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越
이 平
이어늘 以其地
로 爲南海, 珠厓等九郡
注+[釋義]南海는 秦故郡也니 今廣州是也라 珠厓는 地在大海中崖岸之邊하니 出珠일새 因以名郡하니라하고 遂平南夷
하고 以其地
로 爲
郡
하다
郡國
이 多不便
하야 縣官
이 作鹽鐵
에 苦惡價貴
注+[釋義]王氏曰 言鹽旣苦而鐵器又惡이라 故買賣貴也라 苦는 又音古니 言鐵器苦窳不好라 凡病之器曰苦窳니 窳音庾라 苦如字讀도 亦通이라어늘 或强令民買之
하고 而船有算
하니 商者少
하고 物貴
라한대
武帝好武功而用不足
이어늘 式
으로 中上意
라가 官旣尊矣
에 乃始正言以邀名
이라
○ 以卜式不習文章이라하야 貶秩爲太子太傅하고 以兒寬으로 代爲御史大夫하다
公孫弘, 卜式, 兒寬
이 皆以鴻漸之翼
注+[通鑑要解]漸卦傳曰 鴻之爲物은 至有時而群有序하니 不失其時序乃爲漸也라 朱子曰 鴻之行은 有序而進也라으로 困於燕爵
注+[頭註]爵은 與雀通하니 未進之時에 爲燕雀所輕이라하야 遠迹羊豕之間
하니 非遇其時
면 焉能致此位乎
아
是時에 漢興六十餘歲에 海內乂安하야 府庫充實이나 而四夷未賓하고 制度多闕이라
上方欲用文武하야 求之如弗及하야 始以蒲輪迎枚生하고 見主父而歎息하니 群士慕嚮하야 異人竝出이라
卜式
은 拔於芻牧
하고 弘羊
은 擢於賈豎
하고 衛靑
은 奮於奴僕
하고 日磾
는 出於降虜
하니 斯亦曩時版築
注+[附註]傅也라 傅氏之巖에 有澗水壞道하야 常使胥靡築之러니 說이 賢而隱하야 代築供食이라 古者에 相隨坐호되 罪不至扑刑者는 令衣褐帶索하야 相隨而執役也하니라已
니 漢之得人
이 於茲爲盛
이라
儒雅則公孫弘董仲舒兒寬
이요 篤行則石建石慶
이요 質直則汲黯卜式
이요 推賢則韓安國鄭當時
요 定令則趙禹張湯
이요 文章則司馬遷相如
요 滑稽
注+[附註]轉利之稱이니 滑은 音骨이니 亂也요 稽는 音雞니 同也라 言辯捷之人은 言非若是하고 言是若非하야 能亂同異也라 又稽는 考也니 言可滑亂하야 不可考校也라則東方朔枚皐
요 應對則嚴助朱買臣
이요 曆數則唐都洛下閎
이요 協律則李延年
이요 運籌則桑弘羊
이요 奉使則張騫蘇武
요 將率(帥)
注+[頭註]率은 帥通하니 力足以將物而勝之謂將이요 智足以率人而先之謂帥라則衛靑霍去病
이요 受遺則霍光金日磾
니 其餘
를 不可勝紀
라
初
에 司馬相如病且死
에 有遺書
하야 頌功德
하고 言符瑞
하야 勸上封泰山
注+[釋義]在泰安州北三里라 一曰岱宗이니 東岳也니 在兗州博城西北三十里라 郭璞云 從山下至山顚히 百四十八里三百步라이어늘 上
이 感其言
하야 令諸儒
로 草封禪儀
注+[釋義]服虔曰 封은 增土之高하야 歸功于天이요 禪은 闢廣土地也라 張晏曰 天高不可及일새 於泰山上에 封禪而祭하니 冀近神靈也라 瓚曰 積土爲封이니 謂(加)[負]土於泰山上하야 爲壇而祭之요 除地爲墠이니 祭於梁父러니 后改墠爲禪하니 神之矣라 祭尙玄酒而俎魚하고 墠皆廣長十二丈이요 壇高三尺이요 階三等이며 而樹石泰山之上하니 高二丈一尺이요 廣三尺이라러니 數年不成
이라
封泰山, 禪梁
注+[釋義]泰山下小山名也니 因以名縣하니 屬泰山郡이라 一曰梁父는 在兗州泗水縣北八十里라 父는 音甫라하야 昭姓考瑞
注+[釋義]王氏曰 昭姓은 謂昭顯其姓氏也니 古者에 必建同姓하야 以明親親하고 必樹異姓하야 以明賢賢이라 瑞는 玉也니 卽其符合하야 言之曰瑞라 考瑞는 謂考核其瑞信이니 卽書所謂輯五瑞也라 按輯五瑞는 詳見書舜典篇이라는 帝王之盛節也
라
臣
은 以爲封禪告成
하야 合祛於天地
注+[頭註]合은 閉也요 祛는 開敞也니 開閉於天地也라神
는 唯聖王
이 所由制定其當
이니 非群臣之所能列
이라
今將擧大事호되 優游數年하야 使群臣으로 得人人自盡하니 終莫能成이라
