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허許나라가 백우白羽로 천도遷都하였다.注+섭葉에서 백우白羽로 옮긴 것이다. 정鄭나라를 두려워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옮겼기 때문에 스스로 옮긴 것으로 글을 만든 것이다.
傳
18년 봄 주왕周王 2월 을묘일乙卯日에 주周나라 모득毛得이 모백毛伯과過를 죽이고서注+모백毛伯과過는 주周나라 대부大夫득과得過의 종족宗族이다.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였다.注+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이다.
장홍萇弘이 말하기를 “모득毛得은 반드시 도망逃亡가게 될 것이다.
이날이 바로 곤오昆吾가 악惡이 극에 달해 망한 날이다.
이는 교만방자驕慢放恣하였기 때문인데注+곤오昆吾는 하백夏伯이다. 임稔은 익는 것이다. 교만한 악행惡行이 쌓이고 성숙하여, 을묘일乙卯日에 걸桀과 함께 주살誅殺되었다. , 모득毛得이 왕도王都에서 교만방자驕慢放恣로 성사成事하였으니 도망逃亡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는가?注+26년에 모백毛伯이 초楚나라로 출분出奔한 전傳의 배경이다. ”라고 하였다.
傳
3월에 조평공曹平公이 졸卒하였다.注+하문下文에 회장會葬하기 위해 갔던 자가 원백原伯을 만난 기본起本이다.
傳
여름 5월에 화성火星이 비로소 황혼黃昏에 출현出現하고注+화火는 심성心星이다., 병자일丙子日에 바람이 불었다.
재신梓愼이 말하기를 “이 바람을 융풍融風이라 하는데 이는 화재火災의 시작이니注+동북풍東北風을 융풍融風이라 하는데, 융풍融風은 목木이다. 목木은 화火의 모체母體이기 때문에 화재火災의 시초始初라고 한 것이다. , 7일 뒤에 화재火災가 일어날 것이다.注+병자일丙子日로부터 임오일壬午日까지가 7일인데, 임오壬午는 수화水火가 합合하는 날이기 때문에 화재火災가 일어날 것을 안 것이다. ”고 하였다.
무인일戊寅日에 바람이 심하고, 임오일壬午日에는 더욱 심하였다.
송宋나라‧위衛나라‧진陳나라‧정鄭나라에 모두 화재가 발생發生하였다.
재신梓愼이 대정씨大庭氏의 창고에 올라가서 바라보고서注+대정씨大庭氏는 옛날 나라의 이름으로 노魯나라 성내城內에 있었다. 노魯나라가 그곳에 창고倉庫를 지었는데, 그 지대地帶가 높기 때문에 올라가서 천기天氣를 바라보고서 근일近日의 점占을 참고해 전년前年 〈겨울에 혜성彗星이 나타났을 때 네 나라에 화재火災가 날 것이라고〉 한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안 것이다. 말하기를 “화재火災가 일어난 곳은 송宋나라‧위衛나라‧진陳나라‧정鄭나라이다.”고 하였는데, 며칠 뒤에 네 나라가 모두 사자使者를 보내와서 화재火災를 통고通告하였다.注+경經에 기록한 이유를 말한 것이다.
傳
비조裨竈가 말하기를 “내 말을 따르지 않으면 정鄭나라에 또다시 화재火災가 발생發生할 것이다.注+전년前年에 비조裨竈가 관가瓘斝를 사용해 신神에게 제사祭祀하여 화재를 물리치고자 하였으나, 자산子産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다시 그것을 사용해 제사하기를 청한 것이다.”고 하니, 정인鄭人들이 그의 말을 따르기를 청하였으나注+비조裨竈의 말을 믿은 것이다. , 자산子産이 반대하였다.
자태숙子太叔이 말하기를 “국가國家의 보물寶物(瓘斝와 옥찬玉瓚을 이름)은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오.
만약 화재가 발생한다면 나라가 거의 망亡하게 될 것이니, 나라가 망하는 것을 구제救濟할 수 있다면 그대는 아낄 게 뭐 있소.”라고 하니,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천도天道는 유원幽遠하고 인도人道는 절근切近하여 서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니 어찌 천도天道를 가지고 인도人道를 알 수 있겠습니까?
