웠다.注+장흘臧紇을 세워 선숙宣叔후사後嗣로 삼은 것이다. [부주]林: 목강穆姜친척親戚이었기 때문에 장흘臧紇공궁公宮에서 양육養育한 것이다.
장고臧賈장위臧爲나라를 떠나 주국鑄國에 가서 있었는데,注+외가外家(舅氏) 나라로 돌아간 것이다. 장무중臧武仲나라에서 장고臧賈에게 사람을 보내어 하고 또 대채大蔡(큰 귀갑龜甲)를 바치며注+대채大蔡대귀大龜이다. [부주]林: 대채大蔡는 거북의 이름이다. 거북이 나라 땅에서 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를 거북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말하기를 “내가 불민不敏하여 종조宗祧를 지킬 수 없게 되었으니,注+원조遠祖를 ‘’라 한다. [부주]林: 근친近親를 ‘’이라 한다. 감히 나의 부조不弔(無能)를 합니다.注+부조不弔는 하늘의 조휼弔恤(불쌍히 여겨 구휼救恤함)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제사祭祀단절斷絶하는 데는 미치지 않았으니注+응당 후사後嗣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형님께서 이 대채大蔡나라에 바치고서 후사後嗣로 세워 주기를 하면 아마 들어줄 것입니다.”注+선인先人을 위하여 후사後嗣를 세워 주기를 하라는 말이다. [부주]林: 장고臧賈를 이른다. 대채大蔡나라에 바치고서 선인先人을 위해 후사後嗣를 세워 주기를 하면 장고臧賈후사後嗣로 세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장고臧賈가 말하기를 “이는 우리 가문家門재화災禍이지 그대 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니, 나는 그대의 을 따르겠다.”라고 하고서 귀갑龜甲을 받아 장위臧爲를 보내어 귀갑龜甲노군魯君께 바치고서 자기를 후사後嗣로 세워 주기를 대신 하게 하였는데,注+장고臧賈장위臧爲를 보내어 자기를 위해 대신 하게 한 것이다. 장위臧爲는 드디어 자신을 후사後嗣로 세워 주기를 하였다.注+장위臧爲가 스스로 후사後嗣가 되기를 한 것이다.
장손臧孫방읍防邑으로 가서注+장손臧孫봉읍封邑이다. 나라 조정朝廷으로 사람을 보내어 하기를 “내가 남을 해치려 한 것이 아니었으나 지혜智慧부족不足하였습니다.注+갑사甲士로 하여금 자기를 따르게 한 것은 일을 꾀함이 얕았을 뿐이라는 말이다.
감히 개인個人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니,注+선인先人을 위해 한다는 말이다. 진실로 선대先代제사祭祀를 지켜 조부祖父문중文仲부친父親선숙宣叔공훈功勳폐기廢棄되지 않게 하신다면注+이훈二勳문중文仲선숙宣叔이다. 어찌 감히 이 봉읍封邑을 떠나지 않겠습니까?”注+점거占據하고서 후사後嗣 세워 주기를 하였기 때문에 공자孔子가 ‘요군要君(임금을 협박脅迫함)’이라고 한 것이다. [부주]林: 감히 방읍防邑해 떠나지 않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나라가 장위臧爲장씨臧氏후사後嗣로 세우니,注+[부주]林: 장위臧爲를 세워 장씨臧氏후사後嗣로 삼은 것이다. 장흘臧紇방읍防邑국가國家에 바치고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注+[부주]林: 후사後嗣가 세워진 뒤에 장무중臧武仲은 그 봉읍封邑나라에 돌려주고서 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종자從者가 말하기를注+[부주]林: 기인其人방읍인防邑人이다. “우리를 두고 맹서盟誓하겠지요?”注+죄악罪惡진술陳述제대부諸大夫맹서盟誓하여 경계警戒로 삼는 것을 이른다. 라고 하자, 장손臧孫이 “맹서盟誓할 말이 없을 것이다.”