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子]〈秦十, 楚幽王悍元, 燕十八, 魏六, 趙八, 韓二, 齊二十八年이라〉
宗室大臣이 諫曰 諸侯人來仕者 皆爲其主遊間耳니 請一切逐之하소서
昔
에 穆公
은 求士
하야 西取由余於戎
注+[釋義]由余者는 其先春秋晉人也러니 亡入戎耳라하고 하고 迎蹇叔於宋
注+[釋義]秦本紀云 百里奚謂穆公曰 臣友蹇叔이 賢而世莫知라한대 穆公이 遂厚幣迎之라하야늘 今云迎於宋이라하니 未詳所出이라 或曰 岐州人으로 〈時〉遊於宋耳라하고 求丕豹, 公孫支於晉
注+[釋義]丕豹는 自晉奔秦하니 左傳〈有〉明文이라 公孫支는 卽子桑也니 是秦大夫어늘 而云求於晉이라하니 未詳이라 或曰 亦岐州人으로 時遊於晉이라하야 幷國二十
하야 遂霸西戎
하니이다
孝公
은 用商鞅之法
하야 諸侯親服
하야 至今治彊
하고 惠王
은 用張儀之計
하야 散六國之從
하야 使之事秦
하고 하니
此
者
는 皆以客之功
하시니 由此觀之
컨대 客何負於秦哉
잇가
臣聞太(泰)山은 不讓土壤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는 不擇細流故로 能就其深하고
今乃棄黔首
注+[釋義]黔은 黧也라 始皇名民曰黔首라하니 以其頭黑也라하야 以資敵國
하고 却賓客
하야 以業諸侯
하시니 所謂藉寇兵 而
盜糧
注+[釋義]藉는 或作借하니 謂以兵假(借)[寇]也요 齎는 持遺也니 言爲盜齎糧也라者也
로소이다
王이 乃召李斯하야 復其官하고 除逐客之令하고 卒用李斯之謀하야 兼天下하다
갑자(B.C.237) - 진秦나라 10년, 초楚나라 유왕幽王 한悍 원년元年, 연燕나라 18년, 위魏나라 6년, 조趙나라 8년, 한韓나라 2년, 제齊나라 28년이다. -
종실宗室 대신大臣이 간하기를 “제후국諸侯國의 사람으로 秦나라에 와서 벼슬하는 자들은 모두 자기 나라 군주를 위하여 유세하고 이간질할 뿐이니, 청컨대 일체 축출하소서.” 하였다.
이에 객들을 크게 찾아서 쫓아내었는데, 객경客卿인 楚나라 사람 李斯도 쫓겨나는 가운데 있었다.
그가 떠나면서 한편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옛날 穆公은 선비를 구하여 서쪽으로 由余를 戎에서
注+[釋義]유여由余는 그 선조가 춘추시대春秋時代 진晉나라 사람이었는데, 도망하여 융戎으로 들어갔다. 취하고, 동쪽으로 百里奚를 宛에서 얻고, 蹇叔을 宋나라에서
注+[釋義]《사기史記》 〈진본기秦本紀〉에 이르기를 “백리해百里奚가 목공穆公에게 이르기를 ‘신의 벗 건숙蹇叔이 어진데도 세상에 알아주는 자가 없습니다.’ 하자, 목공穆公이 마침내 후한 폐백으로 맞이하였다.” 하였는데, 지금 송宋나라에서 맞이하였다고 말하였으니 출전出典이 자세하지 않다. 혹자(《사기정의史記正義》)는 말하기를 “기주岐州 사람으로 이때 송宋나라에 가 있었다.” 한다. 맞이하고, 丕豹와 公孫支를 晉나라에서
注+[釋義]비표丕豹는 진晉나라에서 진秦나라로 망명하였는데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분명한 글이 있다. 공손지公孫支는 바로 자상子桑이니, 이는 진秦나라 대부大夫인데 진晉나라에서 구했다고 하였으니, 자세하지 않다. 혹자(《사기정의史記正義》)는 말하기를 “공손지公孫支 또한 기주岐州 사람으로 이때 진晉나라에 가 있었다.” 한다. 구하여 20개국을 겸병해서 마침내 西戎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孝公은 商鞅의 법法을 써서 제후諸侯들이 친근하고 복종하여 지금까지 秦나라가 다스려지고 강하며, 惠王은 張儀의 계책을 써서 육국六國의 합종合從을 와해시켜 육국六國으로 하여금 秦나라를 섬기게 하였고, 昭王은 范睢를 얻어 공실公室을 강하게 하고 사문私門(權臣의 가문)을 막았습니다.
이 네 군주는 모두 객의 공으로 성공하였으니, 이것을 가지고 살펴보건대 객客이 어찌 秦나라를 저버렸습니까?
신은 듣건대 ‘태산泰山은 작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기 때문에 그 큼을 이루고, 하해河海는 작은 물을 가리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그 깊음을 이루고,
왕자王者는 여러 백성들을 물리치지 않기 때문에 그 덕德을 밝힌다.’고 하였으니,
이는 오제五帝와 삼왕三王이 천하에 대적할 자가 없었던 이유입니다.
지금 도리어
검수黔首(백성)를
注+[釋義]검黔은 검음이다. 시황제始皇帝가 백성들을 이름하여 검수黔首라 하였으니, 머리가 검기 때문이라 한다. 버려서 적국을 돕게 하고 빈객들을 물리쳐
제후諸侯들에게
공업功業을 이루게 하니, 이른바 ‘적에게 병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갖다 준다.’는
注+[釋義]자藉는 혹 차借로 되어 있으니 병기를 빌려줌을 이르고, 재齎는 가져다 주는 것이니 도적을 위하여 양식을 가져다 줌을 말한다. 것입니다.”
왕이 마침내 李斯를 불러 그 관작을 회복시키고 객客을 축출하는 명령을 제거하였으며, 마침내 李斯의 계책을 써서 천하를 겸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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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 진10, 초유왕한원, 연18, 위6, 조8, 한2, 제2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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