비조裨竈가 어찌 천도天道를 알겠습니까?
그는 말이 많은 사람이니 어찌 간혹 맞는 말이 없겠습니까?注+말이 많은 자는 간혹 때때로 맞는 말이 있다. ”라고 하고서 끝내 관가瓘斝와 옥찬玉瓚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정鄭나라에는 또다시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다.注+전문傳文은, 천도天道는 분명히 알기가 어려우니 비록 비조裨竈라 하더라도 오히려 극진히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傳
정鄭나라에 화재火災가 나기 전에 이석里析이 자산子産에게 고告하기를 “장차 큰 재변災變이 생겨注+이석里析은 정鄭나라 대부大夫이다. 상祥은 변이變異의 기운이다. 백성들이 크게 동요動搖하고 나라가 거의 망亡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나는 이미 죽어서 재변災變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注+아마도 재변災變이 일어나기에 앞서 죽을 것이라는 말이다. [부주]林: 이석里析이 스스로 ‘자신은 재변災變이 생기기에 앞서 죽을 것이므로 이 재변을 보지 못할 것이다’고 말한 것이다.
국도國都를 옮기면 어쩌면 재변災變을 피避할 수 있을 것입니다.”고 하니,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비록 재변災變을 피避할 수 있다 하더라도 나는 천도遷都를 결정決定할 수 없다.注+자산子産은 천재天災는 피避할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천도遷都해서 면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알았다. 그러므로 지혜가 부족하다는 말로 핑계 댄 것이다. ”고 하였다.
화재火災가 발생發生함에 미쳐 이석里析이 죽어 아직 장사 지내지 않았더니, 자산子産이 인부人夫 30인人을 보내어 그 영구靈柩를 옮기게 하였다.注+이석里析이 일찍이 자산子産과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주]林: 인부人夫 30인人을 보내어 이석里析의 영구靈柩를 옮기게 한 것이다.
傳
화재火災가 발생發生하자, 자산子産은 동문東門에서 빙문사聘問使로 오는 진晉나라 공자公子와 공손公孫을 사절謝絶해 돌려보내고注+새로 오는 진인晉人이 아직 들어오기 전이므로 사절謝絶하여 들어오지 못하게 한 것이다., 사구司寇에게 근자에 새로 온 외국外國의 빈객賓客들은 국도國都 밖으로 내보내고注+빙문聘問하기 위해 새로 온 자이다. [부주]林: 빙문聘問하기 위해 새로 온 자들은 〈정鄭나라의〉 허실虛實을 알지 못하므로 그들을 내보내어 돌아가게 한 것이다. 오래 전에 온 빈객賓客들은 사관舍館[宮] 밖으로 나오지 못하도록 금지禁止하게 하였다.注+오래 전에 온 빈객賓客은 정鄭나라의 정황情況을 잘 알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그들을 보내고자 하지 않은 것이다.
자관子寬과 자상子上에게 제사祭祀 지내는 여러 곳을 순찰巡察하여 대궁大宮(宗廟)에까지 이르게 하였다.注+두 사람은 정鄭나라 대부大夫이다. 병섭屛攝은 제사 지내는 장소場所[位]이다. 대궁大宮은 정鄭나라의 조묘祖廟이다. 종묘宗廟를 순행巡行하면서 불길이 미치지 않게 한 것이다.
공손公孫등登에게 대귀大龜를 옮기게 하고注+등登은 개복대부開卜大夫이다. , 축사祝史에게 주석主祏을 주묘周廟로 옮기고서 선군先君께 고유告由하게 하였다.注+석祏은 묘주廟主를 모셔두는 석함石函이다. 주묘周廟는 여왕厲王의 묘廟이다. 화재火災가 났기 때문에 여러 묘廟의 신주神主를 조묘祖廟로 모아서 구호救護하기 쉽게 한 것이다. [부주]林: 선군先君께 고告하여 구호救護하기를 구求한 것이다.
부인府人과 고인庫人에게 각각 맡은 곳을 경비警備하게 하였다.注+화재火災를 경비警備하게 한 것이다.
