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안제安帝가 예문藝文(六藝와 여러 책)을 하찮게 여기니, 박사博士들이 다시는 강론하여 익히지 않고 배우는 자들도 서로 보고 게을리 하고 흩어져서 학궁學宮이 퇴락하여 마침내 동산과 채소밭이 되었다.注+[頭註]국鞠은 《시경詩經》 〈소아小雅소변小弁〉에 “마침내 무성한 풀밭이 되었다.” 하였으니, 국鞠은 마침내이다.
그리하여 혹 목동과 나무꾼이 그 아래에서 나무하고 풀을 베었는데,注+[通鑑要解]요蕘는 땔나무이다. 또 풀을 베는 것을 추芻라 하고 땔나무를 채취하는 것을 요蕘라 한다. 장작대장將作大匠注+[頭註]대장大匠은 관명官名이다. 적포翟酺가 상소하여 다시 학궁學宮을 수리해서 후학後學들을 유도하여 나아가게 할 것을 청하니, 황제가 이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