八月
에 遣杜喬, 周擧, 周
, 馮
, 欒巴, 張綱, 郭遵, 劉班
하야 分行
注+[頭註]去聲이니 巡視也라州郡
하야 表賢良, 顯忠勤
호되 其貪汚有罪者
는 刺史二千石
은 驛馬上之
하고 墨綬以下
는 便輒收擧
注+[頭註]〈刺史, 二千石의 大吏는 驛馬〉上奏其罪하야 取旨黜免하니 驛馬는 欲速達京師也요 一千石, 六百石의 以下는 便收라[通鑑要解]墨綬는 縣令, 長也니 令, 長以下는 便收案擧劾其罪라케하니
喬等
은 受命之部
호되 張綱
은 獨
埋其車輪於雒陽都亭
注+[頭註]近畿內라 凡言都亭者는 竝城內亭이니 漢郡國道에 皆有都亭하니라하고 曰
豺狼이 當路하니 安問狐狸리오하고
遂劾奏
호되 大將軍冀
와 河南尹不疑
注+[釋義]不疑는 梁冀之弟라 以外戚蒙恩
하고 居阿衡
注+[釋義]阿衡은 伊尹號也니 謂保其國如阿하고 平其國如衡이라之任
하야 而專肆貪
注+[釋義]叨는 與饕同하니 貪財曰饕라하고 縱恣無極
하야 以害忠良
하니
謹條其無君之心十五事하노니 斯皆臣子所切齒者也니이다
時에 皇后寵方盛하야 諸梁姻族이 滿朝하니 帝雖知綱言直이나 不能用也러라
杜喬至兗州하야 表奏泰山太守李固政爲天下第一하니 上이 徵固爲將作大匠하다
梁冀恨張綱
하야 思有以中傷
注+[頭註]中은 去聲이니 陰中害之라之
러니
時에 廣陵賊張嬰이 寇亂揚, 徐間하야 積十餘年에 二千石이 不能制라
冀乃以綱爲廣陵太守하니 前太守率多求兵馬호되 綱은 獨請單車之職하다
旣到에 徑詣嬰壘門하니 嬰이 大驚하야 遽走閉壘어늘
綱이 於門外에 罷遣吏兵하고 獨留所親者十餘人하고 以書諭嬰하야 請與相見한대 嬰이 見綱至誠하고 乃出拜謁이어늘
延
注+[頭註]納也라置上坐
하고 譬之曰 前後二千石
이 多肆貪暴故
로 致公等懷憤相聚
하니 二千石
이 信有罪矣
라
今主上
이 仁聖
하야 欲以文德服叛
이라 故遣太守來
하니 思以爵祿相榮
이요 不願以刑罰相加
하노니 今誠
轉禍爲福之時
注+[通鑑要解]若聞義不服하야 天子震怒하야 荊揚兗豫大兵雲合이면 血嗣俱絶하리니 二者利害를 公其深計之하라하니 嬰聞泣下하니라也
니라
嬰聞
하고 泣下曰 荒裔
注+[頭註]言邊遠也라 裔는 衣裾也라愚民
이 不能自通朝廷
하야 不堪侵枉
하야 遂復相聚偸生
하니
若
魚游釜中이라 知其不可久
나 且以喘息須臾間
注+[釋義]喘은 疾息也요 須臾는 不久貌니 猶苟延殘喘하야 少延視息之義라爾
러니
乃辭還營이러니 明日에 率所部萬餘人하고 歸降하다
是時에 二千石長吏有能政者하니 有雒陽令任峻과 冀州刺史蘇章과 膠東相吳祐라
章은 爲冀州刺史에 有故人이 爲淸河太守러니 章이 行部하야 欲按其姦贓하야 乃請太守하고 爲設酒肴하야 陳平生之好하야 甚歡이라
太守喜曰
人皆有一天이로되 我獨有二天注+[頭註]二天은 謂章必覆蓋其惡也라이로다
章曰 今夕
에 蘇孺文
注+[頭註]蘇章字라이 與故人飮者
는 私恩也
요 明日
에 冀州刺史按事者
는 公法也
라하고 遂擧正其罪
하니 州境
이 肅然
이러라
然이나 章意는 蓋欲借以警衆이니 故舊之恩은 恐不如此니라
故人이 可喩之면 使可改行이 可也요 不可喩면 勿與飮이 可也라
後世小人之薄於故舊者 鮮不以章藉口
하나니 君子無作俑
注+[頭註]俑은 從葬木偶人也니 設關而能跳踊이라 故로 名俑이라哉
인저
順帝享國에 漢業雖衰나 然當時可任公卿者 有李固, 杜擧하고 可任將帥者 有虞詡, 皇甫規하고 可任刺史者 有蘇章, 張綱, 任峻, 吳祐하니 若使之盡其才하고 又使各擧所知而彙征焉이면 國雖衰나 可興也어늘
而帝惟后黨預權하고 閹宦用事하야 忠良屈抑하야 不復得志하니 欲天下不亂이나 得乎아
8월에
두교杜喬‧
주거周擧‧
주허周栩‧
풍선馮羨‧
난파欒巴‧
장강張綱‧
곽준郭遵‧
유반劉班을 보내어서
주군州郡을 나누어 순행
注+[頭註]행行은 거성去聲이니, 순시함이다. 하여
현량賢良한 이를 표창하고 충성스럽고 근면한 자를 드러내게 하되 탐관오리로서 죄를 지은
자사刺史와
이천석二千石의 관원은
역마驛馬로 전달하여 그 죄를
상주上奏하고,
묵수墨綬(縣令) 이하의 관원은 곧바로 직접 체포하게 하였다.
