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春秋左氏傳(8)

춘추좌씨전(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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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二十年春 齊人來徵會하다
會于廩丘하니 爲鄭故 謀伐晉注+十五年 晉伐鄭하다
鄭人辭諸侯하니 師還注+終叔向言晉公室卑하다
[傳]吳公子慶忌驟諫吳子曰 不改 必亡하리라 弗聽注+吳子弗聽 [附注] 林曰 不改修德하니 出居于艾注+艾 吳邑 豫章有艾縣 [附注] 林曰 慶忌出居라가 遂適楚하다
聞越將伐吳하고 請歸平越注+[附注] 林曰 慶忌請歸吳以平越難하야 遂歸하야 注+[附注] 林曰 慶忌欲除去不忠於吳者 以解說於越하니 吳人殺之注+言其不量力하다
[傳]十一月 越圍吳하다
趙孟降於注+趙孟 襄子無恤 時有父簡子之喪 [附注] 林曰 飮食又降於居喪하니 楚隆曰 三年之喪 親暱之極也어늘 主又降之하니 無乃有故乎注+楚隆 襄子家臣 [附注] 林曰 父母之喪三年 此親愛之極者也 襄子又降於喪食 豈有他故乎 趙孟曰 黃池之役 先主與吳王有質注+黃池在十三年 先主 簡子 質 盟信也曰 好惡同之라하니라
今越圍吳하니 嗣子不廢舊業而敵之注+嗣子 襄子自謂 欲敵越救吳로되 吾是以爲降注+[附注] 林曰 吳晉相距甚遠 非晉力之所能及也 我是以爲降於喪食이로라
楚隆曰 若使吳王知之 若何注+[附注] 朱曰 言雖不能救吳 但使吳王知我憂吳之意 如何 趙孟曰 可乎ᄂ저
隆曰 請嘗之注+嘗 試也호리라하고 乃往하야 하야
吳犯上國多矣注+[附注] 林曰 言吳人干犯離間上國 亦已多矣ᄅ새 聞君親討焉하고 諸夏之人莫不欣喜로되 唯恐君志之不從注+[附注] 朱曰 唯恐越君志意之不遂하니
請入視之하노라 許之注+[附注] 林曰 請入吳而視其動息하다
告于吳王曰 寡하야 敢展謝其不共注+展 陳也이로라
黃池之役 君之先臣志父得承齊盟하야 曰 好惡同之라하니라
今君在難하니 無恤不敢憚勞 非晉國之所能及也ᄅ새 使陪臣敢展布之하노라
王拜稽首曰 寡人不佞하야 不能事越하야 以爲大夫憂하니 拜命之辱하노라하고
與之一簟珠注+簟 小笥하야 使問趙孟注+問 遺也하고 曰 句踐將生憂寡人하니 注+[附注] 林曰 言句踐將使我生受其憂患 我雖欲爲之死 不可得矣 로라
王曰 라하니 吾將有問也注+以自喩所問不急 猶溺人不知所爲而反笑 [附注] 朱曰 我將有問於汝也로라
史黯何以得爲君子注+晉史黯云 吳王感問此也 對曰 黯也進不見惡注+時行則行하고 退無謗言注+時止則止하니라 王曰宜哉注+[附注] 林曰 宜其爲君子也


20년 봄에 제인齊人이 와서 회합會合에 오라고 불렀다.
여름에 늠구廩丘에서 회합會合하였으니, 나라를 위한 일로 나라 토벌을 상의하기 위해서였다.注+애공哀公 15년에 나라가 나라를 토벌하였다.
정인鄭人제후諸侯에게 사절하니, 가을에 군대가 돌아왔다.注+끝내 ‘나라 공실公室쇠약衰弱[卑]해질 것’이라고 한 숙향叔向의 말과 같이 되었다.
나라 공자公子경기慶忌오자吳子에게 “〈현재의 정령政令을〉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라고 자주 하였으나 듣지 않으니注+오자吳子가 듣지 않은 것이다. [부주]林: 잘못을 고치고 덕을 닦지 않음이다. , 경기慶忌국도國都를 나와 에서 살다가注+나라 이다. 예장豫章애현艾縣이 있다. [부주]林: 경기慶忌가 나가서 산 것이다. 드디어 나라로 갔다.
