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제齊나라 난시欒施(子旗)가 노魯나라로 도망 왔다.注+술을 즐기고 여색女色을 좋아하여 패망敗亡을 자취自取하였기 때문에 경經에 이름을 기록한 것이다.
가을 7월에 계손의여季孫意如(平子)‧숙궁叔弓‧중손확仲孫貜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거莒나라를 쳤다.注+세 대부大夫가 모두 경卿이기 때문에 경經에 이 일을 기록한 것이다. 계손季孫이 주장하니 두 사람이 따른 것이다. [부주]林: 중군中軍을 철폐撤廢[舍]하였는데 무엇 때문에 이를 기록하였는가? 세 경卿이 거느린 군대는 〈중군中軍을 철폐撤廢하고서〉 공실公室의 군대를 넷으로 나누어 〈계씨季氏가 2분分을 차지하고 맹손孟孫(仲孫)과 숙손叔孫이 각각 1분分씩 차지한 군대이기 때문이다.〉 숙궁叔弓은 의여意如를 위해 토벌討伐한 것이다. 노魯나라[內]가 〈타국他國의〉 읍邑을 취取한 것은 모두 기록하였다. 그런데 이때 경읍郠邑을 취한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읍邑을 취取한 것은 자세히 기록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공定公 6년에 정鄭나라의 광읍匡邑을 취한 것을 기록하지 않고, 애공哀公원년元年에 진晉나라의 극포棘蒲를 취한 것을 기록하지 않았다.
9월에 숙손야叔孫婼이 진晉나라에 가서 진평공晉平公의 장사葬事에 회장會葬하였다.注+석 달 만에 장사 지냈으니 너무 빨랐다.
12월 갑자일甲子日에 송공宋公성成이 졸卒하였다.注+열한 차례 동맹하였다. 〈‘동십유이월冬十有二月’로 기록해야 하는데〉 ‘동冬’字가 없는 것은 사관史官이 글자를 빠뜨린 것이다.
傳
10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에 객성客星이 무녀婺女(女宿)에 출현出現하였다.注+성星은 객성客星이다. 이를 경經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혜성彗星[孛]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鄭나라 비조裨竈가 자산子産에게 말하기를 “7월 무자일戊子日에 진군晉君이 죽을 것입니다.
금년今年에 세성歲星이 현효玄枵[顓頊之虛]에 있는데注+세歲는 세성歲星이다. 전욱지허顓頊之虛는 현효玄枵를 이른다. 강씨姜氏(齊)와 임씨任氏(薛)가 실로 그 분야分野의 땅을 지키고 있습니다.注+강姜은 제齊나라의 성姓이고, 임任은 설薛나라의 성姓이다. 제齊나라와 설薛나라가 현효玄枵분야分野의 땅을 지키고 있다.
여수女宿가 그 성차星次[維]의 수위首位에 있는데 그곳에 요성妖星이 출현出現하였으니, 이는 읍강邑姜에게 재화災禍를 예고豫告한 것입니다.注+객성客星이 현효玄枵의 수위首位(女宿)에 머물러 있은 것이다. 읍강邑姜은 제齊나라 태공太公의 딸이고 진晉나라 당숙唐叔의 모친母親이다. 성점星占에 무녀婺女는 이미 출가出嫁한 딸로 여기고, 직녀織女는 처녀處女로 여긴다. 읍강邑姜은 제齊나라에서 이미 출가出嫁한 딸이다. 요성妖星이 무녀婺女에 출현出現하였으나 제齊나라는 세성歲星이 머물러 있는 곳이어서 도움을 받기 때문에 화禍가 읍강邑姜의 후손에게 돌아갈 것을 안 것이다.
읍강邑姜은 진晉나라의 선비先妣입니다.
하늘은 칠七(宿)로 성차星次(星位)를 나눕니다(다스립니다).注+이십팔수二十八宿가 사면四面에 각각 칠수七宿씩 분포分布하였다는 말이다.
