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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7)

춘추좌씨전(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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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九年春王正月이라
[經]夏四月戊申 鄭伯蠆卒注+無傳 四年 盟臯鼬하다
[經]得寶玉大弓注+弓玉國之 得之足以爲榮 失之足以爲辱 故重而書之하다
[經]六月葬鄭獻公注+無傳 三月而葬 速
[經]秋 齊侯衛侯次于五氏注+五氏 晉地 不書伐者 諱伐盟主 以次告하다
[經]秦伯卒注+無傳 不書名 未同盟하다
[經]冬 葬秦哀公注+無傳하다
[傳]九年春 宋公使樂大心盟于晉하고 且逆樂祁之尸한대 僞有疾이어늘 乃使向巢如晉盟하고 且逆子梁之尸注+巢 向戌曾孫하다
子明謂桐門右師出注+子明 樂祁之子溷也 右師 樂大心 子明族父也 右師往到子明舍 子明逐使出門去 [附注] 林曰 居桐門 故曰 桐門右師曰 吾猶이어니와 而子擊鐘하니 何也
注+忿其不逆父喪 因責其無同族之恩 右師曰 喪不在此故也注+[附注] 林曰 言樂祁之喪未歸 旣而告人曰 注+己 子明也 [附注] 林曰 言其居喪而生子 生子罪重 不廢樂罪輕이리오
子明聞之하고하야 言於公曰 右師將不利戴氏注+樂氏 戴公族 [附注] 林曰 言樂大心將害其公族
不肯適晉 將作亂也
不然이면 無疾注+[附注] 林曰 若不如此 何故詐疾而不肯往 이리오 乃逐桐門右師注+逐之在明年 終하다
[傳]鄭駟歂殺鄧析하고 而用其竹刑注+鄧析 鄭大夫 欲改 不受君命 而私造刑法 書之於竹簡 故言竹刑 [附注] 林曰 蓋殺其人而用其法 하다 君子謂
子然於是不忠이로다
苟有可以加於國家者 棄其邪可也注+加 猶益也 棄 不責其邪惡也 [附注] 林曰 子然 卽駟歂 謂其殺賢能 不忠於國
靜女之三章 取彤管焉注+詩 邶風也 言靜女三章之詩 雖說美女 義在彤管 彤管 赤管筆 女史記事之所執 하고 竿旄 何以告之 取其忠也注+詩 鄘風也 錄竿旄詩者 取其願告人以善道也 言此二詩 皆以一善見采 而鄧析不以一善存身
故用其道 不棄其人이니라
詩云 蔽芾甘棠 勿翦勿伐하라
召伯所茇注+詩 召南也 召伯決訟於蔽芾甘棠之下 詩人思之 不伐其樹 茇 草舍也이라하니
思其人하야 猶愛其樹 況用其道而
子然無以勸能矣注+傳言子然嗣大叔爲政 鄭所以衰弱로다
[傳]夏 陽虎歸寶玉大弓注+無益近用 而祗爲名 故歸之 하다
書曰得 器用也
凡獲器用曰得注+器用者 謂物之成器可爲人用者也이오 得用焉曰獲注+謂用器物以有獲 若麟爲田獲 俘爲戰獲이라
六月 伐陽關注+討陽虎也한대 陽虎使焚萊門注+陽關邑門하니 師驚이어늘
犯之而出하야 奔齊注+[附注] 林曰 魯師見火起故驚 陽虎犯師而出하야 請師以伐魯曰 三加 必取之注+三加兵於魯리라 齊侯將許之한대
鮑文子諫曰 臣嘗爲隷於施氏矣注+施氏 魯大夫 文子 鮑國也 成十七年 齊人召而立之 至今七十四歲 於是文子 蓋九十餘矣로니 魯未可取也
上下猶和하고 衆庶猶睦하며 能事大國注+大國 晉也하고 而無天菑하니 若之何取之리오
陽虎欲勤齊師也
齊師罷 大臣必多死亡이리니 己於是乎奮其詐謀注+[附注] 林曰 己謂陽虎 始欲奮其詐謀以圖齊國니라
夫陽虎有寵於季氏로되 而將殺季孫하야注+求自容 [附注] 朱曰 將召季桓子 享于蒲圃而殺之 以爲魯國之害 得罪於魯 而求容身於齊이라
