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巳]三年이라 〈魏黃初六年이요 吳黃武四年이라〉
丞相亮
이 率衆討雍
注+[頭註]闓는 與開同하니 姓名也라 益州耆帥雍闓 殺太守하고 求附於吳라할새 參軍馬
이 送之
어늘
夫用兵之道는 攻心이 爲上이요 攻城이 爲下며 心戰이 爲上이요 兵戰이 爲下니 願公은 服其心而已니이다 亮이 納其言하다
○ 七月에 丞相亮이 至南中하야 所在에 戰捷이라
由越
注+[頭註]嶲는 音髓니 郡名이라入
하야 斬雍闓
하다
孟獲이 收闓餘衆하야 以拒亮하니 獲이 素爲夷, 漢所服이라
亮이 募生致之하야 旣得에 使觀於營陳之間하고 問曰 此軍이 何如오
獲曰 向者에 不知虛實故로 敗어니와 今蒙賜觀營陳하니 若秪(只)如此면 卽定易勝耳니이다
亮이 笑하고 縱使更戰하야 七縱七禽하고 而亮猶遣獲한대 獲이 止不去曰 公은 天威也라
○ 八月
에 魏主丕以舟師
로 自譙循
注+[釋義]地志에 沛郡에 有譙縣이러니 魏爲譙郡하고 後周改亳州하니 今因之하니라 渦는 水名이니 在沛國譙縣이라入淮
하야
十月
에 如廣陵
하야 臨江觀兵
注+[頭註]觀은 音貫이니 觀示兵威也니 謂陳兵脅之也라하니 戎卒
이 十餘萬
이요 旌旗數百里
라
有渡江之志러니 吳人이 嚴兵固守하고 時에 大寒冰하야 舟不得入江이라
건흥建興 3년(을사 225) - 위魏나라 황초黃初 6년이요, 오吳나라 황무黃武 4년이다. -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병력을 거느리고
옹개雍闓注+[頭註]개闓는 개開와 같으니, 옹개雍闓는 성명姓名이다. 익주益州의 기수耆帥인 옹개雍闓가 태수太守를 죽이고 오吳나라에 귀부歸附하기를 구하였다. 를 토벌할 때에
참군參軍 마속馬謖이 전송하였다.
제갈량諸葛亮이 말하기를 “비록 함께 이 일을 도모한 지가 여러 해이지만 이제 다시 좋은 계책을 세워 주게.” 하였다.
마속馬謖이 말하기를 “남쪽 지방은 지형이 험하고 거리가 먼 것을 믿고 복종하지 않은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비록 오늘 그들을 격파한다 해도 내일 다시 배반할 것입니다.
용병用兵하는 방법은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상책上策이고 성을 공격하는 것이 하책下策이며, 마음으로 싸우는 것이 상책上策이고 군대로 싸우는 것이 하책下策이니, 공公이 그들의 마음을 복종시키기를 바랄 뿐입니다.” 하니, 제갈량諸葛亮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
○ 7월에 승상丞相 제갈량諸葛亮이 남중南中에 이르러 이르는 곳마다 싸워서 승리하였다.
월수군越嶲郡注+[頭註]수嶲는 음이 수이니, 월수越嶲는 군郡의 이름이다.으로부터 쳐들어가
옹개雍闓를 목 베었다.
맹획孟獲이 옹개雍闓의 남은 병력을 거두어 제갈량諸葛亮에게 항거하니, 맹획孟獲은 평소 오랑캐와 한족漢族에게 심복을 받고 있었다.
제갈량諸葛亮이 현상금을 내걸어 생포해 오게 하고, 이미 사로잡은 뒤에 맹획孟獲으로 하여금 진영陣營 사이를 구경하게 하고는 묻기를 “이 군대가 어떠한가?” 하니,
맹획孟獲이 말하기를 “지난번에는 허실虛實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실패하였지만 지금 은혜를 입어 진영을 구경하였으니, 만약 단지 이와 같을 뿐이라면 즉시 정히 쉽게 이길 수 있다.” 하였다.
제갈량諸葛亮이 웃고 풀어 주어 그로 하여금 다시 싸우게 해서 일곱 번 풀어 주었다가 일곱 번 사로잡고는 제갈량諸葛亮이 오히려 맹획孟獲을 보내 주니, 맹획孟獲이 멈추고 가지 않으며 말하기를 “공公은 하늘이 내신 위엄이십니다.
남쪽 사람들이 감히 다시는 배반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후로 제갈량諸葛亮이 생애를 마치도록 오랑캐가 다시는 배반하지 않았다.
○ 8월에
위주魏主 조비曹丕가
주사舟師(水軍)를 거느리고
초현譙縣으로부터
와수渦水를 따라
注+[釋義]《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패군沛郡에 초현譙縣이 있었는데, 위魏나라가 초군譙郡으로 삼았고 후주後周가 박주亳州라고 고쳤으니, 지금 그대로 따르고 있다. 와渦는 물 이름이니 패국沛國의 초현譙縣에 있다. 회수淮水로 들어갔다.
10월에
광릉廣陵에 가서 강가에 임하여 군대를 사열
注+[頭註]관觀은 음이 관이다. 군대의 위용威容을 보여 주는 것이니, 병력을 진열하여 위협함을 이른다. 하니, 병졸이 십여만 명이고 깃발이 수백 리에 이어졌다.
양자강揚子江을 건너갈 뜻을 품고 있었는데, 오吳나라 사람들이 군대를 정돈하여 견고하게 수비하고 있었고 이때 큰 추위가 닥쳐 수면이 얼어서 배가 강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조비曹丕는 양자강揚子江의 파도가 세차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탄식하기를 “아!
이는 진실로 하늘이 이 강江을 가지고 남과 북을 한계 지은 것이구나.”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