匈奴八部大人
이 共議立日逐王
注+[頭註]匈奴官號라比
하야 爲呼韓邪單于
注+[附註]匈奴單于輿立하야 以從弟比로 爲日逐王하야 領南邊이러니 及輿死하고 弟左賢王蒲奴立하야 使兩骨都侯로 監領比所部한대 比遂斂所主南邊八部衆而叛하니 南邊八部共立比爲呼韓邪單于라 於是에 始分爲南北單于하니라하고 款五原塞
注+[釋義]謂叩塞門하야 來服從也니 款은 叩也라하야 願永爲藩蔽
하야 扞禦北虜
라하야늘
事下公卿하니 議者 皆以爲天下初定에 中國空虛하고 夷狄은 情僞難知하니 不可許니이다
五官中郞將耿國
이 獨以爲宜如
受之
하야 令東扞鮮卑
하고 北拒匈奴
하고 率厲四夷
하야 完復邊郡
注+[通鑑要解]時에 邊郡創(瘡)殘이어늘 有南匈奴爲扞弊면 則可以完復矣라케하소서 帝從之
하다
○ 秋七月
에 武陵蠻
이 寇臨
注+[釋義]武陵은 禹貢荊州之域이니 秦爲黔中郡하고 光武改〈名〉光陵郡하니 今常德府是라 臨沅은 縣名이니 屬武陵하니 以南臨沅水라 故名焉하니 今〈常德府〉沅江縣이 是라[頭註]寇는 群行攻劫也라이어늘 馬成
注+[頭註]中山太守라이 討之不克
하다
馬援이 請行이어늘 帝愍其老하야 未許러니 援曰 臣이 尙能被甲上馬니이다
是翁注+[釋義]矍鑠은 輕健貌라 東觀記에 作矆哉是翁하니라이여하고 遂遣援
하야 將四萬餘人
하야 征五溪
注+[釋義]謂雄溪, 樠溪, 西溪, 潕溪, 辰溪니 皆槃瓠子孫所居니 謂之五溪蠻也라 按水經註에 沅水는 出牂牁郡且蘭縣하야 去武陵界하야 分五溪하니 今在辰州라하다
援
이 謂友人杜愔曰 吾受國厚恩
하야 年迫日
注+[釋義]迫은 逼也요 은 盡也니 謂歲月老也라일새 常恐不得死國事
러니 今獲所願
하니 甘心瞑目이로라
○ 冬十月에 匈奴日逐王比 自立爲南單于하고 遣使詣闕하야 奉藩稱臣이어늘
上이 以問朗陵侯臧宮한대 宮曰 匈奴飢疫分爭하니 臣은 願得五千騎하야 以立功하노이다
帝笑曰 常勝之家는 難與慮敵이니 吾方自思之호리라
흉노匈奴의
팔부八部 대인大人이 함께 의논하고
일축왕日逐王注+[頭註]일축왕日逐王은 흉노匈奴의 관호官號이다. 비比를 세워서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를 삼고,
注+[附註][附註]匈奴八部大人……爲呼韓邪單于:흉노匈奴의 선우單于인 여輿가 즉위하여 종제從弟인 비比를 일축왕日逐王으로 삼아서 남쪽 변방을 관할하게 하였는데, 여輿가 죽고 아우 좌현왕左賢王 포노蒲奴가 즉위하여 양골도후兩骨都侯로 하여금 비比가 거느리던 곳을 감독하여 관장하게 하자, 비比가 마침내 주관하던 남쪽 변방 여덟 부족의 무리를 거느리고 배반하니, 남쪽 변방의 여덟 부족이 함께 비比를 세워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라 하였다. 이에 흉노匈奴가 비로소 남선우南單于와 북선우北單于로 나뉘게 되었다.오원五原의 변방의 관문을 두드리고 와서
注+[釋義]오원五原에 있는 변방의 관문을 두드리고 와서 복종한 것이니, 관款은 두드림이다. 영원히
번폐藩蔽(藩屛)가 되어 북쪽 오랑캐를 방어할 것을 원한다고 하였다.