親富不親仁이니 君焉用之注+[附注] 林曰 唯親富人以圖其利 不親仁人以圖其道 齊君將安所用之리오
君富於季氏하고 而大於魯國하니 玆陽虎所欲傾覆也注+[附注] 林曰 齊君之富 多於季氏 齊國之地 大於魯國 此固陽虎所欲傾覆滅也
魯免其疾이어늘 而君又收之하니 無乃害乎注+[附注] 朱曰 陽虎出奔 是魯得免其疾患 吾君又收留之 無乃移其害魯者 而害於齊乎 齊侯執陽虎하니
陽虎願東注+陽虎欲西奔晉 知齊必反己 故詐以東爲願이어늘 乃囚諸西鄙하다
盡借邑人之車하야 鍥其軸하야 麻約而歸之注+鍥 刻也 欲絶追者 [附注] 林曰 陽虎盡借所居邑人之車 刻其軸 使易毁折 以麻約縛刻處而歸之其主하고
하야 寢於其中而逃注+葱靈 輜車名 [附注] 林曰 蓋車之有障蔽者 以輜車載己어늘 追而得之하야 囚於齊하다
又以葱靈逃하야 奔宋이라가 遂奔晉하야 適趙氏注+[附注] 林曰 陽虎歸趙簡子之家하다
仲尼曰 趙氏其世有亂乎注+受亂人故ᄂ저
[傳]秋 齊侯伐晉夷儀注+爲衛討也하다
敝無存之父將室之한대하고 以與其弟注+無存 齊人也 室之 爲取婦 [附注] 林曰 其父將爲之娶妻室 無存辭不願娶 以所娶室 先與其弟하고 曰 此役也 不死하야 必娶於高國注+高氏國氏 齊貴族也 無存欲必有功 還娶卿相之女하리라
先登하야 求自門出이라가 死於霤下注+旣入城 夷儀人不服 故鬪死於門屋霤下也하다
東郭書注+登城非人所樂 故讓衆使後而己先登하니 犂彌從之注+[附注] 林曰 犂彌從東郭書 俱先登曰 子讓而左注+[附注] 林曰 讓衆而立於城之左하라
注+恐書先下 故又譎以讓之 下 入城也하리라
書左하니 彌先下注+書從彌言左行 彌遂自先下 亦讓也하다
書與王猛息注+共止息 [附注] 林曰 王猛 齊人 猛曰 我先登이라하니 書斂甲曰 注+斂甲 起欲擊猛 [附注] 林曰 言昔者有登城之難 今又有王猛之難이로다 猛笑曰 吾從子 注+靳 車中馬也 猛不敢與書爭 言己從書 如驂馬之隨靳也 傳言齊師和 所以能克이라
晉車千乘在中牟注+救夷儀也 今滎陽有中牟縣 迴遠 疑非也하다
衛侯將如五氏注+齊侯在五氏 將往助之할새 卜過之하니 注+衛至五氏 道過中牟 畏晉 故卜 龜焦 兆不成 不可以行事也하다
衛侯曰 可也
衛車當其半이오 寡人當其半이니 敵矣注+衛侯怒晉甚 不復顧卜 欲以身當五百乘라하고 乃過中牟하니 中牟人欲伐之하다
衛褚師圃亡在中牟注+[附注] 林曰 褚師圃 衛舊大夫 러니 曰 衛雖小 其君在焉하니 未可勝也
齊師克城而驕하고 其帥又賤注+城 謂夷儀也 帥 謂東郭書 하니 必敗之 不如從齊라한대 乃伐齊師하야 敗之注+獲齊車五百乘 事見哀十五年하다
齊侯致禚媚杏於衛注+三邑 皆齊西界 以答謝衛意하다
齊侯賞犂彌한대 犂彌辭曰 有先登者ᄅ새 臣從之
注+晳 白也 幘 齒上下相値 製 裘也니라
注+[附注] 林曰 齊景公使人視東郭書한대 曰 乃夫子也라하고 吾貺子注+貺 賜也 [附注] 林曰 夫子 謂東郭書 言先登乃子也 我當貺賜於子라하다
公賞東郭書한대 辭曰 注+言彼與我 若賓主相讓 旅俱進退 [附注] 林曰 彼 謂犂彌라하니 乃賞犂彌注+[附注] 林曰 乃兼賞犂彌하다
齊師之在夷儀也 齊侯謂夷儀人曰 得敝無存者 以五家免注+給其五家 令常不共役事하리라
乃得其尸하얀 公三襚之注+禭 衣也 比殯三加襚 深禮厚之하고 注+犀軒 卿車 直蓋 高蓋하야 而先歸之注+[附注] 林曰 先歸敝無存之喪할새 坐引者하야 以師哭之注+停喪車以盡哀也 君方爲位而哭 故挽喪者不敢立하고 親推之三注+齊侯自推喪車輪三轉하다


9년 봄 주왕周王정월正月이다.
여름 4월 무신일戊申日정백鄭伯하였다.注+이 없다. 4년에 고유臯鼬에서 결맹結盟하였다.