唯天子建中和之極
하야 兼總條貫
하야 金聲而玉振之
注+[釋義]王氏曰 言振揚德音을 如金玉之聲也라 孟子云 孔子之謂集大成이니 集大成也者는 金聲而玉振之也라 金聲也者는 始條理也요 玉振之也者는 終條理也라한대 朱子註에 金은 鐘屬이요 聲은 宣也니 如聲罪致討之聲이라 玉은 磬屬이요 振은 收也니 如振河海而不洩之振이라 樂有하니 金石爲重하야 特爲衆音之綱紀요 又金始振而玉終詘然也라 故竝奏八音이면 則於其未作而先擊鎛鐘하야 以宣其聲하고 俟其旣闋而後에 擊特(聲)[磬]하야 以收其韻이라하니라하나니 以順成天慶
하야 垂萬世之基
하소서
남월南越이 평정되자 그 땅으로
남해南海와
주애珠厓 등 아홉
군郡을
注+[釋義]남해南海는 진秦나라의 옛 고을이니, 지금의 광주廣州가 이곳이다. 주애珠厓는 땅이 큰 바다 가운데의 언덕 가에 있는데, 진주가 나오므로 인하여 군郡의 이름을 삼은 것이다. 만들었으며, 마침내
남이南夷를 평정하고 그 땅으로
장가군牂柯郡을 만들었다.
이 해에 제상齊相복식卜式이 어사대부御史大夫가 되어 말하기를
“
군국郡國이 불편한 일이 많아서
현관縣官이 소금과 철을 만들 적에
조악粗惡하면서 값이 비싼데도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소금은 맛이 쓰고 철기鐵器는 질이 또 나쁘다. 그러므로 매매할 때에 값이 비싸다고 말한 것이다. 고苦는 또 음이 고이니, 철기가 하자가 있어 좋지 못함을 말한다. 무릇 하자가 있는 기물을 고유苦窳라 하니, 유窳는 음이 유이다. 고苦를 본자本字(쓰다)와 같이 읽어도 또한 통한다.” 간혹 강제로 백성들에게 이것을 사게 하고 배에 세금을 매기니, 장사하는 자들이 적어지고 물건값이 비쌉니다.” 하였다.
상上이 이로 말미암아 복식卜式을 좋아하지 않았다.
“무제武帝가 무공武功을 좋아하였는데 재용財用이 부족하자, 복식卜式이 이 두 가지로써 황제의 뜻을 맞혔다가 관직이 높아지자 비로소 바른말을 하여 명예를 구하였다.
온 조정의 신하가 말하지 않는데 복식卜式만이 이것을 말하였으니, 듣는 자가 우선 그 한 부분을 취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복식卜式이 문장을 익히지 못했다 하여 품계를 낮추어 태자태부太子太傅로 삼고, 아관兒寬을 대신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공손홍복식아관전公孫弘卜式兒寬傳〉 찬贊에 말하였다.
“
공손홍公孫弘과
복식卜式과
아관兒寬이 모두 하늘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큰 기러기의 날개와
注+[通鑑要解]《주역周易》 점괘漸卦의 정전程傳에 이르기를 “기러기란 물건은 오는 것이 일정한 때가 있고 무리에 질서가 있으니, 때와 질서를 잃지 않는 것이 점漸이다.” 하였다. 주자朱子가 말씀하기를 “기러기의 행렬은 질서가 있게 나아간다.” 하였다. 같은 큰 인물로 제비와 참새 같은 자질구레한 무리에게 곤궁을 당하여
注+[頭註]困於燕爵 :작爵은 작雀과 통하니, 기러기(군자)가 벼슬에 나아가기 전에 제비나 참새(소인)에게 경시당하는 것이다. 양과 돼지가 사는 오랑캐 사이에 멀리 있었으니, 그때를 만나지 않았으면 어찌 이러한 지위를 이룰 수 있었겠는가.
이때는 한漢나라가 일어난 지 60여 년이 되어서 해내海內가 다스려지고 편안하여 창고가 꽉 찼으나 사방 오랑캐들이 복종하지 않았고 제도制度에 미비한 점이 많았다.
