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이 與趙充國等議
하고 欲因匈奴衰弱
하야 出兵擊其右地
注+[頭註]匈奴左方諸王은 居東方하야 爲左地하고 右方諸王은 居西方하야 爲右地하니라하야 使不敢復擾西域
이러니 魏相
이 上書諫曰
救亂誅暴
를 謂之義兵
이니 兵義者
는 王
하고 敵加於己
하야 不得已而起者
를 謂之應兵
이니 兵應者
는 勝
하고 爭恨小故하야 不忍憤怒者
를 謂之忿兵
이니 兵忿者
는 敗
하고 利人土地貨寶者
를 謂之貪兵
이니 兵貪者
는 破
하고 恃國家之大
하고 矜民人之衆
하야 欲
威
注+[釋義]見은 音現이니 顯示之也라於敵者
를 謂之驕兵
이니 兵驕者
는 滅
이라
間者에 匈奴未有犯於邊境이어늘 今聞欲興兵하야 入其地라하니 臣愚는 不知此兵何名者也니이다
今年에 計子弟殺父兄, 妻殺夫者하니 凡二百二十二人이라
臣愚는 以爲此非小變也어늘 今左右不憂此하고 乃欲發兵하야 報纖介(芥)之忿於遠夷하니
殆孔子所謂吾恐季孫之憂不在顓臾而在蕭墻之內也
注+[釋義]顓臾는 魯附庸國이니 季氏恐爲子孫憂하야 欲伐之한대 孔子說所憂者不在彼而在此하니 言恐內變將作也라 其後에 家臣陽虎果囚季桓子하니라 鄭氏曰 蕭之言은 肅也요 墻은 屛也니 人臣至此면 加肅敬焉이라니이다
魏相此疏는 止無名之師하고 弭連兵之禍하야 恐傷陰陽之和하야 以生蕭墻之憂하니 眞經國之遠猷요 宰相之能事也라
其尤可服者는 不隱風俗薄惡하야 子弟殺父兄하고 妻殺夫之變을 直以告君이니 此則賢者或猶以爲難也라
姦臣事君에 凡天地變異와 夷狄盜賊과 危亡之形을 一切隱諱하야 不以實告하고 而草妖木怪와 雲物霏動을 悉指爲祥瑞하야 以眩君心하나니
非惟慰悅爲忠이라 因以自見輔佐之應하야 前古一律이니 其視魏相에 爲如何焉고
風俗薄惡은 宰相之責也로되 而相不自欺하니 嗚呼라 賢矣哉인저
魏相
이 好觀
하야 條
注+[釋義]屬此句라 數은 頻也라 凡言條者는 一一而疏擧之하야 若木條焉이라漢興已來國家便宜行事
하고 及賢臣賈誼, 鼂錯, 董仲舒等所言
을 奏請施行之
하다
相
이 勅掾史
하야 按事郡國及休告
注+[釋義]休謁之名을 吉曰告요 凶曰寧이라 (師古)[孟康]曰 古者에 名吏休假(暇)曰告라 〈顔師古曰 告者는 請謁之言이니〉 謂請休耳라어든 從家還至府
하야 輒白四方異聞
하고 或有逆賊風雨災變
이로되 郡未上
이면 相
이 輒奏言之
하며 與御史大夫丙吉
로 同心輔政하니 上
이 皆重之
러라
○ 丙吉
의 爲人
이 深厚不伐善하야 自曾孫遭遇
注+[釋義]王氏曰 宣帝는 武帝之曾孫也라 征和二年에 遭巫蠱事하야 繫獄이러니 時丙吉治獄이라 武帝以獄中有天子氣라하야 遣使欲殺之한대 丙吉이 閉門不納獲免이라 故로 曰遭遇라[通鑑要解]一云 遭遇는 升大位라로 吉
이 絶口不道前恩이러니 會
에 掖庭宮婢 自陳嘗有阿保之功
注+[釋義]有阿依保護之恩이라하야 辭引使者丙吉知狀
注+[釋義]知狀句絶이니 謂丙吉知此情狀이라이라
上이 親見問然後에 知吉有舊恩而終不言하고 上이 大賢之하니라
淺夫薄子於人主
에 曾微犬馬之力
과 羈絏
注+[頭註]羈는 馬絡頭요 絏은 繮也니 言〈臣〉供賤役也라之奉
