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
에 洛陽人蘇秦
이 秦王以兼天下之術
호되 秦王
이 不用其言
이라
蘇秦
이 乃去
하야 說燕文公曰 燕之所以不犯寇被兵者
는 以趙爲之蔽也
니 願大王
은 與趙從親
注+[釋義]卽之縱이라하야
當今에 山東之國이 莫强於趙요 秦之所害도 亦莫如趙나
秦之攻韓, 魏也에 無有名山大川之限하야 稍蠶食之면 韓, 魏不能支하야 必入臣於秦하리니 秦無韓, 魏之規면 則禍中於趙矣리이다
夫衡(橫)人者
는 皆欲割諸侯之地
하야 以與秦
하나니 秦成則其身富榮
注+[釋義]慈湖王氏曰 身富榮句絶이라하고 國被秦患
이라도 而不與其憂
니이다
竊爲大王計컨대 莫若一韓, 魏, 齊, 楚, 燕, 趙하야 爲從親以擯秦이니
令天下之將相
으로 會 於
水
注+[釋義]相州縣名이니 後屬魏州라 左傳註에 洹水는 出汲郡林慮縣하야 東北至魏郡長樂縣하야 入淸水라 洹은 音桓이니 今土俗音袁이라之上
하야 約曰
秦이 攻一國이어든 五國이 各出銳師하야 或撓秦하고 或救之호되 有不如約者어든 五國이 共伐之라하면
肅侯大悅
하야 厚待蘇秦
하고 尊寵賜
之
하야 以約於諸侯
하다
於是에 蘇秦이 說韓王曰 韓은 地方九百餘里요 帶甲이 數十萬이요 天下之强弓勁弩利劍이 皆從韓出이라
今大王이 事秦하시면 秦이 必求宜陽, 成皐요 今玆效之면 明年에 又復求割地하리니 地有盡이나 而秦之求無已하리이다
鄙諺曰 寧爲鷄口
언정 無爲牛後
注+[釋義]慈湖王氏曰 戰國策에 作寧爲鷄尸언정 不爲牛從이라한대 延駕註에 尸는 主也요 從은 牛子也니 言寧爲鷄中之主언정 不爲牛子之從後也라 鮑彪沈括辨에 皆以爲鷄尸牛從이라 按蘇秦稱牛後者는 蓋故以惡語侵韓하야 欲(昭)[威]侯怒而從之耳니 鷄尸牛從은 謬誤也라 正義曰 鷄口雖小나 猶能進食이요 牛後雖大나 乃出糞也라하니라라하니 以大王之賢
으로 挾彊韓之兵
하야 而有牛後之名
하시니 竊爲大王羞之
하노이다 韓王
이 從其言
하다
蘇秦
이 說魏王曰 大王之地方千里
요 武士二十萬
이요 蒼頭
注+[釋義]長大有膂力者之號라 項羽傳에 異軍蒼頭라하니라 應劭曰 言其與衆異也니 蒼頭는 若赤眉靑領以相別也라 國策註에 蒼頭는 魏兵卒之號也라二十萬
이요 奮擊二十萬
이요
廝徒
注+[釋義]廝는 養馬之賤者也요 徒는 僕隷也라十萬
이요 車六百乘
이요 騎五千匹
이어늘
乃聽群臣之說하야 而欲臣事秦하시니 願大王熟察之하소서 魏王이 聽之하다
地方二千餘里
요 帶甲數十萬
이요 粟如丘山
하고 臨
之塗
에 車轂擊
하고 人肩摩
하며 連袵成帷
하고 揮汗成雨
하니
今에 秦之攻齊則不然하야 雖欲深入이나 則恐韓魏之議其後하니 秦之不能害齊亦明矣라
夫不料秦之無奈齊何하고 而欲西面而事之하시니 是는 群臣之計過也로소이다 齊王이 許之하다
地方六千餘里요 帶甲百萬이요 粟支十年하니 此는 霸王之資也라
故로 從親則諸侯割地以事楚요 衡合則楚割地以事秦이니 此兩策者는 相去遠矣니
於是
에 蘇秦
이 爲從約長
하야 幷相六國
하고 北報趙
하니 車騎輜重
注+[釋義]慈湖王氏曰 輜는 載衣車요 重은 載物車라 〈顔〉師古曰 行者之資를 總曰輜重이라이 擬於王者
러라
처음에 낙양洛陽 사람 소진蘇秦이 진왕秦王에게 천하天下를 겸병하는 방법으로 설득하였으나 진왕秦王이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소진蘇秦이 마침내
진秦나라를 떠나
연燕나라
문공文公을 설득하기를 “
연燕나라가
적침敵侵을 당하지 않고 병란을 입지 않는 까닭은
조趙나라가 울타리가 되어 주기 때문이니, 원컨대 대왕은
조趙나라와
종친從親注+[釋義]종從은 바로 종횡縱橫의 종縱이다. 하소서.