무자일戊子日에 봉공逢公이 죽었는데 그때에도 객성客星이 이곳에 출현出現하였으니注+봉공逢公은 은왕조殷王朝 때 제후諸侯로 제齊나라 땅에 주거住居한 자이다. 봉공逢公이 죽으려 할 때 무녀婺女에 요성妖星이 출현出現하였다. 이때에는 세성歲星이 제齊나라 분야分野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齊나라가 직접 화禍를 당하여 무자일戊子日에 봉공逢公이 죽은 것이다. [부주]林: 등登은 졸卒(죽음)이다. , 나는 이로써 진군晉君이 죽을 것을 압니다.”注+진후晉侯표彪가 졸卒한 전傳의 배경이다. [부주]林: 내가 〈성상星象을 보고서〉 그 화복禍福을 추구追究해 보니 진晉나라가 아마도 그 화禍를 당할 듯하다. 그러므로 진晉나라를 나무란 것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傳
제齊나라 혜공惠公의 후손後孫인 난씨欒氏(子旗)와 고씨高氏(子良)는 모두 술을 즐기고注+난씨欒氏와 고씨高氏 두 족속族屬은 모두 혜공惠公에게서 나왔다. [부주]林: 자기子旗와 자량子良은 바로 자아子雅와 자미子尾의 후예後裔이다. 부녀자婦女子의 말을 믿으므로 원망怨望하는 사람이 많았으며注+부인婦人의 말을 좋아하기 때문에 원망怨望하는 사람이 많다. , 세력勢力이 진씨陳氏‧포씨鮑氏보다 강성强盛하면서도 진씨陳氏와 포씨鮑氏를 미워하였다.注+진씨陳氏와 포씨鮑氏를 미워한 것이다. [부주]林: 난씨欒氏과 고씨高氏 두 종족種族의 강성强盛함이 진씨陳氏포씨鮑氏보다 지나쳤으므로 진씨陳氏포씨鮑氏양가兩家의 행위行爲를 미워한 것이다.
여름에 어떤 자가 진환자陳桓子에게注+[부주]林: 어떤 사람이 진무우陳無宇에게 고한 것이다. “자기子旗와 자량子良이 진씨陳氏와 포씨鮑氏를 공격攻擊하려 합니다.”고 하고, 또 포씨鮑氏에게도 이렇게 고告하였다.
진환자陳桓子는 가병家兵에게 무장武裝[授甲]하게 하고, 본인은 일을 협의協議하기 위해 포씨鮑氏의 집으로 가다가 도중途中에서 술에 취해 말을 달리는 자량子良을 보았으나注+자량子良이 술에 취한 기회에 미쳐 자량子良을 치고자 하였기 때문에 달려가서 포문자鮑文子에게 고告한 것이다. , 마침내 가서 포문자鮑文子를 만나 보니注+문자文子는 포국鮑國이다. 그 역시 가병家兵을 무장武裝시키고 있었다.
이들은 사람을 보내어 자기子旗와 자량子良의 동정動靜을 살피게 하였더니注+두 사람은 자기子旗와 자량子良이다. , 두 사람은 모두 〈연회宴會를 열어〉 술을 마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진환자陳桓子가 말하기를 “저 자(子旗와 자량子良이 진씨陳氏와 포씨鮑氏를 공격攻擊하려 한다는 말을 전傳한 자)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 하더라도注+피인彼人은 〈자기子旗와 자량子良이 진씨陳氏와 포씨鮑氏를 치려 한다는〉 말을 전傳한 자이다. 우리가 가병家兵을 무장武裝시켰다는 말을 들으면 저들은 반드시 우리를 추격追擊할 것이니, 저들이 술을 마실 때에 미쳐 우리가 먼저 저들을 칩시다.”고 하였다.
이때 진씨陳氏와 포씨鮑氏가 화목和睦하였으므로 드디어 함께 난씨欒氏와 고씨高氏를 공격攻擊하였다.
