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己巳]十二年이라 〈魏嘉平元年이요 吳赤烏十二年이라〉
魏太傅懿 以皇太后令
注+[頭註]以者는 非眞有此令也라으로 閉諸城門
하고 勒兵據武庫
하다
奏호되 爽이 與何晏, 鄧颺, 丁謐, 畢軌等으로 陰謀反逆이라하고
於是
에 收爽, 羲, 訓, 晏, 颺, 謐, 軌, 勝
注+[釋義]羲, 訓二人은 曹爽弟也요 勝은 李勝也라하야 皆下獄
하고 劾以
大逆不道하야 夷三族
하다
輅曰 鄧之行步
는 筋不束骨하고 脈不制肉하고 起立傾倚
하야 若無手足
하니
何之視候엔 則魂不守宅하고 血不華色하며 精爽이 烟浮하고 容若槁木하니 此爲鬼幽라
○ 魏何晏
이 性自喜
하야 粉白
을 不去手
注+[頭註]自以塗澤也라하고 行步
에 顧影
하고 尤好老, 莊
注+[附註]老子는 見九卷하니라 莊子는 名周요 字子休니 號曰南華仙人이라 嘗爲蒙縣漆園吏하니 與梁惠王, 齊宣王同時라 老, 莊은 皆尙虛無之學하니라之書
하야 與夏侯玄, 荀粲
注+[頭註]彧之子라及王弼之徒
로 競爲淸談
하고 祖尙虛無하야 謂六經爲聖人糟粕注+[通鑑要解]桓公讀書事는 하니라 公이 讀書堂上이러니 輪扁問 讀何書니잇고 曰 讀古人書니라 扁曰 古人在否잇가 曰 已死矣니라 扁曰 然則是古人糟粕矣니이다이라하니 由是
로 天下士大夫 爭慕效之
하야 遂成風流하야 不可復制焉
하니라
○ 魏以太傅懿
로 爲丞相
하고 加
하니 懿固辭不受
하다
○ 秋에 姜維伐魏하야 攻雍州어늘 鄧艾禦之하니 維軍이 遂還하다
연희延熙 12년(기사 249) - 위魏나라 가평嘉平 원년元年이고, 오吳나라 적오赤烏 12년이다. -
위魏나라
태부太傅 사마의司馬懿가
황태후皇太后의 명령이라 칭하고서
注+[頭註]이以는 참으로 이러한 명령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여러 성문을 닫고 군대를 무장하여
무고武庫를 점령하였다.
사마의司馬懿가 아뢰기를 “조상曹爽이 하안何晏‧등양鄧颺‧정밀丁謐‧필궤畢軌 등과 은밀히 반역을 도모하였습니다.” 하고,
이에
조상曹爽‧
조희曹羲‧
조훈曹訓‧
하안何晏‧
등양鄧颺‧
정밀丁謐‧
필궤畢軌‧
이승李勝注+[釋義]收爽……勝:조희曹羲와 조훈曹訓 두 사람은 조상曹爽의 아우이고, 승勝은 이승李勝이다. 을 체포하여 모두 하옥시키고 대역무도하다고 탄핵하여
삼족三族을 멸하였다.
○ 위魏나라 관로管輅의 외숙外叔이 관로管輅에게 이르기를 “네가 지난번에 하안何晏과 등양鄧颺이 실패할 줄을 어찌 알았느냐?” 하니,
관로管輅가 말하기를 “등양鄧颺의 걸음걸이는 힘줄이 뼈마디를 단속하지 못하고 맥脈이 살을 제어하지 못해서 일어설 때에 몸이 기울어 수족手足이 없는 듯하니 이것은 귀조鬼躁이고,
하안何晏이 안후安候를 살필 때에 혼백魂魄이 집(身體)을 떠난 듯하고 피가 제대로 돌지 못하여 화색이 없으며 정신은 떠 있는 연기와 같고 용모는 마른나무와 같으니 이것은 귀유鬼幽입니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큰 복福(長壽)을 누릴 수 있는 상象이 아닙니다.” 하였다.
○
위魏나라
하안何晏은 성품이 자기 몸을 치장하기를 좋아하여 흰
분粉을 손에서 놓지 않았고
注+[頭註]스스로 분을 칠하여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걸음을 걸을 때에는 그림자를 돌아보았으며,
노장老莊注+[附註][附註]老 장莊:노자老子는 9권에 보인다. 장자莊子는 이름이 주周이고 자字가 자휴子休이니 호號를 남화선인南華仙人이라 하였다. 일찍이 몽현蒙縣의 칠원리漆園吏가 되었으니, 양혜왕梁惠王‧제선왕齊宣王과 같은 때이다. 노자老子와 장자莊子는 모두 허무한 학설을 숭상하였다. 의 글을 특히 좋아하여
하후현夏侯玄‧
순찬荀粲注+[頭註]순찬荀粲은 순욱荀彧의 아들이다. ‧
왕필王弼의 무리와 다투어
청담淸談을 하고 허무한 학설을
원조元祖로 삼아 숭상하여
육경六經을 일러
성인聖人의
조박糟粕(찌꺼기)
注+[通鑑要解]환공桓公이 독서한 일은 《장자莊子》에 보인다. 환공桓公이 당상堂上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수레바퀴를 만드는 편扁이 “무슨 책을 읽고 계십니까?” 하고 물었다. 환공桓公이 “고인古人의 책을 읽고 있다.” 하고 대답하니, 편扁이 “고인古人은 살아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환공이 “이미 죽었다.” 하고 대답하니, 편扁이 말하기를 “그렇다면 이것은 고인古人의 조박糟粕일 뿐입니다.” 하였다. 이라 하니, 이로 말미암아 천하의
사대부士大夫들이 다투어 사모하고 본받아서 마침내
풍류風流를 이루어 다시 제재할 수 없었다.
○ 위魏나라가 태부太傅 사마의司馬懿를 승상丞相으로 삼고 구석九錫을 가하니, 사마의司馬懿가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 가을에 강유姜維가 위魏나라를 정벌하여 옹주雍州를 공격하자 등애鄧艾가 막으니, 강유姜維의 군대가 마침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