廣平忠侯
注+[頭註]忠은 諡也니 史氏追稱之라吳漢
이 病篤
이어늘 車駕親臨
하야 問所欲言
한대 對曰 臣愚
는 無所知識
이요 唯願陛下愼
而已
라하더라
[史略 史評]唐太宗曰 赦者는 小人之幸이요 君子之不幸也니 夫養稂莠者는 害嘉穀하고 赦有罪者는 害良善이라
故로 朕不欲數赦는 恐小人恃之하야 輕犯憲章이라하니 吳漢諫光武無赦 亦此意也니라
○ 以郭況爲大鴻臚
注+[頭註]況은 郭皇后弟라 臚는 陵如反이요 鴻은 聲也요 又傳也니 序以傳聲하고 贊道九賓이라 漢武所置라하고 帝
幸其第
하야 賞賜金帛
하니 豐盛
이 莫比
라
○ 秋九月에 馬援이 自交趾還이어늘 孟冀迎勞之한대 援曰 方今匈奴, 烏桓이 尙擾北邊하니 欲自請擊之하노라
男兒要當死於邊野하야 以馬革裹尸還葬耳니 何能臥床上하야 在兒女子手中耶아
광평충후廣平忠侯注+[頭註]충忠은 시호이니, 사관史官이 추존追尊하여 일컬은 것이다.오한吳漢이 병이 위독하자,
거가車駕(大駕)가 친히 왕림하여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대답하기를 “어리석은 신은 아는 바가 없고, 오직 폐하께서 부디 죄인을 사면하지 않기를 원할 뿐입니다.” 하였다.
[史略 사평史評]唐 태종太宗이 말하기를 “사면赦免은 소인小人의 다행이고 군자君子의 불행이니, 잡초를 기르는 것은 아름다운 곡식을 해치고 죄 있는 자를 사면하는 것은 선량한 사람을 해친다.
그러므로 짐朕은 자주 사면하고자 하지 않으니, 이는 소인들이 이를 믿고서 헌장憲章을 가벼이 범할까 두려워해서이다.” 하였으니, 오한吳漢이 광무제光武帝에게 사면하지 말 것을 간한 것도 이러한 뜻이다.
○
곽황郭況을
대홍려大鴻臚로 삼고,
注+[頭註]곽황郭況은 곽황후郭皇后의 아우이다. 려臚는 陵如反(려)이고, 홍鴻은 소리이고 또 전하는 것이니, 차례로 소리를 전달하고 구빈九賓을 도와 인도하는 것이다. 한漢 무제武帝가 설치하였다. 황제가 자주 그의 집에 행차하여 금과 비단을
상賞으로 하사하니, 풍성함이 견줄 사람이 없었다.
경사京師에서는 곽황郭況의 집을 이름하여 황금굴이라 하였다.
○ 가을 9월에 마원馬援이 교지交趾에서 돌아오자 맹기孟冀가 맞이하여 위로하였는데, 마원馬援이 말하기를 “지금 흉노匈奴와 오환烏桓이 아직도 북쪽 변경을 소란하게 하고 있으니, 자청하여 그를 공격하고자 한다.
남아男兒는 마땅히 변경의 들에서 죽어 말가죽으로 시신을 싸서 돌아와 장례해야 하니, 어찌 침상 위에 누워 아녀자의 손안에서 죽겠는가.” 하였다.
맹기孟冀가 말하기를 “진실로 열사烈士가 되려면 이와 같아야 한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