상上이 막 문무文武의 신하를 등용하고자 하여 이들을 미치지 못할 듯이 힘써 찾아내어, 처음으로 편안한 수레로 매생枚生(枚皐)을 맞이하고 주보언主父偃을 만나 보고는 탄식하니, 여러 선비들이 우러르고 사모하여 이인異人(비범한 사람)들이 함께 나왔다.
복식卜式은 꼴을 베고 짐승을 먹이던 신분에서 발탁되었고
상홍양桑弘羊은 장사꾼의 신분에서 발탁되었으며
위청衛靑은 노예 출신으로 등용되었고
김일제金日磾는 항복한 포로 출신이었으니, 이들 또한 예전에
판축版築을 하고
注+[附註]판축版築을 한 것은 부열傅說이다. 부씨傅氏의 바위에 계곡물이 있어 길이 유실되므로 항상 서미胥靡(가벼운 죄를 지은 죄수)로 하여금 이것을 쌓게 하였는데, 부열傅說이 어질면서 은둔하여 서미胥靡 대신 길을 닦아 양식을 공급하였다. 옛날에 서로 연좌되었으나 죄가 곤장을 치는 형벌에 이르지 않는 자는 갈옷을 입히고 새끼로 띠를 매고 서로 따라 부역하게 하였는 바, 이것을 서미胥靡라 하였다. 소를 먹이던 무리이니,
한漢나라가 인재를 얻음이 이에 성하였다.
학자의 고상함으로는
공손홍公孫弘과
동중서董仲舒,
아관兒寬이었고, 독실한 행실로는
석건石建과
석경石慶이었고, 질박하고 정직함으로는
급암汲黯과
복식卜式이었고, 현자로 추앙받은 것은
한안국韓安國과
정당시鄭當時였고, 법령을 제정한 것은
조우趙禹와
장탕張湯이었고,
문장文章은
사마천司馬遷과
사마상여司馬相如였고,
골계滑稽는
注+[附註]골계滑稽는 매끄럽게 빨리 돌리는 명칭이다. 골滑은 음이 골이니 어지럽힘이요, 계稽는 음이 계이니 같음이다. 말을 잘하고 빨리하는 사람은 그른 것을 말하면서 옳은 것처럼 하고 옳은 것을 말하면서 그른 것처럼 하여 동이同異를 혼란시킴을 말한 것이다. 또 계稽는 상고함이니, 혼란하여 상고할 수 없음을 말한다. 동방삭東方朔과
매고枚皐였고, 응대는
엄嚴(莊)助와
주매신朱買臣이었고,
역법曆法은
당도唐都와
낙하굉洛下閎이었고,
협률協律은
이연년李延年이었고, 산대를 움직여 계산을 잘한 것은
상홍양桑弘羊이었고,
사명使命을 잘 받든 것은
장건張騫과
소무蘇武였고, 장수는
注+[頭註]수率은 수帥와 통하니, 힘이 남을 거느려 이길 수 있음을 장將이라 이르고, 지혜가 남보다 뛰어나서 솔선할 수 있음을 솔帥라 이른다. 위청衛靑과
곽거병霍去病이었고,
유명遺命을 받은 것은
곽광霍光과
김일제金日磾였으니, 그 나머지는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공업功業을 창조하여 훌륭한 제도制度와 유문遺文을 후세에서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
처음에
사마상여司馬相如가 병들어 장차 죽으려 할 때에 유서를 남겨 황제의
공덕功德을 칭송하고 상서로운 조짐을 말하여
상上에게
태산泰山에
注+[釋義]태산泰山은 태안주泰安州 북쪽 3리 지점에 있다. 일명 대종岱宗이라고도 하니, 동악東岳으로, 연주兗州의 박성博城 서북쪽 30리에 있다. 곽박郭璞이 이르기를 “산 아래로부터 산 정상까지 148리里 3백보百步이다.” 하였다. 봉선封禪할 것을 권하였는데,
상上이 그의 말에 감동하여 여러
유신儒臣들로 하여금
봉선封禪하는 의식을
注+[釋義]복건服虔이 말하였다. “봉封은 흙을 더 쌓아 높여서 하늘에 공功을 돌리는 것이고, 선禪은 땅을 넓게 고르는 것이다.” 장안張晏이 말하였다. “하늘이 높아서 미칠 수 없으므로 태산泰山 위에 봉선封禪하고 제사하는 것이니, 신령神靈과 가까워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설찬薛瓚이 말하였다. “흙을 쌓는 것을 봉封이라 하니 태산泰山 위에 흙을 져다 부어서 단壇을 만들어 제사함을 이르고, 땅을 닦는 것을 선墠이라 하니 양보梁父에 제사하였는데 뒤에 선墠을 고쳐 선禪이라 하였으니, 신神으로 여긴 것이다.” 제사할 때에 현주玄酒를 위에 놓고 어물魚物을 도마에 올리며, 터는 모두 너비와 길이가 12장丈이고 단壇의 높이가 3척尺이고 계단이 세 등급이며, 태산泰山의 위에 비석을 세우니, 높이가 2장丈 1척尺이고 넓이가 3척尺이다. 기초하게 하였으나 몇 년이 되어도 이루지 못하였다.