상성공商成公에게 사궁司宮을 경계하여注+상성공商成公은 정鄭나라 대부大夫이고, 사궁司宮은 항백巷伯으로 시인寺人의 관명官名이다. 선군先君의 궁인宮人들을 화재가 미치지 않는 곳으로 내보내게 하였다.注+구궁인舊宮人은 선공先公의 궁녀宮女이다.
사마司馬와 사구司寇에게 관원官員들을 화도火道(불길이 번지는 길목)에 배치排置하여注+비상사태非常事態를 대비對備한 것이다. 돌아다니면서 불이 붙을 물건들을 〈치우거나 진흙으로 싸 발라 불이 붙지 못하도록 미리 조치措置하게 하고,注+흔焮은 불타는 것이다. [부주]林: 불이 타는 곳을 돌아다니면서 미리 진흙으로 싸 바르거나 철거撤去하는 일을 하게 한 것이다. 〉 성하城下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대오隊伍를 지어 성 위로 올라가게 하였다.注+부오部伍(隊伍)를 지어 성 위로 올라가게 한 것은 간악姦惡한 짓을 못하도록 방비防備한 것이다.
화재가 발생한 다음 날 야사구野司寇들에게 각각 징집徵集한 역도役徒들을 보호保護하게 하고注+야사구野司寇는 현사縣士이다. 화재火災가 발생發生한 다음 날에야 사방에서 화재의 발생을 들었기 때문에 야사구野司寇들이 징집徵集한 역도役徒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보호保護하도록 경계警戒한 것이다. , 교인郊人에게 축사祝史를 도와 국도國都 북쪽에 땅을 깨끗이 쓸고注+국도國都의 북쪽에 제사 지낼 곳을 만든 것은 태음太陰(水神)에게 가서 화재火災를 물리쳐 주기를 기도祈禱한 것이다. 제단祭壇을 만들어 현명玄冥(水神)과 회록回祿(火神)에게 화재火災를 막아주기를 기도祈禱하고注+현명玄冥은 수신水神이고 회록回祿은 화신火神이다. , 사방의 성곽城郭에도 기도하게 하였다.注+용鄘은 성城이다. 성城은 흙을 쌓아 만든 것이니 음기陰氣가 모여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곳에 제사祭祀하여 남은 화재火災를 물리쳐 주기를 기도祈禱한 것이다.
불에 소실燒失된 가옥家屋을 기록하여 그 부세賦稅를 감면減免하고 다시 집을 지을 목재木材를 주었다.注+정征은 부세賦稅이다. [부주]林: 재목材木을 주어 집을 건조建造하도록 도운 것이다.
3일 동안 곡哭하고 국도國都의 시장市場에 문을 닫게 하였다.注+우척憂戚의 뜻을 보이기 위해 시장市場을 열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사신使臣을 보내어 제후諸侯에게 화재를 알렸다.
송宋나라와 위衛나라도 모두 이와 같이 하였다.
진陳나라는 불을 끄는 조치措置를 하지 않았고, 허許나라는 네 나라의 화재를 위문慰問하지 않았으니, 군자君子는 이로 인해 진陳나라와 허許나라가 먼저 망할 것을 알았다.注+도의道義에 맞지 않은 짓을 하는 것이 멸망滅亡하게 되는 원인原因이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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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우인鄅人이 자전藉田을 순시巡視하니注+우鄅는 운성국妘姓國이다. 그 임금이 스스로 나아가서 모내기한 자전藉田을 순시巡視한 것이니, 대개 그곳을 순행巡行한 것이다. 주인邾人이 우鄅나라를 습격하였다.
우인鄅人이 성문城門을 닫으려 하니 주인邾人양라羊羅가 성문을 닫으려던 자를 죽이고서注+성문을 닫으려던 자의 목을 벤 것이다. 드디어 입성入城하여 우鄅나라 사람들을 다 포로捕虜로 잡아 가지고 돌아갔다.
우자鄅子가 “나는 갈 곳이 없다.”고 하고서 그 처자妻子를 따라 주邾나라로 가니注+[부주]林: 나의 처자가 다 잡혀가서 이제 내가 돌아갈 곳이 없다고 하고서 그 처자妻子를 따라 주邾나라로 갔다는 말이다. , 주장공邾莊公은 우부인鄅夫人만을 돌려주고 그 딸은 돌려주지 않았다.注+명년明年에 송宋나라가 주邾나라를 토벌한 기본起本이다. [부주]林: 사舍는 억류抑留함이다.