이 일을 공경公卿에게 내려 의논하게 하니, 의논하는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천하가 처음 평정됨에 중국이 텅 비었고 오랑캐들은 실정과 거짓을 알기 어려우니, 허락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 경국耿國이 홀로 아뢰기를 “마땅히
효선제孝宣帝의
고사故事와 같이 이들을 받아 주어 동쪽으로는
선비鮮卑를 막고 북쪽으로는
흉노匈奴를 막고 사방 오랑캐들을 인솔하고 장려해서 변방의 고을을 다시 완전하게 하소서.
注+[通鑑要解]이 때에 변방의 고을이 해를 입어 잔폐하였는데, 남흉노南匈奴를 울타리로 삼는다면 다시 완전하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 하니, 황제가 그의 말을 따랐다.
○ 가을 7월에
무릉武陵의
만족蠻族이
임원臨沅을 침략하자,
注+[釋義]武陵은 《서경書經》 〈우공禹貢〉의 형주荊州 지역이니, 진秦나라는 검중군黔中郡으로 삼았고 광무제光武帝는 광릉군光陵郡으로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상덕부常德府가 이곳이다. 임원臨沅은 현縣의 이름이니 무릉武陵에 속하였는 바, 남쪽에 원수沅水가 있기 때문에 이름한 것이니, 지금 상덕부常德府 원강현沅江縣이 이곳이다.[頭註]寇는 무리 지어 가서 공격하여 위협하는 것이다.마성馬成注+[頭註]마성馬成은 중산태수中山太守이다. 이 토벌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마원馬援이 출정出征할 것을 청하자, 황제가 그의 늙음을 딱하게 여겨 허락하지 않았는데, 마원馬援이 말하기를 “신이 아직 갑옷을 입고 말에 오를 수 있습니다.” 하였다.
황제가 시험해 보게 하니, 마원馬援이 말안장에 걸터앉아 좌우를 돌아보면서 아직도 쓸 만함을 과시하였다.
이 노인이여.”
注+[釋義]矍鑠哉 시옹是翁:확삭矍鑠은 몸이 가볍고 건장한 모양이다. 《동관기東觀記》에는 ‘확재시옹矆哉是翁’으로 되어 있다. 하고는 마침내
마원馬援을 보내어 4만여 명의 병력을 거느리고 가서
오계五溪注+[釋義]오계五溪는 웅계雄溪‧만계樠溪‧서계西溪‧무계潕溪‧신계辰溪를 이르니, 모두 반호槃瓠의 자손들이 사는 곳으로 이들을 오계만五溪蠻이라 이른다. 살펴보건대 《수경주水經註》에 “원수沅水는 장가군牂牁郡 차란현且蘭縣에서 나와 무릉武陵의 경계로 흘러가서 오계五溪로 나누어지니, 지금의 신주辰州에 있다.” 하였다. 를 정벌하게 하였다.
마원馬援이 친구인
두음杜愔에게 이르기를 “내가 국가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서 나이가 죽을 때에 가까워 살 날이 다하였으므로
注+[釋義]박迫은 가까움이고 삭索은 다함이니, 세월이 다하여 늙음을 이른다. 항상
국사國事에 죽지 못할까 두려워하였는데, 이제 소원을 얻었으니 달가운 마음으로 눈을 감겠다.” 하였다.
○ 겨울 10월에 흉노匈奴의 일축왕日逐王 비比가 스스로 서서 남선우南單于가 되고, 사신使臣을 보내어 궁궐에 나와 번병藩屛의 예禮를 받들어 신臣이라고 칭하였다.
상上이 이 일을 가지고 낭릉후朗陵侯 장궁臧宮에게 묻자, 장궁臧宮이 대답하기를 “흉노匈奴가 기근이 들고 염병이 돌며 분열되어 다투고 있으니, 신은 원컨대 5천 명의 기병騎兵을 얻어 공功을 세웠으면 합니다.” 하였다.
황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항상 승리한 사람과는 적敵을 도모하기 어려우니, 내 바야흐로 스스로 생각해 보겠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