그러자 자량子良은 “우리가 먼저 임금의 도움을 얻는다면 진씨陳氏와 포씨鮑氏가 어디로 가겠는가?”注+임금이 자기들을 돕게 하고자 한 것이다. [부주]林: 진씨陳氏와 포씨鮑氏가 임금의 지지支持를 잃는다면 장차 어디로 가겠는가? 반드시 패망敗亡할 것이라는 말이다. 라고 하고서 드디어 호문虎門을 공격攻擊하였다.注+공궁公宮으로 들어가고자 하였으나 공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문公門을 공격한 것이다. [부주]林: 침문寢門에 호랑이를 그렸기 때문에 그 문門을 ‘호문虎門’이라 한다.
傳
안평중晏平仲이 조복朝服(端委)을 입고 호문虎門 밖에 서서注+단위端委는 조복朝服이다., 네 가족家族이 서로 불렀으나 아무에게도 가지 않았다.注+사족四族은 난씨欒氏고씨高氏진씨陳氏포씨鮑氏이다.
그 시종侍從이 “진씨陳氏와 포씨鮑氏를 도우시렵니까?” 라고 묻자, 안평중晏平仲은 “무슨 선행善行이 있기에 그들을 돕겠느냐?”注+그들에게는 도와줄 만한 선행善行이 없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시종侍從이 다시 “그렇다면 난씨欒氏와 고씨高氏를 도우시렵니까?”라고 묻자, 안평중晏平仲은 “그들인들 진씨陳氏포씨鮑氏보다 나은 게 뭐 있느냐?”注+난欒‧고高의 죄악罪惡이 진陳‧포鮑와 다를 게 없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시종侍從이 다시 “그렇다면 집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안평중晏平仲은 “임금님께서 공격을 당하고 계신데 어찌 돌아갈 수 있느냐?”注+[부주]林: 임금님이 이미 공격을 받고 계시니 다시 어디로 돌아가겠느냐는 말이다. 고 하였다.
안평중晏平仲은 경공景公이 부른 뒤에 침문寢門 안으로 들어갔다.
경공景公이 왕흑王黑으로 하여금 영고비靈姑銔를 가지고 군대를 지휘指揮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지에 대해 점을 치니 길吉하였다.
왕흑王黑은 영고비靈姑銔의 길이를 석 자 잘라내고서 사용하기를 청하였다.注+왕흑王黑은 제齊나라 대부이다. 영고비靈姑銔는 제경공齊景公의 기旗이다. 석 자를 자른 것은 감히 임금과 같은 길이의 기를 사용할 수 없어서이다. [부주]林: 제경공齊景公이 왕흑王黑으로 하여금 경공景公의 기旗를 가지고 군대를 통솔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지에 대해 점을 쳐서 길吉한 점괘占卦를 얻자, 왕흑王黑이 영고비靈姑銔의 길이 석 자를 자르기를 청한 것이다.
5월 경진일庚辰日에 직稷에서注+직稷은 후직后稷을 제사祭祀하는 직단稷檀이 있는 곳이다. 전투戰鬪하여 난씨欒氏와 고씨高氏를 패배敗北시키고, 또 장莊에서 패배敗北시켰다.注+장莊은 수레 여섯 채가 나란히 달릴 수 있는 넓은 가도街道의 이름이다.
국인國人이 그들을 추격追擊하여 또 녹문鹿門에서 패배敗北시켰다.注+녹문鹿門은 제齊나라 성문城門이다.
난시欒施와 고강高彊이 노魯나라로 도망해 오니注+경經에 고강高彊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경卿이 아니기 때문이다. , 진씨陳氏와 포씨鮑氏가 그들의 가산家産을 나누어 가졌다.
傳
안자晏子(晏平仲)가 진환자陳桓子에게 이르기를 “그 가산家産을 반드시 임금님께 바치십시오.
겸양謙讓은 덕행德行의 근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겸양謙讓을 미덕美德이라 하는 것입니다.
혈기血氣를 가진 모든 사람은 다 이익을 쟁취爭取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익은 강취强取해서는 안 되고注+강취强取(强奪)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도의道義가 남보다 낫기를 생각해야 하니 도의道義는 이익의 근본입니다.注+[부주]林: 도의道義를 행하면 자연히 이로움이 있으니, 도의道義가 바로 이익利益의 근본이라는 말이다.
