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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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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未]二十年이라
三月 魏公操 自擊張魯하다
○ 初 劉備在荊州할새 周瑜勸孫權取蜀注+[頭註] 劉璋이라이어늘 遣使謂備한대
備曰 備與璋으로 託爲宗室하고 冀憑英靈하야 以匡漢朝러니 今得罪於左右하니 願加寬貸하라
不聽하고 遣瑜率水軍하야 住夏口어늘 備不聽軍過注+[頭註]過之 不得過하고
謂瑜曰 汝欲取蜀인댄 吾當被髮入山하야 不失信注+[通鑑要解]言宗室被攻而不能救하니 無面目以立於天下也於天下라하니 不得已召瑜還이러니
及備西攻劉璋 權曰 猾虜乃敢挾詐如此라하더라
○ 備已得益州 令諸葛瑾注+[通鑑要解]諸葛亮 仕漢하고 諸葛瑾 仕吳하고 諸葛誕仕魏하야 三兄弟分仕三國하니라으로 從備求荊州諸郡호되 備不許
遂置長沙, 零陵, 桂陽三郡長吏러니 關羽盡逐之하니 大怒하야 遣呂蒙取三郡하다
劉備聞之하고 自蜀으로 親至公安하야 遣關羽하야 爭三郡하니 孫權 進住陸口하야 爲諸軍節度하고 使魯肅으로 將萬人하고 屯益陽以拒羽하다
聞魏公操 將攻漢中하고 劉備懼失益州하야 使使求和於權한대
令諸葛瑾報命하고 更尋盟好하야 遂分荊州하야 以湘水爲界하니 長沙, 江夏, 桂陽以東 屬權하고 南郡, 零陵, 武陵以西 屬備하다
○ 七月 魏公操 拔陽平注+[通鑑要解]關名也하니 張魯奔南山이어늘
操入南鄭하니 司馬懿言於操曰 劉備以詐力虜劉璋하야 蜀人未附어늘 而遠爭江陵하니 此機 不可失也
今克漢中이면 益州震動하리니 進兵臨之 勢必瓦解리이다 操曰 人苦無足이로다
旣得隴하고 復望蜀耶注+[釋義]按光武曰 苦不知足이라 旣平隴하고 復望蜀이로다 每一發兵 頭須爲白이라하니 此引其語 見光武建武八年하니라
劉曄曰 劉備 人傑也
有度而遲하니 得蜀日淺 蜀人 未附也
今破漢中이면 蜀人震恐하야 其勢自傾하리니 因其傾而壓之注+[頭註]服也 服之使從命也 無不克也
若小緩之 諸葛亮 明於治國而爲相하고 關羽, 張飛 勇冠三軍而爲將하니
蜀民 旣定하야 據險守要 則不可犯矣리이다 操不從이러니
居七日 蜀降者說蜀中 一日數十驚하야 守將雖斬之 而不能安也라하니
操問曄曰 今可擊不(否)아 曄曰 今已小定注+[通鑑要解]七日間 何以遽謂之小定 蓋窺覘備之蜀守有不可犯者 爲此言以對操也하니 未可擊也라한대
乃還하고 以夏侯淵, 張郃, 徐晃等으로 守漢中하다


건안建安 20년(을미 215)
3월에 위공魏公 조조曹操가 직접 장로張魯를 공격하였다.
○ 예전에 유비劉備형주荊州에 있을 때에 주유周瑜가 여러 번 손권孫權에게 注+[頭註]유장劉璋이다. 을 취하라고 권하므로 손권孫權이 사신을 보내어 유비劉備에게 말하니,
유비劉備가 말하기를 “내가 유장劉璋과 함께 의탁하여 황실皇室종족宗族이 되고 조종祖宗영령英靈에게 의지하여 나라 조정을 바로잡으려 하였는데, 지금 유장劉璋좌우左右(그대)에게 죄를 얻었으니 너그럽게 용서해 주기 바란다.” 하였다.
손권孫權이 듣지 않고 주유周瑜를 보내어 수군水軍을 거느리고 가서 하구夏口에 주둔하게 하자, 유비劉備는 군대가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注+[頭註]통과하려고 할 때에 통과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주유周瑜에게 이르기를
“네가 을 취하려고 한다면 나는 머리 풀고 산속으로 들어가서 천하에 신의를 잃지注+[通鑑要解]신의를 잃는다는 것은, 종실宗室이 공격당하는데도 구원하지 못하니 천하에 설 면목이 없음을 말한다. 않겠다.” 하니, 손권孫權이 부득이 주유周瑜를 불러 돌아오게 하였다.
유비劉備가 서쪽으로 유장劉璋을 공격하자, 손권孫權은 말하기를 “교활한 오랑캐가 마침내 감히 속임수를 씀이 이와 같다.” 하였다.
