傳
초자楚子가
주래州來로 사냥을 나가
注+수狩는 겨울 사냥이다.영미潁尾에
주둔駐屯하여
注+영수潁水의 끝은 하채下蔡 서쪽에 있다. 탕후蕩侯‧
반자潘子‧
사마독司馬督‧
효윤오囂尹午‧
능윤희陵尹喜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서徐나라를
포위包圍하여
오吳나라를
위협威脅하게 하고
注+다섯 사람은 초楚나라 대부大夫이다. 서徐나라는 오吳나라의 우방友邦이기 때문에 서徐나라를 포위하여 오吳나라를 위협威脅[偪]한 것이다. ,
초자楚子는
건계乾谿에
주둔駐屯하여
注+초국譙國성부현城父縣 남쪽에 있다. 저들을
후원後援하였다.
이때 눈이 내리니
초왕楚王은
피관皮冠을 쓰고
진秦나라가 보내준
복도復陶(羽衣)를 입고
注+진秦나라가 보내준 우의羽衣이다. 비취翡翠의 깃으로 만든 덮개를 쓰고
注+비취翡翠의 깃으로 장식한 피被(어깨와 등을 덮는 물건)이다. 표범 가죽으로 만든 신발을 신고서
注+표범 가죽으로 만든 신발이다. 채찍을 들고 나가니
注+채찍을 잡고서 군대에 명령命令(指揮)한 것이다. 복부僕夫석보析父가
시종侍從하였다.
注+석보析父는 초楚나라 대부이다.
우윤右尹자혁子革(鄭丹)이 저녁에
알현謁見을 청하니
注+자혁子革은 정단鄭丹이다. 석夕은 저녁에 알현謁見한 것이다. 초왕楚王이 그를
접견接見할 때
피관皮冠과 덮개를 벗고 채찍을 놓고서
注+대신大臣을 공경恭敬한 것이다. 그와 말하기를 “옛날에 우리
선왕先王웅역熊繹께서
注+웅역熊繹은 초楚나라에 처음으로 봉封해진 임금이다. 여급呂級注+여급呂級은 제齊나라 태공太公의 아들 정공丁公이다. ‧
왕손모王孫牟注+왕손王孫모牟는 위衛나라 강숙康叔의 아들 강백康伯이다. ‧
섭보燮父注+섭보燮父는 진晉나라 당숙唐叔의 아들이다. ‧
금보禽父와
注+금보禽父는 주공周公의 아들 백금伯禽이다. 함께
강왕康王을 섬길 때
注+강왕康王은 성왕成王의 아들이다. 네 나라에는 모두
반사품頒賜品이 있으나 유독 우리나라에만 없었다.
注+네 나라는 제齊‧진晉‧노魯‧위衛이고, 분分은 진귀珍貴한 보기寶器이다.
지금 나는 주周나라에 사람을 보내어 정鼎을 요구要求하여 반사품頒賜品으로 삼고자 하니 주왕周王이 우리에게 정鼎을 주겠느냐?”고 하니, 자혁子革이 대답하기를 “군왕君王(楚王을 가리킴)께 줄 것입니다.
옛날 우리
선왕先王웅역熊繹께서
궁벽窮僻한
형산荊山에 사실 때
注+형산荊山은 신성新城시향현沶鄕縣 남쪽에 있다. 허름한 수레와
남루襤褸한 옷으로
초목草木이 우거진 땅을
개척開拓해 사람이 살 수 있는 땅으로 만드시고
注+[부주]朱: 가시나무로 수레를 만들어 타고 해진 옷을 입고서 초목草木이 우거진 산야山野에 거처한 것이다. , 산을 넘고 숲을 지나
천자天子를 섬기셨으나 단지
도궁桃弓과
극시棘矢만을
왕사王事(周나라
왕실王室을 뜻함)에
진공進貢[共禦]하였을 뿐입니다.
注+복숭아나무로 만든 활과 가시나무로 만든 화살은 상서롭지 못한 〈요괴妖怪를〉 물리치는 데 사용한다. 초楚나라는 산림山林 가운데 있어서 생산물生産物이 적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제齊나라는
국구國舅의 나라이고
注+성왕成王의 어머니가 제齊나라 태공太公의 딸이다. 진晉나라와
노魯나라
위衛나라는
모제母弟의 나라였습니다.
그러므로 유독 우리
초楚나라에만
반사품頒賜品이 없고 저들 나라에는 모두 있었던 것입니다.
