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酉]〈秦十九, 楚十, 燕二十七, 魏十五, 趙八, 齊三十七年이라
王翦이 擊趙軍하야 大破之하고 遂克邯鄲하야 虜趙王遷하다
○ 燕太子丹
이 怨王欲報之
러니 將軍樊
期得罪
하고 亡之燕
한대 太子受而舍之
하다
太子聞衛人荊軻之賢하고 卑辭厚禮而請見之하야 欲使劫秦王하야 反諸侯侵地라가 不可어든 因刺殺之러라
誠得樊將軍首
와 與燕督亢之地圖
注+[釋義]劉向云 督亢은 燕之膏腴地니 今涿州南新城縣이 古督亢亭也라 燕欲以獻秦이라 故畫地獻之하니라하야 奉獻秦王
이면 秦王
이 必說(悅)見臣
하리니 臣
이 乃有以報
라하고 乃私見樊於期曰
聞購將軍首를 金千斤, 邑萬家라하니 願得將軍之首하야 以獻秦王이면 秦王이 必喜而見臣하리니
臣
이 左手把其袖
하고 右手
其胸
이면 則將軍之仇報
하고 而燕見陵之愧除矣
리이다
樊於期曰 此는 臣之日夜切齒腐心也라하고 遂自刎이어늘 以函盛其首하고
太子豫求天下之利匕首
注+[頭註]尺八短劍이니 其頭類匕故로 名匕首라하야 使工
으로 以藥
之
하야 以試人
하니 血濡
注+[釋義]以匕首試人하야 血出이 如絲縷之細라에 人無不立死者
라
계유(B.C.228) - 秦나라 19년, 楚나라 10년, 燕나라 27년, 魏나라 15년, 趙나라 8년, 齊나라 37년이다.
○ 이 해에 趙나라가 망하니 모두 다섯 나라이다. -
王翦이 趙나라 군대를 공격하여 대파하고 마침내 邯鄲을 이기고서 조왕趙王遷을 사로잡았다.
燕나라 태자太子丹이 왕王을 원망하여 보복하고자 하였는데, 장군 樊於期가 죄를 얻고 도망하여 燕나라로 가니, 태자太子가 받아들여 집에 머물게 하였다.
태자太子가 衛나라 사람 荊軻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말을 낮추고(겸손하게 하고) 예禮를 후하게 하여 만나 보기를 청해서 진왕秦王을 위협하여 제후諸侯들에게서 빼앗은 땅을 반환하게 하다가 그것이 불가하면 인하여 찔러 죽이고자 하였다.
荊軻가 말하기를 “이제 가면서 믿을 만한 신표가 없으면 진왕秦王을 가까이할 수가 없으니,
진실로 樊將軍의 머리와 燕나라 督亢의 지도를 얻어서
注+[釋義]劉向이 이르기를 “독항督亢은 연燕나라의 비옥한 땅이니, 지금 탁주涿州 남쪽 신성현新城縣이 옛날 독항정督亢亭이다.” 하였다. 연燕나라가 이곳을 진秦나라에 바치고자 하였으므로 지도를 그려서 바친 것이다. 진왕秦王에게 받들어 올리면
진왕秦王이 반드시 기뻐하여
신臣을 만나 볼 것이니,
신臣이 그제야 보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고는 마침내 사사로이 樊於期를 보고 말하였다.
“내 들으니 秦나라에서 장군의 머리를 금金 천근千斤과 만가萬家의 고을로 현상을 내걸었다 하니, 장군의 머리를 얻어 진왕秦王에게 바치면 진왕秦王이 반드시 기뻐하여 신을 만나 볼 것입니다.
신이 왼손으로 그 소매를 잡고 오른손으로 그의 가슴을 찌른다면 장군의 원수를 갚고 燕나라가 능멸을 당한 수치를 제거할 수 있을 것입니다.”
樊於期가 말하기를 “이는 신이 밤낮으로 이를 갈며 마음을 썩히는 것입니다.”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니, 그 머리를 함에 담았다.
태자가 천하의 예리한
비수匕首(단검)를 미리 구하여
注+[頭註]1척尺 8촌寸의 단검이니, 그 머리 부분이 숟가락과 비슷하기 때문에 비수匕首라 한 것이다. 공인工人을 시켜 독약으로 담금질하게 해서 사람에게 시험해 보니, 피가 실오라기를 적실 만큼 조금만 나도
注+[釋義]비수匕首를 사람에게 시험하여 피가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나온 것이다. 사람이 당장에 죽지 않는 자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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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 진19, 초10, 연27, 위15, 조8, 제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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