傳
가을에 조평공曹平公을 장사葬事 지냈다.
회장會葬 갔던 자가 주周나라 원백原伯노魯를 만나注+원백原伯노魯는 주周나라 대부大夫이다. [부주]林: 노魯나라 사람으로 조曹나라에 가서 회장會葬한 자이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원백原伯은 학문學問을 좋아하지 않는 기색氣色을 보였다.注+[부주]林: 원백原伯이 학문學問의 길을 좋아하지 않은 것이다.
돌아와서 민자마閔子馬에게 이 이야기를 하니, 민자마閔子馬가 말하기를 “주周나라에는 아마도 변란變亂이 일어날 것입니다.
반드시 〈백성들 사이에〉 이런 말(학문이 필요 없다는 말)이 많이 유행流行한 뒤에야 〈그 영향影響이〉 대인大人들에게 미치는 것이니注+나라가 어지럽고 풍속이 무너져서 〈학문을 할 것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마침 많아서 〈그 영향이〉 점차 대인大人들에게 미쳤다는 말이다. 대인大人은 직위職位에 있는 자를 이른다. , 대인大人들은 벼슬을 잃을까 두려운 걱정으로 그 마음이 현혹眩惑되서입니다.
또 ‘학문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학문이 없어도 해로울 게 없다.注+학문學問이 있으면서도 벼슬길을 잃을까 걱정하는 것은 그 마음이 현혹眩惑되었기 때문이란 말이다. [부주]林: 대인大人들은 벼슬을 잃을까 걱정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에 현혹되어 정사政事를 하는 데는 학문이 없어도 되니, 학문이 없는 것이 정사를 하는 데 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고 하니, 해로울 게 없다 하여 학문을 하지 않는다면 모든 일을 구차苟且하게 처리해도 된다고 여길 것입니다.注+해로울 게 없다 하여 드디어 학문을 하지 않는다면 모두 구차苟且한 생각을 품게 된다는 말이다. [부주]林: 모두 구차하여도 정사政事를 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윗사람은 공무公務를 폐기廢棄할 것이니 어찌 변란變亂이 생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학문은 식물植物을 기르는 것과 같아서 학문을 하지 않으면 장차 쇠락衰落할 것이니 원씨原氏는 아마도 멸망滅亡할 것입니다.注+식殖은 생장生長이다. 학문學問이 덕德을 증진增進시키는 것은 마치 농부農夫가 곡식 싹을 길러 나날이 새롭게 하고 나날이 더 자라게 하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부주]林: 학문學問을 좋아하지 않으면 곡식 싹을 기르지 않아 전지田地가 황무荒蕪하여 쇠락衰落하는 것과 같을 뿐이라는 말이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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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에 정鄭나라 자산子産이 화재火災의 연고로 인해 대대적으로 사묘社廟를 수리修理하고서注+위爲는 치治이다. [부주]林: 화재火災의 연고로 크게 사단社壇을 만들어 제사祭祀한 것이다. 사방의 신神에게 제사祭祀하여 화재火災를 제거除去[振除]하였으니, 예禮에 맞았다.注+진振은 기棄이다.
이에 군대를 정선精選하여 열병식閱兵式을 성대하게 거행하려고 열병閱兵할 장소를 수축修築[除]하게 하였다.注+묘廟에서 열병식閱兵式을 거행한 것이다. 성내城內라서 장소場所가 좁기 때문에 자태숙子太叔의 방사房舍를 제거除去하고서 장소場所를 넓힌 것이다.
