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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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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亥]五年이라
曹參하다
班固贊曰
蕭何曹參 皆起秦刀筆吏注+[頭註] 所以削書 古者用簡牒故 吏皆以刀筆隨하니라
當時碌碌하야 未有奇節이러니 漢興 依日月之末光이라
以信謹으로 守管籥注+[頭註] 與鑰通하니 管鍵也 高祖出征 何每居守故 言守하고 與韓信으로 俱征伐이러니 天下旣定 因民之疾秦法하야 順流與之更始하야 二人同心하야 遂安海內
淮陰黥布等 已滅이로되 唯何參 擅功名하고 位冠群后하야 聲施後世하고 爲一代之宗臣注+[頭註]言爲天下後世之所尊仰이라하야 慶流苗裔하니 盛矣哉
○ 以王陵爲右丞相하고 陳平爲左丞相하고 周勃爲太尉하다
〈出陳平周勃傳〉
[新增]陳季雅曰
此便是用高帝臨崩之言也注+[原註] 置二相 自此始하니라니라


5년(신해 B.C.190)
가을에 조참曹參이 죽었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소하조참전蕭何曹參傳에 말하였다.
소하蕭何조참曹參은 모두 나라의 도필리刀筆吏注+[頭註]칼은 쓴 글씨를 깎아내는 것이니, 옛날에는 간첩簡牒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아전들이 모두 칼과 붓을 가지고 다닌 것이다. 출발하였다.
당시에 녹록碌碌(평범하고 보잘것없음)하여 기이한 절개가 없었는데 나라가 일어나자 일월日月(황제)의 후광後光에 의지하였다.
소하蕭何는 성실하고 근신함으로 관약管籥(關中)을 지켰고注+[頭註]과 통하니, 관건管鍵(문빗장과 자물쇠)이다. 고조高祖가 출정할 때마다 소하蕭何관중關中에 남아 지켰기 때문에 관약管籥을 지켰다고 말한 것이다. 조참曹參한신韓信과 함께 정벌하였는데, 천하天下가 평정되자 백성들이 나라의 을 싫어함을 인하여 흐름에 따라 고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 두 사람이 마음을 합해서 마침내 해내海內를 편안히 하였다.
회음후淮陰侯한신韓信경포黥布 등이 이미 멸망하였으나 오직 소하蕭何조참曹參만은 공명功名을 보전하고 여러 제후들 중에 으뜸이 되어서 명성이 후세에 전해지고 한 왕조의 높이는 신하가 되어서注+[頭註]종신宗臣은 천하와 후세에 높이고 우러러보는 신하가 됨을 말한다. 경사가 후손들에게까지 널리 퍼졌으니, 아 거룩하다.”
왕릉王陵우승상右丞相으로 삼고, 진평陳平좌승상左丞相으로 삼고, 주발周勃태위太尉로 삼았다.
- 《한서漢書진평주발전陳平周勃傳》에 나옴 -
진계아陳季雅가 말하였다.
“이(王陵과 진평陳平, 주발周勃을 등용한 것)는 바로 고제高帝가 죽을 때에 한 말을 따른 것이다.”注+[原註]두 정승(左相과 우상右相)을 둔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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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해] 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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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해] 5년 60

통감절요(2)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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