蕭望之
와 周堪
이 皆以師傅舊恩
으로 天子任之
하야 宴
에 言治亂, 陳王事
注+[通鑑要解]陳王者之事라러니
望之選白宗室
의 明經有行劉
生
注+[釋義]劉向也라하야 與金敞
으로 竝拾遺左右
하니 史高
는 充位而已
라
弘恭, 石顯이 自宣帝時로 久典樞機하야 明習文法이러니 帝卽位에 多疾이라 委以政事하니
望之等
이 患苦許史放縱
하고 又疾恭, 顯擅權
하야 建白
注+[釋義]建議而告白於上이라以爲 中書
는 政本
이요 國家樞機
니 宜以通明公正處之
니이다
宜罷中書宦官
하야 應古不近刑人
注+[釋義]公羊傳襄二十九年에 君子不近刑人이니 近刑人은 則輕死之道也라한대 註云 刑人不自賴也라하니라之義
니이다하니 由是
로 大與高, 恭, 顯忤
러라
恭, 顯
이 因奏望之, 堪, 更生
이 朋黨
하야 毁離親戚
注+[頭註]父黨曰親이요 母黨曰戚이라하고 欲以專擅權勢
하니 請召致廷尉
하노이다
上曰 蕭太傅素剛하니 安肯就吏리오 顯等曰 人命이 至重하니 望之所坐를 語言薄罪면 必無所憂리이다 上이 乃可其奏하다
使者召望之한대 望之仰天歎曰 吾嘗備位將相하야 年踰六十矣라
老入牢獄하야 苟求生活이 不亦鄙乎아하고 飮鴆自殺하다
天子聞之하고 驚拊手曰 曩에 固疑其不就牢獄이러니 果然殺吾賢傅로다
夫恭, 顯之譖愬望之
엔 其邪說詭計
를 誠有所不能辨也
어니와 至於始疑望之不肯就獄
에 恭, 顯以爲必無憂
라하더니 已而
요 果自殺
注+[通鑑要解]顯等이 知望之不就獄하고 發軍圍第하야 欲自盡其命이라 望之問門下生朱雲한대 雲은 好節士라 勸望之自殺하니 望之飮酖而死하니라하야는 則恭, 顯之欺亦明矣
라
在中智之君
이면 孰不感動奮發
하야 已
邪臣之罰
이리오
孝元則不然하야 雖涕泣不食하야 以傷望之로되 而終不能誅恭, 顯하고 纔得其免冠謝而已니 如此면 則姦臣이 安所懲乎아
初에 武帝滅南越하고 置珠厓, 儋耳郡하니 在海中洲上하야 率數年一反이라
上이 卽位之明年에 珠厓山南縣이 反이어늘 上이 博謀於群臣하고 欲大發軍擊之러니
待詔賈捐之曰 臣聞堯, 舜, 禹之聖德
에 地方
이 不過數千里
로되 東漸于海
하고 西被流沙
하고 朔南
에 曁聲敎
注+[釋義]書禹貢에 孔氏曰 此言五服之外가 皆與王者聲敎而朝見也라 也라 蔡氏傳曰 漸은 漬也요 被는 覆也요 曁는 及也니 地有遠近이라 故言有淺深이라 聲은 謂風聲이요 敎는 謂敎化라 王氏曰 按五代晉高居誨使于闐記에 自靈州로 過黃河하야 行三十里에 始涉沙하야 入党項界하고 自此沙로 行四百餘里하야 登沙嶺하고 渡白亭河하야 至涼州하고 自涼州西五百里에 至甘州하고 甘州西에 始涉磧하니 磧無水라 西北五百里에 至肅州하고 渡金河하야 西百里에 出天門關하고 又西百里에 出玉門關하야 西至瓜州하고 瓜州南十里에 鳴沙山이니 冬夏에 殷殷有聲如雷하니 云禹貢流沙也라하니 言欲預聲敎則治之
하고 不欲預者
는 不强治也
라
臣願遂棄珠厓
하고 專用恤關東爲憂
注+[頭註]賈捐之傳에 今天下獨有關東이 連年流離하야 相枕〈席〉於道路하야 以至嫁妻賣子호되 不能禁止하니 此社稷之憂也라하니라하노이다 上
이 從之
하다
사고史高가 외속外屬(外戚)으로 상서尙書의 일을 관장하였다.