재리財利를 축적蓄積하면 재앙災殃이 생기게 마련이니注+온蘊은 저축貯蓄이고, 얼孼은 요해妖害이다. 우선은 재리財利가 쌓이지 않게 하십시오.
그러면 앞으로 이익이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注+[부주]林: 그 이익을 더욱 늘릴 수 있다는 말이다. 고 하니, 진환자陳桓子는 나누어 가진 난欒‧고高의 가산家産을 다 제경공齊景公에게 바치고, 벼슬에서 물러나 거읍莒邑에서 노년老年을 보내기를 청하였다.注+거莒는 제齊나라 읍邑이다.
傳
진환자陳桓子가 자산子山을 불러注+자산子山‧자상子商‧자주子周는 양공襄公 31년에 자미子尾가 축출逐出한 공자公子들이다.사적私的으로 장막帳幕과 기용器用 및 종자從者들의 의복衣服과 신발을 준비하게 하고서注+사적私的으로 준비하게 한 것은 제경공齊景公에게 고告하지 않은 것이다. 극읍棘邑을 그에게 돌려주고注+극棘은 본래 자산子山의 봉읍封邑이다. 제齊나라 서안현西安縣 동쪽에 극리정戟里亭이 있다. , 자상子商에게도 그렇게 하게 하고서 그의 봉읍封邑을 돌려주고, 자주子周에게도 그렇게 하게 하고서 그에게 부우夫于를 주고注+자주子周에게는 원래 봉읍封邑이 없었기 때문에 다시 그에게 봉읍封邑을 준 것이다. 제남濟南어릉현於陵縣 서북쪽에 우정于亭이 있다. , 자성子城‧자공子公‧공손公孫첩捷을 귀국歸國시켜注+세 사람은 소공昭公 8년에 자기子旗가 축출逐出한 사람들이다. 모두 녹봉祿俸을 올려주고, 공자公子나 공손公孫으로 녹봉祿俸이 없는 자들에게는 자기의 봉읍封邑을 나누어 주고注+진환자陳桓子가 자기의 봉읍封邑을 나누어 준 것이다. , 국내國內의 빈약貧弱한 고과孤寡(홀아비와 홀어미)에게는 자기의 곡식穀食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시경詩經》에 ‘이익을 분배分配해 사람들에게 주었기 때문에 주周나라를 창조創造하였다.’고 하였으니 이는 시혜施惠를 잘하였기 때문이다.注+시詩는 《시경詩經》 〈대아大雅문왕편文王篇〉의 시구詩句이다. 문왕文王이 능히 대리大利를 포진布陳(布施)하여 천하天下 사람들에게 주는 일을 두루 행하였다는 말이다.
환공桓公도 이렇게 함으로써 패자霸者가 된 것이다.”注+제환공齊桓公도 포시布施함으로써 패자霸者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제경공齊景公이 진환자陳桓子에게 거읍莒邑 주변의 읍邑을 주니 사양하였다.注+사양하고 받지 않은 것이다.
목맹희穆孟姬가 진환자陳桓子를 위해 고당高唐을 주기를 청하니 진씨陳氏가 비로소 강대强大해졌다.注+목맹희穆孟姬는 제경공齊景公의 모친母親이다. 전문傳文은 진씨陳氏가 흥성興盛하게 된 원인原因을 말한 것이다.
傳
가을 7월에 계평자季平子가 거莒나라를 쳐서 경읍郠邑을 취取하였다.注+경郠은 거莒나라 읍邑이다. 경읍郠邑을 취한 것을 경經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소공昭公이 〈경읍郠邑을 취取한 일로 13년에〉 평구平丘의 회합會合에서 성토聲討를 당하였기 때문에 노魯나라가 이를 숨긴 것이다.
〈승전勝戰하고 돌아와 태묘太廟에〉 부로俘虜를 바칠 때注+[부주]林: 거莒나라에서 잡은 부로俘虜를 태묘太廟에 바친 것이다. 비로소 박사亳社에 사람을 희생犧牲으로 썼다.注+사람을 은사殷社에 희생으로 쓴 것이다. [부주]林: 노魯나라에 은사殷社가 있으니, 민공閔公 2년 전傳에 이른바 ‘양사兩社’가 이것이다.