注+[頭註]驛馬上之……便輒收擧:[頭註]刺史와 이천석二千石의 높은 관원은 역마驛馬로 그 죄를 상주上奏하여 황제의 명령을 받아서 면직시킨 것이니, 역마驛馬는 속히 경사京師에 전달하고자 한 것이요, 일천석一千石과 육백석六百石의 묵수墨綬를 차는 현縣의 영令과 장長 이하는 곧바로 체포하는 것이다. [通鑑要解]墨綬는 현縣의 영令과 장長이니 영令, 장長 이하는 곧바로 체포하여 조사해서 그 죄를 탄핵하는 것이다.
두교杜喬 등은 명령을 받고
부部로 갔으나
장강張綱만은 홀로
낙양雒陽의
도정都亭注+[頭註]도정都亭은 기내畿內에 가까이 있었다. 무릇 도정都亭이라고 말한 것은 모두 도성都城 안의 정亭(客舍)이니, 한漢나라는 군郡‧국國‧도道에 모두 도정都亭이 있었다. 에 수레바퀴를 묻으며 말하기를 “승냥이와 이리가 길을 막고 있으니, 어찌 여우와 살쾡이를 물을 것이 있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탄핵하여 아뢰기를 “
대장군大將軍 양기梁冀와
하남윤河南尹 양불의梁不疑注+[釋義]양불의梁不疑는 양기梁冀의 아우이다. 는 외척으로서 은혜를 입고
아형阿衡注+[釋義]아형阿衡은 이윤伊尹의 호이니, 그 나라를 보전함이 아모阿母와 같고 그 나라를 공평하게 다스림이 저울대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의 지위에 있으면서 오로지 탐욕
注+[釋義]도叨는 도饕와 같으니, 재물을 탐하는 것을 도饕라 한다. 을 부리고 방종함이 끝이 없어서
충량忠良한 사람을 해치므로
그들이 군주를 무시한 열다섯 가지 일을 삼가 아뢰니, 이는 모두 신자臣子들이 이를 갈며 분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하였다.
글을 아뢰자
注+[頭註]어御는 올림이다. 경사京師가 진동하고 두려워하였다.
이때 황후皇后의 총애가 한창 성하여 양씨梁氏의 인척姻戚들이 조정에 가득하니, 황제가 비록 장강張綱의 말이 곧은 줄을 알았으나 쓰지 못하였다.
두교杜喬가 연주兗州에 이르러서 표문表文을 올려 태산태수泰山太守 이고李固의 정사가 천하의 제일이라고 아뢰니, 상上이 이고李固를 불러 장작대장將作大匠으로 삼았다.
양기梁冀가
장강張綱을 원망하여 그를 해칠
注+[頭註]중中은 거성去聲이니, 남몰래 적중시켜 해를 입히는 것이다. 것을 생각하였다.
이때 광릉廣陵의 도적 장영張嬰이 양주揚州와 서주徐州 사이에서 도둑질하고 어지럽혀 십여 년이 되도록 이천석二千石(太守)이 제재하지 못하였다.
양기梁冀가 마침내 장강張綱을 광릉태수廣陵太守로 삼으니, 전에 부임했던 태수太守들은 대체로 병사와 말을 많이 요구하였으나 장강張綱은 다만 수레 한 대를 타고 부임지로 갈 것을 청하였다.
장강張綱은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장영張嬰의 누문壘門에 이르니, 장영張嬰이 크게 놀라 급히 성문을 닫았다.
장강張綱이 문 밖으로 관리와 병사들을 내보내고 친한 사람 10여 명만을 남게 하고는 글로 장영張嬰을 타일러 서로 만나 볼 것을 청하니, 장영張嬰이 장강張綱의 지극한 정성을 보고는 마침내 나와서 배알하였다.
장강張綱이 그를 맞이하여
注+[頭註]연延은 맞아들임이다. 상석上席에 앉히고 타이르기를 “
전후前後로 부임한
이천석二千石이 탐욕과 포악함을 많이 부렸기 때문에
공公 등이 분한 마음을 품고 서로 모여 도둑질하게 된 것이니,
이천석二千石에게 진실로 죄가 있다.
그러나 도둑질하는 것도 의義로운 일은 아니다.