유비劉備가 이미 익주益州를 얻자, 손권孫權제갈근諸葛瑾注+[通鑑要解]제갈량諸葛亮촉한蜀漢에서 벼슬하고 제갈근諸葛瑾나라에서 벼슬하고 제갈탄諸葛誕나라에서 벼슬하여 3형제가 삼국三國에 흩어져 벼슬하였다. 으로 하여금 형주荊州의 여러 을 달라고 유비劉備에게 요구하게 하였으나 유비劉備가 허락하지 않았다.
손권孫權이 마침내 장사長沙영릉零陵계양桂陽장리長吏(令長)를 두었는데, 관우關羽가 모두 쫓아 버리니, 손권孫權이 크게 노하여 여몽呂蒙을 보내 세 을 취하게 하였다.
유비劉備가 이 말을 듣고 으로부터 직접 공안公安에 이르러 관우關羽를 보내어 세 을 다투게 하니, 손권孫權은 전진하여 육구陸口에 주둔하여 제군諸軍절도節度가 되고 노숙魯肅으로 하여금 만 명을 거느리고 익양益陽에 주둔하여 관우關羽를 막게 하였다.
마침 위공魏公 조조曹操한중漢中을 공격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 유비劉備익주益州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사자使者를 보내어 손권孫權에게 화친할 것을 청하였다.
손권孫權제갈근諸葛瑾으로 하여금 복명復命하게 하고 다시 맹약과 우호를 다져서 마침내 형주荊州를 나누어 상수湘水를 경계로 삼으니, 장사長沙강하江夏계양桂陽 이동以東손권孫權에게 속하고 남군南郡영릉零陵무릉武陵 이서以西유비劉備에게 속하였다.
○ 7월에 위공魏公 조조曹操양평관陽平關注+[通鑑要解]양평陽平관문關門의 이름이다. 을 함락하니, 장로張魯남산南山으로 도망하였다.
조조曹操남정南鄭으로 들어가자, 사마의司馬懿조조曹操에게 말하기를 “유비劉備가 속임수와 무력으로 유장劉璋을 사로잡아서 지방 사람들이 따르지 않는데 멀리 강릉江陵을 다투고 있으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제 한중漢中을 이기면 익주益州가 동요할 것이니, 군대를 전진하여 임한다면 형세가 반드시 와해될 것입니다.” 하니, 조조曹操가 말하기를 “사람이 만족할 줄 모름이 심하다.
이미 을 얻고 또다시 을 바란단 말인가.”注+[釋義]人苦無足……復望蜀耶:광무제光武帝가 말하기를 “만족할 줄 모름이 심하다. 이미 을 평정하고 다시 을 바라는구나. 매번 군대를 한 번 일으킬 때마다 머리와 수염이 센다.” 하였으니, 이 말을 인용하였는 바, 광무제光武帝 건무建武 8년에 보인다. 하였다.
유엽劉曄이 말하기를 “유비劉備는 걸출한 인물입니다.
도량이 있으나 행동이 더디니, 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지방 사람들이 아직 따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가 한중漢中을 격파한다면 지방 사람들이 진동하고 두려워하여 그 형세가 스스로 기울 것이니, 그 기운 틈을 타서 제압한다면注+[頭註]압지壓之는 복종함이니, 복종시켜 명령을 따르게 하는 것이다. 이기지 못함이 없을 것이요,
만약 조금이라도 늦추어 주면 제갈량諸葛亮은 나라를 다스림에 밝은데 정승이 되었고 관우關羽장비張飛는 용맹이 삼군三軍의 으뜸인데 장수가 되었으니,
지방 백성들이 이미 안정된 뒤에 험한 곳을 점거하고 요해처를 지킨다면 범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였으나 조조曹操가 따르지 않았다.
7일 만에 에서 투항해 온 자들이 말하기를 “ 지방은 하루에도 수십 차례씩 놀라서 지키는 장수들이 비록 참형斬刑을 가하여 진압해도 안정시키지 못한다.” 하였다.
조조曹操유엽劉曄에게 묻기를 “지금도 공격할 수 있는가?” 하니, 유엽劉曄이 말하기를 “지금은 이미 다소 안정되었으니,注+[通鑑要解]7일 사이에 어찌 대번에 조금 안정되었다고 말하는가? 유엽劉曄유비劉備을 수비함에 침범할 수 없는 점이 있음을 엿보아 알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을 하여 조조曹操에게 대답한 것이다. 공격할 수 없습니다.” 하였다.
조조曹操는 이에 돌아가고, 하후연夏侯淵장합張郃서황徐晃 등에게 한중漢中을 지키게 하였다.


역주
역주1 : 삭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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