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正義曰:此第三段, 歎夫子沒後, 遭世陵遲, 典籍散亡, 傳注踳駁, 所以撮其樞要, 而自作注也.
‘嗟乎’, 上歎辭也. ‘夫子’, 孔子也. 以嘗爲魯大夫, 故云夫子.
‘而微言絶’者, 藝文志文.
曰 “隱微不顯之言也.”
曰 “精微要妙之言耳.”
言夫子沒後, 妙言咸絶, 七十子旣喪, 而異端竝起, 大義悉乖.
아, 부자夫子(공자)께서 돌아가시자 심오한 말이 끊기고, 이단異端이 일어나자 대의大義(세상을 경영하는 법도)가 〈원칙에〉 어그러졌다.
疏
○정의왈正義曰:이 대목은 제3단락으로, 부자(공자)가 별세한 뒤에 쇠퇴한 세상을 만나 전적典籍이 흩어져 사라지고 전주傳注(경적經籍의 풀이)가 뒤섞임을 탄식하고, 이 때문에 핵심을 잡아 〈당 현종〉 스스로 주注를 지었다〈고 말한〉 것이다.
‘차호嗟乎’는 황제가 탄식한 말이다. ‘부자夫子’는 공자孔子이다. 일찍이 노魯나라 대부大夫였기 때문에 부자夫子라고 칭한 것이다.
≪사기史記≫를 살펴보면 “공자孔子는 노魯나라 창평향 추읍昌平鄕 陬邑에서 태어났다. 노 양공魯 襄公 22년(B.C.551)에 태어나고 향년 73세인 노 애공魯 哀公 16년(B.C.479) 4월 기축일己丑日에 별세하여, 노魯나라 도성 북쪽의 사수泗水 가에 묻혔다.”라고 하였다.
[이미언절而微言絶]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의 문구이다. 〈미언微言에 대해〉 이기李奇는 ‘은미隱微하여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말’이라고 하였고, 안사고顔師古는 ‘정밀하고 오묘한 말’이라고 하였다.
〈이 대목은〉 부자夫子가 별세한 뒤에 오묘한 말이 모두 끊기고 70명의 제자가 죽은 뒤에 〈여러 가지〉 이단異端이 함께 일어나 대의大義(세상을 경영하는 법도)가 모두 〈원칙에〉 어그러졌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