보옥寶玉대궁大弓을 얻었다.注+대궁大弓보옥寶玉국가國家분기分器이니, 얻으면 영요榮耀가 되고 잃으면 치욕恥辱이 된다. 그러므로 하게 여겨 기록한 것이다.
6월에 정헌공鄭獻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세 달 만에 장사 지냈으니 너무 빨랐다.
가을에 제후齊侯위후衛侯오씨五氏에 주둔[次]하였다.注+오씨五氏나라 땅이다. 에 ‘’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맹주盟主의 나라를 친 것을 숨기고서 〈나라에〉 ‘’로 통고通告하였기 때문이다.
진백秦伯하였다.注+이 없다. 진백秦伯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은 것은 동맹同盟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겨울에 진애공秦哀公을 장사 지냈다.注+이 없다.
9년 봄에 송공宋公악대심樂大心을 보내어 나라와 맹약盟約하고서 악기樂祁시구尸柩를 맞이해 오게 하자, 악대심樂大心이 병이 있다고 거짓으로 핑계대어 사절하니, 송공宋公은 이에 상소向巢나라에 보내어 맹약盟約하고서 자량子梁(樂祁)의 시구尸柩를 맞이해 오게 하였다.注+상술向戌증손曾孫이다.
악기樂祁의 아들〉 자명子明동문우사桐門右師에게 출국出國시구尸柩를 맞이해 오게 하며注+자명子明악기樂祁의 아들 이다. 우사右師악대심樂大心인데, 자명子明족부族父이다. 우사右師자명子明의 집으로 가자, 자명子明이 축출하여 문밖으로 나가게 한 것이다. [부주]林: 동문桐門에 살았기 때문에 ‘동문우사桐門右師’라 한 것이다. 말하기를 “나는 아직 최복衰服(斬衰服)에 수질首絰을 쓰고 있지만, 당신은 음악을 연주하고 있으니 무슨 이유로 출국할 수 없습니까?注+그가 아버지의 상구喪柩를 맞이하려 하지 않은 것에 분노忿怒하고서, 이어 그가 동족同族은의恩義가 없다고 질책叱責한 것이다. ”라고 하니, 우사右師가 말하기를 “상구喪柩가 이곳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注+[부주]林: 악기樂祁상구喪柩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말이다. ”고 하고서, 얼마 뒤에 어떤 이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상중喪中에 자식을 낳았으니 내가 무엇 때문에 음악을 연주하지 않겠는가?注+자명子明이다. [부주]林: 자명子明거상居喪에 자식을 낳았으니, 자식을 낳은 죄는 무겁고, 음악音樂을 폐기하지 않은 죄는 가볍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자명子明이 이 말을 듣고 노하여 송공宋公에게 말하기를 “우사右師는 장차 대씨戴氏(宋나라)를 위해危害[不利]할 것입니다.注+악씨樂氏대공戴公의 후손이다. [부주]林: 악대심樂大心이 장차 나라의 공족公族을 해칠 것이라는 말이다.
나라에 가려 하지 않는 것은 반란을 일으키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무엇 때문에 없는 병을 있다고 속였겠습니까?注+[부주]林: 을 일으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병이 있다고 속이고서 가려 하지 않았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송공宋公은 이에 동문우사桐門右師를 축출하였다.注+그를 축출한 것은 명년明年에 있다. 끝내 숙손소자叔孫昭子의 말처럼 되었다.
나라 사천駟歂등석鄧析을 죽이고서 그가 지은 죽형竹刑채용採用하니注+등석鄧析나라 대부大夫이다. 나라가 주조鑄造한 옛 제도制度개정改正하려고 임금의 명령도 받지 않고서 사사로이 형법刑法을 만들어 죽간竹簡에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죽형竹刑’이라 한 것이다. [부주]林: 그 사람은 죽이고서 그 사람이 만든 은 채용한 것이다. , 군자君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논평論評하였다.
자연子然은 이번 일에 있어 충성스럽지 못하였다.
진실로 국가國家에 이익이 될 사람이라면 그 사악邪惡을 책망하지 않아야 한다.注+과 같다. 는 그의 사악邪惡을 책망하지 않는 것이다. [부주]林: 자연子然은 바로 사천駟歂이다. 그가 현능賢能한 사람을 죽인 것을 국가國家불충不忠한 것으로 여긴 것이다.