이로되 尙欲因緣攀附
하야 以希富貴
하나니 若誠有素分
이면 鮮不嘵嘵自明
하야 惟恐祿之弗及也
라
此曹
는 遇
라도 猶不足充役
이니 其視丙吉
에 爲何如人耶
아
帝以蕭望之經明持重
하고 論議有餘하야 材任宰相
이라하야 欲詳試其政事
하야 復以爲左馮翊
注+[釋義]作左馮翊郡太守라하니 望之從少府出
하야 爲左遷
注+[釋義]諸侯王表에 〈有〉左官之律한대 韋昭以爲 左는 猶下也니 漢法에 地道尊右라 故謂貶秩爲左遷이라이라
上
이 聞之
하고 使侍中金安(世)[上]
으로 諭意曰 所用
을 皆
治民以考功
하노니
君
이 前爲平原太守日淺故
로 復試之於三輔
注+[附註]秦幷天下하고 立郡縣할새 而京畿所統을 號內史라하니 言在內以別於諸郡守라 百官表에 內史掌京師라 景帝分置左右러니 武帝更名爲京兆尹하고 (及)[又]左內史를 更名左馮翊하고 又主爵中尉掌列侯러니 而更爲右扶風하야 治內史右地하야 與馮翊京兆尹으로 是爲三輔하니 取之義라요 非有所聞也
라하니 望之卽起視事
하다
상上이
조충국趙充國 등과 의논하고는
흉노匈奴가 쇠약한 틈을 타 군대를 내어 그 오른쪽(서쪽) 지역
注+[頭註]흉노匈奴의 좌방左方에 있는 여러 왕王들은 동방東方에 거하여 좌지左地라 하고, 우방右方에 있는 여러 왕들은 서방西方에 거하여 우지右地라 하였다. 을 공격해서 감히 다시는
서역西域을 소요하지 못하게 하려 하자,
위상魏相이 글을 올려 다음과 같이 간하였다.
“
난亂을 구원하고 포악한 자를 주벌하는 것을
의병義兵(의로운 군대)이라 이르니 군대의 출동 명분이 의로운 자는 왕 노릇 하고,
적敵이 자신을 침공하여 부득이 일어나는 것을
응병應兵(대응하는 군대)이라 이르니 군대가 대응하여 싸우는 자는 이기고, 작은 일을 다투고 한하여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을
분병忿兵이라 이르니 군대가 분해서 싸우는 자는 패하고, 남의 토지와
보화寶貨를 이롭게 여기는 것을
탐병貪兵이라 이르니 군대가 탐하여 싸우는 자는 격파되고, 국가의 강대함을 믿고 백성이 많음을 자랑하여 적에게 위엄을 보이고자
注+[釋義]견見은 음이 현이니, 드러내 보임이다. 하는 것을
교병驕兵이라 이르니 군대가 교만하여 싸우는 자는 멸망합니다.
근간에 흉노匈奴가 변경을 침입한 적이 없는데, 이제 들으니 군대를 일으켜서 그 땅에 쳐들어가고자 한다 하니, 어리석은 신은 이 군대가 무슨 명목인지 모르겠습니다.
금년에 자제子弟가 부형父兄을 죽이고 아내가 남편을 죽인 것을 따져 보니, 모두 222명입니다.
어리석은 신은 이것이 작은 변고가 아니라고 여겨지는데, 지금 좌우의 신하들은 이것을 걱정하지 않고, 도리어 군대를 징발해서 먼 오랑캐에게 하찮은 분노를 갚고자 하니,
이는 아마도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신 ‘나는
계손季孫의 근심이
전유顓臾에 있지 않고 집안에 있을까 두렵다.’