지금
주상主上께서 인자하고
성聖스러워서 배반한 이들을
문덕文德으로 복종시키고자 하시므로
태수太守를 보내어 온 것이니, 나는
작록爵祿을 가지고 서로 영화롭게 할 것을 생각하고 형벌로 서로 가하기를 원치 않는 바, 지금이 바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시기
注+[通鑑要解]장강張綱이 말하기를 “만약 의義로운 말을 듣고도 행하지 아니하여 천자天子가 진노震怒하시어 형주荊州‧양주揚州‧연주兗州‧예주豫州에 대군大軍이 구름처럼 모인다면 혈사血嗣(제사 지내는 혈손血孫)가 모두 끊어질 것이니, 두 가지의 이해利害를 공公은 깊이 따져 보라.” 하니, 장영張嬰이 듣고 눈물을 흘렸다. 이다.” 하였다.
장영張嬰은 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 “먼 변방
注+[頭註]황예荒裔는 먼 변방을 말한다. 예裔는 옷자락이다. 의 어리석은 백성들이 조정에 직접 통할 수가 없어서 침해와 억울함을 견디지 못하여 마침내 다시 서로 모여 구차하게 살기를 꾀한 것이니,
물고기가 솥 안에서 노는 것과 같아서 오래 버티지 못할 줄을 알면서도 우선 잠시나마 숨을 쉬어 목숨을 부지
注+[釋義]천喘은 숨을 헐떡거리는 것이고 수유須臾는 오래지 않은 모양이니, 오히려 남은 목숨을 구차하게 연장하여 눈 뜨고 숨만 붙어 있는 목숨을 다소 연장한다는 뜻이다. 할 뿐이었는데,
지금 명부明府의 말씀을 들으니 바로 저희들이 다시 소생할 수 있는 때입니다.” 하였다.
장영張嬰은 마침내 하직하고서 군영軍營으로 돌아갔는데, 다음 날 거느리고 있던 만여 명을 데리고 돌아와 항복하였다.
이때 이천석二千石의 장리長吏 중에 정사를 잘하는 이가 있었으니, 낙양령雒陽令 임준任峻과 기주자사冀州刺史 소장蘇章과 교동상膠東相 오우吳祐였다.
소장蘇章은 기주자사冀州刺史가 되었을 때에 고인故人(옛 친구)이 청하태수淸河太守로 있었는데, 소장蘇章이 부部를 순행하여 그의 간사함과 부정함을 조사하려 하면서 마침내 태수太守를 청하고 그를 위하여 술과 안주를 진설해서 평소의 우호를 말하며 매우 즐거워하였다.
태수太守가 기뻐하면서 말하기를 “사람들은 모두 한 하늘이 있다고 말하는데 나만 홀로 두 하늘이 있다.
注+[頭註]두 하늘이 있다고 말한 것은 소장蘇章이 반드시 자신의 악행을 덮어 줄 것임을 이른 것이다. ” 하였다.
소장蘇章이 말하기를 “오늘 저녁에 이
소유문蘇孺文注+[頭註]유문孺文은 소장蘇章의 자字이다. 이 벗과 함께 술을 마시는 것은 사사로운 은혜이고, 내일
기주자사冀州刺史로 일을 조사하는 것은 국가의 법이다.” 하고는 마침내 그의 죄를 들어 바로잡으니,
주州의 경내가 숙연하였다.
“공적인 의리와 사사로운 은혜는 진실로 나란히 행해지고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나 소장蘇章의 뜻은 이것을 빌어 여러 사람을 경계하고자 한 것이니, 고구故舊의 은혜는 이와 같아서는 안 될 듯하다.”
“고인故人이 타이를 수 있다면 하여금 행실을 고치게 하는 것이 옳을 것이요, 타이를 수 없다면 함께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이 옳다.
성인聖人은 사사로운 뜻이 없었는데 소장蘇章은 사사로운 뜻이 있었으니, 사사로운 뜻이 있음이 심하다.
후세後世의
소인小人으로서
고구故舊에게 박하게 하는 자들은
소장蘇章을 구실로 삼지 않은 이가 적으니,
군자君子들은 옳지 못한
전례前例를 만들지
注+[頭註]용俑은 장례에 쓰는 나무를 깎아 만든 사람의 형상이니, 기관機關을 설치하여 뛸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용俑이라 이름한 것이다. 말아야 할 것이다.”
“순제順帝가 나라를 누릴 때에 한漢나라의 공업功業이 비록 쇠하였으나 당시에 공경公卿을 맡길 만한 자로 이고李固와 두거杜擧가 있었고, 장수將帥를 맡길 만한 자로 우후虞詡와 황보규皇甫規가 있었고, 자사刺史를 맡길 만한 자로 소장蘇章과 장강張綱과 임준任峻과 오우吳祐가 있었으니, 만약 이들로 하여금 재주를 다하게 하고 또 각각 아는 자를 천거하여 함께 나오게 하였다면 나라가 비록 쇠하였으나 다시 일으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황제가 오직 후后의 외척外戚만 권력에 참여하게 하고 환관宦官들이 용사用事하여 충량忠良한 자들이 억눌려서 다시는 뜻을 얻지 못하였으니, 천하天下가 어지럽지 않기를 바라나 될 수 있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