齊
王
이 旣滅宋而驕
하야 乃南侵楚
하고 西侵三晉
하고 欲幷
하야 爲天子
라
燕昭王이 日夜에 撫循其人하고 乃與樂毅로 謀伐齊할새
하야 以樂毅
로 爲上將軍
하고 幷將秦, 魏, 韓, 趙之兵
하야 以伐齊
하니
齊湣王이 悉國中之衆하야 以拒之할새 戰于濟西하야 齊師大敗라
遂進軍한대 齊人이 大亂失度하니 湣王이 出走하다
樂毅入臨淄
注+[釋義]臨淄水는 出泰山梁縣西北하야 入汶하니 隋置淄州라 括地志云 靑州臨淄縣은 一名齊城이니 古營丘地니 今益都屬縣이라하야 取寶物祭器
注+[釋義]凡王者大祭祀에 必陳設文物軒車彛器等하니 因謂此爲祭器라하야 輸之於燕
하니 燕王
이 封樂毅
하야 爲昌國
注+[釋義]地志에 齊〈郡〉有昌國縣이라 括地志云 漢武更山陽爲昌國하니 今曹州城武東北三十二里梁丘故城이 是라君
하고 遂使留徇
注+[釋義]巡師宣令也라齊城之未下者
하다
齊王
이 走莒
注+[釋義]今益都莒州是라 故莒子國이니 郭周四十餘里라어늘 楚 使
齒
注+[釋義]淖는 姓也라 楚人이니 江都易王傳에 有美人淖姬한대 蘇林註에 淖音은 泥淖之淖니 尼敎反이라로 將兵救齊
하고 因爲齊相
이러니 淖齒欲與燕分齊地
하야 乃遂弑王於鼓里
하다
得道以持之면 則大安也요 大榮也요 積美之源也며 不得道以持之면 則大危也요 大累也니 有之不如無之라
及其綦也
하야는 索爲匹夫
라도 不可得也
니 齊湣
이 是也
니라
○ 毅聞畫邑
注+[釋義]括地志云 戟里城은 在臨淄西北三十里하니 春秋棘邑也라 又名畫邑이니 王蠋所居라人王
賢
하고 令軍中
하야 環畫邑三十里無入
하고 使人請蠋
한대 蠋
이 謝不往
이어늘
燕人曰 不來
면 吾且屠邑
注+[頭註]屠는 殺也니 殺其民을 若屠六畜然也라하리라 蠋曰 忠臣
은 不事二君
이요 烈女
는 不
二夫
라
吾與其不義而生으론 不若死라하고 遂經其頸而死하니라
樂毅修整燕軍
하야 禁止侵掠
하고 求齊之逸民
하야 顯而禮之
注+[釋義]逸民者는 節行超逸也라 林少穎曰 逸은 俊逸之逸이니 如俊民之義요 非隱逸也라 禮之는 謂以禮遇之也라하며 寬其賦斂
하고 除其暴令
하고 修其舊政
하니 齊民
이 喜悅
이라
祀桓公, 管仲於郊
하고 表賢者之閭
하고 封王蠋之墓
하니 六月之間
에 下
注+[釋義]彼自歸伏曰下요 又以兵威伏人曰下라齊七十餘城
하야 皆爲郡縣
하다
제齊나라 민왕湣王이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는 교만해져서 마침내 남쪽으로 초楚나라를 침공하고 서쪽으로 삼진三晉을 침공하고 두 주周나라를 겸병兼倂하여 천자天子가 되고자 하였다.
연燕나라 소왕昭王이 밤낮으로 백성들을 어루만져 따르게 하고, 마침내 악의樂毅와 제齊나라를 정벌할 것을 도모하였다.
소왕昭王이 군대를 모두 일으켜 악의樂毅를 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는 진秦‧위魏‧한韓‧조趙의 군대를 아울러 거느리고 제齊나라를 정벌하였다.
제齊나라 민왕湣王이 국중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항거할 적에 제서濟西에서 싸워 제齊나라 군대가 대패하였다.
악의樂毅가 마침내 진군進軍하자 제齊나라 사람들이 크게 혼란하여 법도를 잃으니, 민왕湣王이 나가 도망하였다.