장무중臧武仲이 제齊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주공周公은 아마도 노魯나라의 제사祭祀를 흠향歆饗하지 않을 것이다.
주공周公은 도의道義에 맞는 제사祭祀를 흠향歆饗할 것인데, 노魯나라가 도의道義를 무시했으니 말이다.注+[부주]林: 장무중臧武仲은 바로 장손흘臧孫紇이다. 이때 출분出奔하여 제齊나라에 있었다. 노魯나라가 사람을 죽여 제사祭祀 지낸 것이 바로 도의道義를 무시한 것이다.
《시경詩經》에 ‘덕음德音(道德에 맞는 말)이 매우 밝아서, 백성에게 보여주어 투박偸薄(苟且)하지 않게 하네.’注+시詩는 《시경詩經》 〈소아小雅녹명편鹿鳴篇〉의 시구詩句이다. 조佻는 투偸(苟且함)이다. 밝은 덕德을 가진 군자君子는 반드시 백성을 사랑한다는 말이다. [부주]林: 백성 보기를 상처 입은 자를 보듯이 애처롭게 여기고 감히 투박偸薄하게 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투박偸薄한 것도 심하다고 할 수 있는데 사람과 우양牛羊을 동일同一하게 여겨 희생犧牲으로 썼으니 장차 어찌[誰]복福을 받을 수 있겠는가?”注+일壹은 동同이니, 사람을 축생畜生과 동일同一하게 여겼다는 말이다.
傳
무자일戊子日에 진평공晉平公이 졸卒하였다.注+〈금년 정월正月에 ‘7월 무자일戊子日에 진군晉君이 죽을 것이다.’고 한〉 비조裨竈의 말과 같이 되었다.
정백鄭伯이 〈조상弔喪하기 위해〉 진晉나라에 가기 위해 길을 떠나 황하黃河에 당도하였을 때 진인晉人이 사절謝絶하니, 〈정백鄭伯은 되돌아오고〉 유길游吉만이 드디어 진晉나라로 갔다.注+제후諸侯끼리는 서로 조문弔問하지 않는 것이 예禮이다. 그러므로 사절謝絶한 것이다.
9월에 숙손야叔孫婼‧제齊나라 국약國弱‧송宋나라 화정華定‧위衛나라 북궁희北宮喜‧정鄭나라 한호罕虎‧허인許人‧조인曹人‧거인莒人‧주인邾人‧등인滕人‧설인薛人‧기인杞人‧소주인小邾人이 진晉나라에 갔으니, 이는 진평공晉平公의 장례葬禮에 회장會葬하기 위함이었다.注+경經에 〈진晉나라에 간〉 제후諸侯의 대부大夫들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맹회盟會가 아니기 때문이다.
傳
정鄭나라 자피子皮(罕虎)가 〈진晉나라에 조문弔問 가면서 신군新君을 알현謁見할 때 바칠〉 예폐禮幣를 가지고 가려 하자注+신군新君을 알현謁見할 때 바칠 폐백幣帛이다.,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상사喪事에 예폐禮幣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예폐禮幣를 가지고 가려면 반드시 수레 백냥百兩이 필요하고注+예폐禮幣를 싣고 가려면 수레 백승百乘을 사용해야 한다는 말이다. 백냥百兩이면 사람 1천 명이 필요합니다.
1천 명이나 되는 사람이 예폐禮幣를 가지고 가더라도 아마 신군新君을 알현謁見하는 예禮를 거행擧行할 수 없을 것이니注+행行은 용用이다. [부주]林: 아마 상고喪故로 인해 신군新君을 알현謁見할 수 없어서 그 예폐禮幣를 사용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 거행擧行하지 못한다면 반드시 그 예폐禮幣를 다 비용費用으로 쓰고 말 것입니다.注+신군新君을 알현謁見하지 못한다면 장차 스스로의 비용費用으로 다 쓰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1천 명이 예폐禮幣를 가지고 가는 일을 몇 차례 반복한다면 나라가 망亡하지 않겠습니까?”注+1천 인이 낭비浪費하는 일을 자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부주]林: 작은 나라로서 몇 천 명의 비용을 담당하고서 멸망滅亡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으나, 자피子皮는 굳이 청하여 예폐禮幣를 가지고 갔다.