정녀靜女〉篇 삼장三章동관彤管을 취하고注+는 《시경詩經》 〈패풍邶風〉이다. 〈정녀靜女〉篇 세 가 비록 미녀美女를 말한 것이지만 그 뜻은 동관彤管에 있다는 말이다. 동관彤管적관필赤管筆(붓대가 붉은 붓)로 일을 기록해 규회規誨하는 여사女史가 가지는 붓이다. , 〈간모竿旄〉篇에 ‘하이고지何以告之(무엇으로 할꼬.)’는 시인詩人충심忠心을 취한 것이다.注+는 《시경詩經》 〈용풍鄘風〉이다. 〈간모竿旄채록採錄한 것은 남에게 선도善道로써 하기를 원한 작시자作詩者[其]의 중심中心(忠)을 취한 것이다. 이 두 는 모두 한 가지 선행善行으로 채록採錄되었는데, 등석鄧析은 한 가지 선행善行으로 몸을 보존하지 못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를 채용하면 그 사람을 버리지 않아야 한다.
에 ‘무성한 감당甘棠나무를 갈기지 말고 베지 말라.
소백召伯초막草幕[茇]을 쳤던 곳이다.注+는 《시경詩經》 〈소남召南〉이다. 소백召伯이 무성한 작은 아가위나무 밑에서 송사訟事판결判決하였으므로 시인詩人이 그를 사모思慕하여 그 나무를 베지 말라고 한 것이다. 초사草舍(草幕)이다. ’고 하였다.
그 사람을 사모思慕하여 오히려 그 나무까지 사랑하였는데, 하물며 그 죽형竹刑[道]를 채용하면서 그 사람을 돌아보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자연子然현능賢能한 사람을 권장勸獎할 수 없을 것이다.注+전문傳文자연子然태숙太叔의 뒤를 이어 집정執政이 되자, 나라가 이 때문에 쇠약衰弱해진 것임을 말한 것이다.
여름에 양호陽虎보옥寶玉대궁大弓을 돌려주었다.注+가까이에 두고 쓰기에 무익無益하고, 단지 보기寶器라는 명목名目만 있기 때문에 돌려준 것이다.
에 ‘’으로 기록한 것은 기용器用이기 때문이다.
기용器用을 얻는 것을 ‘’이라 하고注+기용器用기물器物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을 이른다. , 기물器物로 사용할 수 있는 생물生物을 잡는 것을 ‘’이라 한다.注+기물器物로 사용할 수 있는 생물生物을 잡는 것을 이르니, 이를테면 획린獲麟은 사냥해 잡은 것이고, 부획俘獲은 전쟁해 잡은 것이다.
6월에 노군魯軍양관陽關공벌攻伐하자注+양호陽虎를 토벌한 것이다. , 양호陽虎가 사람을 시켜 내문萊門에 불을 지르게 하니注+양관陽關읍문邑門이다. 노군魯軍이 놀라 허둥대었다.
양호陽虎는 그 틈을 타서 포위를 뚫고 빠져나가 나라로 달아나서注+[부주]林: 노군魯軍이 불길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놀란 것이다. 양호陽虎노군魯軍의 포위를 뚫고 탈출脫出한 것이다. , 제후齊侯에게 출병出兵하여 나라를 치기를 청하며 말하기를 “세 차례만 공격하면 반드시 나라를 취할 수 있습니다.注+나라를 세 차례 공격함이다. ”고 하니, 제후齊侯는 허락하려 하였다.
그러자 포문자鮑文子하기를 “은 전에 시씨施氏가신家臣[隷]으로 있은 적이 있어서注+시씨施氏나라 대부大夫이고, 문자文子포국鮑國이다. 성공成公 17년에 제인齊人포국鮑國을 불러들여 포씨鮑氏후계자後繼者로 세운 것이 지금으로부터 74년 전이니, 이때 문자文子의 나이가 대개 90여 였을 것이다. 나라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데,〉 나라는 할 수 없습니다.
상하上下가 오히려 화합和合하고 중서衆庶화목和睦하며 대국大國(晉)을 잘 섬기고注+대국大國나라를 이른다. 천치天菑가 없으니, 그런 나라를 어찌 취할 수 있겠습니까?
양호陽虎는 우리 나라 군대를 근로勤勞시키려는 것입니다.
제군齊軍이 지치면 대신大臣 중에 반드시 사망死亡하는 자가 많을 것이니, 이때를 노려 양호陽虎[己]는 간사奸詐계모計謀를 펼치려는 것입니다.注+[부주]林: 양호陽虎를 이른다. 양호陽虎가 비로소 간사奸詐계모計謀를 써서 나라를 도모하려 할 것이라는 말이다.
양호陽虎계씨季氏에게 총애寵愛를 받았으되 계손季孫을 죽이고서 나라에 위해危害[不利]를 끼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우리나라로 도망해 와서〉 용납되기를 구하는 것입니다.注+스스로 용납되기를 구함이다. [부주]朱: 계환자季桓子초청招請하여 포포蒲圃에서 접대接待하다가 죽여 나라에 를 끼치려 하다가 나라에서 를 짓고 나라로 도망와서 용신容身하기를 구한 것이다.