注+장자長子하고 소자少子를 세운 것은 계손季孫이 꺼리는 바이니, 나에게 를 씌울 말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장씨臧氏를 두고 맹서盟誓하려 할 때注+[부주]林: 나라는 과연 장씨臧氏를 두고 맹서盟誓하여 경계警戒로 삼으려 하였다. 계손季孫출분出奔신하臣下[惡臣]의 일을 맡은 외사外史를 불러 맹서盟誓하는 말[盟首]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에 대해 묻자,注+악신惡臣은 도망간 자들을 이른다. 맹수盟首재서載書(盟誓文)의 장수章首(문장의 첫 글귀인 듯함)이다. 대답하기를
동문씨東門氏를 두고 맹서盟誓할 때는注+[부주]林: 선공宣公 18년에 있었다. ‘혹시라도 동문수東門遂처럼 임금의 을 따르지 않고서 적자適子를 죽이고 서자庶子를 세우지 말라.’注+문공文公태자太子을 임금으로 세우라고 하였으나 공자公子을 죽이고 선공宣公을 세웠다. 라 하였고,
숙손씨叔孫氏를 두고 맹서할 때는注+[부주]林: 성공成公 16년에 있었다. 숙손교여叔孫僑如처럼 국가國家상도常道폐기廢棄하여 공실公室전복顚覆시키지 말라.’注+성공成公계씨季氏맹씨孟氏나라에 참소讒訴한 것을 이른다. 고 하였습니다.”라고 하니,
계손季孫이 “장흘臧紇가 이 정도에는 미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맹초孟椒가 말하기를 “어찌 그가 성문城門하여 빗장을 자르고 나아간 것으로 말을 만들지 않습니까?”라고 하니, 계손季孫이 그의 말을 채용採用하여 장씨臧氏를 두고 대부大夫들과 맹서盟誓하기를, ‘장손흘臧孫紇처럼 나라의 기강紀綱하여 성문城門하고 빗장을 자르지 말라.’注+이다. 고 하였다.
장손臧孫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나라에 인재人才가 있구나.
누구일까?
아마도 맹초孟椒일 것이다.”注+맹초孟椒맹헌자孟獻子의 손자 자복혜백子服惠伯이다. (疑問助詞)와 같다. 고 하였다.
진인晉人곡옥曲沃에서 난영欒盈공격攻擊승리勝利하고서 난씨欒氏족당族黨들을 모두 죽이니, 난방欒魴나라로 출분出奔하였다.
에 ‘진인晉人난영欒盈을 죽였다.’고 기록記錄하고 ‘대부大夫난영欒盈’이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그가 국외國外에서 들어와 반란叛亂하였기 때문이다.注+국외國外에서 임금을 하기 위해 들어왔으니 다시 나라의 대부大夫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후齊侯나라에서 돌아와 국도國都로 들어가지 않고注+국도國都로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드디어 나라를 습격襲擊하여, 차우且于성문城門공격攻擊하다가注+차우且于나라의 이다. 다리에 상처를 입고 퇴각退却하였다.注+제후齊侯부상負傷한 것이다.
이튿날 제후齊侯는 다시 전투戰鬪하려고 군대와 수서壽舒에서 만나기로 약속約束하였다.注+수서壽舒나라 땅이다.
기식杞殖화환華還이 수레에 갑사甲士를 싣고 밤에 차우且于소로小路(隧)로 들어가 나라의 교외郊外노숙露宿하였다.注+두 사람은 나라 대부大夫이다. 차우수且于隧는 좁은 길이다.
이튿날 기식杞殖화환華還선발대先發隊로 가다가 포후씨蒲侯氏에서 거자莒子를 만나니,注+포후씨蒲侯氏나라의 국도國都에서 가까운 이다. 거자莒子는 이들에게 많은 재물財物을 주고 전투戰鬪하지 말게 하며 “결맹結盟하기를 하노라.”注+두 사람과 맹약盟約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지 말게 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자, 화주華周(華還)가 대답하기를 “재물財物하여 임금의 을 버리는 것은 거군莒君께서도 싫어하실 것입니다.注+화주華周는 바로 화환華還이다.
