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庚辰]三年이라 〈魏元帝曹奐景元元年이요 吳永安三年이라〉
正月에 魏主髦 見威權日去하고 不勝其忿하야 曰 司馬昭之心은 路人所知也라
遂拔劍升輦
하야 率殿中宿衛蒼頭
注+[頭註]長大有膂力者之號요 又魏兵卒之號라 漢名奴爲蒼頭者는 服純墨而別於良人也라官僮
하고 鼓譟而出
하니 中護軍賈充
注+[頭註]惠帝賈后父也라이 自外入
하야 逆與髦戰於南闕下
러니
太子舍人成濟 抽戈刺髦
注+[通鑑要解]髦自用劍하니 衆欲退어늘 成濟問於充而抽戈前斬하니라하야 殞于車下
하다
太后下令
하야 罪狀高貴鄕公
하야 廢爲庶人
하고 使中護軍司馬炎
으로 迎常道鄕公璜
注+[頭註]武帝孫燕王宇之子也라於鄴
하야 以爲明帝嗣
하니 炎
은 昭之子也
라
경요景耀 3년(경진 260) - 위魏나라 원제元帝 조환曹奐의 경원景元 원년元年이고, 오吳나라 영안永安 3년이다. -
정월에 위주魏主 조모曹髦가 위엄과 권력이 날로 떠나가는 것을 보고는 그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말하기를 “사마소司馬昭의 마음은 길 가는 사람도 아는 바이다.
내 가만히 앉아서 폐출당하고 모욕을 받을 수 없으니, 금일에 마땅히 스스로 궁을 나가 사마소司馬昭를 토벌하겠다.” 하였다.
마침내 검을 뽑아 들고
연輦에 올라
전중殿中을
숙위宿衛하는
창두蒼頭注+[頭註]창두蒼頭는 체격이 장대長大하고 완력이 강한 자의 호칭이요, 또 위魏나라 병졸의 호칭이다. 한漢나라 때에 종을 이름하여 창두蒼頭라고 한 것은 옷이 순흑색이어서 양인良人과 다르기 때문이다. 와
관동官僮(노복)들을 거느리고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나가니,
중호군中護軍 가충賈充注+[頭註]가충賈充은 혜제惠帝의 후비后妃인 가후賈后의 아버지이다. 이 밖으로부터 들어와
조모曹髦를 맞아 남쪽 대궐문 아래에서 싸웠다.
태자사인太子舍人 성제成濟가 창을 뽑아
조모曹髦를 찔러서
注+[通鑑要解]太子舍人成濟 추과자모抽戈刺髦:조모曹髦가 본래 칼을 잘 쓰니 군사들이 물러나려고 하였는데, 성제成濟가 가충賈充에게 묻고는 창을 뽑아 면전에서 조모曹髦를 목 베었다. 조모曹髦가 수레 아래에서 죽었다.
태후太后가 명령을 내려
고귀향공高貴鄕公의 죄상을 공포하고 폐위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서
중호군中護軍 사마염司馬炎으로 하여금
상도향공常道鄕公 조황曹璜注+[頭註]상도향공常道鄕公 조황曹璜은 무제武帝(曹操)의 손자孫子인 연왕燕王 조우曹宇의 아들이다.을
업鄴에서 맞이하여
명제明帝의
후사後嗣로 삼게 하니,
사마염司馬炎은
사마소司馬昭의 아들이다.