初作壽陵
注+[釋義]壽陵은 卽原陵也니 去洛陽十五里라 帝生前에 豫作陵墓라 故曰壽陵이라하니라[頭註]初作陵하야 未有名故로 號壽陵이라하니 蓋取長久義라 壽陵은 始於文帝하니라할새 帝曰 古者帝王之葬
에 皆陶人
注+[釋義]謂陶瓦爲人之形也라瓦器
하고 하야 使後世之人
으로 不知其處
하니
今所制
는 地不過二三頃
하고 無爲山陵波(陂)池
하야 裁(纔)令流水而已
注+[釋義]顔之推曰 波(陂)池는 當讀如니 猶言耳라 言不須高作山陵하고 但令小隆起坡陀然하야 裁得流泄水潦耳라 今讀者謂爲波(陂)池하야 令得流水라하니 誤矣라 裁令은 僅令也라하야 使迭興之後
에 與丘隴同體
注+[釋義]王氏曰 丘는 小山也요 隴은 大阪也니 謂異時易姓受命之後에 庶使陵墓與丘隴之形體無別也라케하라
처음에
수릉壽陵을 만들 때에
注+[釋義]壽陵은 바로 원릉原陵이니, 낙양洛陽에서 15리 떨어져 있다. 황제가 생전에 미리 능묘陵墓를 만들었으므로 수릉壽陵이라 한 것이다.[頭註]처음 능陵을 만들어 아직 명칭이 없으므로 수릉壽陵이라 이름한 것이니, 수壽는 장구하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수릉壽陵을 만든 것은 문제文帝 때에 비롯되었다. 황제가 말하기를 “옛날에
제왕帝王을 장례할 때에 모두 진흙으로 사람을 만들고
注+[釋義]도인陶人은 진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만듦을 이른다. 질그릇을 쓰며 나무로 수레를 만들고 띠풀로 말을 만들어서 후세 사람으로 하여금 장례 지낸 곳을 알지 못하게 하였으니,
지금 만드는
능陵은 땅은 2, 3
경頃을 넘지 않게 하고
산릉山陵과 언덕을 만들지 말아서 겨우 물만 흘러가게 할 뿐이어서
注+[釋義]無爲山陵波池 재령류수이이裁令流水而已:안지추顔之推가 말하기를 “파지波池는 마땅히 파타坡陀와 같이 읽어야 하니, 미이靡迤라는 말과 같다. 굳이 높게 산릉山陵을 만들지 말고 다만 조금 융기隆起하여 언덕과 같게 해서 겨우 장마물이 흘러 빠지게 할 뿐임을 말한 것이다. 지금 독자讀者들은 ‘파지波池를 만들어서 물이 그리로 흘러가게 한 것이다.’라고 하니, 잘못이다.” 하였다. 재령裁令은 겨우 하여금이다. 〈
역성혁명易姓革命하여〉 다음
왕조王朝가 일어난 뒤에
구롱丘隴과 일체가 되게 하라.
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구丘는 작은 산이고 농隴은 큰 언덕이니, 후일에 역성易姓하여 천명天命을 받은 뒤에 능묘陵墓로 하여금 구롱丘隴의 형체와 거의 구별이 없게 함을 이른다.” ” 하였다.
- 《후한서後漢書 광무제기光武帝紀》에 나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