자태숙子太叔(游吉)의 가묘家廟가 길 남쪽에 있고 방사房舍가 북쪽에 있었는데 그 뜰이 좁아서 〈가묘家廟나 방사房舍를 헐어야 했다.〉注+정庭은 열병閱兵할 장소場所이다. 사흘의 기한期限이 지난 뒤에注+그곳이 협소狹小해서 허무는 일을 일시一時에 마칠 수 없었던 것이다. 자태숙子太叔은 제도除徒(廣場을 수축修築하는 역도役徒)들을 길 남쪽에 있는 가묘家廟의 북쪽에 배열排列시키고서 말하기를 “자산子産이 너희들 앞을 지나다가 속히 헐라고 명命하거든 곧 너희들이 향向하고 있는 쪽(家廟)을 헐라.”注+이而는 여汝(너)이다. 너희들이 향向하고 있는 쪽의 건물建物을 헐라고 한 것이다. 고 하였다.
자산子産이 조정朝廷으로 갈 때注+임금을 알현謁見하기 위해 조정朝廷으로 가던 길이다. 이곳을 지나다가 〈아직까지 헐지 않은 것을〉 보고 노怒하니注+헐지 않은 것을 보고서 노怒한 것이다. 제도除徒들이 남쪽을 헐었다.
자산子産이 십자로十字路에 이르러注+[부주]林: 제도除徒들이 남쪽에 있는 유씨游氏의 묘廟를 헌 것이다. 자산子産이 그곳을 떠나 십자로十字路에 미친 것이다. 종자從者를 보내어 남쪽을 허는 것을 제지制止시키고 “북쪽의 방사房舍를 헐게 하라.注+자산子産이 인자仁慈하여 차마 남의 묘廟를 허물 수 없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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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火災가 발생하였을 때 자산子産이 사람들에게 무기武器를 나누어 주어 성 위로 올라가게 하자, 자태숙子太叔이 말하기를 “진晉나라가 우리를 토벌討伐하지 않겠습니까?注+〈빙문聘問하기 위해 갔던〉 진晉나라의 공자公子와 공손公孫을 사절謝絶해 돌려보내고서 사람들에게 무기武器를 나누어 준 것이 마치 진晉나라를 배반背叛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라고 하니, 자산子産이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작은 나라가 수비守備를 잊으면 위험이 닥친다고 하는데, 하물며 화재火災가 발생한 지금이겠습니까?
국가國家가 남에게 경시輕視 받지 않는 것은 수비守備가 있기 때문입니다.”고 하였다.
이윽고 진晉나라 변방邊方의 관리官吏가 정鄭나라를 꾸짖으며 말하기를 “정鄭나라에 화재火災가 발생發生하자, 우리 진晉나라의 임금과 대부大夫들은 감히 편안히 거처하지 못하고, 거북점과 시초점蓍草占을 치고서 군망群望으로 달려가 희생犧牲과 옥백玉帛을 아끼지 않았으니注+[부주]林: 거북점과 시초점蓍草占을 치고서 군망群望으로 달려간 것이다. , 정鄭나라의 화재는 우리 임금의 우환憂患입니다.
그런데 지금 집사執事는 사납게 노怒하여 사람들에게 무기武器를 나누어 주고서 성 위로 올라가게 하였으니注+한연撊然은 사납게 분노忿怒하는 모양이다. , 장차 누구에게 죄罪를 물으려는 것입니까?
우리 변방邊方의 백성들이 두려워하니 감히 고告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고 하니, 자산子産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대의 말대로라면 우리나라의 화재火災는 진군晉君의 우환憂患입니다.
우리나라가 정치政治를 잘못하여 하늘이 재앙災殃을 내렸는데, 또 사악邪惡[讒慝]한 무리가 이 기회를 이용해 우리나라를 해치기를 꾀하여注+[부주]林: 헐뜯고 참소하는 무리가 화재火災가 난 틈을 이용利用해 우리나라를 도모圖謀할까 두려웠다는 말이다. 탐욕스러운 자를 끌어들여 거듭 우리나라를 불리不利하게 만들어서注+천荐은 거듭이다. 진군晉君의 근심을 가중加重시킬 것이 두려웠습니다.
우리나라가 다행히 망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렇게 한 것을〉 해명解明할 수 있습니다만注+설說은 해명解明이다. 불행히 망한다면 진군晉君께서 아무리 근심하여도 미칠 수 없습니다.
정鄭나라는 진晉나라 이외의 나라들과도 국경國境을 접하고 있으나, 〈위급한 일을 당하면 구원救援해주기를〉 바라보고 달려갈 나라는 진晉나라뿐입니다.注+정鄭나라가 비록 다른 나라와도 국경國境을 접하고 있으나, 매번 진晉나라만을 우러러보며 귀의歸依한다는 말이다.