그리하여 천하가 하나가 되면 연燕나라가 반드시 병화兵禍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문공文公이 그 말을 따라 소진蘇秦에게 수레와 말을 주어서 조趙나라 숙후肅侯를 다음과 같이 설득하게 하였다.
“지금 산동山東의 나라 중에 조趙나라보다 더 강한 나라가 없고, 진秦나라의 폐해도 조趙나라보다 더한 나라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진秦나라가 감히 조趙나라를 정벌하지 못하는 것은 한韓나라와 위魏나라가 그 뒤를 도모할까 두려워해서입니다.
진秦나라가 한韓, 위魏를 공격함에는 명산대천名山大川의 한계가 없어서 차츰 잠식蠶食해 가면 한韓, 위魏가 지탱하지 못하여 반드시 진秦나라에 들어가 신하가 될 것이니, 진秦나라에 한韓, 위魏의 견제가 없으면 화禍가 조趙나라에 집중될 것입니다.
연횡連橫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후諸侯의 땅을 떼어
진秦나라에 주려고 하니,
진秦나라가 성공하면 자신은 부유하고 영화로우며,
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신부영身富榮’에서 구句를 뗀다.” 자기 나라가
진秦나라의 환난을 입더라도 자신은 그 우환에 관여하지 않습니다.
대왕을 위하여 계책해 보건대 한韓‧위魏‧제齊‧초楚‧연燕‧조趙를 하나로 만들어 종친從親을 해서 진秦나라를 물리치는 것만 한 것이 없습니다.
천하의
장상將相들로 하여금
원수洹水注+[釋義]원수洹水는 상주相州의 고을 이름이니, 뒤에 위주魏州에 속하였다. 《춘추좌전春秋左傳》 주註에 “원수洹水는 급군汲郡 임려현林慮縣에서 나와 동북쪽으로 위군魏郡 장악현長樂縣에 이르러 청수淸水로 들어간다.” 하였다. 원洹은 음이 환이니, 지금 토속土俗의 음은 원이다. 가에 모여 약속하기를
‘진秦나라가 어느 한 나라를 공격하거든 다섯 나라가 각각 정예병을 내어, 혹은 진秦나라를 요란撓亂시키고 혹은 공격당하는 나라를 구원하되 약속과 같이 하지 않는 나라가 있거든 다섯 나라가 함께 공격한다.’라고 하면
진秦나라 군대가 반드시 함곡관函谷關을 나와 산동山東 지방을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숙후肅侯가 크게 기뻐하여 소진蘇秦을 후대하고 높이고 총애하며 물건을 많이 하사하여 제후諸侯들과 약속하게 하였다.
이에 소진蘇秦이 한왕韓王(宣惠王)을 설득하기를 “한韓은 땅이 9백여 리이고 갑옷 입은 병사가 수십만 명이며 천하의 강한 활과 굳센 쇠뇌와 예리한 검이 모두 한韓나라로부터 나옵니다.
이제 대왕이 진秦나라를 섬기시면 진秦나라가 반드시 의양宜陽과 성고成皐를 요구할 것이요, 금년에 이것을 바치면 명년에 또다시 땅을 떼어 줄 것을 요구할 것이니, 땅은 다함이 있으나 진秦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차라리 닭의 주둥이가 될지언정 소의 뒤(항문)는 되지 말라.’
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전국책戰國策》에 ‘차라리 닭들 가운데에 주장이 될지언정 어미소의 뒤를 따라가는 송아지는 되지 말라.’ 하였는데, 연가延駕의 주註에 ‘시尸는 주장함이요 종從은 소 새끼(송아지)이니, 차라리 닭들 가운데에 주장이 될지언정 뒤에 따라가는 소 새끼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하였다. 포표鮑彪와 심괄沈括의 변辨에 모두 계시우종鷄尸牛從이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소진蘇秦이 우후牛後(소의 항문)라고 칭한 것은 고의로 이런 나쁜 말을 하여 한韓나라를 비하해서 위후威侯로 하여금 노하여 자신의 말을 따르게 하고자 한 것이니, 계시우종鷄尸牛從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이르기를 ‘닭의 주둥이는 비록 작으나 오히려 음식을 올리는 곳이요, 소의 항문은 비록 크나 바로 똥이 나오는 곳이다.’ 하였다.” 하였으니, 대왕의 현명함으로 강한
한韓나라의 병력을 보유하고서 소의 뒤라는 이름이 있으시니, 저는 속으로 대왕을 위하여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하니,
한왕韓王이 그의 말을 따랐다.