그는 를 가까이하고 을 가까이하지 않는 자이니, 임금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쓰시겠습니까?注+[부주]林: 양호陽虎는 오직 부인富人을 가까이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할 뿐이고, 인인仁人을 가까이하여 자신의 도리道理는 도모하지 않는 사람이니, 제군齊君은 장차 그런 사람을 어디에 쓰려는 것이냐는 말이다.
임금님은 계씨季氏보다 부유富裕하시고 나라는 나라보다 크니, 이점이 바로 양호陽虎경복傾覆시키고자 하는 바입니다.注+[부주]林: 제군齊君재부財富계씨季氏보다 많고 나라의 땅이 나라보다 크니, 이점이 바로 양호陽虎나라를 쓰러뜨려 멸망滅亡시키고자 하는 이유라는 말이다.
나라는 그자의 위해危害[疾]를 면하였는데 임금님께서는 도리어[又] 그를 거두시니 어찌 가 없겠습니까?注+[부주]朱: 양호陽虎출분出奔으로 나라는 그 질환疾患을 면하게 되었는데, 우리 임금은 도리어 그를 거두어 머물게 하니, 나라를 해친 자를 이주移住시켜 나라를 해치게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제후齊侯양호陽虎를 잡아 동방東方으로 보내려 하였다.
양호陽虎가 동방으로 가기를 원하자注+양호陽虎는 서쪽에 있는 나라로 도망가고자 하였으니, 나라는 반드시 자기의 의사와 반대되는 곳으로 보낼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동쪽으로 가기를 원한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 곧 그를 서쪽 변비邊鄙수금囚禁하였다.
양호陽虎읍인邑人들의 수레를 다 빌려다가 그 굴대를 깎아내고서 삼으로 깎은 곳을 감아 가지고 주인에게 돌려주었다.注+(깎음)이다. 추격追擊하는 자를 막고자 한 것이다. [부주]林: 양호陽虎는 자기가 머물고 있는 고을 사람들의 수레를 다 빌려다가 쉽게 부러지도록 그 굴대를 깎고서 깎은 곳을 삼으로 감아가지고 그 주인에게 돌려준 것이다.
그러고는 총령葱靈(의복을 싣는 수레)에 짐을 싣고서 짐 속에 누워 도주逃走하니注+총령葱靈치거輜車의 이름이다. [부주]林: 수레에 가리개가 있는 것이다. 치거輜車에 자기 몸을 실은 것이다. , 제인齊人이 추격해 잡아다가 나라 국도國都수금囚禁하였다.
그는 또 총령葱靈을 타고 도주逃走하여 나라로 달아났다가 드디어 나라로 달아나서 조씨趙氏에게로 갔다.注+[부주]林: 양호陽虎조간자趙簡子의 집으로 가서 의탁依託한 것이다.
이에 대해 중니仲尼는 “조씨趙氏는 아마도 대대로 화란禍亂이 있을 것이다.注+난인亂人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고 하였다.
가을에 제후齊侯나라 이의夷儀를 토벌하였다.注+나라를 위해 토벌한 것이다.
이때 폐무존敝無存부친父親이 아내를 얻어주려 하자, 폐무존敝無存은 사양하고서 그 여인女人을 아우에게 주게 하며注+무존無存제인齊人이다. 실지室之는 그를 위해 아내를 얻어줌이다. [부주]林: 그 아비가 무존無存을 위해 아내를 얻어주려 하자, 무존無存은 장가가지 않겠다고 사양하고서, 아내가 될 여자를 그 아우에게 주어 먼저 결혼結婚하게 한 것이다. 말하기를 “이번 전쟁에서 죽지 않으면 돌아와서 반드시 고씨高氏국씨國氏의 딸에게 장가가겠습니다.注+고씨高氏국씨國氏나라 귀족貴族이다. 무존無存은 반드시 을 세우고 돌아와서 경상卿相의 딸에게 장가가려 한 것이다. ”고 하였다.
전쟁할 때 먼저 이의夷儀으로 올라가서 성문城門을 열고 나오려다가 성문 처마 밑에서 전사戰死하였다.注+이미 입성入城하였으나, 이의夷儀 사람들이 항복降服하지 않기 때문에 전투戰鬪하다가 문옥門屋의 처마 밑에서 죽은 것이다.
동곽서東郭書가 앞다투어 성으로 올라가려 하자注+으로 오르는 것은 사람들이 즐기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기의 뒤에 오르도록 양보하고서 자기가 먼저 올라간 것이다. , 이미犂彌가 그 뒤를 따르며注+[부주]林: 이미犂彌동곽서東郭書를 따라 함께 먼저 오른 것이다. 말하기를 “그대는 앞다투어 올라가서 왼쪽으로 가십시오.注+[부주]林: 사람들에게 양보하고서 의 왼쪽에 서 있으라는 말이다.