이미 진晉나라를 섬겼으니 어찌 감히 두마음을 품겠습니까?注+전문傳文은 자산子産이 방비防備가 있었음을 말한 것이다. ”
傳
초楚나라 좌윤左尹왕자王子승勝이 초자楚子에게 말하기를 “허許나라와 정鄭나라는 원수인데, 허許나라가 초楚나라의 국토國土 안에 있으면서 정鄭나라를 예우禮遇하지 않습니다.注+13년에 초평왕楚平王이 옮겼던 백성들을 본래 살던 읍邑으로 돌아가게 하였으므로 허許나라가 이夷에서 돌아와 섭葉에 거주居住하면서 초楚나라를 믿고서 정鄭나라를 섬기지 않았다.
진晉나라와 정鄭나라가 바야흐로 화목和睦하니 정鄭나라가 만약 허許나라를 치고 진晉나라가 돕는다면 초楚나라는 반드시 그 땅을 잃게 될 것이니, 임금님께서는 어찌하여 허許나라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십니까?
허許나라는 전심專心해 초楚나라를 섬기지 않고注+허許나라 사람은 스스로 구국舊國이라고 여겨 초楚나라 섬기는 일에 전심專心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 정鄭나라는 바야흐로 선정善政을 펴고 있습니다.
허許나라는 정鄭나라에 대해 ‘〈정鄭나라 땅은〉 우리의 옛 땅이었다.注+허許나라가 정鄭나라보다 먼저 수봉受封하였다는 말이다. ’고 하고, 정鄭나라는 ‘〈이 땅은〉 우리가 전승戰勝해 얻은 성읍城邑[俘邑]이다.注+은공隱公 11년에 정鄭나라가 허許나라를 멸망滅亡시켰다가 다시 존속存續시켰으므로 ‘우리의 부읍俘邑이라.’고 한 것이다. ’고 합니다.
섭현葉縣은 초楚나라에 있어서 방성산方城山 밖의 보장堡障입니다.注+방성산方城山 밖의 폐장蔽障(堡障)이란 말이다.
국토國土를 가벼이 여겨서도 안 되고注+이易는 가벼이 여김이다. 소국小國을 얕보아서도 안 되며注+국國은 정鄭나라를 이른다. , 허許나라가 포로捕虜로 취급되게 해서도 안 되고 원수怨讐에게 길을 열어주어서도 안 되니 임금님께서는 깊이 생각하소서.注+[부주]林: 허許나라가 포로捕虜로 취급되게 해서도 안 되고, 구수仇讐에게 길을 열게 해서도 안 되니 조기早期에 깊이 헤아리라는 말이다. ”라고 하니 초자楚子가 기뻐하였다.
겨울에 초자楚子가 왕자王子승勝을 시켜 허許나라를 석析으로 옮기게 하였으니, 바로 옛날의 백우白羽이다.注+좌씨左氏가 전傳을 지을 때는 백우白羽의 지명地名이 석析으로 바뀌었다.
역주10不專於楚 :
《左氏會箋》에 “許나라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이유를 말한 것이니, 杜注에 ‘自以舊國’ 四字는 削除해야 한다.”고 하였다.
역주11余舊國 :
鄭나라 땅은 우리 許나라의 옛 國都였다는 말이다. 襄公 11년 傳 4월 條의 ‘東侵舊許’ 注에 ‘許나라의 옛 國都는 지금 鄭나라의 新邑이다.’고 하였으니, 대개 許나라가 遷國한 뒤에 鄭나라가 그 땅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지금 許人들이 鄭나라에 대해 ‘너희들의 땅은 우리의 옛 國都였다.’고 한 것이라고 한 《左氏會箋》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역주12仇讐不可使之開啓 :
讐는 晉나라를 이른다. 許나라를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으면 鄭나라가 許나라를 칠 것이고, 鄭나라가 許나라를 치면 晉나라가 鄭나라를 도울 것이니, 이것이 啓讐(怨讐에게 길을 열어줌)이다. 《左氏會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