注+[부주]朱: 당숙唐叔은 성왕成王의 동모제同母弟이고, 주공周公과 강숙康叔은 무왕武王의 동모제同母弟이다. 초楚나라만 홀로 소원疎遠하였기 때문에 보기寶器를 반사頒賜하지 않았고 저 네 나라는 지친至親이기 때문에 모두 반사품頒賜品을 얻었다는 말이다.
지금은 주周나라와 네 나라가 군왕君王(楚王을 가리킴)을 봉사奉事(服事)하면서 명령命令하는 대로 따르려 하고 있으니 어찌 정鼎을 아끼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초왕楚王이 또 말하기를 “옛날에 우리
황조皇祖의
백부伯父곤오昆吾께서 옛
허국許國의 땅에
거주居住하셨는데
注+육종씨陸終氏가 아들 여섯을 낳았는데 맏이가 곤오昆吾이고 막내가 계련季連이었다. 계련季連이 초楚나라의 시조始祖가 되었기 때문에 곤오昆吾를 일러 백부伯父라 한 것이다. 곤오昆吾가 일찍이 허許나라 땅에 살았기 때문에 ‘구허시택舊許是宅’이라 한 것이다. , 지금
정鄭나라가 그 땅을 탐해
이용利用하고 있으면서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으니
注+[부주]林: 이때 옛 허許나라 땅이 정鄭나라에 귀속歸屬되었다. 그러므로 ‘정인鄭人이 그 토지土地의 이익을 탐하여 그 땅을 우리에게 돌려주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 내가 만약 요구한다면 저들이 돌려주겠느냐?”고 하니,
자혁子革이 대답하기를 “
군왕君王께 돌려줄 것입니다.
주周나라도 정鼎을 아끼지 못하는데 정鄭나라가 감히 땅을 아끼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초왕楚王이 또 “옛날에는
제후諸侯가 우리나라를 멀리하고
진晉나라를 두려워하였으나
注+[부주]林: 과거에는 중국의 제후諸侯들이 우리 초楚나라를 멀리하고 진晉나라의 강强함을 두려워하였다는 말이다. , 지금은 우리가
진陳‧
채蔡‧
불갱不羹에
고대高大한
성城을 쌓아 그곳에 모두
병력兵力[賦]
천승千乘씩을
주둔駐屯시켰다.
이 일에는 그대의
공로功勞도 있다.
注+[부주]林: 자子는 자혁子革을 이른다. 힘을 다해[宣] 이 네 읍邑에 공로功勞를 세우는 데 참여하였다는 말이다.
제후諸侯가 우리나라를 두려워하겠느냐?”고 묻자, 자혁子革이 대답하기를 “군왕君王을 두려워할 것입니다.
이 네 곳에 주둔시킨 군대만으로도
제후諸侯를 두렵게 하기에 충분한데
注+사국四國은 진陳‧채蔡와 두 불갱不羹이다. [부주]林: 그곳의 병력兵力만으로도 사람들을 두렵게 하기에 충분하다는 말이다. 또
초楚나라에 있는 군대를 보탤 수 있으니
제후諸侯가 감히
군왕君王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이때
공윤工尹노路가 청하기를 “
군왕君王께서
옥규玉圭를 깨뜨려
척鏚(도끼)의 자루를
장식粧飾하라고
명命하셨으니
注+척鏚은 도끼이고 비柲는 자루이다. 규옥圭玉을 깨뜨려 도끼 자루를 장식粧飾함이다. , 감히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 할지 그
제도制度에 대해
하명下命하시기를 청합니다.”
注+제도制度의 명命을 청請한 것이다. 고 하니,
초왕楚王은 자루 만드는 일을 살피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석보析父가
자혁子革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초楚나라에
명망名望이 있는 사람인데, 지금
왕王과
대화對話하는 것이 마치 메아리처럼
부화附和하니
국가國家가 장차[其] 어찌 되겠소.”
注+그가 왕王의 마음을 순종順從하는 것이 마치 메아리가 소리에 응대應對하는 것과 같다고 비난한 것이다. [부주]林: 장차 초楚나라의 기대期待를 어찌할 생각이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자혁子革이 말하기를 “칼을 갈아 기다리다가
왕王이 나오면 내 칼로
왕王의
사악邪惡한 마음을 잘라내겠소.”
注+자기를 칼날에 비유하고서, 스스로 칼을 갈아 왕王의 음특淫慝한 마음을 잘라내겠다고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들어갔던
초왕楚王이 나와서 다시
대화對話할 때
注+[부주]林: 다시 자혁子革과 이야기한 것이다. 좌사左史의상倚相이 빠른 걸음으로 지나가자
注+의상倚相은 초楚나라 사관史官의 이름이다. ,
초왕楚王이 말하기를 “저 사람은 훌륭한
사관史官이니 그대는 잘 보아주라.