어제 저녁에 을 받고 아직 정오正午도 되기 전에 그 을 버린다면 어찌 임금을 섬길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거자莒子가 친히 북을 치며 제군齊軍추격追擊하여 기량杞梁(杞殖)을 죽였다.注+기량杞梁은 바로 기식杞殖이다.
거인莒人나라와 화친和親하였다.注+대국大國(齊國)에 승리勝利한 것이 더욱 두려웠기 때문에 화친和親한 것이다.
제후齊侯가 돌아올 때 남편의 상구喪柩(屍身)를 맞으려고 나온 기량杞梁의 아내를 교외郊外에서 만나注+기량杞梁전사戰死하였으므로 그 아내가 교외郊外로 가서 그 (屍身)을 맞이한 것이다. 사람을 보내어 조문弔問하자, 기량杞梁의 아내가 그 조문弔問사절謝絶하며 말하기를 “기식杞殖에게 가 있다면 어찌 감히 임금님의 조문弔問를 받겠습니까?注+만약 가 있다면 조상弔喪가치價値가 없다는 말이다.
만약 가 없다면 선인先人의 낡은 집이 있으니 하첩下妾(賤妾)은 교외郊外에서 조문弔問을 받을 수 없습니다.”注+부인婦人외사外事(家庭 밖의 일)가 없기 때문이다. 과 같다. 고 하였다.
제후齊侯는 그 집으로 가서 조상弔喪하였다.注+전문傳文부인婦人으로서 가 있는 것을 훌륭하게 여긴 것이다.
제후齊侯장흘臧紇에게 땅을 주려 하자,注+그에게 전읍田邑을 주려 한 것이다.장손臧孫이 이를 듣고 제후齊侯알현謁見하니, 제후齊侯장흘臧紇에게 나라 토벌討伐한 일을 말하였다.注+제후齊侯나라 토벌討伐공로功勞를 스스로 자랑해 말한 것이다.
장흘臧紇이 대답하기를 “전공戰功[多]이 많았습니다만注+[부주]林: 전공戰功을 ‘’라 하니, 위의 ‘’는 전공戰功이고, 아래의 ‘’는 다소多少이다. 임금님의 행위行爲는 쥐와 비슷하십니다.
쥐는 낮에는 숨고 밤에 활동하며 침묘寢廟(사람이 거처하는 침실寢室)에 굴을 파지 않으니 이는 사람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注+[부주]林: 침묘寢廟에는 사람이 많으므로 쥐가 그곳에 굴을 파고 살지 않는다.
지금 임금님께서는 나라의 내란內亂을 들으신 뒤에 군대를 일으키셨고,注+은 군대를 일으키는 것이다. 나라가 다시 안정安定을 찾자 다시 섬기려 하시니 쥐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注+[부주]朱: 나라가 안정安定되자 또 나라를 섬기려 하는 것이 쥐가 낮에 숨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제후齊侯는 땅을 주지 않았다.注+장손臧孫제후齊侯가 장차 패망敗亡하리라는 것을 알고 그 을 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쥐에 비유하여 제후齊侯하게 하여 을 주는 일을 그만두게 하고자 한 것이다.
중니仲尼께서 말하기를 “지혜롭기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注+[부주]林: 지혜를 운용運用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장무중臧武仲과 같은 지혜로도注+능히 나라의 한 것을 이른 것이다. 나라에서 용납容納되지 못한 데에는(臧紇이 나라로 출분出奔한 것을 이름) 그 까닭이 있으니 일을 처리함에 있어 사리事理를 따르지 않고 일을 시행施行함에 있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注+[부주]朱: 사리事理를 따르는 것을 ‘’이라 하고,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라 한다. 계씨季氏에게 아첨하여 장자長子공서公鉏하고 소자少子도자悼子를 세운 것은 일을 처리함에 있어 사리事理를 따르지 않은 것이고,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베푼 것은 일을 시행施行함에 있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것이다.