나는 앞다투어 올라가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오르는 자들이 다 올라온 뒤에 성안으로 내려가겠소.注+동곽서東郭書가 먼저 내려갈까 두려웠기 때문에 그를 속여 양보하게 한 것이다. 는 성안으로 들어감이다. ”라고 하였다.
동곽서東郭書가 성 위로 올라가 왼쪽으로 가니, 이미犂彌는 먼저 성안으로 내려갔다.注+동곽서東郭書이미犂彌의 말에 따라 왼쪽으로 가니, 이미犂彌는 드디어 스스로 먼저 내려간 것이다. 이 또한 양보한 것이다.
전투가 끝난 뒤에 동곽서東郭書왕맹王猛(犂彌)이 휴식休息하던 중에注+전투를 마치고서 함께 휴식한 것이다. [부주]林: 왕맹王猛제인齊人이다. , 왕맹王猛이 말하기를 “내가 먼저 성에 올랐소.”라고 하자, 동곽서東郭書는 갑옷을 수습하면서 말하기를 “지난번에 나를 곤란하게 하더니 지금 또 나를 곤란하게 하는구려.注+갑옷을 수습收拾한 것은 일어나서 왕맹王猛을 공격하려 한 것이다. [부주]林: 지난번에는 성에 오르는 어려움이 있더니 지금은 또 왕맹王猛의 어려움이 있다는 말이다. ”라고 하니, 왕맹王猛이 웃으며 말하기를 “내가 그대를 따르는 것이 참마驂馬복마服馬[靳]를 따르는 것과 같소.注+(服馬)은 수레의 가운데서 수레를 끄는 말이다. 왕맹王猛이 감히 동곽서東郭書와 다툴 수 없어서, 자기가 동곽서東郭書를 따르는 것이 마치 참마驂馬(服馬)을 따르는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전문傳文제군齊軍화합和合하여 승리勝利한 까닭을 말한 것이다. ”라고 하였다.
나라 병거兵車천승千乘중모中牟에 주둔하고 있었다.注+이의夷儀구원救援하기 위해 주둔駐屯한 것이다. 지금 형양滎陽중모현中牟縣이 있는데, 나라에서 가려면 멀리 우회迂廻해야 하니, 아마도 형양滎陽중모中牟전문傳文에 말한 중모中牟가 아닌 듯하다.
위후衛侯가 〈나라를 돕기 위해〉 오씨五氏로 가려 할 때에注+제후齊侯오씨五氏주재駐在하였으므로 가서 도우려 한 것이다. 중모中牟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해 거북점을 치니, 귀갑龜甲이 불에 타서 점을 치지 못하였다.注+나라에서 오씨五氏로 가려면 중모中牟를 통과해야 한다. 진군晉軍이 두려웠기 때문에 거북점을 친 것이다. 귀갑龜甲이 타서 조문兆文이 형성되지 않았으니 행사行事할 수 없다.
위후衛侯가 말하기를 “통과할 수 있다.
나라 병거兵車나라 병거兵車을 상대할 수 있고 과인寡人이 그 반을 상대할 수 있으니 그 형세가 엇비슷하다.注+위후衛侯나라에 대해 매우 노하여 다시 거북점을 고려顧慮하지 않았다. 자신이 진군晉軍의 5백 을 상대하고자 한 것이다. ”고 하고서 중모中牟를 통과하니, 중모인中牟人(晉軍)이 위군衛軍을 공격하려 하였다.
이때 나라 저사포褚師圃가 도망해 와서 중모中牟에 있었는데注+[부주]林: 저사포褚師圃나라의 옛 대부大夫이다. , 말하기를 “나라가 비록 작지만 그 임금이 군중軍中에 있으니 승리勝利할 수 없습니다.
제군齊軍이의성夷儀城에서 승리勝利하고서 교만하고, 그 장수將帥는 또 지위地位비천卑賤하니注+이의夷儀를 이르고, 동곽서東郭書를 이른다. 양군兩軍이 서로 만난다면 반드시 제군齊軍을 패배시킬 수 있으니, 제군齊軍을 공격하는 것만 못합니다.”고 하자, 진군晉軍은 이에 제군齊軍을 공격하여 패배시켰다.注+제군齊軍병거兵車 5백 노획鹵獲한 것이다. 이 일은 애공哀公 15년에 보인다.
제후齊侯작읍禚邑미읍媚邑행읍杏邑나라에 주었다.注+은 모두 나라의 서쪽 경계인데, 이 으로 나라의 고마운 뜻에 답사答謝한 것이다.
