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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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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乙酉]元年이라
五月 復收民田半租호되 三十而稅一하다
〈出食貨志〉
○ 初 文帝除肉刑하니 外有輕刑之名이나 內實殺人이라
斬右趾者 又當死하고 斬左趾者 笞五百하고 笞三百하니 率多死注+[頭註]斬右趾者 棄市故 人多死 以笞五百으로 代斬左趾하고 笞三百으로 代劓하니 笞數旣多하야 亦不活也
是歲 下詔曰 加笞 重罪無異
幸而不死라도 不可爲人이니 其定律하야 笞五百曰三百이라하고 笞三百曰二百이라하다
〈出刑法志〉
○ 秋 與匈奴和親하다
〈出本紀〉
○ 梁孝王 以竇太后幼子故 有寵하야 王四十餘城하야 居天下膏注+[釋義]腹之下肥曰腴 故取以喩肥饒之地하고 賞賜 不可勝紀러라


원년元年(을유 B.C.156)
5월에 다시 백성들의 전지田地의 조세를 절반만 거두되 30분의 1을 세금으로 내게 하였다.
- 《한서漢書식화지食貨志》에 나옴 -
처음에 문제文帝육형肉刑을 없애니, 밖으로는 형벌을 경감했다는 이름이 있었으나 안으로는 실로 사람을 죽게 하였다.
오른쪽 발을 벨 자는 또 사형에 해당시키고, 왼쪽 발을 벨 자는 태형笞刑 500대를 치고, 코를 베는 데 해당하는 자는 태형 300대를 치니, 대부분 죽는 자가 많았다.注+[頭註]오른발을 벨 자는 기시棄市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많이 죽은 것이다. 태형笞刑 500대로 왼발을 베는 형벌을 대신하고 태형笞刑 300대로 코 베는 형벌을 대신하니, 태형笞刑의 수가 이미 많아서 또한 살지 못하였다.
이 해에 조서를 내리기를 “태형을 가함은 중한 죄(사형)와 다름이 없다.
요행히 죽지 않더라도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으니, 법률을 정하여 태형 500대는 300대로 하고, 태형 300대는 200대로 하라.” 하였다.
- 《한서漢書형법지刑法志》에 나옴 -
가을에 흉노匈奴와 화친하였다.
- 《한서漢書문제기文帝紀》에 나옴 -
나라 효왕孝王(劉武)이 두태후竇太后의 어린 아들이라는 이유로 총애가 있어서 40여 성에 왕 노릇 하여 천하의 비옥한 땅을注+[釋義]배의 아래쪽 살찐 부분을 라 한다. 그러므로 이것을 취하여 비옥하고 풍요한 땅을 비유한다. 차지하고, 상으로 하사한 것을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역주
역주1 : 의
역주2 :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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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을유]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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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을유]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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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을유] 원년 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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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을유] 원년 66

통감절요(2) 책은 2022.01.1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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