傳
장사葬事를 마친 뒤에 제후諸侯의 대부大夫들은 이 기회期會를 이용해 진晉나라 신군新君을 알현謁見코자 하였다.
숙손소자叔孫昭子가 “예禮가 아니다.”고 하였으나 그들은 듣지 않으니, 숙향叔向이 사절謝絶하는 진소공晉昭公의 말을 전傳하기를 “대부大夫들의 일이 끝났는데도注+장송葬送한 것으로 대부大夫의 예禮가 끝났다는 말이다. 또 나에게 서로 만나자고 명命하십니다 그려.
내가 비통悲痛한 상중喪中에 있으면서注+장사葬事가 끝났으나 아직 졸곡卒哭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상복喪服을 입은 것이다. 만약[其]길복吉服을 입고 여러분을 만나 본다면 상례喪禮가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길복吉服을 입는 비례非禮를 범하는 것이고〉 만약 상복喪服을 입고서 여러분을 만나 본다면 이는 거듭 조문弔問을 받는 것입니다.
대부大夫들은 장차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니, 대부大夫들은 모두 알현謁見을 요구하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注+[부주]林: 모두 알현謁見을 요구要求하는 말이 없었다.
傳
자피子皮는 그 예폐禮幣를 다 쓰고 돌아와서 자우子羽(公孫 휘揮)에게 이르기를 “아는 것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어려움은 아마도 행行하는 데 있는 듯하다.注+알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 아니라 능히 행하지 못하는 것이 걱정이라는 말이다.
부자夫子(子産을 이름)는 그것을 알고서 나에게 일러 주었으나 내가 부족不足하여 그 말을 따르지 못하였다.注+내가 자산子産의 경계警戒로 인因[由]해 그렇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음을 알고도 드디어 그렇게 실행實行하였으니, 이것이 나의 부족不足함이라는 말이다.
《서경書經》에 ‘욕심이 법도法度를 파괴破壞[敗]하고 방종放縱이 예禮를 파괴破壞한다.’注+일서逸書이다. 고 하였는데, 이는 바로 나를 이른 것이다.
부자夫子는 법도法度와 예禮를 알아 〈나에게 일러 주었는데도〉 내가 실로 사욕私慾에 방종放縱하여 스스로 억제抑制하지 못하였다.”注+조상弔喪 간 기회期會를 이용해 신군新君을 경하敬賀하고자 하였기 때문에 멋대로 행동하여 스스로 억제하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傳
소자昭子(叔孫婼)가 진晉나라에서 돌아오자 대부大夫들이 모두 가서 알현謁見하였다.
고강高彊(子良)이 알현謁見하고는 즉시 물러가자注+고강高彊은 자량子良이다. , 소자昭子가 대부大夫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자식 된 사람은 근신謹愼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전에 경봉慶封이 도망간 뒤에 자미子尾가 많은 읍邑을 받았으나 이내[稍] 그 읍邑을 제군齊君에게 바치니注+[부주]林: 경봉慶封의 망명亡命은 양공襄公 28년에 있었다. 자미子尾는 고강高彊의 부친父親이다. 하사下賜하는 읍邑을 많이 받았으나 즉시 그 읍邑을 반환返還해 제군齊君에게 돌려주었다. 제군齊君은 그를 충성스럽다고 여겨 매우 총애寵愛하였습니다.
그가 죽을 때 공궁公宮에서 병病을 얻으니注+공궁公宮에 있다가 병病이 생긴 것이다. 제군齊君은 그를 수레에 태워 돌려보내며 친히 그 수레를 밀기까지 하였습니다.注+그 수레를 밀어 보낸 것이다.
그런데 그 자식 고강高彊은 아비의 녹작祿爵을 계승繼承해 지키는 일을 감당堪當[任]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노魯나라로 도망해 와 있는 것입니다.注+[부주]林: 그 아비의 녹작祿爵을 능히 계승繼承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출분出奔하여 여기(魯나라)에 와 있다는 말이다.