소진蘇秦이
위왕魏王을 설득하기를 “대왕은 땅이 천 리이고
무사武士가 20만이고
창두蒼頭注+[釋義]창두蒼頭는 신체가 장대하고 완력이 있는 자의 호칭이다. 《한서漢書》 〈항우전項羽傳〉에 ‘이군창두異軍蒼頭(딴 군대와 식별하기 위하여 창두蒼頭를 함)’라 하였다. 응소應劭가 말하였다. “그 무리와 달리함을 말한 것이니, 창두蒼頭는 눈썹을 붉게 하고 옷깃을 푸르게 하여 서로 구별한 것과 같은 것이다.” 《전국책戰國策》 주註에 “창두蒼頭는 위魏나라 병졸의 호칭이다.” 하였다. 가 20만이고
분격奮擊하는 자가 20만이고
소와 말을 먹이는
시도廝徒注+[釋義]시廝는 말을 기르는 천한 일을 하는 자이고, 도徒는 종이다. 가 10만이고 수레가 6백 승이고
기병騎兵이 5천 필인데,
마침내 여러 신하들의 말을 듣고서 신하가 되어 진秦나라를 섬기고자 하시니, 원컨대 대왕은 익숙히 살피소서.” 하니, 위왕魏王이 그 말을 따랐다.
소진蘇秦이 제왕齊王을 설득하기를 “제齊나라는 사방이 막혀 있는 요새의 나라입니다.
땅이 2천여 리이고 갑옷 입은 병사가 수십만 명이고 곡식이 언덕과 산처럼 쌓여 있으며, 도성인 임치臨淄의 길에 수레는 바퀴가 서로 부딪치고 사람은 어깨가 서로 맞닿을 정도이며 소매가 이어져 휘장을 이루고 사람들이 뿌린 땀이 비를 이루고 있습니다.
한韓, 위魏가 진秦나라를 중하게 여기고 두려워하는 까닭은 진秦나라와 접경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秦나라가 제齊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서 비록 깊이 쳐들어오고자 하나 한韓, 위魏가 그 뒤를 도모할까 두려워하니, 진秦나라가 제齊나라를 해치지 못할 것이 또한 분명합니다.
진秦나라가 제齊나라에게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헤아리지 않고 서쪽을 향하여 진秦나라를 섬기고자 하시니, 이는 여러 신하들의 계책이 잘못된 것입니다.” 하니, 제왕齊王이 허락하였다.
소진蘇秦은 마침내 남쪽으로 가서 초왕楚王을 설득하기를 “초楚나라는 천하의 강대국입니다.
땅이 6천여 리이고 갑옷 입은 병사가 100만이고 곡식이 10년을 지탱할 수 있으니, 이는 패왕霸王의 밑천입니다.
초楚나라가 강하면 진秦나라가 약해지고 진秦나라가 강하면 초楚나라가 약해지니, 그 형세가 둘이 함께 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왕大王을 위하여 계책을 세워보건대 종친從親하여 진秦나라를 고립시키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종친從親을 하면 제후들이 땅을 떼어 초楚나라를 섬기고, 연횡連橫을 하면 초楚나라가 땅을 떼어 진秦나라를 섬기니, 이 두 가지 계책은 서로 거리가 멉니다.
대왕은 어느 쪽에 있으시겠습니까?” 하니, 초왕楚王도 허락하였다.
이에
소진蘇秦이
종약장從約長이 되어 아울러
육국六國의 정승이 되고
북北으로
조趙나라에 보고하니,
거기車騎와
치중輜重注+[釋義]자호왕씨慈湖王氏가 말하였다. “치輜는 옷을 싣는 수레이고 중重은 물건을 싣는 수레이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길 가는 자에게 필요한 물건을 통틀어 치중輜重이라고 한다.’ 하였다.” 이
왕자王者에 비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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