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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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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申]十五年이라 〈魏嘉平四年이요 吳主孫亮建興元年이라
四月 吳主殂하니 諡曰大皇帝라하다
太子亮 卽位하다
○ 姜維負其才武하고 每欲興軍大擧어늘 費褘常裁制不從하고 與其兵호되 不過萬人하고 曰 吾等 不如丞相注+[頭註]謂孔明이라 亦已遠矣
丞相 猶不能定中夏 況吾等乎
不如且保國治民하야 謹守社稷이요 如其功業 以俟能者라하더니
及褘死 維得行其志하야 乃將數萬人하고 出石營하야 伐魏圍狄道하다


연희延熙 15년(임신 252) - 나라 가평嘉平 4년이고, 오주吳主 손량孫亮건흥建興 원년元年이다. -
4월에 오주吳主가 죽으니 시호를 대황제大皇帝라 하였다.
태자太子 손량孫亮이 즉위하였다.
강유姜維가 자신의 재주와 무략武略을 믿고 매번 군대를 일으켜 크게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비위費褘가 항상 제재하여 그의 말을 따르지 않고 그에게 병력을 주되 만 명을 초과하지 않고서 말하기를 “우리들이 승상丞相注+[頭註]승상丞相제갈공명諸葛孔明(諸葛亮)을 이른다. 만 못함이 또한 너무나도 현격하다.
승상丞相도 오히려 중하中夏를 평정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우리들에 있어서랴.
우선 나라를 보존하고 백성들을 다스려서 사직社稷을 삼가 지키는 것만 못하고, 공업功業에 있어서는 유능한 자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하였다.
비위費褘가 죽자, 강유姜維가 자신의 뜻대로 행할 수가 있어서 마침내 수만 명을 거느리고 석영石營으로 나가 나라를 정벌하여 적도狄道를 포위하였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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