正月
에 關東州郡
이 皆起兵
하야 以討董卓
할새 推渤海太守袁紹
하야 爲盟主
하니 紹
는 屯河內
하고 曹操
는 屯酸棗
注+[通鑑要解]退溪頭註에 縣名이라하고 袁術
은 屯魯陽
하니 衆各數萬
이라
豪傑
이 多歸心袁紹者
로되 鮑信
이 獨謂曹操曰
하나니 能
撥亂反正者
는 君也
라
苟非其人이면 雖强이나 必斃하리니 君은 殆天之所啓乎인저
○ 董卓이 以山東兵盛이라하야 欲遷都以避之하야 遂燒焚宮廟官府하고 劫遷天子하야 三月에 車駕入長安하다
○ 長沙太守孫堅
注+[原註]後에 其子權卽位하니 是爲吳라이 亦起兵討董卓
이러니 至南陽
하니 衆已數萬人
이라
前到
注+[頭註]前進也라魯陽
하야 與袁術合兵
하니 術
이 由是得據南陽
하고 表堅行破虜將軍
하다
○ 幽州牧劉虞 務存寬政
하고 勸督農桑
하니 民悅年登
하야 穀石三十
注+[通鑑要解]穀一石에 錢三十也라이라
靑, 徐士庶避難歸虞者 百萬이러니 皆忘其遷徙焉이러라
정월正月에
관동關東의
주군州郡이 모두 군대를 일으켜서
동탁董卓을 토벌할 적에
발해태수渤海太守 원소袁紹를 추대하여
맹주盟主로 삼으니,
원소袁紹는
하내河內에 주둔하고
조조曹操는
산조현酸棗縣注+[通鑑要解]산조酸棗는 퇴계退溪의 두주頭註에 현縣의 이름이라고 하였다. 에 주둔하고
원술袁術은
노양魯陽에 주둔하였는바, 병력이 각각 수만 명이었다.
호걸들이 원소袁紹에게 마음을 돌리는 자가 많았으나 포신鮑信은 홀로 조조曹操에게 이르기를 “큰 지략은 세상에 자주 나오지 않으니, 난亂을 다스려서 본래의 바름으로 돌아오게 할 자는 군君이다.
만일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면 비록 강하더라도 반드시 실패할 것이니, 군君은 아마도 하늘이 이 난세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낸 사람일 것이다.” 하였다.
○ 동탁董卓은 산동山東의 군사(토벌군)들이 강성하다 하여 천도遷都하여 피하고자 해서 마침내 궁궐과 사당祠堂과 관부官府를 불태우고 천자天子를 위협하여 옮겨서 3월에 거가車駕(天子)가 장안長安으로 들어갔다.
○
장사태수長沙太守 손견孫堅注+[原註]뒤에 그 아들 손권孫權이 즉위하니, 이것이 오吳나라이다. 이 또한 군대를 일으켜
동탁董卓을 토벌하였는데
남양南陽에 이르니 병력이 이미 수만 명이었다.
노양魯陽으로 전진
注+[頭註]전도前到는 전진함이다. 하여
원술袁術과 병력을 합하니,
원술袁術이 이로 말미암아
남양南陽을 점거하고
표문表文을 올려
손견孫堅을 천거하여
파로장군破虜將軍으로 삼았다.
○
유주목幽州牧 유우劉虞가 힘써 너그러운 정사를 보존하고 농사와 양잠을 권면하니, 백성들이 기뻐하고
연사年事가 풍년이 들어서 곡식이 한 섬에 30
전錢注+[通鑑要解]곡식이 한 섬에 30전錢인 것이다. 이었다.
청주靑州와 서주徐州의 사서인士庶人들이 전란戰亂을 피하여 유우劉虞에게 귀부歸附한 자가 백만 명이었는데, 모두 타향살이하는 시름을 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