제후齊侯이미犂彌에게 시상施賞하자, 이미犂彌가 사양하며 말하기를 “먼저 으로 오르는 사람이 있기에 은 그를 따라 올랐을 뿐입니다.
그는 흰 두건頭巾을 쓰고 이리 가죽으로 지은 갖옷을 입었습니다.注+백색白色이고, 은 위아래의 이[齒]가 가지런하여 서로 맞는 것이다. 는 갖옷이다. ”고 하였다.
제경공齊景公이미犂彌에게 동곽서東郭書를 살펴보게 하자注+[부주]林: 제경공齊景公이 사람을 보내어 동곽서東郭書를 보게 한 것이다. , 이미犂彌가 “바로 저 사람입니다.”고 하고서 동곽서東郭書에게 “나는 이 을 그대에게 드리겠소.注+(줌)이다. [부주]林: 부자夫子동곽서東郭書를 이른다. 먼서 성에 오른 이가 바로 그대이니, 나는 이 을 그대에 주겠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경공景公동곽서東郭書에게 시상施賞하자, 사양하며 말하기를 “저분은 빈려賓旅(外國人으로 와서 벼슬한 사람)입니다.注+가 마치 빈주賓主가 서로 사양하듯이 나란히 함께 진퇴進退하였다는 말이다. [부주]林: 이미犂彌를 이른다. ”고 하니, 경공景公은 이에 이미犂彌에게 시상施賞하였다.注+[부주]林: 이에 이미犂彌에게 아울러 시상施賞한 것이다.
제군齊軍이의夷儀에 있을 때 제후齊侯이의夷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폐무존敝無存시신尸身을 찾는 자에게는 다섯 집을 으로 주고 노역勞役을 면제할 것이다.注+오가五家으로 주고, 항상 역사役事노역勞役제공提供하지 않게 한 것이다.”고 하였다.
이에 그 시신을 찾아서 경공景公은 그 시신에 세 벌의 수의禭衣를 입히고서注+이다. 초빈草殯할 때에 세 벌의 수의襚衣를 입혀 매우 후하게 예우禮遇한 것이다. 물소가죽으로 장식한 수레와 자루가 긴 일산日傘[直蓋]을 〈순장품殉葬品으로〉 주어注+서헌犀軒의 수레이고, 직개直蓋는 자루가 긴 일산日傘이다. 먼저 나라로 돌려보냈는데注+[부주]林: 폐무존敝無存상구喪柩를 먼저 돌려보낸 것이다. , 이때 수레를 끄는 자들을 꿇어앉히고 전군全軍에게 하게 하고서注+상구喪柩를 실은 수레를 정지停止시켜 놓고서 슬픔을 다한 것이다. 이때 임금이 를 만들어 을 하였기 때문에 상구喪柩를 끄는 자들이 감히 서지 못한 것이다. 경공景公이 친히 그 영구靈柩를 세 번 밀어 출발시켰다.注+제후齊侯가 스스로 상거喪車의 바퀴가 세 바퀴 돌도록 민 것이다.


역주
역주1 分器 : 天子의 宗廟에 所藏한 寶器를 諸侯에게 分賜한 것을 이른다.
역주2 亂[辭] : 저본에는 ‘亂’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辭’로 바로잡았다.
역주3 子明謂桐門右師出……何也 : 出은 出國해 尸柩를 맞이해 오라는 말이다. 樂大心이 병으로 사절하였으나, 子明은 그가 병을 假裝한 줄을 알기 때문에 激怒하여 그에게 出國하여 喪柩를 맞이해 오라고 叱責한 것이다. 그 뜻은 나는 喪中에 있으므로 出國할 수 없지만 너는 鍾을 치며 音樂을 演奏하니 무엇 때문에 出國할 수 없느냐는 것이다. 〈楊注〉
역주4 衰絰 : 斬衰服과 首絰을 이른다. 首絰은 1년이 넘으면 벗는 것인데, 樂祁의 喪柩가 돌아오지 않아 아직 葬事를 지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1년이 넘었어도 子明이 首絰을 벗지 않은 것이다.
역주5 己衰絰而生子 余何故舍鐘 : 이것은 樂大心이 어떤 이에게 고한 말인데, 그 뜻은 子明이 비록 스스로 衰絰 중에 있다고 말하였으나 자식을 낳았으니, 형제뻘이 되는 나는 鐘鼓를 버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楊注〉
역주6 叔孫昭子之言 : 昭公 25년 傳에 보이는 ‘昭子告其人曰右師其亡乎’를 이른다.
역주7 鄭所鑄舊制 : 昭公 6년에 鄭나라 子産이 刑法條文을 鼎에 새겨 鑄造한 刑書를 이른다.
역주8 規誨 : 잘못을 諫하여 바로잡고, 善言을 올려 가르침이다.
