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
○正義曰:夫子旣述先王以身率下先, 及大臣助君行化之義畢, 乃引小雅節南山詩以證成之.
赫赫, 明盛之貌也, 是太師尹氏也. 言助君行化, 爲人模範, 故人皆瞻之.
疏
○正義曰:“赫赫 明盛貌也 尹氏爲太師 周之三公也”者, 此毛傳文.
太師‧太傅‧太保, 是周之三公. 尹氏時爲太師, 故曰
也.
云“義取大臣助君行化 人皆瞻之也”者, 引詩大意如此. 孔安國曰 “具, 皆也. 爾, 女也.
古語或謂 ‘人具爾瞻’, 則人皆瞻女也.” 此章再言“先之”, 是吾身行率先於物也,
“陳之”‧“
之”‧“示之”, 是大臣助君爲政也. 案大戴禮云 “昔者舜左禹而右皐陶, 不下席而天下大治.
夫政之不中, 君之過也. 政之旣中, 令之不行, 職事者之罪也.”
”.
又案尙書益稷篇稱 “帝曰 ‘吁, 臣哉鄰哉, 鄰哉臣哉.’ 又曰 “臣作朕股肱耳目.”
孔傳曰 “言君臣道近, 相須而成.” 言
體若身, 君任股肱, 臣戴元首之義也.
故禮緇衣稱 “上好是物, 下必有甚者矣. 故上之好惡, 不可不愼也, 是民之表也.” “詩云 ‘赫赫師尹, 民具爾瞻.’
甫刑曰 ‘一人有慶, 兆民賴之.’” 緇衣之引詩‧書, 是明下民從上之義. 師尹, 大臣也. 一人, 天子也.
謂人君爲政, 有身行之者, 有大臣助行之者. 人之從上, 非惟從君, 亦從論道之大臣. 故幷引以結之也.
此章上言先王, 下引師尹, 則知君臣同體, 相須而成者, 謂此也.
皇侃以爲 “無先王在上之詩, 故斷章引大師之什”, 今不
也.
疏
○정의왈正義曰:[혁혁 명성모야赫赫 明盛貌也 윤씨위태사 주지삼공야尹氏爲太師 周之三公也] 이는 ≪모시고훈전毛詩詁訓傳≫의 글이다.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가 주周나라의 삼공三公이다. 윤씨尹氏가 당시에 태사太師였기 때문에 ‘사윤師尹’이라고 한 것이다.
[의취대신조군행화 인개첨지야義取大臣助君行化 人皆瞻之也] 〈≪시경≫의 이〉 시를 인용한 대의가 이와 같은 것이다. 공안국孔安國이 말하기를 “구具는 개皆(모두)이고, 이爾는 여女(너)이다.
옛말에 간혹 ‘인구이첨人具爾瞻’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모두 너를 우러러본다’라는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 장章에서 두 번 말한 ‘솔선하면’은 ‘내(임금)가 몸소 행하여 남에게 솔선하는 것’이고,
‘설명하면’‧‘인도하면’‧‘보여주면’은 ‘대신大臣이 임금을 도와 정치를 행하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대대례기大戴禮記≫ 〈주언主言〉에 “옛날 순舜임금이 왼쪽에 우禹를, 오른쪽에 고요皐陶를 거느리자,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도 천하가 크게 다스려졌다.
정령政令이 중도에 맞지 않는 것은 임금의 잘못이고, 정령政令이 중도에 맞는데 명령이 행해지지 않는 것은 일을 맡은 신하의 죄이다.”라고 하였고, 후대에 ≪주례周禮≫를 인용하여 “삼공三公은 관속官屬이 없고 임금과 직무를 함께 하며 앉아서 치도治道를 논한다.”라고 하였다.
또 살펴보건대 ≪상서尙書≫ 〈익직益稷〉에 “황제가 ‘아, 신하가 이웃이고 이웃이 신하이다.’라고 하였다.”라고 하고, 또 “신하는 짐朕의 팔다리와 이목耳目이 되었으니”라고 하였는데,
공안국의 전傳에 “임금과 신하는 〈각자의〉 도리(마땅히 행해야 할 바른길)가 가까워서 서로 필요로 하여 성취한다는 말이다.”라고 하였으니, 사람의 몸처럼 한 몸이라서 임금은 팔다리(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머리(임금)를 받든다는 뜻을 말한 것이다.
≪예기禮記≫ 〈치의緇衣〉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윗사람이 이 물건을 좋아하면 아래에는 반드시 더 심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윗사람은 호오好惡를 신중히 하지 않아서는 안 되니, 〈윗사람의 호오가〉 백성의 준칙〈이 되기 때문〉이다.……≪시경≫에 ‘위엄 있는 태사 윤씨太師 尹氏여, 백성들이 모두 그대를 우러러보도다.’라고 하였고,
≪상서尙書≫ 〈보형甫刑〉에 ‘한 분에게 선행善行이 있으면 만민萬民이 혜택을 입는다.’라고 하였다.” 〈치의緇衣〉에 ≪시경≫과 ≪상서≫를 인용한 것은 백성이 윗사람을 따른다는 뜻을 밝히기 위함이다. 태사 윤씨太師 尹氏는 대신이고, 한 분은 천자이다.
‘임금이 정치를 할 때 몸소 행하는 것이 있고 대신이 도와서 행하는 것이 있으므로, 백성이 윗사람을 따르는 것은 비단 임금을 따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치도治道를 논하는 대신을 따르는 것이기도 하다.’라는 말이다. 이 때문에 〈위 시를〉 아울러 인용하여 마무리한 것이다.
이 장에서는 앞에서 선왕先王을 말하고 뒤에서 태사 윤씨〈에 대한 시〉를 인용했으니, ‘임금과 신하는 한 몸이므로 서로 필요로 하여 성취한다.’라는 것이 이를 일컬음을 알 수 있다.
황간皇侃은 “선왕先王이 윗자리에 있는 내용의 시가 없기 때문에 태사의 일을 읊은 시를 단장취의斷章取義하여 인용하였다.”라고 하였으나 지금 〈이 설은〉 취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