소망지蕭望之와
주감周堪이 모두 옛날의
사부師傅였던 은혜로
천자天子가 임용하여 자주 사사로이 뵐 적에
치란治亂을 말하고
왕도王道의 일을 아뢰었다.
注+[通鑑要解]왕자王者의 일을 아뢰는 것이다.
소망지蕭望之가
종실宗室 중에
경학經學에 밝고 훌륭한 행실이 있는
유경생劉更生(劉向)
注+[釋義]유경생劉更生은 유향劉向이다.을 선발하여 아뢰어서
김창金敞과 함께 좌우에서
습유拾遺가 되게 하니,
사고史高는 자리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소망지蕭望之와 틈이 있게 되었다.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선제宣帝 때로부터 추기樞機(중요한 부서로 중서알자령中書謁者令을 가리킴)를 오랫동안 맡아 법조문에 밝고 익숙하였는데, 황제가 즉위하자 병이 많아 이들에게 정사를 맡겼다.
소망지蕭望之 등은
허씨許氏와
사씨史氏가 방종함을 근심하고 괴로워하며 또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권력을 독단하는 것을 미워해서 건의하여 아뢰기를
注+[釋義]건백建白은 건의하여 상上에게 아뢰는 것이다. “
중서中書는 정사의 근본이고 국가의
추기樞機이니, 마땅히
통명通明하고
공정公正한 자를 그 자리에 있게 해야 합니다.
무제武帝가 후정後庭에서 놀이하고 잔치하였기 때문에 환관宦官을 중서中書로 등용하셨으니, 이는 옛 제도가 아닙니다.
마땅히
중서中書의
환관宦官을 혁파하여 옛날에 형벌 받은 사람(환관)을 가까이하지 않는
注+[釋義]《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양공襄公 29년年에 “군자는 형벌 받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으니, 형벌 받은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은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길이다.” 하였는데, 주註에 이르기를 “형벌 받은 사람은 스스로 자중自重하지 못한다.” 하였다. 뜻에 부응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는데, 이로 말미암아
사고史高,
홍공弘恭,
석현石顯과 크게 틀어졌다.
- 《한서漢書》 〈석현전石顯傳〉과 〈소망지전蕭望之傳〉에 나옴 -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인하여 아뢰기를 “
소망지蕭望之와
주감周堪,
유경생劉更生이 붕당하여 황제의 친척
注+[頭註]아버지의 친족을 친親이라 하고, 어머니의 친족을 척戚이라 한다. 을 헐뜯고 이간질하며 권세를 마음대로 부리니, 불러서
정위廷尉에게 맡겨
치죄治罪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상上이 말하기를 “소태부蕭太傅는 평소 강직하니, 어찌 옥리獄吏에게 나아가려 하겠는가?” 하자, 석현石顯 등이 말하기를 “사람의 목숨은 지극히 중하니, 소망지蕭望之가 범한 죄罪를 언어상言語上의 작은 죄로 한다면 굳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하니, 상上이 마침내 석현石顯 등이 아뢴 것을 허락하였다.
사자使者가 소망지蕭望之를 부르자, 소망지蕭望之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를 “내 일찍이 장상將相의 지위에 있었고 나이가 이미 60이 넘었다.
늙어서 감옥에 들어가 구차히 살기를 바라는 것이 비루하지 않겠는가?” 하고는 짐독鴆毒을 마시고 자살하였다.
천자天子는 이 말을 듣고 놀라 손을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지난번에 진실로 그가 뇌옥牢獄에 나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하였는데, 과연 나의 어진 사부師傅를 죽였도다.” 하였다.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소망지蕭望之를 참소할 때에는 그 간사한 말과 속임수를 진실로 분별할 수 없었으나
소망지蕭望之가
옥獄에 나아가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효원제孝元帝가 처음에 의심했을 때에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은 굳이 근심할 것이 없다고 말했는데, 얼마 후 과연
소망지蕭望之가 자살함
注+[通鑑要解]석현石顯 등은 소망지蕭望之가 옥에 나오지 않을 줄 알고 군대를 동원하여 집을 포위하여 소망지蕭望之가 스스로 그 목숨을 끊게 하고자 하였다. 소망지蕭望之가 문하생인 주운朱雲에게 물었는데, 주운朱雲은 절개를 좋아하는 선비였으므로 소망지蕭望之에게 자살할 것을 권하니, 소망지蕭望之가 짐독酖毒을 마시고 죽었다. 에 이르러서는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속인 것이 또한 분명하다.
