蕭何曹參
이 皆起秦刀筆吏
注+[頭註]刀는 所以削書니 古者用簡牒故로 吏皆以刀筆隨하니라라
當時碌碌하야 未有奇節이러니 漢興에 依日月之末光이라
何
는 以信謹
으로 守管籥
注+[頭註]籥은 與鑰通하니 管鍵也라 高祖出征에 何每居守故로 言守라하고 參
은 與韓信
으로 俱征伐
이러니 天下旣定
에 因民之疾秦法
하야 順流與之更始
하야 二人同心
하야 遂安海內
라
淮陰黥布等
이 已滅
이로되 唯何參
이 擅功名
하고 位冠群后
하야 聲施後世
하고 爲一代之宗臣
注+[頭註]言爲天下後世之所尊仰이라하야 慶流苗裔
하니 盛矣哉
라
○ 以王陵爲右丞相하고 陳平爲左丞相하고 周勃爲太尉하다
此便是用高帝臨崩之言也
注+[原註] 置二相이 自此始하니라니라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 찬贊에 말하였다.
“
소하蕭何와
조참曹參은 모두
진秦나라의
도필리刀筆吏로
注+[頭註]칼은 쓴 글씨를 깎아내는 것이니, 옛날에는 간첩簡牒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전들이 모두 칼과 붓을 가지고 다닌 것이다. 출발하였다.
당시에 녹록碌碌(평범하고 보잘것없음)하여 기이한 절개가 없었는데 한漢나라가 일어나자 일월日月(황제)의 후광後光에 의지하였다.
소하蕭何는 성실하고 근신함으로
관약管籥(關中)을 지켰고
注+[頭註]약籥은 약鑰과 통하니, 관건管鍵(문빗장과 자물쇠)이다. 고조高祖가 출정할 때마다 소하蕭何가 관중關中에 남아 지켰기 때문에 관약管籥을 지켰다고 말한 것이다. 조참曹參은
한신韓信과 함께 정벌하였는데,
천하天下가 평정되자 백성들이
진秦나라의
법法을 싫어함을 인하여 흐름에 따라 고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해서 마침내
해내海內를 편안히 하였다.
회음후淮陰侯한신韓信과
경포黥布 등이 이미 멸망하였으나 오직
소하蕭何와
조참曹參만은
공명功名을 보전하고 여러 제후들 중에 으뜸이 되어서 명성이 후세에 전해지고 한 왕조의 높이는 신하가 되어서
注+[頭註]종신宗臣은 천하와 후세에 높이고 우러러보는 신하가 됨을 말한다. 경사가 후손들에게까지 널리 퍼졌으니, 아 거룩하다.”
왕릉王陵을 우승상右丞相으로 삼고, 진평陳平을 좌승상左丞相으로 삼고, 주발周勃을 태위太尉로 삼았다.
“이(王陵과
진평陳平,
주발周勃을 등용한 것)는 바로
고제高帝가 죽을 때에 한 말을 따른 것이다.”
注+[原註]두 정승(左相과 우상右相)을 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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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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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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