하서夏書〉에 ‘이 일을 남에게 시행하려면 그 일을 나에게 시행할 수 있느냐를 생각하라.[念玆在玆]’注+일서逸書이다. 이 일이 이 몸에 달렸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이니, 일을 행할 때 항상 그 일이 내 몸에 있는 것 같이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고 하였으니, 이는 사리를 따르고 남의 마음을 헤아려 베풀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注+[부주]朱: 〈하서夏書〉의 뜻을 해석解釋하여, 일을 할 때에는 반드시 도리道理를 따르고 일을 남에게 베풀 때에는 반드시 내 마음을 미루어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야 한다고 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
역주1 遂伐晉 : 齊侯가 晉나라를 친 것을 비로소 기록하였으니, 이는 세상의 變亂과 큰 關係가 있기 때문이다. 齊侯는 본래 晉나라를 討伐하기로 計劃하였으나, 衛나라를 친다는 핑계로 出兵하여 衛나라 땅에 當到한 뒤에는 군대를 옮겨 晉나라로 向하였기 때문에 ‘遂’字를 써서 그 行軍의 次序를 드러낸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2 期功之喪……非遭喪之禮慶 : 이 林注는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句末에 ‘慶’字는 衍文인 듯하다.
역주3 役人相命 各殺其長 : 옛날에는 城을 쌓을 때 양쪽에 板子를 대고 그 가운데 흙을 넣고 다졌는데, 이를 ‘版築’이라 한다. 흙을 다지던 役夫가 실수로 板子를 떨어뜨려 밑에 있던 사람이 맞아 죽자, 평소 二慶을 미워하던 役人들이 忿怒하여 서로 말을 傳해 亂을 일으켰다는 것이 《左氏會箋》의 解釋이다. 文理로 보나 事理로 보나 이 解釋이 옳을 것 같으므로 이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4 不義不可肆也 : 肆는 赦이니 襄公 9년 傳의 ‘肆眚(실수로 저지른 罪는 용서함)’의 肆와 같다고 한 〈楊注〉의 說을 취해 ‘容恕’로 번역하였다.
역주5 我實不天 子無咎焉 : 일을 이루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이는 내가 실로 하늘의 도움을 받지 못해서이고 그대의 허물이 아니라는 말이다. 杜注는 옳지 않다고 한 《左氏會箋》의 說을 取해 번역하였다.
역주6 中行氏以伐秦之役怨欒氏 : 中行氏는 荀氏의 한 支派이다. 襄公 14년에 秦나라를 치는 戰爭 때 荀偃이 中軍帥였는데 欒黶이 命을 따르지 않으므로 인해 撤軍하였다. 〈楊注〉
역주7 唯魏氏及七輿大夫與之 : 이 傳文은 양쪽의 力量을 敍述한 것이다. 韓氏‧趙氏‧范氏(知氏‧范氏‧中行氏는 모두 荀氏이다)는 一派로 結成되고 欒氏는 매우 孤立되었으므로 오직 魏氏와 七輿大夫만이 欒盈을 도왔을 뿐이다. 〈楊注〉
역주8 因[固] : 저본에는 ‘因’으로 되어 있으나 《四庫全書左傳杜林合注》本에 의거하여 ‘固’로 바로잡았다.
역주9 夫人有杞喪 : 이때 晉平公의 어머니 晉悼夫人이 親家의 오빠 杞伯의 喪을 입고 있었다.
역주10 恐欒氏……爲婦人服而入 : 城中에 혹시 欒盈을 內應하는 무리가 范宣子의 길을 막을 憂慮가 있기 때문에 宣子에게 晉悼夫人과 같은 喪服을 입도록 하여 夫人의 侍女로 僞裝한 것이다.