악의樂毅가
제齊나라
도성都城인
임치臨淄注+[釋義]임치수臨淄水는 태산泰山 양보현梁父縣 서북쪽에서 나와 문수汶水로 들어가니, 수隋나라 때 치주淄州를 두었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청주靑州 임치현臨淄縣은 일명 제성齊城이니 옛날 영구營丘 땅으로 지금 익도益都의 속현屬縣이다.” 하였다.에 들어가
보물寶物과
제기祭器를 취하여
注+[釋義]왕자王者가 크게 제사 지낼 때에 반드시 문물文物과 헌거軒車와 이기彛器(종묘의 제기) 등을 진설하니, 인하여 이런 것들을 일러 제기祭器라고 한 것이다.연燕나라로 수송하니,
연왕燕王이
악의樂毅를 봉하여
창국昌國注+[釋義]창국昌國은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제군齊郡에 창국현昌國縣이 있다.” 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산양山陽을 고쳐 창국昌國이라 하였으니, 지금의 조주曹州 성무城武 동북쪽 32리 양구梁丘의 옛 성城이 이곳이다.” 하였다. 君을 삼고 마침내
제齊나라에 머물면서
제齊나라 성 가운데 아직 항복하지 않은 곳을 순행하여
注+[釋義]유순留徇은 군대를 순행하여 명령을 선포하는 것이다. 항복받게 하였다.
제왕齊王이
거莒注+[釋義]거莒는 지금의 익도益都 거주莒州가 바로 이곳이다. 옛날에 거莒는 자작子爵의 나라이니, 성곽의 둘레가 40여 리였다. 땅으로 도망가자
초楚나라가
요치淖齒注+[釋義]요淖는 성姓이다. 초楚나라 사람이니, 《한서漢書》 〈강도역왕전江都易王傳〉에 “미인 요희淖姬가 있다.” 하였는데, 소림蘇林의 주註에 “요淖의 음音은 이뇨泥淖의 뇨淖로 읽으니, 尼敎反(뇨)이다.” 하였다.를 시켜 병력을 인솔하고
제齊나라를 구원하게 하고, 인하여
제齊나라 정승이 되게 하였는데,
요치淖齒가
연燕나라와 함께
제齊나라 땅을 나누어 소유하고자 하여 마침내
민왕湣王을
고리鼓里에서 시해하였다.
“나라는 천하의 이로운 쓰임이고, 인주人主는 천하의 이로운 권세이다.
도道를 얻어 이를 유지하면 크게 편안하고 크게 영화롭고 아름다움이 쌓이는 근원이며, 도道를 얻어 이를 유지하지 못하면 크게 위태롭고 크게 누가 되니, 있는 것이 없는 것만 못하다.
그 심함에 미쳐서는 필부匹夫가 되려 해도 될 수가 없으니, 제齊나라 민왕湣王과 송宋나라 헌왕獻王이 이들이다.”
악의樂毅는
화읍畫邑注+[釋義]화읍畫邑은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극리성戟里城이 임치臨淄 서북쪽 30리 지점에 있으니, 춘추시대春秋時代의 극읍棘邑이다. 또 화읍畫邑이라고도 이름하니, 왕촉王蠋이 살던 곳이다.” 하였다. 사람
왕촉王蠋이 어질다는 말을 듣고는
군중軍中에 명령하여
화읍畫邑 30리를 에워싸서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사람을 시켜
왕촉王蠋을 초청하였으나
왕촉王蠋이 사양하고 가지 않았다.
연燕나라 사람이 위협하기를 “오지 않으면 내 장차 고을을
도륙屠戮하겠다.”
注+[頭註]도屠는 죽임이니, 백성을 죽이기를 육축六畜(집에서 기르는 여섯 가지 가축인 소, 말, 양, 돼지, 개, 닭)을 도살하듯이 하는 것이다. 하니,
왕촉王蠋이 말하기를 “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烈女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
제왕齊王이 내 간언諫言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물러나 들에서 농사짓고 있었는데,
나라가 격파되고 군주가 망함에 내가 보존하지 못하였고 또 그대들이 군대로 위협하니,
내 의롭지 못하게 살기보다는 죽는 것이 낫다.” 하고는 마침내 목을 매어 죽었다.
연燕나라 군대가 승승장구하니, 제齊나라 성城들이 모두 멀리서 기세만 보고도 달아나 무너졌다.
악의樂毅는
연燕나라 군대를 정돈하여 침략하는 것을 금지하고
제齊나라의
일민逸民(뛰어난 인물)을 찾아 드러내어 예우하였으며,
注+[釋義]일민逸民은 절행이 뛰어난 것이다. 임소영林少穎(林之奇)이 말하였다. “일逸은 준일俊逸(재주가 뛰어남)의 일逸이니, 준민俊民이라는 뜻과 같고 은일隱逸을 말한 것이 아니다. 예지禮之는 예禮로써 대우함을 이른다.” 부역과 세금을 관대하게 하고 포악한 명령을 제거하고 옛
정사政事를 닦으니,
제齊나라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환공桓公과
관중管仲을
교외郊外에서 제사하고 어진 자의 마을 문에
정표旌表하고
왕촉王蠋의 무덤을 봉분하니, 여섯 달 사이에
제齊나라 70여 성을 항복시켜
注+[釋義]저가 스스로 귀순하여 항복하는 것을 하下라고 하고, 또 군대의 위세로 남을 굴복시키는 것을 하下라고 한다. 모두
군현郡縣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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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 30년
417
2
[병자]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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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병자]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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