注+[釋義]孔子所謂……蕭墻之內也:전유顓臾는 노魯나라 부용국附庸國이니, 계씨季氏가 자손의 우환이 될까 걱정해서 정벌하려 하자, 공자孔子께서 ‘우려할 바가 저기에 있지 않고 여기에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내란內亂이 장차 일어날까 두려움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 뒤에 가신家臣 양호陽虎가 과연 계환자季桓子를 가두었다. 정씨鄭氏(鄭玄)가 말하였다. “소蕭는 엄숙하다는 뜻이고 장墻은 병풍이니, 인신人臣이 이곳에 이르면 엄숙함과 공경을 더하는 것이다.”는 것일 듯합니다.”
“위상魏相의 이 상소는 명분 없는 전쟁을 중지하고 싸움을 계속하는 화禍를 그치게 하여, 음양陰陽의 화기和氣를 손상시켜 집안의 우환을 생겨나게 할까 두려워하였으니, 진실로 국가를 경영하는 원대한 계책이고 재상의 훌륭한 일이다.
더욱 탄복할 만한 것은 풍속風俗이 야박하고 나빠짐을 숨기지 않아서 자제子弟가 부형父兄을 시해하고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변고를 곧바로 임금에게 고하였으니, 이는 어진 자도 혹 오히려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아름다운 일을 듣기 좋아하고 재화災禍를 듣기 싫어하는 것은 사람이면 누구나 가지는 마음이다.
간신姦臣이 군주를 섬길 때에 모든 천지의 재변과 이적夷狄과 도적盜賊 등 위망危亡의 형세를 일체 숨겨 사실대로 고하지 않고, 초목草木의 요괴妖怪와 구름의 변고를 모두 상서祥瑞라 말하여 군주의 마음을 현혹시킨다.
단지 군주를 위로하여 기쁘게 하는 것을 충성이라 여길 뿐만 아니라, 인하여 이것을 자신이 보필을 잘한 응험이라고 스스로 드러내어 예로부터 똑같으니, 위상魏相에게 견줌에 어떠한가.
풍속이 야박하고 나쁜 것은 재상의 책임인데도 위상魏相이 숨기지 않았으니, 아 참으로 훌륭하다.”
위상魏相이
한漢나라의
고사故事와
편의便宜(국가에 편리)한
장주章奏를 살펴보는 것을 좋아하여
한漢나라가 일어난 이래로 국가의
편의便宜한 행사를 자주 조목조목
注+[釋義]수조數條는 이 구句(아래 구句)에 속한다. 수數은 자주이다. 무릇 조條라고 말한 것은 하나하나 열거하여 나뭇가지와 같은 것이다. 아뢰고, 또 어진 신하인
가의賈誼,
조조鼂錯,
동중서董仲舒 등이 말한 것을 주청하여 시행하게 하였다.
위상魏相이 아전들에게 신칙하여
군국郡國에 일을 조사하러 나가거나 휴가
注+[釋義]휴가의 명칭을 길吉한 것은 고告라 하고 흉凶한 것은 영寧이라 한다. 맹강孟康이 말하기를 “옛날에 관리들의 휴가를 이름하여 고告라 한다.” 하였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고告는 청한다는 말이니, 휴가를 청함을 이른다.” 하였다. 를 가면 집으로부터 돌아와
부府에 이르러서 〈휴가를 얻어 집에 갔다가 관청에 돌아온 자에게〉 그때마다 사방의 특이한 소문을 아뢰게 하였고, 혹
역적逆賊이 있고 비바람과
재변災變이 있는데도
군郡에서 올려 보고하지 않았으면
위상魏相이 번번이 아뢰어 말하였으며,
어사대부御史大夫 병길丙吉과 마음을 함께하여 정사를 보필하니,
상上이 모두 소중하게 여겼다.
