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月에 魏公操 進爵爲王하니 魏以五官中郞將丕로 爲太子하다
○ 法正이 說劉備曰 曹操一擧而降張魯하고 定漢中이어늘 不因此勢하야 以圖巴蜀하고 而留夏侯淵, 張郃하야 屯守하고 身遽北還하니
今策
注+[頭註]料也라淵, 郃才略
컨대 不勝國之將帥
니 擧衆往討
면 必可克之
하리이다
○ 劉備屯陽平關하니 夏侯淵, 張郃, 徐晃等이 與之相拒하다
備遣其將陳式等하야 絶馬鳴閣道하니 徐晃이 擊破之어늘
急發益州兵
할새 諸葛亮
이 以問從事楊洪
하니 洪曰 漢中
은 益州
喉
요 存亡之機會
니 若無漢中
이면 則無蜀矣
라
亮
이 於是
에 表洪領蜀郡太守
하야 衆事
를 皆辦
하고 遂使卽眞
注+[通鑑要解]遂使之代法正也라하다
○ 初에 犍爲太守李嚴이 辟洪爲功曹러니 嚴이 未去犍爲에 而洪已爲蜀郡하고 洪擧門下書佐何祗有才策이러니 洪이 尙在蜀郡에 而祗已爲廣漢太守하니 是以로 西土咸服諸葛亮이 能盡時人之器用也러라
5월에 위공魏公 조조曹操가 작위가 승진되어 왕王이 되니, 위魏나라가 오관중랑장五官中郞將 조비曹丕를 태자太子로 삼았다.
○ 법정法正이 유비劉備를 설득하기를 “조조曹操가 일거에 장로張魯를 항복시키고 한중漢中을 평정하였는데, 이 형세를 인하여 파촉巴蜀을 도모하지 않고 하후연夏侯淵과 장합張郃을 남겨 두어 주둔해 지키게 하고 자신은 급히 북쪽으로 돌아갔습니다.
이제
하후연夏侯淵과
장합張郃의 재주와 지략을 헤아려
注+[頭註]책策은 헤아림이다. 보건대 우리나라 장수보다 낫지 않으니, 군대를 일으켜 가서 토벌한다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유비劉備가 그의 계책을 옳게 여겨서 마침내 여러 장수들을 거느리고 한중漢中으로 진군하였다.
○ 유비劉備가 양평관陽平關에 주둔하니, 하후연夏侯淵‧장합張郃‧서황徐晃 등이 유비劉備와 더불어 서로 대치하였다.
유비劉備가 장수 진식陳式 등을 보내어서 마명각馬鳴閣의 길을 차단하니, 서황徐晃이 격파하였다.
익주益州의 병력을 급히 징발할 때에 제갈량諸葛亮이 종사관從事官 양홍楊洪에게 물으니, 양홍楊洪이 말하기를 “한중漢中은 익주益州의 목이고 존망存亡의 관건關鍵이니, 만약 한중漢中을 잃는다면 촉蜀도 없게(잃게) 될 것입니다.
이는 가문家門의 화禍이니, 병력을 내는 것을 어찌 의심하십니까?” 하였다.
이때 법정法正이 유비劉備를 따라 북쪽에 가 있었다.
제갈량諸葛亮이 이에
표문表文을 올려
양홍楊洪에게
촉군태수蜀郡太守를 겸하게 하여 모든 일을 다 다스리게 하고, 마침내
양홍楊洪으로 하여금 정식
촉군태수蜀郡太守에 오르게 하였다.
注+[通鑑要解]마침내 양홍楊洪으로 하여금 법정法正을 대신하게 한 것이다.
○ 처음에 건위태수犍爲太守 이엄李嚴이 양홍楊洪을 불러 공조功曹로 삼았는데 이엄李嚴이 건위犍爲를 떠나기 전에 양홍楊洪이 이미 촉군태수蜀郡太守가 되었고, 양홍楊洪이 문하서좌門下書佐인 하지何祗가 재주와 모략謀略이 있다 하여 천거하였는데 양홍楊洪이 아직 촉군蜀郡에 있을 때에 하지何祗가 이미 광한태수廣漢太守가 되니, 이 때문에 서쪽 지방 사람들이 모두 제갈량諸葛亮이 사람들의 재기才器에 따라 등용함에 탄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