역주9 忠[中心] : 저본에는 ‘忠’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中心’으로 바로잡았다.
역주10 不恤其人 : 恤은 돌봄이니, 그 사람을 돌보지 않고 버렸다는 말이다.
역주11 不利於魯國 而求容焉 : 魯나라에 不利한 짓을 하려다가 齊나라로 와서 容納되기를 구한 것이다. 季氏에게 寵愛를 받았으되 季孫을 죽이려 하였으니 富를 탐함이 심하고, 남을 不利하게 하려는 마음을 품고서 용납되기를 구하였으니 不仁함이 심하다. 不利는 아래의 ‘害’字와 相應한다. 위의 不利戴氏의 ‘不利’도 같은 뜻이다. 《左氏會箋》
역주12 將東之 : 陽虎를 齊나라 東方에 留置하려 한 것이다. 〈楊注〉
역주13 葱靈 : 衣車(사방을 천으로 가린 수레)인데, 葱(窓)이 있고 靈(櫺)이 있다. 그렇다면 이 수레는 앞뒤에는 가리개가 있고 양옆은 窓이 있어 觀望할 수 있는 것이다. 창 가운데 세운 나무를 ‘靈’이라 한다. 〈正義〉
역주14 讓登 : 杜注에는 ‘讓登’의 讓과 ‘讓而左讓而右’의 讓을 모두 禮讓의 뜻으로 풀었으나, 역자는 이를 따르지 않고 〈楊注〉의 설을 취해 번역하였다. 〈楊注〉에 “讓登은 搶登(앞을 다투어 먼저 오름)이니, 讓은 攘의 假借이다. 실은 자기가 먼저 올라가려 한 것이다. 杜注의 ‘讓衆使後而己先登’은 정확하지 않다.”고 하였다.
역주15 子讓而左……使登者絶而後下 : 犂彌가 東郭書에게 “그대는 앞을 다투어 먼저 올라가서 왼쪽을 향해 가고, 나는 앞을 다투어 올라가서 오른쪽을 향해 가다가 오르는 자들이 다 올라온 뒤에 일제히 함께 성안으로 내려가자.”고 말한 것이다. 〈楊注〉
역주16 託[訖] : 저본에는 ‘託’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訖’로 바로잡았다.
역주17 曩者之難 今又難焉 : 東郭書가 갑옷을 챙겨 입고서 王猛과 싸우려 하면서 “지난번에는 네가 나를 왼쪽으로 올라가게 하여 나를 곤란하게 하더니 이번에는 또 이 일로 나에게 교만을 떨어 또 나를 곤란하게 한다.”고 말한 것이다. 〈楊注〉
역주18 如驂之靳 : 古代의 戰車에는 네 마리의 말을 메우는데, 양쪽에 있는 말을 ‘驂馬’라 하고 중간에 있는 두 마리 말을 ‘服馬’라 한다. 服馬는 등의 안장을 고정시키는 靳(가슴걸이)이 있다. 王猛의 뜻은 나는 驂馬처럼 服馬(東郭書를 뜻함)의 뒤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參考文獻 〈楊注〉
역주19 龜焦 : 龜甲(거북의 등껍질)이 불에 타서 吉凶을 점칠 수 있는 무늬가 형성되지 않은 것이다. 거북점은 龜甲을 불에 구워서 龜甲이 터져서 형성되는 무늬를 보고서 길흉을 점친다.
역주20 晳幘而衣貍製 : 犂彌는 東郭書와 본디부터 아는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겨우 그의 服裝만을 말했을 뿐이다. 幘은 《說文解字》에 “頭髮을 덮는 巾을 ‘幘’이라 한다.”고 하였다. 晳은 白色이다. 杜注에는 幘을 䶦으로 보아 위아래의 이가 서로 잘 맞는 것이라 하였다. 〈楊注〉
역주21 公使視東郭書 : 景公이 犂彌에게 東郭書를 보게 한 것인 듯하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번역하였다.
역주22 彼 賓旅也 : 旅도 客이다. 犂彌가 東郭書와 함께 出戰하였으면서도 서로 알지 못하였으니, 아마도 犂彌는 他國에서 와서 처음 齊나라에 벼슬한 자인 듯하다. 그러므로 東郭書가 ‘賓旅’라고 한 것이다. 〈楊注〉
역주23 與之犀軒與直蓋 : 軒은 高貴한 자가 타는 수레이다. 犀軒은 물소가죽으로 장식한 수레이고, 直蓋는 高蓋로 바로 오늘날의 자루가 긴 日傘이다. 이것을 주어 殉葬品으로 쓰게 한 것이다. 參考文獻 〈楊注〉

춘추좌씨전(7)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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