상上이 좌내사左內史아관兒寬에게 묻자,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
태산泰山에
봉封하고
양보梁父에
注+[釋義]양보梁父는 태산泰山 아래 작은 산의 이름이니, 인하여 현縣의 이름으로 삼았으니 태산군泰山郡에 속하였다. 일설一說에 “양보梁父는 연주兗州사수현泗水縣의 북쪽 80리에 있다.” 하였다. 보父는 음이 보이다. 선禪을 하여
성씨姓氏를 밝히고
서옥瑞玉을 상고함은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소성昭姓은 그 성씨를 밝힘을 이르니, 옛날에 반드시 동성同姓을 제후로 세워서 친친親親을 밝히고, 반드시 이성異姓을 세워서 현현賢賢을 밝혔다. 서瑞는 옥玉이니, 그 부합함을 가지고 말하여 서瑞라 한 것이다. 고서考瑞는 그 서신瑞信을 상고함을 이르니, 바로 《서경書經》에 이른바 ‘다섯 가지 서옥瑞玉을 모은다.’는 것이다. 살펴보건대 다섯 가지 서옥瑞玉을 모음은 《서경書經》 〈순전편舜典篇〉 채침蔡沈의 전傳에 자세히 보인다.”제왕帝王의 성대한 일입니다.
신이 생각하건대
봉선封禪이 이루어졌음을 고하여
천지天地의
신명神明에게 합하여 제사함은
注+[頭註]합合은 닫음이고 거祛는 엶이니, 천지天地에 맞추어 열고 닫는 것이다. 오직
성왕聖王만이 그 마땅한 제도를 제정할 수 있는 것이니, 여러 신하들이 나열(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장차 큰 일을 거행하려 하되 몇 년을 한가로이 보내어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사람마다 스스로 의견을 다 말하게 하니, 끝내 이루어지지 못할 것입니다.
오직
천자天子만이
중화中和의 표준을 세워서 여러
조관條貫(條理)을 겸하여 총괄해서
금金으로 소리를 퍼뜨리고
옥玉으로 거두니,
注+[釋義]兼總條貫 금성이옥진지金聲而玉振之: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덕음德音을 떨쳐 드날림을 금옥金玉의 소리와 같이 함을 말한 것이다. 맹자孟子가 말씀하기를 ‘공자孔子를 일러 집대성集大成이라 하니, 집대성集大成이라는 것은 금金으로 소리를 퍼뜨리고 옥玉으로 거두는 것이다. 금金으로 퍼뜨린다는 것은 조리條理를 시작하는 것이고, 옥玉으로 거둔다는 것은 조리條理를 끝마치는 것이다.’ 하였는데, 주자朱子의 주註에 ‘금金은 종鐘 따위이고 성聲은 소리를 퍼뜨림이니, 죄를 성토聲討하여 토벌한다는 성자聲字와 같다. 옥玉은 경쇠의 등속이고 진振은 거둠이니, 《중용中庸》의 「河海를 거두어도 새지 않는다.」는 진振과 같다. 음악은 팔음八音이 있는데, 금金과 석石(玉)이 중요하여 특별히 여러 음의 기강紀綱이 되고, 또 금金으로 처음 소리를 떨치고 옥玉으로 끝에 거둔다. 그러므로 팔음八音의 악기를 모두 연주하게 되면 풍악을 일으키기 전에 먼저 큰 종을 쳐서 그 소리를 퍼뜨리고, 풍악이 끝나기를 기다린 뒤에 한 번 석경石磬을 쳐서 그 운韻을 거두는 것이다.’ 하였다.” 하늘의 경사를 순히 이루시어
만세萬世의 기업을 드리우소서.”
상上이 이에 스스로 봉선封禪의 의식을 제정하되 유학儒學을 자못 채택하여 문식하였다.
1
[경오] 6년
2
[경오] 6년
51
3
[경오] 6년
128
4
[경오] 6년
73
5
[경오] 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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