○
병길丙吉은 사람됨이 깊고 후중해서 자신이 잘한 것을 자랑하지 아니하여
증손曾孫(황제)이 우대하면서부터
注+[釋義]王氏가 말하였다. “선제宣帝는 무제武帝의 증손曾孫이다. 정화征和 2년에 무고巫蠱의 일을 만나서 옥에 갇혀 있었는데, 이때 병길丙吉이 옥사를 다스렸다. 무제武帝가 옥獄 안에 천자天子의 기운이 있다 하여 사자使者를 보내어 선제宣帝를 죽이고자 하였는데, 병길丙吉이 문을 닫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그러므로 조우遭遇라고 말한 것이다.” [通鑑要解]一說에 조우遭遇는 천자天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이라 한다. 병길丙吉이 입을 다물고 과거의
은공恩功을 말하지 않았는데, 마침
액정掖庭의
궁비宮婢가 스스로 일찍이 황제를
아보阿保한
공功이 있다
注+[釋義]양육하고 보호保護한 은혜가 있는 것이다. 고 말하고,
사자使者인
병길丙吉이 이 정상을 안다
注+[釋義]지장知狀에서 구句를 떼니, 병길丙吉이 이러한 정상을 알았음을 이른다. 고
인증引證하였다.
상上은 직접 병길丙吉을 만나 보고 물은 뒤에야 과거에 은공이 있는데도 끝내 말하지 않았음을 알고는 매우 어질게 여겼다.
“천박한 지아비들은 군주에 대해서 일찍이 하찮은 노력과 천한 일
注+[頭註]기羈는 말의 머리에 씌우는 굴레이고 설絏은 말고삐이니, 신하 노릇 하여 천역賤役을 봉행함을 말한다. 을 봉행한 것이 없으면서도 오히려
인연因緣하여 붙어서
부귀富貴를 바라니, 만일 진실로 평소의 친분이 있다면 급급히 스스로 밝혀서 녹봉이 자신에게 미치지 않을까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
이들은 노魯나라 주가朱家를 만났더라도 오히려 그 집에서 일할 수 없었을 것이니, 병길丙吉에 비하면 어떠한 사람이 되겠는가.”
황제는
소망지蕭望之가
경학經學이 밝고 신중하며 의론이 충분하여
재상宰相의 직책을 맡을 수 있는 재목이라고 생각하여, 그의
정사政事를 상세히 시험하고자 해서 다시
좌풍익左馮翊을 삼으니,
注+[釋義]좌풍익左馮翊이 되었다는 것은 좌풍익군左馮翊郡 태수太守가 된 것이다. 소망지蕭望之가
소부少府로부터 나가 좌천되었다.
注+[釋義]《한서漢書》 〈제후왕표諸侯王表〉에 좌관左官의 율律이 있는데, 위소韋昭가 말하기를 “좌左는 하下와 같으니, 한漢나라 법法에 땅의 도道는 오른쪽을 높이기 때문에 폄하됨을 좌천左遷이라 한다.” 하였다.
소망지蕭望之는 상上의 뜻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 있는가 두려워하여 즉시 병을 칭탁하였다.
상上이 이 말을 듣고 시중侍中 김안상金安上으로 하여금 뜻을 유시諭示하게 하기를 “등용하는 사람을, 모두 백성을 다스리는 직책을 거쳐서 공功을 고찰한다.
군君이 전에
평원태수平原太守를 지낸 날짜가 오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삼보三輔注+[附註]진秦나라가 천하를 겸병하고 군현郡縣을 세울 적에 경기京畿에서 통치하는 곳을 내사內史라 이름하였으니, 안에 있다고 말하여 여러 군수郡守와 구별한 것이다. 《한서漢書》 〈백관표百官表〉에 “내사內史는 경사京師를 관장한다. 경제景帝가 나누어 좌내사左內史와 우내사右內史를 두었는데, 무제武帝가 내사內史를 이름을 바꾸어 경조윤京兆尹이라 하고 좌내사左內史를 이름을 바꾸어 좌풍익左馮翊이라 하였고, 또 주작중위主爵中尉가 열후列侯를 관장하였는데 이름을 바꾸어 우부풍右扶風이라 하여 내사內史의 오른쪽 지방을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하여 풍익馮翊, 경조윤京兆尹과 함께 삼보三輔라 하였으니, 이는 보거輔車처럼 서로 의지하는 뜻을 취한 것이다.” 하였다. 지방에 시험하려는 것이요, 무슨 말을 들은 바가 있어서가 아니다.” 하니,
소망지蕭望之가 즉시 일어나 일을 보았다.
1
[정사] 2년
1740
2
[정사] 2년
806
3
[정사] 2년
350
4
[정사] 2년
4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