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月
에 帝崩
하니 太后迎淸河王
注+[頭註]和帝之兄이라慶
의 子
하야 爲孝和皇帝嗣
하야 卽皇帝位
하고 太后猶臨朝
하다
○ 尙書郞樊準이 以儒風寖衰라하야 上疏曰 人君은 不可以不學이라
光武皇帝 受命中興하사 東西誅戰하야 不遑啓處나 然猶投戈講藝하고 息馬論道하며
孝明皇帝 庶政萬機
를 無不簡心
注+[頭註]簡은 分別之也요 閱也라호되 而
垂情古典하고 遊意經藝하사 每饗射禮畢
에 正坐自講
하야 諸儒竝聽
하니 四方
이 欣欣
하니이다
又多徵名儒
하야 布在廊廟
注+[頭註]廊은 殿下屋이요 廟는 太廟니 國事를 先謀於廊廟之所라하고 每讌會
注+[原註]讌은 伊甸反이니 合語也라에 則論難
衎
注+[釋義]衎衎은 和樂貌라하야 共求政化
하니 期門羽林介冑之士 悉通孝經
이라
化自聖躬하야 流及蠻荒하니 是以로 議者每稱盛時에 咸言永平이니이다
今學者益少
에 遠方
이 尤甚
하야 博士倚席不講注+[釋義]倚席은 謂不施講坐(座)也라하고 儒者競論浮麗하야 忘
謇
注+[釋義]謇은 九輦反이니 易曰 라하니라之忠
하고 習
諓
注+[釋義]諓音踐이니 諂言也라之辭
하니
臣愚는 以謂宜下明詔하야 博求幽隱하고 寵進儒雅하야 以俟聖上講習之期하노이다 太后深納其言하다
8월에 황제가 별세하니,
태후太后가
청하왕淸河王注+[頭註]청하왕淸河王은 화제和帝의 형이다. 경慶의 아들
호祜를 맞이하여
효화황제孝和皇帝의
후사後嗣로 삼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
태후太后가 그대로 조정에
임어臨御하였다.
- 《후한서後漢書 효상황제기孝殤皇帝紀》에 나옴 -
○ 상서랑尙書郞 번준樊準이 유풍儒風이 점점 쇠퇴한다 하여 상소하여 아뢰기를 “인군人君은 배우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광무황제光武皇帝가 천명天命을 받고 중흥하사 동서東西로 토벌하고 싸워서 편안히 거처할 겨를이 없었으나 오히려 창을 던지고 경서經書를 강講하며 말을 쉬게 하고 도道를 논하였습니다.
효명황제孝明皇帝는 여러
정사政事와
만기萬機를 마음속에 분별
注+[頭註]간簡은 분별하는 것이고,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고전古典에
정情을 쏟고
경예經藝(經學)에 뜻을 두어서 언제나 손님들에게 연향을 하고
사례射禮가 끝날 때마다 바르게 앉아 스스로
강학講學하여 여러 선비들이 함께 들으니, 사방이 기뻐하고 기뻐하였습니다.
또 유명한 선비들을 많이 불러서
낭묘廊廟(朝廷)
注+[頭註]낭廊은 궁전宮殿 아래의 집이고 묘廟는 태묘太廟이니, 국사國事를 낭묘廊廟가 있는 곳에서 먼저 도모하는 것이다. 에 포진해 있게 하고,
연회讌會注+[原註]연讌은 伊甸反(연)이니, 모여서 말하는 것이다. 할 때마다
경전經傳을 논란하며 즐거워하여
注+[釋義]간간衎衎은 화락和樂한 모양이다. 함께
정사政事와
교화敎化를 구하니,
기문期門과
우림羽林의 갑옷 입고 투구 쓴 병사들도 모두 《
효경孝經》에 통달하였습니다.
교화가 성상聖上의 몸으로부터 시작하여 흘러 변방의 오랑캐에게까지 미치니, 이 때문에 의논하는 자들이 언제나 훌륭한 시대를 일컬을 때마다 모두 영평연간永平年間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학자가 더욱 적어졌는데 먼 지방은 특히 심해서
박사博士들은
강講하던 자리를 치워 놓고 강론하지 않고
注+[釋義]자리를 치움은 강론하는 자리를 베풀지 않음을 이른다. 유자儒者들은 다투어
부화浮華하고 화려함을 논하여 자기 몸을 돌보지 않는
注+[釋義]건謇은 九輦反(건)이니,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건蹇은 어려움이다.” 하였다. 충성을 잊고 아첨하는
注+[釋義]전諓은 음이 천(전)이니, 아첨하는 말이다. 말만을 익히고 있으니,
어리석은 신은 생각건대 밝은 조서詔書를 내리시어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은사들을 널리 찾고 유아儒雅한 선비를 높여 등용해서 성상聖上께서 성장成長하여 강습하실 때를 기다려야 한다고 여깁니다.” 하니, 태후太后가 그 말을 깊이 받아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