역주11 鞅請驂乘 持帶 : “杜氏는 驂乘과 持帶를 모두 范鞅이 請한 것으로 생각했으니, 이는 옳지 않다. 단지 驂乘만을 請한 것이니 持帶는 아래의 遂超乘에 붙여서 읽어야 한다. 范鞅이 魏獻子의 衣帶를 잡고서 獻子의 수레에 뛰어오른 것이다.”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驂乘은 높은 사람을 모시고 함께 수레에 타는 것이다.
역주12 丹書 : 丹書는 붉은 글씨로 犯人의 罪狀을 기록한 簡冊이다.
역주13 踰隱而待之 : 낮은 담 밑에 숨을 수 있기 때문에 옛사람은 ‘短牆(낮은 담)’을 ‘隱’이라 하였다. 《左氏會箋》
역주14 攝車從之 : 攝車는 수레에 뛰어오르는 것이다. 范鞅이 步兵戰으로 欒氏의 攻擊을 물리치고 나서 다시 兵車를 타고서 欒氏를 追擊한 것이다. 〈楊注〉 이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5 免之 : 免之는 欒樂에게 戰鬪하지 말게 한 것이다. 免之의 之는 뜻이 없다. 만약 戰鬪하여 내가 죽는다면 장차 너를 하느님께 提訴하겠다는 말이다. 〈楊注〉 이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6 : 항
역주17 武軍 : 武軍은 宣公 12년 傳 123쪽의 역주]를 參考할 것.
역주18 欲擇才焉而立之 : 古禮에 嫡子가 없으면 庶子 중의 長子를 後嗣로 세우는 것인데, 여기에 ‘才能이 있는 아이를 選擇하고자 한다.’고 한 것은 紇을 세우려는 핑계였다. 〈楊注〉
역주19 盡室將行 : 申豐은 이 일에 參與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대답도 하지 않고 물러나 집으로 돌아와서 온 家族을 데리고 다른 곳으로 가기로 생각한 것이다. 〈楊注〉
역주20 臧孫命北面重席 新樽[尊]絜之 : 臧孫은 바로 臧紇이다. 魯나라는 季‧孟‧叔‧臧‧郈 등 五氏의 位를 이은 자들을 모두 ‘孫’으로 칭하였다. 北面은 悼子를 위해 자리를 設置하여 南面하게 한 것이니 그를 높인 것이다. 重席은 두 層(겹)으로 깐 자리이다. 古代에는 땅에 자리를 깔고 앉았는데 자리의 層數를 그 地位의 高下에 따라 마련하였다. 《儀禮》 〈鄕飮酒禮〉에 “公은 三重이고 大夫는 二重이다.”고 하였으니, 重席은 大夫의 자리이다. ‘尊’은 본래 ‘樽’으로 되어 있었는데, 지금 《經典釋文》에 의거하여 ‘尊’으로 訂正하였다. 新尊은 新酒杯이다. 〈楊注〉
역주21 召悼子 降逆之 : 臧孫이 사람을 시켜 紇을 불러오게 하고, 紇이 오자 臧孫이 일어나 階段을 내려가서 紇을 맞이해 들어와 그 자리에 앉힌 것이다.