충성忠誠은 영덕令德(美德)이건만 그 자식은 그 미덕美德을 계승繼承해 지키는 일을 감당하지 못하여 오히려 죄罪가 미쳤으니 어찌[難] 삼가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注+[부주]林: 자식 된 사람은 근신謹愼하지 않아서는 곤난困難하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
그 아비의 공로功勞[力]를 상실喪失하고 아비의 공덕功德을 버리고 종묘宗廟의 제사를 폐廢하여 죄罪가 그 몸에 미쳤으니 이것이 해害(禍)가 아니겠습니까?注+부인夫人은 자미子尾를 이른다. 광曠은 공空이다. [부주]林: 자량子良이 근신謹愼하지 않아 자미子尾의 충성忠誠과 공로功勞를 상실喪失하였다는 말이다.
《시경詩經》에 ‘화禍는 나의 행위에 앞서 이르지도 않고 나의 행위에 뒤처져 생기지도 않는다.’고 하였으니, 아마도 고강高彊의 경우를 이른 듯합니다.”注+시詩는 《시경詩經》 〈소아小雅정월편正月篇〉의 시구詩句이다. 화란禍亂은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當]는 것을 말하여 고강高彊 자신이 이런 화禍를 자취自取하였다는 것을 비유譬喩한 것이다.
역주4告邑姜也 :
古代의 占星家들은 歲星이 머물러 있는 星次의 分野에 있는 나라에는 좋은 일이 있다고 믿었다. 今年에 歲星이 齊나라 分野인 玄枵에 있는데, 妖星이 玄枵의 첫째 별인 婺女에 出現하였으나 齊나라는 歲星이 머문 星次의 分野에 있기 때문에 災禍가 없을 것이고, 婺女는 이미 出嫁한 딸을 象徵하니 齊나라 姜太公의 딸로서 晉나라 始封祖唐叔의 母后가 된 邑姜의 子孫에게 禍가 있을 것임을 豫告한 것이라는 말이다.
역주5天以七紀 :
하늘은 七로써 數를 기록한다는 말이다. 二十八宿를 七宿씩 四方에 分屬한 것을 이른다.
역주6吾是以譏之 :
譏는 ‘마’와 같은데 《說文》에서 ‘마는 점을 쳐서 의심나는 것을 묻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은 별의 형상으로 점을 치고 이어 이로써 晉侯가 죽는 날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楊注〉
역주7遭子良醉而騁 :
술에 취해 말을 달리는 子良을 陳桓子가 만난 것이다. 子良이 陳氏와 鮑氏를 攻擊하려 하였다면 술을 취하도록 마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술에 취해 말을 달리는 것으로 보아 그가 자기들을 치려 한다는 말이 거짓임을 알았다. 그러나 이미 家兵을 武裝시켰기 때문에 부득이 鮑氏의 집으로 간 것이다.
역주8寢門 :
古禮에 天子는 五門, 諸侯는 三門, 大夫는 二門인데, 가장 안에 있는 문을 ‘寢門’이라 한다.
역주9陳錫載周 :
載周는 造周이다. 文王이 賞으로 받은 물건들을 天下에 布施하여 周나라의 王業을 創建[造]하였다는 말이다. 〈毛詩〉에는 ‘載’가 ‘哉’로 되어 있고, 《左傳》과 《國語》에는 ‘載’로 되어 있으니 古字에는 서로 通用이었다. 《爾雅》에 ‘哉는 施이다’고 하였다. 陳桓子는 새로운 나라를 創建하려는 뜻을 가졌다. 《左氏會箋》
역주16不自我先 不自我後 :
詩의 原義는 어지러운 세상을 만난 大夫가 하늘이 昏亂과 虐政을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생기게 하거나 내가 죽은 뒤에 생기게 하지 않았다고 원망한 것인데, 여기서는 斷章取義하여 禍는 자신의 행위가 있기 전에 생기거나 자신의 행위가 있은 뒤에 생기는 것이 아니고, 오직 자신의 행위에 따라 즉시 이른다는 뜻으로 인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