중등中等 정도의 지혜가 있는 임금이라면 그 누가 감동하고 분발하여 간사한 신하에게 형벌을 내리지 않겠는가.
그런데 효원제孝元帝는 그렇지 아니하여 비록 눈물을 흘리고 밥을 먹지 않으며 소망지蕭望之의 죽음을 서글퍼하였으나 끝내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을 주벌하지 못하고 겨우 그들이 관冠을 벗고 사죄하게 하였을 뿐이니, 이와 같다면 간신들이 어떻게 징계될 수 있겠는가.
이것이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으로 하여금 간사한 마음을 제멋대로 부려서 다시는 기탄함이 없게 만든 것이다.”
처음에 무제武帝가 남월南越을 멸망하고 주애군珠厓郡과 담이군儋耳郡을 설치하니, 이들 군郡이 해중海中의 섬에 있어서 대략 몇 년에 한 번씩 배반하였다.
상上이 즉위한 다음 해에 주애군珠厓郡의 산남현山南縣이 반란하자, 상上이 여러 신하들과 널리 상의하고 군대를 크게 징발하여 공격하고자 하였다.
대조待詔 가연지賈捐之가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요堯임금‧
순舜임금‧
우왕禹王과 같은
성덕聖德으로도 땅이 수천 리에 불과하였으나
교화敎化가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서쪽으로
유사流沙에 입혀지고
삭방朔方(북방)과 남쪽에
성교聲敎가 미쳤으니,
注+[釋義]堯, 순舜, 우禹……曁聲敎:《서경書經》 〈우공禹貢〉의 주註에 공씨孔氏(孔安國)가 말하기를 “이는 오복五服의 밖이 모두 왕자王者의 성교聲敎에 참여하여 조회함을 말한 것이다. 삭남朔南은 북방北方이다.” 하였다. 채침蔡沈의 전傳에 이르기를 “점漸은 젖음이고 피被는 덮혀짐이고 기曁는 미침이니, 땅에 먼 곳과 가까운 곳이 있기 때문에 말에 얕고 깊음이 있는 것이다. 성聲은 풍성風聲을 이르고, 교敎는 교화를 이른다.” 하였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살펴보건대 오대시대五代時代 진晉나라 고거회高居誨가 우전于闐에 사신 간 기록에 영주靈州로부터 황하黃河를 지나 30리를 가야 비로소 사막을 지나 당항계党項界에 들어가고, 이 사막으로부터 400여 리를 가서 사령沙嶺에 오르고, 백정하白亭河를 건너 양주涼州에 이르고, 양주涼州로부터 서쪽 500리를 가서 감주甘州에 이르고, 감주甘州의 서쪽으로 가서 비로소 적磧을 건너니, 적磧은 물이 없다. 서북쪽으로 500리를 가서 숙주肅州에 이르고, 금하金河를 건너 서쪽으로 100리를 가서 천문관天門關으로 나오고, 또다시 서쪽 100리를 가서 옥문관玉門關으로 나와 서쪽으로 과주瓜州에 이르고, 과주瓜州의 남쪽 10리를 가서 명사산鳴沙山이 있으니, 겨울과 여름에 은은하게 우레 같은 소리가 있는 바, 이것을 〈우공禹貢〉의 유사流沙라 한다.” 하였다. 성교聲敎에 참여하고자 하면 다스려 주고 참여하고자 하지 않는 자는 억지로 다스리지 않은 것입니다.
신은 원컨대
주애군珠厓郡을 버리고 오로지
관동關東 지방을 구휼할 것을 걱정했으면
注+[頭註]《한서漢書》 〈가연지전賈捐之傳〉에 “지금 천하에는 관동關東 지방만이 매년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유리流離하여 굶어 죽은 시체가 도로에 즐비하게 널려 있어서 아내를 시집보내고 자식을 팔아먹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이것을 금지하지 못하니, 이는 사직社稷의 우환이다.” 하였다. 합니다.” 하니,
상上이 그 말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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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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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술]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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