역주22 獻酬禮畢 而通行爲旅 : 《儀禮》 〈鄕飮酒禮〉에 의하면 主人은 阼階(東階) 위에 西向해 자리를 펴고, 賓의 자리는 堂戶 서쪽에 南向해 펴며, 介의 자리는 西階 위에 東向해 펴고, 衆賓의 자리는 上賓의 서쪽에 南向해 편다. 처음 賓‧介 및 衆賓이 到着하여 문밖에서 東向해 서 있으면 主人이 나아가 문밖에서 西向해 맞이한다. 主人이 賓을 맞이해 들어가면 介와 衆賓은 西階 밑에 序列에 따라 선다. 主人이 賓에게 揖하고 올라가서 主人이 阼階 위에서 잔에 술을 따라 절하고 賓에게 올리면 賓은 西階 위에서 절하고 그 잔을 받아 다 마시고서 그 잔에 술을 따라 主人에게 돌리면 主人은 阼階 위에서 받아 그 술을 다 마신다. 主人이 또 술을 따라 자신이 먼저 마시고서 賓에게 잔을 돌리면 賓은 절하고 그 잔을 받아 자리 동쪽에 놓고서 내려간다. 主人이 또 西階 위에서 잔에 술을 따라 介에게 올리면 介는 西階 위에서 그 잔을 받아 다 마시고서 그 잔에 술을 따라 主人에게 돌리면 주인이 西階 위에서 그 잔을 받아 다 마신다. 그런 뒤에 介가 내려간다. 主人이 또 西階 위에서 술을 따라 衆賓에게 올리면 衆賓은 그 술을 다 마시고서 내려간다. 主人이 樂工을 이끌어 들여 詩를 노래하게 하고서 主人이 樂工에게 獻酒하고, 또 笙人을 이끌어 들여 堂下에 세워 놓고서 主人이 笙師에게 獻酒한 뒤에 主人과 賓‧介 및 衆賓이 모두 堂으로 올라가서 자리에 앉는다. 杜注에 ‘獻酬禮畢’이라 말한 것은 賓과 介와 衆賓에게 獻酬하는 禮가 끝난 것을 이르고, ‘通行爲旅’라고 말한 것은 한 사람이 賓을 향해 술잔을 들면 衆賓이 서로 술잔을 돌려 下位의 사람에까지 이른 것을 이른다. 〈正義〉
역주23 使與之齒 : 旅酬 때에 미쳐 비로소 公鉏를 부르고, 또 公鉏를 일반 賓客과 나란히 앉게 하였으니, 公鉏를 庶子로 取扱한 것이다. 〈楊注〉
역주24 家司馬 : 《周禮》 〈夏官〉의 家司馬注에 “卿大夫의 采地에는 王이 특별히 司馬를 두지 않고 각자 그 家臣을 司馬로 삼아, 그 土地의 軍賦를 主管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역주25 官次 : 官次는 官職이다.
역주26 御騶 : 御騶는 말(馬) 기르는 일과 수레 모는 일을 겸한 官職이다. 〈楊注〉
역주27 孺子秩固其所也 : 이미 孺子로 稱하였으니 孟氏의 後嗣로 定해진 것이다. ‘固其所’는 본래 孟氏의 承繼人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28 季氏信有力於臧氏矣 : 《晉語》 注에 “力은 功이다.”고 하였다. 秩은 본래 당연히 後繼者가 되도록 定해진 사람이니 그를 세워 주더라도 季氏의 功勞가 되기에 부족하지만, 羯은 後繼者가 될 수 없는 사람이니 季氏가 그를 세워 준다면 진실로 功勞가 된다는 말로 羯이 반드시 季氏의 恩惠에 感動할 것이라는 뜻이다. 《左氏會箋》
역주29 公鉏奉羯立于戶側 : 古代의 喪禮에 의하면 死者의 屍身이 아직 방 안에 있으면 後嗣가 된 자는 戶側(屍身이 있는 방문 옆)에서 南向해 서서 賓客의 弔喪을 받는다. 《禮記》 〈檀弓下〉에 “大夫의 喪에 庶子는 弔喪을 받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羯이 이미 戶側에 서서 弔喪을 받았다면 孺子秩은 繼承人이 아닌 것이다. 〈楊注〉 羯이 喪主가 되어 賓客에게 절을 하였다면 孺子秩은 그 列에 참여할 수 없다. 그러므로 季孫이 ‘秩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은 것이다. 《左氏會箋》
역주30 疾疢也 : 상대가 나를 사랑하여 항상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잘못을 指摘하지 않는 것은 내 몸을 망치는 疾病과 같다는 말이다.
역주31 藥石也 : 상대가 나를 미워하여 항상 나의 잘못만을 말하는 것은 나의 病을 治療하는 藥石과 같다는 말이다.
