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辰]建興二年이라 〈魏黃初五年이요 吳黃武三年이라〉
魏主丕大興軍伐吳
할새 留尙書僕射司馬懿
하야 鎭許昌
하고 爲水軍
하야 親御龍舟
하고 至廣陵
注+[釋義]廣陵은 禹貢揚州也라 漢爲荊王國, 吳王國이러니 景帝更江都國하고 武帝更廣陵郡하고 唐爲楊州하니라하니 時
에 江水盛長
이라
丕臨望하고 歎曰 魏雖有武騎千群이나 無所用之니 未可圖也로다
丕御龍舟러니 會에 暴風이 漂蕩하야 幾至覆沒이라 乃旋師하다
후황제後皇帝는 이름이 선禪이고 자字가 공사公嗣이니, 소열황제昭烈皇帝의 아들이다.
건흥建興 2년(갑진 224) - 위魏나라 황초黃初 5년이요, 오吳나라 황무黃武 3년이다. -
위주魏主 조비曹丕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오吳나라를 정벌할 때에
상서복야尙書僕射 사마의司馬懿를 남겨 두어
허창許昌을 진무하게 하고,
수군水軍을 다스려 친히
용주龍舟를 타고
광릉廣陵注+[釋義]광릉廣陵은 《서경書經》 〈우공禹貢〉의 양주揚州이다. 한漢나라 때 형왕荊王의 나라와 오왕吳王의 나라가 되었는데, 경제景帝가 강도국江都國으로 고치고 무제武帝가 광릉군廣陵郡으로 고쳤으며, 당唐나라는 양주楊州라고 하였다. 에 이르니, 이때
양자강揚子江의 물이 크게 불어 넘쳤다.
조비曹丕가 강에 임하여 바라보고 탄식하기를 “위魏나라에 비록 무기武騎 천만 무리가 있으나 쓸 곳이 없으니, 도모할 수 없다.” 하였다.
조비曹丕가 용주龍舟에 타고 있었는데, 마침 폭풍을 만나 배가 위아래로 일렁여서 거의 전복될 지경에 이르자, 마침내 회군回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