夏
에 詔曰 孝武皇帝躬仁誼(義), 厲威武
하사 功德
이 茂盛
이어늘 而廟樂
注+[附註]高祖廟에 奏武德文始五行之舞하고 孝文廟에 奏昭德文始五行之舞하고 孝武廟에 奏盛德文始五行之舞라 武德舞者는 象武以除亂也니 舞執干戚이라 孝景이 采武德以爲昭德하야 以尊太宗廟하고 孝宣이 采昭德以爲盛德하야 以尊(廟樂)[世宗]廟라 文始舞者는 本舜韶舞也니 舞執羽籥이라 高祖更名曰文始라하니 以示不相襲也라 五行舞者는 本周舞也니 冠冕衣服을 法五行이라 秦始皇이 名曰五行이라 文始五行舞는 則諸帝廟에 皆奏之라이 未稱
하니 朕甚悼焉
하노니
武帝雖有攘四夷廣土境之功이나 然多殺士衆하고 竭民財力하야 奢泰無度하야 無德澤於民하니 不宜爲立廟樂이니이다
於是
에 丞相御史劾奏
호되 勝
이 非議詔書
하고 毁先帝
하니 不道
요 及丞相長史
注+[通鑑要解]長史는 令丞尉之通稱이라黃霸 阿縱勝
하야 不擧劾
이라하야 俱下獄
하다
○ 夏侯勝, 黃霸旣久繫에 霸欲從勝受尙書어늘 勝이 辭以罪死한대
霸曰 朝聞道면 夕死라도 可矣라하니 勝이 賢其言하야 遂授之할새
여름에
조서詔書를 내리기를 “
효무황제孝武皇帝가
인의仁義를 몸소 행하고
위무威武를 힘써서
공덕功德이 훌륭한데도
종묘宗廟의 음악
注+[附註]고조高祖의 사당에는 무덕무武德舞‧문시무文始舞‧오행무五行舞를 연주하고, 효문제孝文帝의 사당에는 소덕무昭德舞‧문시무文始舞‧오행무五行舞를 연주하고, 효무제孝武帝의 사당에는 성덕무盛德舞‧문시무文始舞‧오행무五行舞를 연주하였다. 무덕무武德舞는 무武로써 난亂을 제거함을 형상한 것이니, 춤출 때에 방패와 도끼를 잡는다. 효경제孝景帝가 무덕무武德舞를 채택하여 소덕무昭德舞를 만들어서 태종太宗(文帝)의 사당을 높였고, 효선제孝宣帝가 소덕무昭德舞를 채택하여 성덕무盛德舞를 만들어서 세종世宗(武帝)의 사당을 높였다. 문시무文始舞는 본래 순舜임금의 소무韶舞이니, 춤출 때에 꿩의 깃털과 피리를 잡는다. 고조高祖가 이름을 문시文始라고 바꾸었으니, 이는 서로 인습하지 않음을 보인 것이다. 오행무五行舞는 본래 주周나라의 춤이니, 관면冠冕과 의복衣服에 오행五行의 색色을 본받았다. 진시황秦始皇이 오행五行이라고 이름을 바꾸었다. 문시무文始舞와 오행무五行舞는 모든 황제의 사당에 다 연주하였다. 이 갖추어지지 못하였으니, 짐은 매우 서글퍼한다.
열후列侯와 이천석二千石과 박사博士들과 상의하라.” 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명령대로 따르겠다고 하였으나 오직 하후승夏侯勝만은 말하기를
“무제武帝가 비록 사이四夷를 물리치고 국경을 넓힌 공이 있으나 군사들을 많이 죽이고 백성들의 재물과 힘을 고갈시켜 사치함이 한이 없어서 백성들에게 은택이 없으니, 종묘의 음악을 제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이에
승상丞相과
어사御史가 탄핵하여 아뢰기를 “
하후승夏侯勝이
조서詔書를 비방하고
선제先帝를 훼방하니 무도하며,
승상장사丞相長史注+[通鑑要解]장사長史는 영令‧승丞‧위尉의 통칭이다. 황패黃霸가
하후승夏侯勝에게 아첨해서 잘못을 들어 탄핵하지 않았다.” 하여 모두
하옥下獄하였다.
유사有司가 마침내 효무황제孝武皇帝의 사당을 높일 것을 청하여 세종묘世宗廟라 이름하였다.
○ 하후승夏侯勝과 황패黃霸가 오랫동안 옥에 갇혀 있었는데, 황패黃霸가 하후승夏侯勝에게 《상서尙書》를 배우고자 하자, 하후승夏侯勝은 죽을 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
황패黃霸가 말하기를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고 하니, 하후승夏侯勝이 그의 말을 훌륭하게 여겨서 마침내 전수傳授하였다.
겨울을 두 번 날 동안 옥에 갇혀 있었는데, 강론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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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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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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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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