〈얼마 뒤에〉 나라가 나라를 치려 한다는 말을 듣고, 겨울에 나라로 돌아가서 나라와 화평和平시키기를 청하여注+[부주]林: 경기慶忌나라로 돌아가서 나라와의 전란戰亂화평和平시키기를 청한 것이다. , 드디어 돌아가서 불충不忠한 자들을 제거하여 나라를 기쁘게 하려 하니注+[부주]林: 경기慶忌나라에 불충不忠한 자들을 제거하여 나라에 해명하려 한 것이다. , 오인吳人경기慶忌를 죽였다.注+경기慶忌가 자기의 능력能力을 헤아리지 못한 것을 말한 것이다.
11월에 월군越軍나라를 포위하였다.
조맹趙孟상중喪中에 들던 음식飮食보다 그 가짓수를 줄이니注+조맹趙孟양자襄子무휼無恤이다. 이때 아버지 조간자趙簡子상중喪中에 있었다. [부주]林: 음식飮食거상居喪 중에 들던 것보다 가짓수를 더욱 줄인 것이다., 초륭楚隆이 말하기를 “부모父母상중喪中에 3년 동안 〈거친 음식을 드는 것은〉 친애親愛하는 마음이 지극하기 때문인데, 주공主公께서는 상중喪中에 드는 음식보다 가짓수를 더욱 줄이시니 까닭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注+초륭楚隆양자襄子가신家臣이다. [부주]林: 부모父母상중喪中에 3년 동안 〈간소簡疏한 음식을 먹는〉 것은 친애親愛가 지극하기 때문인데, 양자襄子는 도리어 상식喪食보다 낮추었으니, 어찌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조맹趙孟이 말하기를 “황지黃池회맹會盟선주先主(趙鞅)와 오왕吳王맹약盟約하기를注+황지黃池회맹會盟애공哀公 13년에 있었다. 선주先主조간자趙簡子를 이른다. 맹약盟約이다. 호오好惡(苦樂)를 함께하리라.’고 하셨다.
지금 나라가 나라를 포위하였으니, 선주先主의 뒤를 이은 나는 선주先主께서 맺으신 맹약[舊業]을 폐기하지 않고 달려가 월군越軍을 대적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데도注+사자嗣子조양자趙襄子가 자신을 이른 것이다. 월군越軍대적對敵하여 나라를 구원救援하고 싶다는 말이다. 나라의 국력國力으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나는 음식의 가짓수를 줄여 〈스스로를 죄책罪責하는〉 것이다.注+[부주]林: 나라와 나라는 거리가 매우 멀어서 나라의 힘이 미칠 수 없으니, 나는 이로 인해 먹는 음식을 상식喪食보다 낮추었다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초륭楚隆이 말하기를 “오왕吳王으로 하여금 주공主公의 뜻을 알게 하면 어떻겠습니까?注+[부주]朱: 비록 나라를 구원할 수는 없으나, 오왕吳王으로 하여금 우리가 나라를 걱정하는 뜻을 알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말이다. ”라고 하니, 조맹趙孟이 “좋다.”고 하였다.
그러자 초륭楚隆이 “한번 시도試圖해보겠습니다.注+이다. ”라고 하고서 길을 떠나가서 먼저 월군越軍진영陣營으로 가서 말하기를
나라가 상국上國(越)을 침범한 일이 많았으므로注+[부주]林: 오인吳人상국上國을 침범하고 이간離間한 일 또한 이미 많다는 말이다.월군越君께서 친히 토벌한다는 말을 듣고서 제하諸夏의 사람들 중에 기뻐하지 않는 자가 없으나, 오직 임금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注+[부주]朱: 오직 월군越君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두려울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오군吳軍진영陣營으로〉 들어가서 〈그 정황情況을〉 살펴보기를 청합니다.”라고 하니, 월왕越王이 허락하였다.注+[부주]林: 나라로 들어가서 그 동정動靜을 살피기를 청한 것이다.
초륭楚隆이 〈오군吳軍진영陣營으로 가서〉 오왕吳王에게 고하기를 “우리 임금님의 노신老臣무휼無恤배신陪臣을 보내어 감히 자신의 불공不恭사죄謝罪하게 하였습니다.注+이다.