注+[부주]林: 자혁子革에게 의상倚相을 잘 대우待遇하게 한 것이다.
이 사람은
삼분三墳‧
오전五典‧
팔색八索‧
구구九丘를 읽었다.”
注+모두 고대古代의 서명書名이다. [부주]朱: 공안국孔安國의 〈상서서尙書序〉에 “복희伏羲‧신농神農‧황제黃帝의 글을 ‘삼분三墳’이라 하고, 소호少昊‧전욱顓頊‧고신高辛‧당唐‧우虞의 글을 ‘오전五典’이라 하고, 팔괘八卦의 설說을 ‘팔색八索’이라 하고, 구주九州의 기록을 ‘구구九丘’라 한다.”고 하였다. 고 하니,
자혁子革이 말하기를 “신이 일찍이 그에게 묻기를 ‘옛날에
주목왕周穆王은 그
사심私心을
절제節制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여
注+목왕穆王은 주목왕周穆王이다. 사肆는 극極이다. ,
천하天下를 두루 돌아다니며 모든 곳에 반드시 자기의 수레바퀴 자국과 말발굽 자국이 남게 하려 하였다.
注+[부주]林: 수레바퀴 자국과 말발굽 자국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돌아다니고자 하였다는 말이다.
그러자
채공祭公모보謀父가
기초시祈招詩를 지어
목왕穆王의
사심私心을 막았다.
注+모보謀父는 주周나라 경사卿士이다. 기보祈父(官命)는 주周나라 사마司馬이다. 〈채공祭公은〉 대대로 갑병甲兵의 직職을 맡았다. 초招는 그의 이름이다. 채공祭公이 바야흐로 목왕穆王의 유행遊行을 간諫하려 하였기 때문에 사마司馬의 관직官職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이 시詩는 일시逸詩이다.
그러므로
목왕穆王이
지궁祗宮에서
수명壽命으로 죽을 수 있었다.’
注+획몰獲沒은 찬시簒弑의 화禍를 당하지 않은 것이다. [부주]朱: 지궁祗宮은 이궁離宮의 이름이다. 고 하고서,
신臣이 그에게
기초시祈招詩에 대해 물으니 그는 그
시詩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에게 이보다 더 먼 옛날의 일을 묻는다면 그가 어찌 알 수 있겠습니까?”
注+[부주]林: 근대近代의 목왕穆王의 일을 물어도 알지 못하였는데, 먼 고대古代의 일인 삼분三墳‧오전五典을 묻는다면 의상倚相이 어찌 그 뜻을 알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초왕楚王이 “그대는 그 시詩를 아느냐?”고 묻자, 자혁子革이 대답하기를 “압니다.
그 시詩에 ‘기초祈招의 성음聲音이 편안하고 온화함이여!
왕王의
덕음德音을 드러내었네.
注+음음愔愔은 편안하고 온화溫和한 모양이다. 식式은 용用(以)이고 소昭는 명明이다. [부주]林: 기보祈父가 군대를 맡았으나 안정과 평화平和에 힘써 군대를 사용하지 않은 것을 말한 것이다.
내
왕王의
풍도風度를 생각하니
옥玉과 같고
금金과 같네.
注+금옥金玉은 그 견고堅固하고 무거운 것을 취한 것이다. [부주]林: 우리 왕실王室의 법도法度를 생각하니 옥玉과 같이 견고하게 사용하고 금金과 같이 무겁게 사용한다는 말이다.
백성의 힘을 헤아려 부리고
방종放縱하는 마음 없으셨네.’
注+국가國家가 백성을 사용할 때 그 힘에 따라 일을 맡기는 것이 대장장이가 기구器具에 따라 형상形狀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백성의 힘을 헤아려 부리고 무도하게 먹고 마시는 마음을 제거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부주]林: 이때 목왕穆王이 원방遠方을 유람遊覽하여 백성의 힘을 과도過度하게 사용하고, 잔치를 열어 술을 마시는 일에 한도限度가 없었다. 그러므로 그 시詩에 이와 같이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고 하니,
초왕楚王은
자혁子革에게
읍揖하고 들어가서는 며칠 동안 음식을 올려도 먹지 않고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였으나
注+자혁子革의 말에 깊이 감동感動하였기 때문이다. , 끝내
사심私心을
억제抑制[克]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화란禍亂에 미친 것이다.
注+극克은 이김이다. [부주]林: 초영왕楚靈王은 스스로 그 사욕私欲을 이기지 못하여 찬시簒弑의 화난禍難에 미쳤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