역주32 美疢不如惡石 : 美疢은 苦痛이 없는 病이고, 惡石은 苦痛이 있는 石鍼이다. 〈楊注〉
역주33 使正夫 : 正夫는 隧(遂)正이 管理하는 役徒이다. 遂正은 다섯 縣을 管理하는 長官이다.
역주34 所治 : 所治는 ‘다스리는 곳’이란 말인지 ‘縣廳所在地(治所)’란 말인지 未詳이다.
역주35 敢告不弔 : 不弔는 杜注를 따르지 않고 不善의 뜻으로 번역하였다. 成公 7년 傳의 “有上不弔”의 역주]를 參考할 것.
역주36 爲自爲請 : 臧爲가 그 兄臧賈를 위해 請하지 않고 자신을 後嗣로 세워 주기를 請한 것이다.
역주37 爲其先人請也 : 氏族을 위하여 請하는 것이지 個人을 위해 請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楊注〉
역주38 孔子以爲要君 : 《論語》 〈憲問〉에 “臧武仲이 防邑을 占據하고서 後繼者 세워 주기를 魯나라에 要求하였으니, 사람들은 비록 그가 要君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나는 믿지 않는다.”고 하였다.
역주39 其人 : 其人은 臧紇이 齊나라로 도망갈 때 함께 따라간 從者이다. 〈楊注〉 이 說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40 東門遂 : 東門遂는 바로 襄仲으로 適子惡을 죽이고 宣公을 魯君으로 세웠다.
역주41 使無死曰 請有盟 : 〈楊注〉에는 “두 사람이 甲士를 거느리고 밤에 險한 길로 莒나라 郊外의 邑으로 들어갔다가 莒子가 거느린 大軍을 만났으니, 戰爭을 하면 반드시 죽을 形勢였다. 莒子는 그들에게 戰爭하지 말게 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結盟하기를 請해 그들을 물러가게 하려 한 것이다.”고 하였고, 《左氏會箋》에는 “莒子는 齊나라에 和親을 求하고자 하였으므로 두 사람을 죽이면 齊나라의 노여움을 사게 될 것이 두려웠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財物을 주어 戰爭하지 말고 물러가게 하고자 한 것이다. 두 사람은 齊軍의 本陣을 떠나 莒나라의 大軍을 만났으니 戰爭을 하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므로 ‘戰’을 ‘死’라고 말한 것뿐이고, ‘致死戰’을 이른 것이 아니다.”고 하였다. 이 두 說의 뜻을 취하여 ‘無死’를 ‘無戰’으로 번역하였다.
역주42 殖之有罪 何辱命焉 : 杞殖에게 罪가 있다면 어찌 감히 임금의 弔喪을 받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역주43 下妾不得與郊弔 : 古例에 의하면 賤者만이 郊外에서 弔問을 받는다. 杞梁은 大夫였기 때문에 그 아내가 郊外에서의 弔問을 謝絶한 것이다. 〈楊注〉
역주44 戰功曰多 : 《周禮》 〈司勳〉에 ‘戰功을 多라 한다.’고 하였다.
역주45 不穴於寢廟 : 寢廟에는 宗廟의 뜻도 있고 居室의 뜻도 있다. 여기의 寢廟는 居室을 이른 것이다.
역주46 欲使怒而止 : 武仲이 땅을 받으면 齊侯의 黨이 되어, 後日에 반드시 禍에 걸릴 것이므로 齊侯를 怒하게 하여 땅 주는 일을 그만두게 한 것이다.
역주47 : 抑은 語首助語로 뜻이 없다. 〈楊注〉
역주48 作不順而施不恕也 : 作不順은 適子가 없으면 庶子 중에 長子를 세우는 道理를 따르지 않은 것을 이르고, 施不恕는 廢함을 당한 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은 것을 이른다.
역주49 念玆在玆 : 念玆在玆는 斷章取義한 것이니, 僞古文大禹謨의 뜻과 다르다. 襄公 21년 傳의 杜注와 역주]를 參考할 것.

춘추좌씨전(4)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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