황지黃池에서 회맹會盟할 때 임금님의 선신先臣지보志父(趙鞅)가 제맹齊盟(同盟)에 참가하여 ‘호오好惡를 함께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오군吳君께서 위난危難 중에 계시니, 나 무휼無恤은 감히 〈출전出戰하는〉 노고勞苦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만 나라의 국력國力으로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므로 배신陪臣을 보내어 감히 사정을 진술陳述하는 바입니다.”라고 하니,
오왕吳王이 절하고서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과인寡人이 변변치 않아 나라를 잘 섬기지 못하여 대부大夫(無恤)에게 근심을 끼쳤는데도 이렇게 관심을 보여주시니 감사합니다.”라고 하고서
진주珍珠 한 상자를 초륭楚隆에게 주어注+은 작은 상자이다. 무휼無恤에게 전해주게 하며注+(줌)이다. 말하기를 “구천句踐과인寡人에게 살아서 우환憂患을 겪게 하려 하니, 과인寡人수명壽命으로 죽을 수 없을 것입니다.注+[부주]林: 구천句踐이 나로 하여금 살아서 그 우환憂患을 겪게 하려 하니, 내가 비록 〈수명壽命대로 살다가〉 죽고자 해도 될 수 없다는 말이다.”라고 하고서,
오왕吳王초륭楚隆에게 말하기를 “물에 빠진 사람은 반드시 웃는다고 하니, 나도 그대에게 묻고자 하오.注+시급時急하지 않은 것을 묻는 것이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어찌할 바를 몰라 도리어 웃는 것과 같다고 스스로 비유한 것이다. [부주]朱: 내가 너에게 물으려 한다는 말이다.
사암史黯(史墨)은 어째서 군자君子가 된 것이오.注+나라 사암史黯이 ‘40년이 되기 전에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오왕吳王은 이 말에 느낌이 있어 사암史黯에 대해 물은 것이다. ”라고 하자, 초륭楚隆이 “사암史黯은 벼슬에 나아가도 그를 미워하는 이가 없었고注+할 때가 되면 한 것이다. , 벼슬에서 물러나도 그를 비방하는 자가 없었습니다.注+멈출 때가 되면 멈춘 것이다. ”라고 대답하니, 오왕吳王은 “〈군자君子가 된 것이〉 당연하다.注+[부주]林: 그가 군자君子가 된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다. ”고 하였다.


역주
역주1 欲除不忠者以說于越 : 吳나라에 不忠하는 신하들을 除去하고서 越나라와 講和하려 한 것이다.
역주2 喪食 : 禮로 規定한 喪人의 疏食을 이른다. 이때 無恤은 父喪中이어서 疏食을 들고 있었는데, 吳나라가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먹는 飮食의 가짓수를 더욱 줄인 것이다. 〈楊注〉에 “父喪中에는 食品을 줄이는 것이 禮이다. 지금 吳나라가 포위되어 滅亡할 形勢가 있는데도 자기가 救援할 수 없기 때문에 父喪中에 들던 음식보다 등급을 낮춘 것이다.”라고 하였다.
역주3 非晉之所能及也 : 晉나라의 國力이 吳나라를 救援하기에 부족하다는 말이다.
역주4 先造于越軍 : 吳나라가 이미 包圍되었으니, 吳城으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越軍의 陣營을 지나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越軍의 陣營으로 간 것이다. 〈楊注〉
역주5 閒[間] : 저본에는 ‘閒’으로 되어 있으나 《十三經注疏》本에 의거하여 ‘間’으로 바로잡았다.
역주6 寡君之老無恤使陪臣隆 : 吳王과 晉侯는 그 身分이 對等하고 趙無恤은 晉나라 正卿이기 때문에 ‘老’라고 稱한 것이고, 楚隆은 또 無恤의 신하이기 때문에 스스로 ‘陪臣’이라고 稱한 것이다. 〈楊注〉
역주7 寡人死之不得矣 : 〈楊注〉에 “자기는 善終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善終’은 非命에 죽지 않고 壽命대로 살다가 죽는 것을 이른다.
역주8 溺人必笑 : 물에 빠진 사람이 입을 크게 벌려 웃는 모양을 짓는 것을 이르고, 물에 빠져 죽으면서도 오히려 웃는 용모가 있다는 말이 아니다. 이 말은 대개 당시의 俗談인 듯하다. 參考文獻 《左氏會箋》
역주9 不及四十年 吳當亡 : 昭公 32년 傳에 보이는 “史墨曰不及四十年越其有吳乎”를 말한 것이다.

춘추좌씨전(8) 책은 2019.05.2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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