會
에 劉琦卒
하니 權以備領荊州牧
한대 周瑜分南岸地
注+[頭註]荊江之南岸이니 則零陵, 桂陽, 武陵, 長沙四郡也라하야 以給備
하다
侍婢百餘人
이 皆執刀侍立
하니 備每入
에 心常凜凜
注+[頭註]恐爲所圖也라이러라
○ 曹操密遣蔣幹하야 往說周瑜한대 幹이 乃布衣葛巾으로 自託私行하야 詣瑜하니
瑜出迎之
하야 立
注+[通鑑要解]卽也라謂幹曰 子翼
注+[頭註]幹字라은 良苦
로다
遠涉江湖하야 爲曹氏作說客耶아하고 因延幹하야 與周觀營中하고 行視倉庫軍資器仗訖에
丈夫處世에 遇知己之主하야 外託君臣之義하고 內結骨肉之恩하야 言行計從하고 禍福共之하니
假使蘇, 張
注+[釋義]蘇秦, 張儀이니 皆七國時遊說之士라更生
이나 能移其意乎
아
幹이 但笑하고 終無所言이라가 還白操호되 稱瑜雅量高致는 非言辭所能間也라하니라
12월에 주유周瑜가 조인曹仁을 공격한 지 한 해가 넘었는데, 살상殺傷한 사람이 매우 많았다.
조인曹仁이 성城을 버리고 달아나자, 주유周瑜가 강릉江陵에 주둔하여 점거하였다.
마침
유기劉琦가 죽으니,
손권孫權이
유비劉備로 하여금
형주목荊州牧을 겸하게 하자,
주유周瑜가
남안南岸 지역
注+[頭註]남안南岸 지역은 형강荊江의 남쪽 언덕이니, 영릉零陵‧계양桂陽‧무릉武陵‧장사長沙의 네 군郡이다. 을 나누어
유비劉備에게 주었다.
손권孫權이 누이를 유비劉備에게 시집보내니, 손권孫權의 누이는 재주 있고 민첩하며 굳세고 용맹하여 여러 오라비들의 기풍氣風이 있었다.
시비侍婢 백여 명이 모두 칼을 잡고
시립侍立하니,
유비劉備가 매번 들어갈 때마다 마음에 항상 두려워하였다.
注+[頭註]늠름凜凜은 해를 당할까 두려워하는 것이다.
○ 조조曹操가 은밀히 장간蔣幹을 보내어 가서 주유周瑜를 설득하게 하니, 장간蔣幹이 마침내 삼베옷에 갈건葛巾을 쓰고 자칭 사사로운 친분으로 만나러 가는 것이라고 칭탁하고는 주유周瑜에게 갔다.
주유周瑜가 나와서 맞이하고 곧
注+[通鑑要解]입立은 즉시이다.장간蔣幹에게 이르기를 “
자익子翼注+[頭註]자익子翼은 장간蔣幹의 자字이다. 이 참으로 고생한다.
멀리 강호江湖를 건너와서 조씨曹氏를 위해 유세객이 되었는가?” 하고는 인하여 장간蔣幹을 맞이해서 그와 함께 진영 안을 두루 구경하고 창고와 군수물자와 병장기를 순시巡視하였다.
주유周瑜는 그런 다음 돌아와 술을 마시고 잔치하다가 인하여 장간蔣幹에게 이르기를
“대장부大丈夫가 세상을 살아감에 자신을 알아주는 군주를 만나 겉으로는 군신君臣의 의리義理를 의탁하고 속으로는 골육骨肉의 은혜를 맺어서 말이 행해지고 계책이 쓰여지며 화禍와 복福을 함께하니,
가령
소진蘇秦과
장의張儀注+[釋義]소장蘇張은 소진蘇秦과 장의張儀이니 모두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유세하던 선비이다. 가 다시 살아온다 해도 나의 뜻을 바꿀 수 있겠는가?” 하였다.
장간蔣幹은 다만 웃기만 할 뿐 끝내 말이 없다가 돌아가 조조曹操에게 아뢸 때에 주유周瑜의 넓은 아량과 높은 운치는 언어言語로 이간질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칭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